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 넷에 졸업하고 바로 취업해서 이년쯤 다니다 퇴사하고 한달정도 쉬고있어


울 아빠는 평생 고생만 하신 분이야 IMF때 다니시던 직장 그만두시고 어떻게든 가정을 지키시려고


길거리에서 뻔데기나 고동같은거 파시고 택시도 하시고 트럭도 운전하시고


십오년전 쯤에 고향 후배 통해서 버스 운전시작하시고 나선 지금까지 쭉 버스운전하셔


뻔데기 파실땐 엄마가 계셨었는데 당신께서도 힘드셨는지 얼마 있다 이혼하고 가끔 한번씩 뵙고있어.,


딸만 둘인 집안에서 금이야 옥이야 나랑 언니 키우고 그 좋아하시던 술담배도 다 끊으셨어


한창 어려울땐 백반집도 돈아까워서 컵라면으로 사신분인데


나 스물 셋때 위암 2기 판정 받으시고 수술하셧어 


나랑 언니 아빠 돌아가시는줄알고 울며불며 난리났는데 위 절제하시고 회복 잘하셔서 참 다행이야



문제는 재작년 말쯤이야


나 졸업하는 기념으로 나랑 언니랑 아빠 모시고 한정식집에 갔는데 기분 좋으셨는지 거의 십오년만에


술을 입에 대셨어 운전이야 나랑 언니 있으니까 우리가 하기로하고 소주 몇잔을 드시는데


끊었던 술을 드셔서 그런지 금새 취하셨어 


처음에 이렇게 바르게 자라주어서 고맙다고 부족한 아빠라서 미안하다고 하시다가


이런저런 자기 이야기 하시는데 나랑 언니는 울거같아서 서로 손 꼭 잡고 꾹 참고 있었는데


수술하고 회복하는 과정을 이야기 해주시는데



"아빠는 암이라는 소리를 들었을때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어. 지영엄마가 드라마를 참 좋아해서 주말에 같이 보고 그랬었는데, 거기선 거의 다 죽더라고.


근데 아빠는 죽는건 무섭지 않았는데 너희가 걱정돼."


"아빠 수술하고 너희가 소변줄 갈아주며 같이 있어주는데 참 미안했어 지영이는 공부도 못하고 가영이는 취업하자마자 이렇게 돼서 직장에서 눈치를 얼마나 받을까."


"아빠 수술 끝나고 회복하는데 아빠는 집에서 도와주는 사람이 없잖니 그래서 먹는게 부실해서 아직도 위가 아파."



이거 듣고 나랑 언니랑 또르륵 울다가 아빠 집에 모셔드리고 따로 나와서 술마시는데 펑펑울었어


그냥 막연한 사실이 손에 잡히듯 들리니까 슬픔이 아침안개처럼 어느새 와있더라


그래서 나 졸업하고 취업해도 매일 다섯시에 일어나서 아빠 도시락을 쌌거든


버스운전이라는게 다들 맵고 짠것만 먹고 밖에서 먹는 음식은 대부분 위에 부담이 간대서 그랬어


그렇게 2년을 도시락싸며 살았는데


저번주에 아빠가 


"지영이가 아빠 챙기는게 좋은데 아빠는 참 좋은데 그래도 지영이가 아빠때문에 할 일을 못할까봐 걱정이야."


이러는데 사실 직장 그만둔것도 


퇴근하고 집오면 여덞시고 씻고 공부하다 한시쯤 자서 네시간 자고 일어나서 도시락싸는게


아빠에 대한 사랑으로 버티는게 이년이라


내가 아빠를 사랑하는 마음이 겨우 이년짜리라서 너무 힘들었나봐


그래서 그만둔거거든. 조금 더 가까운 곳에 취직해서 더 자고 싶다는 생각으로


너무 슬퍼. 누군가의 무조건적인 사랑이, 받은만큼만 돌려주고 싶은 그 사랑이


하면 할수록 생각보다 너무 커다래서 나는 너무 힘이 들어


아빠는 매일같이 하루 네다섯시간씩 자며 삼십년을 그렇게 살아오셨는데


나는 왜 그렇게 안될까.


아빠는 내가 힘든걸 어떻게 아셨을까


어쩌면 직장 그만두기 전에 쌌던 아침도시락에


내가 쏟은 코피가 들어간걸까


그걸 본 아빠는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나는 어떻게 해야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