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따지고 보면

줄창 우연의 연쇄다.

결정적인 순간들은 우연이 만들어내다시피하지만

그것이 결코 거슬리지 않는다.

'정교하게 계산된 우연'이란 생각 때문이다.

 

돌아보라.

하필 수경이 막내의 닭살연애에 미친짓을 하다 진상과 해영에게 들키지 않았다면

그래서 수경이 그 술내기 제안을 해영에게 하지 않았다면

마침 그때 도경의 차가 도착하지 않았다면

우리를 열광시킨 그 자연스런 도움닫기 포옹은 없었을 것이다.

그 우연한 순간이 결정적인 순간이 된다.

도경의 결심에 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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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하필 이 결정적인 포옹의 과정에서

해영의 비밀스런 그것이 브래지어 바깥으로 여행을 가지 않았다면

(그것이 날아가 사뿐히 착지하는 것을 보며

마치 도경의 다음 대사처럼 '미친거지?' 하고 싶었다. 좋은 의미로)

물론 덕분에 이 음악감독이 즐겨쓰는 추임새처럼 '헐'하는 찬바람이 지나갔지만

덕분에 그야말로 오랜만에 도경은 그 밤 웃을수 있었을 것이다.

마치 한동안 웃을 일이 없었던 한풀이라도 하는 듯이,

(그 1년여 사이 이 남자가 얼마나 차가워졌는 지를,

저 단촐한 회상장면이 충분히 보여주니 말이다.

그렇다, '세상이 자신에게 사망선고를 내린 기분'이란 말도 실감이 가는 갭이다.)

덕분에 결국 다음날 아침 차안에서 마주웃는 두사람을 보며

새삼 해영의 마음씀씀이도 알수 있었다.(그래도 덕분에 웃는다니 내가 봐준다.)

도경의 고백을 빌면,

저를 다치게 한 사람인줄도 모르고 날아든 그 미치게 짜안한 새가 그를 웃게한 셈이다.

 

우연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멀리 보면 브랜드 리뉴얼 결정을 만들어낸 박수경은 덕분에

유럽에 그저 짱박혀 못돌아올줄 알았던 그 해영이를 다시 보게되리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업계동향이나 그 분야 화제의인물에 대한 스캔 정도는 하고 지냈을 테니 몰랐을것 같지는 않다.)

두개의 우연이 더 따라온다.

청담동 스테이크하우스라는 약속장소가 잡히는 우연과

그 다음날 아침 두 오해영이 하고 나온 스카프.

아마도 다 철저히 계산된 것이었을 거다.

 

(여기 더해 우연 하나가 더 있었다.

3회 엔딩을 장식하기도 했던

마라톤을 하던 오해영을 다른 해영이가 누군지를 모른채 응원을 보냈던 장면

온 우주가 내게 포기하지 말라고 말하는것 같았다는 해영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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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우연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오랜만에 제대로 웃게해준 턱으로 맛있는 거 사라던 옆집여자 해영의 제안과

그날 아침 우연히 도착한 결혼할뻔한 오해영의 메모.

(하필 그때 핸드폰 배터리가 나가지 않았더라면

그 저녁 거기서 만날 일은 없었을 것이다.

올때까지 기다릴 거라고 강짜를 부리든 말든,)

 

이 우연도 미묘했다.

아마도 그 식당은 도경과 해영이 그저녁 처음 갔던 곳은 아닐 것이다.

도경은 어 하면서도 지나칠수 있었지만,

해영에게 그 문자는 이상했어야 맞다.

'7시는 어려울것 같다'거나

'거기서 보자며'란 뉘앙스의 반문에 가까운 답문자.

하지만 해영은 원래 그리 무뎌서일수도 혹은 기분이 들떠서일수도 있게

그 이상함을 무시했다.

덕분에 그 식당에서의 3자대면이 만들어진다.

'어쩐지 식당 선택부터 이상하다 했어.

너 원래 이런데 안 좋아하잖아?'

우리 기억을 더듬어 보면

해영은 맞선장소로도 그 흔한 레스토랑은 싫어했었다.

아마 그 조용하고 멋쩍어지는 분위기가 싫었을 것이다.

'저 조용한 데 원래 별로 안좋아해요.'

욕이 튀어나올 것도

우울에서 비롯된 강박적 수다 혹은 혼잣말이 이어질 것도 같아서 싫어할만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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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오해영을 또 좋아할 수가 있겠어?'

해영이의 말이 틀리지 않지만

결국 도경이는 그 우연 덕분에 시작해서

이제 다른 오해영을 좋아하게 된다.

그 과정의 탁월함이란,

이 역시 하나의 아이러니,

(하지만 그 해영이의 말이 맞다는 것은 우리 해영이가 다시 움츠러들게할 충분한 이유이기도)

거기서 '미치게 짠한'의 결정적 장면이 만들어진다. 사랑같은 건 바라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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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착하잖아!'

우연히 생각지못한 곳에서 마주친 다른 해영이가 걸어온 그 말은 무슨 뜻일까,

정말 회식자리에서의 냉소처럼 '너 만만하잖아.' 그런 뜻이었을까,

(이래저래 훗날 이쁜 오해영이 회상하는 과거의 두 해영이의 장면은

나올것 같고 또한 궁금해진다.

난 자꾸 그런 생각도 든다.

그저 악의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사실 오해영은 오해영을 좋아했던 것은 아닐까란

어쩌면 말도 안되는,)

오해영에게 오해영은 그저 '예상대로의 썅년'이었을까,

'넌 여전히 당당하구나.'

'내가 당당했어? 그 말 듣기 좋다.'

자신이 당당했었냐고 반문하던 해영의 장면도

그녀의 가족사에 대한 6회의 설명을 듣고는 조금은 다르게 다가온다.

그것이 자신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거여서 의식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말을 들은 사람같아 보였다.

그리고 우리의 해영이가 몰랐던 것은

다른 해영이가 기다리는 남자 앞에서 결코 당당하진 못했다는 것이다.

꼭 제탓은 아니었을 지라도,

 

그리고 화가난 도경이 잠시도 더 거기 있고싶지않아

해영의 팔을 잡고 나갈때

우리 해영이는 오히려 화가 났다.

한꺼번에 그 걷잡을수 없이 엉켜있는 '두명의 오해영과 그 사이의 이 남자'라는

실타래를 확인했을 때,

오해영에게 오해영은 넘어설수 없는 벽이었다.

공존하고 싶지않은 상대.

나는 3급수 너는 1급수,

가까스로 기대가 생기던 이 연애도

다시 온통 물음표투성이가 된다.

어떤 말들은 비로소 이해가 갔지만 말이다.

 

다음날 오해영이 자신의 입으로 그말을 하기 전에도

해영이는 알았을 것이다.

이 옆집남자에게 저 오해영은 '이제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을,

한태진이 잘지내고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의 해영이 얼굴이 그랬으니까,

'나 그렇게 함부로 이용하는 거 아니야.'

우리는 어느 정도 아는 도경이의 마음을

그녀에게 보여줄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런 아픈 아이러니가 때론 로맨스의 흡입력이다.

그 원망과 분노 속에서 또 이미 생겨버린 제마음도 확인하게 된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업어다가 데운 자리에 재워서

다음날 아침 콩나물해장국까지 해바치는

어쩌면 속도 없는 기집애.

해영이의 말이 맞다.

그녀는 착하다.

그 속에서 도경의 상처도 조금씩 아물어 갈것이다.

마치 그 손의 상처위에 봉해진 반창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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