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체면 따위 모르는 자칭 쉬운 여자가

결국 그의 말문을 트이게 한다. 어린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그 놀이터에서,

'보고싶어. 보고싶어.'

그렇게 그남자에게도 '민망함의 역사'가 막을 열었다.

남은 시간이 얼마이건간에, 

'사라져가는 것들의 소리'가 아름다운 이유

영원을 붙잡고 싶었던 남자와 순간의 아름다움을 아는 여자의 로맨스.

 

 

 

 

아이들의 뛰노는 소리가

브라운관 바깥으로 전해지는 것만 같다.

'사라지는 것'에 대한 대사는 그 소리를 더 애틋하게 만든다.

 

 

 

'다섯번 울리면 받을려다가

세번만에 받았어.

나 참 쉽지? 그래. 나 쉬워.'

그 쉬운데다가

때로 미친냔 같은 이 여자가

그래서 예쁘다.

하지만 서현진이 아니었다면 이만큼 예뻤을까,

 

 

 

누구보다 냉정해 보이기도 했고 의젓한 사회인 같았지만

도경이의 시간은

아버지와 함께이던 그 놀이터에 머물러 있었나 보다.

 

 

 

 

그러고 보면 확실히

허지야 여사의 '인간의 역사는 쪽팔림의 역사야.'란 말은

이 로맨스드라마를 관통하고 있다.

 

우리의 여주인공의 매력과 개성 또한

거기서 온다.

아무리 낯이 화끈거려도

내일 후회할 일을 하고싶지는 않은 여자

그래서 이 미친 여자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마음이 가는 것이다.

그녀는 적어도 우리보다는 용감하다.

'사라지는걸 인정하면 에먼 데 마음쏟을 필요가 없어져.'

(모든 것은 소멸하기에 그 소리는 생각하기에 따라 하나일 뿐이다.

그래서 더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이기도 하다.)

누구보다 그녀는

도경이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했는 지도 모르겠다.

요즘 유행하는 '곡성'의 대사처럼

'뭐가 중요한 지를' 너무나 잘아는 여자가

행복해지기를 바라게된다.

그것은 다시는 오지않을 지금 이순간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이 아니었을까,

아무리 구차하고 아무리 막막해도 말이다.

 

'왜 다 사라지는데,

난 절대로 안 사라질꺼야.'

그 갑작스런 아버지의 죽음과 함께

오히려 '소멸'과 싸우느라

자기검열이 병이 되어버린 남자

('실수할까봐 술도 안마신다.'는 고백은 상징적이다.)

물론 그것이 아니러니하게도

그를 근사한 프로페셔널로 돋보이게 만들어주기도 했지만

정작 그는 행복했을까,

그곁의 사람들은 또 행복했을까,

(아무리 일은 일이라지만 즐겁게 할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도 나와 같이 밥먹는 그들도,

말이 등장하는 영화의 연출자인 감독의 말도

허투루 나온것이 아니다.

우스개로 말하자면

9회에 등장한 영화제목처럼 '생산성'은 훨씬 나아졌을 지도 모른단 말이다.)

'우연이 만든 일종의 사고'로 만난 여자 덕분에

그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죄책감'은 어쩌면 변명거리였을 법도 하다.

중요한 건 그 자존심을 내려놓는 일이었으니.

바보처럼 자신을 기다리는 그 여자를 위해,

그리고 사고의 환시가 아니라도

언제 끝날지 모를 자신의 삶을 위해,

그는 이해할수 없엇을 뿐이다.

'쪽팔려도 죽지 않는다는 말'을,

 

우리는 그렇게

우리의 앞날을 알수 없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이순간'이다.

길위에 이제야 나선

도경이 아직 잠든 해영을 배려하던 손으로 만든 차양은

그래서 참으로 예뻤다.

 

 

 

하지만 '난 네가 쪽팔린 것도 싫다고'란 말에도

안나가 말했듯

사랑이 담겨있다. 그 측은지심의 사랑이,

 

 

 

그리고 도경의 아버지는

죽음의 순간

또 후회하지 않앗을까,

차가운 아내를 보던 그의 어두운 낯빛은

그에게도 하지못한 말이 있었음을 짐작하게했다.

하긴 그도 몰랐으리라.

그 갑작스런 생의 마지막을,

(도경의 사고의 복선은

아버지와 평행이론으로도 보이지만

적어도 이제 도경은 다를 것이다)

 

 

 

'왜 다들 사라지는 거야.'

가업을 잇는다는 것은

'아버지의 삶'을 이어서 사는 느낌이기도 하다.

그렇게라도 도경은 아버지의 죽음을 부정하고 싶었을 지도,

그리고 그 사건이 만든 그의 강박증

 

 

 

그녀는 그 시간이 영원할줄 알았을 것이다.

돌아갈수 있다고 믿었을 것이다.

'무엇이 중요한 지를' 그 결혼식날 알았더라면,

돌아보면 순간순간 그것은 '그저 동정'이 아닌 '사랑'이었음을 아프게 깨달을 것이다.

하지만 후회는 덧없을 뿐이다.

도경이 오래 눈멀어온 것처럼 해영도 그때는 눈이 멀었었다. 그 상처로 인해서,

 

무엇이 그를 이불빨래만도 못한 존재로 만들었을까,

무심코 최선이라며 해버린 선택이고 이후의 시간이다.

그것들이 만들어놓은 '거리와 불가항력'을

실감하는 한태진의 한숨이 무겁다.

그렇게 그들의 사랑도 차츰 사라져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