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명은 멸치, 한 명은 반 떡대

그 둘이 쉬는 시간마다 나를 가지고 놀았다.

장난감이 된다는 느낌을 그때 처음 느꼈다.

머리에 테이프가 붙어서 지나가던 교장이 내 머리 위의 테이프를 같이 떼 줬던 기억도 있다.

학교폭력 신고 전화기는 복도에 대놓고 있었지만,

난 그 것을 한 번도 누를 수 없었다.

누르게 된다면 일이 엄청나게 복잡해질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 전까진 제멋대로에, 포악했던 과거의 업보를 치룬다고 생각했다.

아직도 기억난다.

대부분이 텅텅 빈 받아쓰기 공책에.

굵게, 또박또박, 떨리면서,

죽.고.싶.다 라고 써 넣고 누가 볼라 다시 지운 것을.

초등학교 3학년,

그 때는 아직 아무것도 모르던 시기였고,

그 때부터 내 정신엔 조금씩, 아주 조금씩

흠집이라 표현해야 할까,

그 흠집들이 모여서 정신의 병을 만들었고

이것들은 나아지지 않았다.

두 번째 흠집을 이야기하기 전에,

초등학교 6학년,

반에 아주 귀여운 여자애가 있었다.

난 그 애를 좋아했지만,

그 감정이 곧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에

난 그 애를 괴롭혔다.

그렇다고 마구 패거나 한 것은 아니다.

내겐 사람을 팰 만한 배짱조차 없으니까.

하지만 나는 '장난삼아' 그녀에게 말도 안 되는 협박과 폭언, 성적 모욕을 해 댔으며

그게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은 후엔

이미 나와 그녀는

초등학교를 졸업해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이 것이.

내 첫사랑의 기억이자

유치하고 한심했던 그 때의 나의 모습이다.

시간은 점점 흐르고.

내가 중학교 1학년이 되어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고

공부를 열심히 하여 미래를 준비하고

정신적으로 건강한 성장을 이루어 낼 때였다.

그렇지, 그랬어야 했고, 그랬어야만 했어

나는 애들 무리에 끼긴 너무 미성숙했고,

친구들은 그런 나를 마구 괴롭혔다.

직접적으로 가담한 애들은 반 절반 이상,

방관한 애들도 나머지 전체니

결국 반 전체가 나를 혐오하고 있었다.

나는 사람이 아니라 말하는 바퀴벌레, 잘 쳐줘 봐야 말하는 똥개 정도로 반에서 다뤄졌고,

나는 수 많은 욕, 폭언, 인격 모독 등을 들어야 했으며.

내 말 실수와 돗자리에 써 있는 이름 때문에

엄마와 장애인인 내 여동생의 이름까지 까발려져 조롱 당했어야 했으며,

담임조차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혹은 무시하면서 방관하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내가 정신적으로 너무 미숙한 나머지

욕을 먹어도, 가족을 욕되게 하는 말을 들어도,

난 그래도 '친구들'이랑 붙어 다닐 수 있다는 것 때문에

죽을 정도로 정신이 심하게 몰아붙여 지진 않았다는 것이다.

지금 당한다면 당장 목을 매달아도 이상할 것이 없었을 것 임에도.

그렇게, 1년이 더 지나.

중학교 2 학년, 이 때는 힘들지는 않았다.

내 절친이 같은 반에 배정 돼 있는 것

동시에 나보다 더한 찐따가, 같은 반 내로 배정돼 있기 때문이었다.

난 그 녀석을 보면서.

1년 전의 내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었다.

못생기고, 더럽고, 성격도 안 좋은 데다, 역겨울 정도로 씹덕, 거슬리는 목소리, 언행, 개같은 스타일, 쳐 맞아도 실실 거리는 병신같은 점까지.

소름돋을 정도로 1년 전의 내 모습을 완벽히 투영하고 있었으며,

난 그 것을 알고도, 그 찐따가 괴롭힘 당하는 것을 이 악물고 즐겼다.

내가 나댄다면 그 애처럼 될 수도 있었기에.

지금 돌아보면 끔찍했기에.

그리고. 지금

내 스스로 내가 정신에 이상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 것은, 별로 오래되지 않았다.

나는 또 호구찐따같은 언행 때문에 심심한 일진들의 장난감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었으며.

이 때문에 나는 우울증을 스스로 의심해 정신병원에 가보기로 하였다.

...라고는 했지만, 사실 둘러대며 병원에 가 인정조퇴를 받으려고 한 것도 있다.

그리고 역시, 병원에선 내가 정신적으로 불안정하다고 진찰을 내렸다.

그런데. 단지 내가 정신병원에 갔다는 사실 하나 때문에.

우울증이 격화되었다.

'나는 정신병이 있다'라는 사실을 확실히 확인하였기 때문에.

나는 곧 정신에 문제가 있다. 정신병이다.등등의 생각으로 빠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불안은 또 다른 불안을 낳는다.

가장이란 새끼는 욕과 폭행을 일삼았으며,

학교에선 풀리는 것이 없고,

인생의 낙이었던 컴퓨터마저 허구한 날 뺏겼다.

그 때부터 다시 생각난 것.

자살.

처음은 자살에 대한 합리화부터 시작해서,

자살은 모든 것을 끝내는 쓸모없는 행위임을 알고 있는데도.

난 나이가 들면 병상 위가 아니라 밧줄 아래에서 삶을 끝내겠어 같은,

그리고,

점점 더, 자살에 대한 유혹은 커져갔다.

더 이상 지성은 통하지 않았다.

마치, 당연한 것처럼.

점점. 아주 천천히. 나는 자살을 원하고, 갈망하고, 필요하게 되었다.

사실 강도로만 보자면 1학년 때에 비해선 애들 장난 수준이었지만.

누가 나를 장난감으로 부리고 있다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나는 미쳤다.

때 마침 아주 다행히...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애들을 고자질 함으로써 나에 대한 괴롭힘이 살짝씩 사그라들어

동시에 나도 정신적 안정을 되찾고 있었고.

자살에 관한 생각도 점점 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내 인생은 여기서 끝날 정도로 덜 비참하지 않다.

내 애비는 점점 더 나에게 폭력을 휘두르기 시작했고.

나는 무의식의 경계까지 분노가 차오르며

이성을 잃어버리면 진짜 장애처럼 소리를 지르거나, 물건을 던지거나, 침을 바르거나, 기타 다른 짓들을 할 정도로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씹새끼를 죽이고 싶지만.

그랬다간 내 인생은 날아간다.

고로 나는 차마 식칼을 꺼내들지 못 했다.

그리고 이 상태가 현재의 내 모습이다.

현재 나는 학원을 모조리 끊고, 학교도 잠만 자고 오고있다. 그마저도 결석이 꽤 쌓였고,

지금 나는. 완전히. 히키코모리다.

이 정신이 10년,20년간 유지된다면,

어느 방의 목 매단 시체로 발견되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세상.

이 세상을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은 곧 나, 글을 읽는 당신에겐 곧 당신이고.

이 세상의 주체가 죽었을 땐 어떻게 될까.

모든 것이 멈추고 다시 돌아가?

그대로 모든 불이 꺼지고 영겁의 시간이 흐르는 거야?

아님, 또 다른 세상, 또 다른 '나'로 다시 살아가는 것인가.


그리고. 뜬금없지만,

나는 고깃덩어리라는 말을 참 좋아 한다.

밧줄에 묶긴, 고깃덩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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