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글 주의! 개인적인 감상글임. 확대해석은 하지 마시길. 오늘도 마이웨이!






도경의 말은 거짓말이다.

처음부터 좋았던 거다.
근본적인 결핍과 두려움을 채워주는 단호한 말.

"난 안 죽어요."

달리는 차 사이로 떨어진 지갑.
도경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서있다.
자동차 경적소리.
어디선가 나타난 그녀가 흔들리는 발걸음으로 달리는 차 사이를 걸어온다.
그녀가 자신의 떨어진 지갑을 주워들고 자신을 향해서 천천히 걸어온다.
시선을 놓지 않고 자신을 바라보며 다가온다.
그리고 말한다.

난 안 죽어요.

그의 침묵의 시간은 말을 한다.
이 여자라고.
어떤 차에 죽어도 이상할 것이 없는 도로 위를 걸어오는 그녀의 차분한 모습에서 그가 처음부터 느낀다.

이 여자라면 어쩌면 자신의 숨통이 트이지않을까?

그녀의 한 마디가 그의 삶을 축을 바꾼다.


도경은 아빠를 기다린다.
항상 만취해있는 엄마.
이상하게 도경의 주변에 수경이 없다.
누나가 없는 그의 기억 속의 이야기들은 도경의 깊은 외로움을 보여준다.
누구 하나 그에게 말해주지 않는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아이는 본능적으로 그 나이에 할 수준의 방법에 최선을 다한다.
아빠의 손을 꼭 잡는다.

아빠와 눈을 맞추며 말한다.

내곁에 있어달라는 간절한 사랑의 눈빛.

자신의 우주를 바라보는 어린도경의 눈빛이 말한다.

아빠의 사랑만으로도 채워지지못하는 결핍을 말하고 있다.

자신에게 말을 걸어주고 안아주고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주는 세상의 단 한 사람.

그사람이 사라지면 던져질 혼돈을 아이가 두려워하는것을 아이의 꼭 쥔 손이 말한다.

나비의 날갯짓 소리를 찾던 아이가 고개를 돌린다.
아빠가 없다.

소리는 녹음이 되어 돌아가고 있다.
아빠를 찾아 달리는 어린 도경.
아이가 달리고 달려서 찾은 아빠는 누워있다.
마치 잠에 든 것처럼.
죽음을 이해하기 힘든 나이.
죽음을 마주하지 못한 어린아이에게 아빠는 그냥 깊은 잠에 들어있는 듯 보인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안다.
차가운 손.
머리에 흘러내리다 말라버린 핏방울.
대답하지 못하는 소리 없는 아빠.
아이가 본능적으로 아빠의 죽음을 알지만 받아들이지 못한다.
차가운 바닥에 누워있는 아빠를 힘겹게 차로 끌고 간다.
아이의 힘겨운 숨소리.
도경이 차 안으로 아빠를 눕힌다.
그리고 차를 움직인다.

멈춰있는 차가 움직이면 아빠도 깊은 잠에서 깨어날까?

이차를 밀어서 병원까지 가면 아빠가 다시 다정하게 자신을 불러줄까?
아이의 이성은 이미 멈춰있다.
아이가 숨을 쉴 수 없는 깊은 혼돈을 본다.
아무도 없다.
아이의 눈에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혼자 지켜야 하는 아빠.
깊은 혼란 속에서도 아이는 아빠를 움직이려 한다.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아이의 깊은 절망이 어두운 밤
,

힘겹게 차를 움직이려 애쓰는 아이의 힘겨운 사투를 통해서 보여준다.

딱 그 나이의 도경이 할 수 있는 일.
단지 아빠가 다쳤다면 할 수 있는 일과

본능적으로 모든 걸 잃어버린 우주에 홀로 남은 듯한 두려움에 빠진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르다.

사실 후자의 아이에게 할 수 있는 일이란 없다.
두려움에 울어야 맞다.
하지만 도경이 아빠를 살리고 싶어서 차를 움직인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아이.

도경에게 훈이가 말한다.
그렇게 이를 사리 물고 죽을 판 살판 살고 있는 이유가 뭐냐고.
도경이 훈이를 바라본다.
도경의 마음속 어린 도경이 외친다.
살리고 싶다고, 그래서 여전히 달리고, 밀고 있다고.
여전히 아버지의 죽음을 통한 사라짐을 받아들이지 못한 도경이 그의 가족이란 무거운 차를 밀고 있는듯하다.
죽음의 순간에 함게 했던 자의 슬픔의 무게에 짓눌린 아이의 누구에게도 털어내지 못한 아픔이 도경의 무표정 속에 담겨있다.







오늘도 달린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담고 그저 달린다.
아무도 안아주지 않는다.

아빠가 말한다.
사라짐을 받아들이면, 이해하면 힘을 주지 않아도 된다고.
하지만 도경이 과연 사라짐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과연 자신의 죽음보다 더 큰 해영의 빈자리를 버텨낼 수 있을까?


녀가 돌아오지 않는다.

그 방의 의미는 이제 아빠의 작업실이 아니라 그녀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도경이 숨을 쉴 수가 없다.

우주에 홀로 던져진듯 두려워져서 다시 숨을 쉴 수 가 없다.
선택해야 한다.

어린 도경이 홀로 놀이터에 앉아있다.
울부짖는다.
사라지지 말라고, 나는 사라지지 않겠다고.
너도 사라지지 말라고.

그리고 몸만 어른이 된 도경이 여전히 달린다.

계속해서 달리지만 여전히 제자리다.
마음속에 커다란 구멍은 채워지지 않고,

그 구멍을 통해서 서늘한 바람소리만 들려온다.

아빠를 잃은 어린 도경에게 아무도 손 내밀지 않는다.
혼자다.
아무도 밥에 반찬을 얹어주지 않고, 반창고를 붙여주지 않는다.
아무도 그의 마음속 깊은 두려움을 다독여주지 않는다.
스스로를 챙겨야 하는 어린 도경이 살아내기 위해서 입을 닫는다.
그리고 아빠가 그러했듯이 살아낸다.

여전히 만취해있는 엄마의 곁에서 살아내기 위해서 했을 어린 도경의 몸부림은

절대로 온전한 어른으로 자라는 것이 불가능하다.
결핍이 깊어질 뿐이다.
사라짐과 죽음에 대한 깊은 두려움.
홀로되는 두려움.

그런 그에게 다가오는 그녀의 한 마디.
난 안 죽어요.

사라지지 않아요.
밀어내도 여전히 옆자리를 지키고,

끊임없이 말을 거는 그녀에게 이미 도경은 어린 도경일 수밖에 없다.
그녀는 그에게 사라진 아빠와 같은 자리의 빈자리를 채워준다.

그래서 밀어내면서도 다시 끌어안는다.

또다시 자신을 채운 누군가가 사라지는 것을 그의 본능이 거부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불행을 눈치 채주고, 행복을 기도하는 사람.
아빠 이후에 유일한 존재.
누군가의 나무가 되지 않아도 자신을 사랑의 눈빛으로 바라보고 그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사람.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모를 수는 없다.

지금 하고 있는 모든 도경스럽지 않은 행동들은 그의 마음속 어린 도경의 행동일 수밖에 없다.

이성적인 어른 도경은 밀어낸다.
만들어내지 않아야 할 인연임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린아이 도경이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잡으라고.
사라지지 않겠다는, 죽지 않겠다고 당당히 말하는 그녀를 잡으라고.

그의 모든 돌출행동들이 어른스럽지 못한 이유.
그의 본능이 어린 도경에서 멈춰있기 때문이 아닐까?
아이는 아이다.

하지만 그 아이가 자란다.
해영과 함께 보는 환시를 통해서,

아버지와 똑같이 차가운 바닥에 누워있는 피 흘리는 자신의 모습을 본다.

환시가 말한다.

죽음을 받아들이라고.
인간이기에 벗어날 수 없는 죽음을 받아들이라고.
예고 없이 어느 순간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별해야 하는 사라짐을 받아들이라고.
그리고 최선을 다하라고.
일분, 일초에.
헛되게 목표 없이 초점 없이 달리지 말라고.
그녀를 향해서 달리라고 말하고 있다. 

행복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환시가 보여준다.

마지막인지 모를 기억이 따듯해야 하지 않을까?
어쩌면 아빠가 죽으면서 보았을 주마등속의 자신의 웃는 모습처럼 말이다.
아빠가 가장 사랑했던 자신을 기억하면서 죽음의 순간을 맞이했을 아빠를 생각하지 않았을까?
아이의 최선이 아니라 이제 어른 도경의 최선이 무엇인지 움직이라고 말한다.
아이에서 자라지 않으면 해영과 함께 웃을 수 있는 시간이 사라진다고 말한다.

그의 기억 속의 아빠가 웃는다.

그리고 말을 건넨다.
행복해져야 한다고 말한다.
어느 순간 사라질지 모르지만 그 순간에 최선을 다해 사랑하라고.
아빠가 웃는다.
도경을 바라보며 해영이 웃는다.
그에게 해영이 아빠가 되어 그들이 웃는다.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던 어린 도경을 향해 아빠와 해영의 웃음이 햇살처럼 들이친다.

그의 어둠과 침묵의 공간이 밝음과 웃음으로 채워진다.
도경이 운다.
그리고 말한다.
보고 싶다고, 여기로 오라고.
얼마나 힘겨웠을까?
그 말이 터져 나오기까지 맴돌았을 그 말이 힘겨워서 얼마나 달리고 달렸을까?

도경이 기다린다.

조하게 기다린다.
그녀가 자신을 향해 웃는다.
달려간다.
그녀에게 그리고 그녀에게 말한다.
안아달라고.
어린 나를 안아달라고, 외롭고 힘들다고 아프다고 말한다.
누구에게도 하지 못 했던 말을 해영에게 한다.
그녀가 안아준다.

그녀의 작은 품이 바다같이 넓다.

그의 모든 결핍을 그녀라는 바다에 던진다.
그 바닷속으로 자신을 던진다.
더 이상 외롭지 않게 그녀의 손을 꼭 쥔다.
어린 도경이 절규가 귓가를 맴돈다.
얼마나 아팠을까?
얼마나 외롭고 무서웠을까?
그 두려움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간 도경이 대견하면서 안타깝다.

삶의 끝을 알지 못하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은

어쩌면 최선을 다해 사랑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도경과 해영을 통해서 깨닫는다.

그렇게 서로의 체온으로 함께 오랫동안 따듯하길.
그렇게 맞잡은 손을 의지해서 오랫동안 행복하길 바라본다.

어린 도경이 이제는 더 이상 외롭고 두렵지 않길.
돌아오지 않는 아빠의 운동화를 기다리면 아파했을 어린 도경이 위로받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