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부 문장 수정했어 :)



이 작품은 머릿속 이론과 이성만을 가지곤 어려운게 맞는 것 같아


그렇게 생각하면,


그 조그만 어린아이가 아버지의 시체;를 끌고 오는 저 상황이.

기어를 넣고 운전이라도 하려는 듯한 저 모습이.

남자에게 자자고 조르는 오해영이나 오해영으로 인해 아예 사람 자체가 바뀌어 버린 듯한 박도경이나 사랑결핍 애정결핍이라도 걸린 듯 서로를 갈구하는 이 '박도경 오해영' 두 사람의 모습이. 참으로 이상하고 괴랄스러울 수, 당연히 있을 것 같아


그런데 있지,  

분명 참으로 불친절한 이 드라마가 

나는 왜 이렇게 아련한거지.


# 회상씬. 아버지와 어린 박도경.


개인적으로 부수 인물 지루한 것을 제외하고는 오늘 회차, 어제보단 참으로 잔잔하고 휘몰아침 전혀 없는 회차이긴 했어도

그 어느 때 보다 따뜻했고 잠시나마 다행이었고 그래서 행복했고. 회상씬 나올 때는 옷깃 부여잡으며 울기까지 했던 회차였던 것 같아.


나도 본방 보면서는 뭔 아가가 아빠를 저렇게 옮길 수가 있어 하고 잠시 헉했었는데,

아빠를 뭐 자기 혼자 서울까지 데려온 것도 아니고 (물론 아기가 길을 어떻게 저리 잘 찾아. 힘도 없는 애가 어떻게<-의 사유를 하나하나 따지자면야 끝도 없지만.) 

낙사해버린. 자신이 찰라에 나비를 쫓을 동안 시야에서 사라져버린.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고 믿고 존경했던 단 하나의 사람이 피 철철 흘리며 스러져있는걸 본다면

단지 이성적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평상시엔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하지만 지금 저 일을 겪은, 저 어린아이에게는. 저 어린 박도경에게는. 비록 그것이 아주 작은 소년일지라도 충분히 '그 어떠한 초인적인 힘도' 발휘할 수 있겠다. 라고 생각을 했어. (한 예로, 아까 어떤 글 보니까 해외에서 실제 7세인가 아이가 어른을 끌은?들은? 사례가 있다고 본 것 같고)


기어놓는 모습 역시 나는 애기가 정말 '운전을 하려고'했다기 보다는 아버지가 저래 되니 그저 저 애기가 아무것도 모른채 늘상 아빠가 했던 것을 '보아왔던 그대로' = 그러니까 '뭘 알고 저러는' 것이 아니라, 그저 아버지가 했던걸 시늉이나 하면서 "아빠 내가 살려줄께 아빠 잠깐 기다려 아빠 나만 믿어" 하는 것 같았어. 기어 넣을 때 다른 차 비상등(인가)이 켜진 것은 그 사람들로 인해 이들이 발견되었다는 내용으로 이해했고. 


핸드폰도 없었냐, 아빠를 끌고 있을 동안 다른데 가서 사람을 불러오지 그랬냐, 라는 생각도 했는데. 아버지가 낙사하며 휴대폰도 어딘가로 날라갔겠지, 단순하게 이해됐던 것 같아. 그리고 '누군가를 불러' 오기에는. 피흘리는 아빠를 '일단 잠시 놓아두고' 누군가를 부르러 먼거리를 내달릴 여력조차 없는 어린아이인걸. 그저 이 어린 아이 머릿속은 아빠와 나. 둘이었을꺼같아. '아빠 내가 구해줄께'. 아빠 내가. 아빠 내가...


아가 도경은 아빠의 죽음을 모르는 것 같았어. 피를 흘리고 '죽어가는' 아버지를 구하고자 했지만.

사실 이미 죽어있었다는 것을. 시청자는 알고 있지.


그렇기에 참으로 괴랄한 장면일 수 있고. 더군다나 모든 장면을 이해해준다쳐도 아버지를 차에 넣기까지 한 것(...)은 진심으로 킹 오브 무리수지만.  

작가가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는 정확하게 알게된 것 같아. 물론 굉장히 극대화 처리되어있는게 사실이지만,  


아빠가 세상이고 세계고 우주였던 아가 박도경. 그에게 있어 아빠가. 아빠의 부재가. 어느순간 훅. 그 어린 아가를 치고 들어온 '사라짐'...으로 이어지면서. 박도경에게 트라우마가 되었으며. 그러므로 우리는, 그에게서 말도 없이 결혼식 당일 전해영이 떠난 것이 얼마나 큰 상처였을지. 알 수 있게 되었잖아. 


회상씬에서 (지금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은 것 같은. 이놈의) 허지야가 술마시고 못된말하며 들어갈 때 아무 말 없이 그런 허지야를 바라보는 아빠의 손을 꼬옥 잡아주며 엄마가 들어가자 아빠와 함께 약속이라도 한 듯. '우리 슬프지 말자' 하는 듯. 웃어주는 어린아이. 아빠가 세상이고 세계고 우주였던 아가 박도경. 그에게 아빠가 얼마나 절대적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씬이었기에 나는 정말이지 너무나도 중요했고 필요했던 장면 같아서. 절절히 공감했고 함께 울었고 가슴이 저몄어.


말이 돼?스러운 씬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들을 따지고 싶지 않을만큼. 반드시 필요했고 존재해야했던 씬들이었다고 생각해.


(비슷한 맥락으로 오늘 훈이와 있었던 에피소드, 참 좋았다고한다. ㅜㅜ)  


# 박도경. 그리고 오해영.  


그러니 언젠가 사라져버릴지 모를. (아직 정확한 사유가 나오진 않았지만) 언젠가 죽어버릴지 모를. 

가까운 미래에. 어느순간 툭. 자신의 아버지가 그랬듯 자신도 어느새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게 될 수 있는 그 '사라짐'을 자신이. 오해영에게 겪게 한다.

박도경에겐 이제 그녀에게 상처주지 않기위해 (한태진과도 같이) 그녀의 손을 놓느냐. 아니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해영의 손을 잡느냐.  

이 기로에 놓였던 거고. 

결국 도경이는 후자를 택했어.


순간의 터짐으로 미친듯이 키스했던 9화의 모습이 아니라.


그들은 진심으로 서로를 '위로해주고싶어서' 다시 만나.

서로를 안아주고, 포용해줘.


끝가지 가보려해.

그 끝이, 어찌되었든.


그저 서로를 미친듯이 원하기에. 그 단순한 하나의 사유가 '온통'이 되는건 한 순간이야.

그들은 지금까지 수도없는 회차에서 저 고민을 해왔고. 또 해왔고. 


이제 드디어 마친것. 이라는 생각을 하였어.

그리고 이후론, 이런 그들에게 또 다른 시련들이 닥치게 될 것이고 이것으로 제 2막의 '또해영'이 열리겠지.


남자를 밝히는 오해영...?


...이 부분은. '남자를'이 아니라 '사랑에 미친'으로 바꿔야 할 것 같아.


자지 못해 환장해서가 아니라.

남자가 너무너무 필요해서가 아니라.

애정결핍에 스킨쉽에 굶주린 여자라서가 아니라.


그냥 박도경이기 때문이잖아.


사랑에 미쳐버린. 이젠 그만 직진만을 하기로한. 자기 감정 1도 남기지 말고 모두 드러내고 마음껏 사랑하고 내 마음 모두 주자, 했던 오해영이잖아.


'자자' 혹은 '우리 왜 자지 않아?' 식의 언급들은. 오해영에게 있어서는 '나 너 정말로 좋아. 미치게 좋아. 미쳐버리게 좋아.'의 의미고. 그것을 박도경이 알아.

그것을 사랑스럽게 여기고 소중하게 지켜주려는 박도경.


작가가 보여주고싶었던건 이것일꺼야.


이게 단순히 '못자서 안달난'으로 느껴지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테니 그런 부분은 분명 속상한데,

정확한건 오해영은 남자를. 침대를 밝히는게 아니라 '박도경'을, '미치게' '좋아한다'는 것.


그거라는거.


_


이 작품은 더이상 로코가 아니야. 

정확히 말하면, 이제 더이상 '가볍게만 볼 수 있는 로코물이 아니다'란 표현이 맞겠다.  

물론 두 사람이 서로를 사랑하고 애정하는 씬들은 단연코 사랑스럽겠지만 말이야.

극도로 불편한 감정 또한 생겨날 수 있다는거.


날 것. 쌩 '날 것'.

드라마가 거침이 없어.

택시아저씨 죄다 듣고 있는데 자는 얘기 꺼내는 서해영이나 더 좋은 데서 자자는 박도경이나. 대사 자체로는 멋있을지 몰라도 남(택시아저씨) 듣는데 뭐 하는겨 ㅋㅋ 싶을 수도 있고.

여주가 남주에게 '자자'고 하고.

때때로 폭력적이라고 말나오는 다툼씬들.


100프로의 시청자가 '호'에 가까웠다가, 이제는 호도 불호도 극호도 극불호도 생겼지.


어차피 이 부분은 작가가 잘 쓰려고 했는데 '실수'로 이렇게 된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보여주고싶었던 코드와도 같은 듯 해.


일단 나는 마지막회까지 열심히 함께 달리려해.

나같은 사람도 있을꺼고 중간에 놓는 청자들도 있겠지만,


이렇게 호불호가 갈리고 의견이 수많은 것. 이 자체로도 이 드라마는 '성공'이라고 본다. 


화아. 그래서 결론은 

오늘도 세시영. 이네;;; ㅎㅎ


내일 눈을 드면 청률이가 조금이라도 올랐기를 바래보아.


어뜨케 보면 한낱 작품하나 보면서 이렇게까지 진지해질 수 있나 싶은데.

나도 드갤에서 머리풀고 달려보기 참으로 간만이라, 생각난 김에 장문글 써봐.


읽느라 고생했고 모두 잘자랏.!

담주를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