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안녕..
지금 언니가 준 잠언 시집 읽으면서 고향으로 내려가는 중이야
아직 모바일 어플을 지우지 않아서 이렇게나마 연락할 수 있어 다행이다
언니가 준 시집에 좋은 말들이 너무 많더라
읽으면서 내가 지나쳐버린 그때들도 생각나고
당장 놓쳐버린 소중한 것들이 벌써 그립기도 해
그리고 거기 남은 이들이 나를 어떻게 추억할지가 두렵다
모든게 하루 아침에 뒤바뀌고 지금은 돌이킬 수 없이 흘러버렸어..
아직 내 미련하고 무책임한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아
다만 언니들과 마지막을 실감하지도 못한 채 이별하게 됐다는게 맘을 너무 무겁게 만드네..
1년2개월 헌신했던 내 진심을 내가 한순간에 무너트렸는데
나를 믿었던 사람들을 내가 배신했는데
불쑥 찾아드는 쾌감같은 끔찍한 감정은 자꾸만 자신을 합리화 시키려고만해..
나는 무엇을 위해 나의 생활을 포기한 채 그토록 힘든 여정을 버텨온걸까 누굴 위해 밤을 새며 하늘의 별 한점 제대로 보지 못한 채 걸어왔을까
모든게 꿈같이 느껴져..

한달 전의 나는 내 마지막을 유쾌하고 즐겁게만 상상했어
좋아하는 언니들한테 마지막 이별 선물과 편지를 전하고
수고했다는 말을 한아름 안고 가벼운 마음으로 짐을 싸서 고향집에 떳떳한 딸로서 돌아가고 싶었는데
언니들한테 힘내라는 그 뻔한 말도 한 마디 못 전하고
피디님들한테는 그동안 감사했다는 인사도 못 해드리고
죄의식만 가득 안고 돌아가네

위선은 도대체 어디까지 날 잠식한걸까.. 자기전에 훗날 성숙해진 내가 그곳에 찾아가 나로 인해 분노의 감정과 배신감을 느꼈을 사람들한테 얼굴을 보고 진심으로 사과할 수 있기를, 그런 용기를 가질 수 있도록 기도해
누구한테 기도하는지 나조차 모르는데 그렇게라도하지 않으면 내가 힘드니까

티비를 보다가 지루할 때면 거기서 보냈던 즐거운 기억들을 떠올리고 앨범 넘기듯 하나 하나 되짚어 봤어 이기적이지 참..
근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지나온 추억의 끝은 항상 3월2일에 닿아.. 이겨내지 못했다는 수치심,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피해를 입혔다는 죄책감이 느껴지고 그럴때면 모든게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삼겹살에 소주 한 잔 먹고 싶다.. 노래방에서 먹는 맥주가 그렇게 맛있다는 것도 언니들이랑 놀면서 처음 알았는데..

지성팍 보구싶네 편지도 사과글도 아닌 내 두서없는 글 읽어줘서 고마워 언니가 준 시집 읽으니까 그냥 언니한테 메일 쓰고 싶어졌어
연락할게 언니.. 내가 메일 쓴 건 언니만 알고 읽어줬으면 좋겠어.. 고맙고 미안해 모두에게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