긴 글 주의! 개인적인 감상글임. 확대해석은 하지 마시길 바람. 오늘도 마이웨이!




밥 먹는 게 꼴보기 싫어졌다.


  


해영이에게 이별의 말을 하면서 건넨 말이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해서는 안되는 말이 있음을 알지 못하는 걸까?


아니면 정말 딱 정이 떨어져서 다시는 자신을 기억하지 말기를 바라는 배려였을까?


하지만 저 말은 절대로 해서는 안되는 말이었다.


태진의 의도는 겉으로는 해영을 배려한 행동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자신밖에 생각하지 않는 사람임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남자의 자존심을 지키고 싶다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행동이다.


하지만 저 말.


저 말을 하면서 그는 그 말에 해영이 어떤 상처를 받을지 몰랐던 걸까?


그냥 뻔하고 진부하더라도 다른 여자가 생겼다는 말을 해도 충분히 이해하지 않았을까?


해영이 상처받는다.


밥 먹을 자격조차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소중하게 생각한 상대방에게 바닥까지 내던져진 자신의 존재감을 회복한다는 것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왜 그런 말을 해야 했을까?


자신과 헤어지고도 그녀가 홀로이길 바란 이기심이 한자락도 들어있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


못됐다.


헤어짐에도 예의가 존재함을 태진이 모른다.



밥 먹는 행위는 살기 위한 마지막 행위이다.


살기 위해서, 살아내기 위해서, 혹은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 사람들은 먹는다.


그런데 태진이 말한다.


혹시 자신이 무엇을 잘 못했는지 묻던 해영이 숨 쉬는 것마저 잊은 듯 멈춘다.


그리고 슬픈 눈으로 태진을 바라보며 말한다.


그리고 이 결혼을 깬 것은 자신인 것으로 하자고 말한다.


해영은 왜 이렇게 쉽게 인연을 놓아버린 걸까?


밥 먹는 것이 보기 싫다는 건.... 너는 내 앞에서 먹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란 말과 같다.


죽도록 네가 싫다는 말.


더 이상 자신을 보는 게 죽을 만큼 싫다는 사람에게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해영이 그가 자리를 떠난 후 한참을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한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수군거림과 손가락질을 받아낸다.


왜 그랬을까?


그냥 버림받은 사람이 될 수도 있었는데, 피해자로 측은한 시선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을 텐데,


왜 굳이 그녀는 모든 책임을 짊어지는 가해자가 되었을까?


아마도 그녀는 울고 싶지 않았던 게 아니었을까?


평생을 존재감 없이 조용히 살아왔다.


그냥 오해영으로.


그 존재감 없음에 버림받은 여자라는 소리까지 듣고 싶지 않은 게 아닐까?


모두가 생각하는 네가 그렇지, 너한테 신데렐라 같은 동화 같은 결혼이 어울리겠냐는 수군거림은 참을 수 없었던 게 아닐까?


왠지 불쌍할 것 같은 인생이 결국은 버림받았다는 소리는 너무 아픈 소리가 될 테니까?


스스로에 대한 배려로 해영이 가해자의 자리를 선택한다.



하지만 가해자가 된 해영이 생각하지 못한 한 가지는 정말 울고 싶을때 울지 못한다는 것이다.


누구의 어깨에도 기대서 울지 못한다.


그 순간 자신이 불쌍한 존재가 되니까?


해영이 가면을 쓴다.


해영이 웃는다.


해영이 더 크게 웃고 술을 마시고 춤을 춘다.


하지만 그 눈 속에 슬픔이 차곡차곡 쌓여간다.


홀로 남는 걸 두려워한다.


그래서 더 누군가와 함께 하려고 술을 마신다.


하루가 지나고, 또 하루가 지난다.


그녀의 텅 빈 웃음을 아무도 알아보지 못한다.


차곡차곡 쌓이는 슬픔이 자꾸 그녀의 눈가를 촉촉이 적신다.


그리고 터져 나온다.


흔들리는 걸음걸이로 길을 비틀거리는 그녀의 눈가에 흘러내린다.


하지만 위로가 되지 못한다.


혼자 할 수 없는 일이 존재함에 더 큰 상처를 부여잡고 오열한다.


그녀의 상처가 얼마 난 깊은지 헤어짐의 예의를 모르는 그 사람은 알고 있을까?







결혼식 당일 홀로 남겨진 도경의 깊은 슬픔 또한 마찬가지의 이야기를 한다.


또 다른 해영이 말도 없이 잠적을 한다.


그리고 그녀가 sns에 올린 한마디 멘트는 한 사람을 깊은 슬픔의 바닥으로 끌어내린다.


함께 행복했다고 느꼈던 그 시간을 모두 부정하는 말.


적어도 얼굴을 마주하면서 했어야 할 이야기를 그녀가 글 한 줄로 마무리하려 한다.


자신의 심장소리가 너무 좋다고 말하던 그녀의 목소리를 자꾸 회상하는 도경.


아직 잊지 못해서라기보다는 아직도 이해하지 못했다가 맞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타인의 심장소리.


생명을 말한다.


네가 살아 숨 쉬는 자체가 나에게 행복이라는 말.


그렇게 말하던 사람의 차가운 한 줄의 글은 함께했던 시간들의 기억을 홀로 정리할 수 없게 한다.


이유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나의 잘못인지, 너의 잘못인지도 알 수 없는 애매모호한 끝은 사람을 미치게 한다.


살아있는 존재를 부정당한 사람의 고통 속에서 도경이 웃음을 잃는다.


그녀는 왜 그랬을까?


아마도 그녀는 그에게 오랜 시간 기억되길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이해할 수 없는 그녀의 이기심은 도경을 오랜 시간 또 다른 인연을 만날 기회를 잃어버리게 한다.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인듯한 좌절감은 자꾸 자기 안으로 숨어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도경이 혼자가 된다.



사랑했지만 내가 사랑한 누군가보다 자신을 더 많이 사랑한 그들의 배려심 없는 말과 행동에 상처받는다.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해서는 안되는 행동을 통해서 한 사람의 인생을 차가운 겨울 한가운데로 몰아넣는다.


언제 봄이 찾아올지 모르는 시간이 멈춘 겨울 한가운데로 몰아넣는다.


그들이 어떤 상황에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는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런 결과를 만들어내기까지 그들에게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 우리는 깊이 있게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들의 이별 방식에 두 사람이 깊은 상처를 입은 것은 알고 있다.


  


적어도 누군가에게 헤어짐을 말할 때는 그동안 사랑했던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가 존재해야 하는 게 아닐까?


내가 한때 사랑했던 사람이 다시 사랑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배려.


오랜 시간 나락으로 떨어져 홀로 울지 않도록 어떤 말과 행동이 필요한지 해영과 도경의 고통을 통해서 말하고 있다.


한 달의 시간이 흘러도 가슴으로 흘러내리는 핏물 같은 눈물을 홀로 흘리는 해영을 통해서.


일 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지금도 기억의 잔상에 괴로운 도경의 웃음을 잃어버린 표정 없는 얼굴을 통해서 말해주고 있다.


사랑했다면,


당신이 시작의 설렘을 가졌듯이,


자신이 짊어져야 할 슬픔과 아픔이란 짐은 스스로가 감당하는 예의를 지녀야 함을


그들의 예의 없는 말을 통해서 보여주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들의 예의 없는 이별은 또 다른 우연의 끈을 엮어낸다.


그 인연의 끈을 잡고 있는 도경과 해영이 서로를 마주 본다.


그리고 그 눈 속에서 같은 상처를 발견한다.


데자뷔.


어디선가 본듯한 영상을 보는 것은 사실은 도경만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해영에게 이미 도경은 어디선가 만난듯한 이상한 친숙함으로 다가온다.


자신이 어느 부분에서 설렘을 느낄지 답안을 들고 있는 듯 그가 자신의 곁을 지킨다.


그리고 그의 행동 하나에 또 다시 설렘을 느낀다.


웃는다.


그의 품으로 달려가는 그녀의 표정에 한 번의 망설임이 없는 것에서 그것을 본다.


또 다른 형태의 데자뷔를 느끼고 있는 해영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