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배된 우연과 오해 그리고 사고들이

나비의 날갯짓을 통해

오해영을 급상승검색어에 올리는 순간

보게되는 우리 자신의 가벼운 얼굴들 

그저 해영이고모의 문제만이 아닌

'누군가의 삶'의 가십화 혹은 경시

정작 제것들은 그렇게 아파하면서도!

그렇게 좋았던 블랙코미디의 쾌감과 공감

하지만 또 엄마의 콩나물해장국

누나의 가여워하는 포옹

'괜찮아요?'라던 그 문자메시지들이

있어 견디는 인생이기도 한,

 

 

 

 

 

 

 

 

 

 

그래서 필요했던 감정이입

'가십이 넘치는 이 무서운 세상'에서

나와 내가족은 소중하고 아픈

바로 우리에게

 

 

 

물론 그렇게 덕분에 웃으면서

힘든 인생 견디는거 아니냐고

같이 웃으면 좋지 뭘그래

쉽게 말할수도 있겠다.

하지만 당사자가 같이 웃지 못한다면

그건 일종의 폭력임을 기억하자.

그래서 필요했을 서해영을 향한 우리의 감정이입

'가십이 판치는 세상'이 무서운 이유다.

정작 지인생은 그리 소중하고 아프면서도 ㅉㅉ,

팀장님의 일갈이 그래서 고맙기조하 하던

'니들 누이동생 일이면 그렇게 함부로 말할수 있어?

나쁘잖아!'

무심코 던지는 돌에도 개구리는 맞아 죽는 법이다.

 

그 미역국과 '개판 새판 그래도 살아보자.'는 말에 목이 메이고

'난 네가 날 실망시키는 날이 올줄은 몰랐다'며

그녀답지않게 도경이를 안아주던 수경을 보며

그리고 그 걱정이 담긴 문자들을 보며

울컥하기도 했다면

 

또한 그것이

우리 스스로의 두얼굴은 아닌가도 질문해 보기를 바란다.

내 주변의 누군가처럼

내가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그들도

돌멩이가 아프다는 것을

비웃음도 아프다는 것을

그들과 가족들의 인생이 소중하다는 것을

누구에게나 그렇듯 말이다.

 

그래서

그 자족들의 이야기가 좋았던 동시에

오해영의 라디오출연 에피소드가 감탄스러웠다.

무심코 욕한

해영의 고모와

내가 사실 같은 사람인건 아닐까

진상이가 그랬다.

'내가 나를 아니?'

 

 

 

 

여전히 억울할지 모를

전해영씨에게

 

 

 

'이게 다 그날 니가 벌인 일에서 시작된 거라는 걸 기억해라.'

여전히 해영이는 억울할 지도 모르겠다.

나도 피해자라고 나도 많이 아팠다고

고등학교 때부터 그랬다.

그 '폭력이 일상화된 세상'에서

스스로 피해자가 되지않기 위해

무심코 가해자의 편에 서있었을 때,

전해영은 이미 가해자였던 거라고,

왜 그때 그녀는 '그건 성희롱입니다'하던 수경처럼

바르지못한것에 대해 용감하지 못했는지

그렇게 타협하고 길들여지면서

스스로 서해영을 이해할수 없게 되어버렸다.

답답한건 그동안 결코 스스로 행복해지지 못했다는 것.

그래서 누군가의 유혹과 충동질 앞에

다시 쉽게 무너져 달아난채

진짜 상대가 받을 상처와 고통은 헤아리지 못한 죄.

도경이만이 불구가 아니었다.

도경이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 '사라지는 것이 두려워

무소의 뿔처럼 살지못한 것'이 아니었을까,

어차피 우리 모두 언젠가 죽는다.

한번 죽어질 몸

좀 쪽팔리고 아프면 어때서

내가 살자고 남에게 그리 상처를 주었을까,

그때 전해영이 서해영을 제대로 보듬을줄 알았다면

지금 희란이같은 친구로

그곁에 남아주었을 것이다.

그 달리기시합애서 승자가 되려하지 않고

반장선거에서 자신이 서해영에게 표를 던지거나

뭔가 이상한 남새가 나는 그 조리돌림같은 선거를 지적해 주었다면

그녀의 죄는

자신이 숨쉬기 위해서라며

한켠에서 한숨쉬고 눈물흘리는 다른 해영이를

눈감고 알아보지못한

그것이다.

 

 

 

그것이 이 섬세한 나비의 날갯짓이 일으킨 근사한 일파만파로

보여주려던 중요한 이야기가 아니엇을까,

 

 

 

 

 

이 기막힌 사건으로 시작된 사랑이

진상이도 철들게 할수 있을까,

 

 

 

수경의 심정은 백번 이해가 간다.

누나가 쪽팔린다고 매너어깨를 거부한 덕에

버스안에서는 또한번 흑역사를 쓰게했고

지 '남자로서의 책임감'을 자랑(?)하는

저 뺀질대고 한심한 녀석이 애아빠라니

오마이갓,

사실 수경의 초산이기까지한 노산보다 더한 걱정이긴 하다.

 

한번 믿어보자.

그 앞을 정말 알수 없어서

사는게 재밌다지 않은가,

그리고 사람 참 안변한다지만

또 우리를 찾아오는 무수한 사건들 속에서

터닝포인트를 만나기도 하는게 인생이다.

마치 12회 엔딩의 도경의 각성의 질주처럼,

 

 

 

 

 

 

 

박도경

무소의 뿔처럼 끝까지 가라.

이 판타지의 실체가 아직은 모호하지만

그럼에도 인정하게되는 흡입력

덕분에 느껴지던 그 질주의 쾌감

그 후회와 변화가 말해주는

한태진의 진짜 잘못

 

 

 

'내가 너한테 얼마나 쉬웠는데

넌 그렇게 날 쉽게 버리니?'

또하나의 명대사와 함께

그들의 이별장면이 결국 지나쳐간다.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해?'

'그래도 사랑한다는 항상 옳다.'

도경이의 말도

진상이의 말도

각자 옳다.

 

더구나 살아온 내력 덕분에

감정표현이 극히 서툰 이 녀석에게

지난 몇달은 얼마나 버거웠을까 말이다.

게다가 엎친데 덮친 격으로

죽음의 암시가 드리운다.

'사라진다는 거 인정하면 에먼데 힘주고살지 않게돼.'

이말이 처음 도경을 바꾼건

'보고싶어'를 말할때였지만

해영과의 이별을 거치며 극도의 감정을 겪고

마침내 가장 길고 선명한 환시들을 지켜보게되면서

드디어 마지막 한걸음도 내딛게된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그로 인한 나약함

 

'형! 나 죽어도 상관없어.

근데 후회하면서 죽지는 않을꺼야.

절대로 후회하면서 죽진 않을꺼야.

내 맘 끝까지

끝까지 가볼꺼야.'

 

그건 아마도

두려움 이상의

오기, 분노 그런 것으로도 보인다.

어쩌면 그야말로 '마지막 쪽팔림'을 거부하려는 몸짓일 것이다.

어차피 죽을거라면

쪽팔리기는 싫다는

또 그리 생각하면 재밌어진다.

 

자신을 위해서도

자신에게 그렇게 용감하게 쉬워졌던 여자를 위해서도,.

 

한편 여기서 한태진의 잘못이 보인다.

쪽팔리기 싫어서 보낸게 아니라면

그는 그순간 너무 쉽게 포기했다.

자신의 삶도

그리고 자신을 보고있던 그녀의 삶도,

 

전해영의 경우가 그런 것처럼

누군가 판을 깔아놓자

그렇게 시험에 들자

너무 쉽게 놓아버린 것이다.

자신을 드러내면서

 

 

이 엔딩 즈음의 환시와 결단은

엔딩을 위한 비약과 생략에 의한 편집 같아서

13회를 봐야 논리적 흐름을 알것 같지만,

 

'판타지의 밑그림'이 좀 혼동되긴 한다.

일종의 평행우주 같은 건지

단순한 판타지로서의 '환시'가 보인 건지,

코마상태에서의 '무의식의 구성'인지,

죽음의 순간인지

의식을 잃던 순간이기만 한건지도 애매하고,

 

얼마나 그 결심에 의해

미래가 바뀔지 아직은 알수 없지만

해피엔딩의 복선으로 보고 싶다.

장르를 배반할수 없다는 

그 때문이기도 하다. 

 

장회장 부녀같은 싸구려 악인들에게

모든걸 잃어야할

도경과 해영은 아니지 않나,

용납이 안된다.

 

다만

그 환시장면 중에서

건물주의 아들의 제안은 사기 같아보이긴 했다.

도경을 파멸시키기 위한,

 

마지막으로

정신과의사가 쓴 표현이 인용된

(무소의 뿔처럼 끝까지 가자)

그 불경구절의 마지막 네 단락은 이렇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이

물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같이

무소의 뿔 처럼 혼자서 가라.

 

이빨이 억세어 뭇짐승의 왕이 된 사자가 다른 짐승을 제압하듯이

종벽한 곳에 살기를 힘쓰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자비와 고요와 동정과 해탈과 기쁨을 때에 따라 익히고

모든 세간(世間)을 저버림이 없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탐욕과 혐오와 헤매임을 버리고

매듭을 끊어 목숨을 잃어도 두려워 말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