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스무살을 앞두고 있는 고3 학생입니다. 긴글이지만 저에겐 정말 중요한 일입니다. 도와주세요.
저는 얼마 전 수능도 평소 실력대로 무난히 봤고, 수시 정시 계획도 어느 정도 다 정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전, 대입보다 더 신경쓰이는 문제가 있습니다.
저는 내년에 스무살이 됩니다. 그 때문에 보호종료아동이 되죠. 전 보육원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돌도 되기 전에 보육원에 입소해 현재까지 생활하고 있습니다. 선생님들께 예쁨받으며 무난하게 자랐습니다. 물론 아이들이 많기 때문에 사랑 같은 건 좀 부족했습니다. 하지만 전 나름대로 일반 가정처럼 자랐다고 생각합니다. 매주마다는 아니어도 한 달에 세 번 이상은 엄마가 찾아오셔서 잠깐 놀다 들어가기도 했었어요. 그런데 그건 제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얼마 지나서 였습니다. 아기때의 기억은 없지만 어린이집에 다닐 때 기억은 잠깐잠깐 있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거라곤 매일 밤마다 하나님께 저에게도 가족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하고 기도하고 있는 모습뿐입니다. 전 제게 가족이 없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초등학교 때 처음으로 엄마가 찾아왔고, 보자마자 우셨습니다. 전 누군지도 몰랐고 가족이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도 별 감흥이 없었습니다. 제게는 보육원에 있는 친구들, 언니들, 동생들, 선생님들이 더 가족같았거든요. 그렇게 그냥그냥 초등학교 시절이 지났습니다.
초등학교 졸업을 앞두자 엄마가 이제 그만 집으로 가자고 말했습니다. 솔직히 가기 싫었습니다. 제게는 보육원이 더 집 같았으니까요. 주말마자 시간을 보낸다해도 보육원 사람들이 더 가족같았으니까. 그래서 울었습니다. 가기 싫다고 말했습니다. 엄마가 이제서야 말씀하셨지만 그때 엄마는 집에 가서 많이 우셨다고 합니다. 인생 잘못 살았나 싶어, 딸한테 못할 짓을 했나 싶어. 그렇게 저는 가지 않았습니다.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중학교 시절도 무난하게 보냈습니다. 그냥 무난하게. 그러다 중3이 되고, 그저 친구들따라, 성적따라 인문계를 가기로 결정하고 놀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 또 엄마가 집으로 가자고 했습니다. 어린 날의 전 그냥 가기 싫다고 누워서 울며 떼를 썼지만, 전 울지 않으려 노력하며 말했습니다. 보육원에 있으면, 지원도 더 많이 받을 수 있고, 수시나 정시 원서를 쓸 때도 전형이 더 다양해진다, 내 미래를 생각해서라도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는 보육원에 계속 남아있고 싶다, 라고 말했습니다. 엄마는 울었습니다. 저도 이상하게 눈물이 났습니다. 왜 울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눈물이 났습니다.
고1 때는 그냥 평범하게 보냈습니다. 그러다 고2때 코로나 사태가 터졌습니다. 오히려 기회라고 생각하고 더 열심히 했습니다. 고3이 되고, 힘든 날은 더 많아졌지만, 학교 친구들, 보육원 친구들 생각하며 버텼고, 수능만 끝나면 놀 생각에 더 열심히 했습니다. 그리고 대망의 수능날이 왔습니다. 제가 시험을 치르는 고등학교 정문에 도착하자 심장이 터질 것 같았습니다. 열심히 준비했다고 생각해도 떨리는 건 어쩔 수 없더라고요. 그러다 저 멀리 서 있는 엄마를 보았습니다. 초콜릿이나 과자 같은 간식을 챙겨오셨습니다. 눈물이 났습니다. 엄마는 왜 우냐, 지금은 너만 생각해라며 토닥였습니다. 눈물을 닦고 시험실로 향했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점심시간이 아닌 다른 쉬는 시간에 간식을 챙겨먹진 못했지만 한참이나 엄마가 주신 초콜릿을 만지작 거렸습니다. 그리고 잊을 수 없는 수능이 끝났습니다. 이제 모든 게 다 끝났구나, 생각했습니다. 조금 어려웠지만, 지금 그런 건 다 잊고 뭐하고 놀 지만 생각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대기 시간이 끝나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아침보다 춥진 않았지만 옷을 더 여몄습니다. 얼굴을 가리려고 모자도 썼습니다. 이상하게 저 멀리, 수많은 학부모들 사이에 서있는 엄마를 보자 눈물이 났습니다. 엄마는 아무 말없이 안아주었습니다. 그냥 그렇게, 한참을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스무살을 앞둔 고3의 끝자락 시기에, 코로나라고 학교도 안 가는 지금, 전 대입보다 더 큰 고민이 있습니다. 집 문제입니다. 보호종료예정아동인 저는 앞으로 살 집을 구해야 합니다. 저에겐 세 가지 선택지가 있습니다. 대학교 기숙사, 월세 집, 그리고 엄마 집. 보육원 아이들과는 사이가 좋지만 싸울 때도 있었습니다. 18년을 보육원에서 지내면서 만족스러웠지만 제 혼자만의 공간이 필요함을 절실하게 느꼈습니다. 그래서 전 월세 집을 얻길 원합니다. 돈으로 인한 고민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런 건 국가에서 지원을 많이 해주기 때문에 별로 고민이 없지만, 엄마가 문제입니다. 저는 사실 아직도 가족같지 않습니다. 폐륜아라고, ㅆㄹㄱ라고 욕해도 좋습니다. 저도 이런 생각을 하는 제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몇 년동안이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지난 18년, 엄마와 보낸 시간은 턱없이 작습니다. 그런 이유뿐만 아니라 엄마는 뭔가, 저보다는 저로 인해 얻을 이익을 더 생각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제 생각이지만, 그냥 같이 있을때마다 그렇게 느껴졌습니다. 후원금은 얼마나 모였어? 지원은 얼마나 해주는 거야? 물품 지원도 해주나? 저에 대한 질문보다는 이런 질문을 더 많이 들은 것 같습니다.
엄마는 몇 년동안 저랑 살고 싶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전 저만의 공간이 필요하고 아직 엄마가 가족같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전 월세 집에서 지내고 싶습니다. 아직 엄마한텐 이런 이야기 하고 싶지 않아 미뤄왔습니다. 하지만 이젠 해야겠죠. 제가 원하는대로 하는 게 맞을까요, 아니면 엄마가 원하는대로 하는 게 맞을까요? 제가 원하는대로 한다 해도,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까요? 고민입니다. 도와주세요.
저는 얼마 전 수능도 평소 실력대로 무난히 봤고, 수시 정시 계획도 어느 정도 다 정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전, 대입보다 더 신경쓰이는 문제가 있습니다.
저는 내년에 스무살이 됩니다. 그 때문에 보호종료아동이 되죠. 전 보육원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돌도 되기 전에 보육원에 입소해 현재까지 생활하고 있습니다. 선생님들께 예쁨받으며 무난하게 자랐습니다. 물론 아이들이 많기 때문에 사랑 같은 건 좀 부족했습니다. 하지만 전 나름대로 일반 가정처럼 자랐다고 생각합니다. 매주마다는 아니어도 한 달에 세 번 이상은 엄마가 찾아오셔서 잠깐 놀다 들어가기도 했었어요. 그런데 그건 제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얼마 지나서 였습니다. 아기때의 기억은 없지만 어린이집에 다닐 때 기억은 잠깐잠깐 있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거라곤 매일 밤마다 하나님께 저에게도 가족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하고 기도하고 있는 모습뿐입니다. 전 제게 가족이 없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초등학교 때 처음으로 엄마가 찾아왔고, 보자마자 우셨습니다. 전 누군지도 몰랐고 가족이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도 별 감흥이 없었습니다. 제게는 보육원에 있는 친구들, 언니들, 동생들, 선생님들이 더 가족같았거든요. 그렇게 그냥그냥 초등학교 시절이 지났습니다.
초등학교 졸업을 앞두자 엄마가 이제 그만 집으로 가자고 말했습니다. 솔직히 가기 싫었습니다. 제게는 보육원이 더 집 같았으니까요. 주말마자 시간을 보낸다해도 보육원 사람들이 더 가족같았으니까. 그래서 울었습니다. 가기 싫다고 말했습니다. 엄마가 이제서야 말씀하셨지만 그때 엄마는 집에 가서 많이 우셨다고 합니다. 인생 잘못 살았나 싶어, 딸한테 못할 짓을 했나 싶어. 그렇게 저는 가지 않았습니다.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중학교 시절도 무난하게 보냈습니다. 그냥 무난하게. 그러다 중3이 되고, 그저 친구들따라, 성적따라 인문계를 가기로 결정하고 놀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 또 엄마가 집으로 가자고 했습니다. 어린 날의 전 그냥 가기 싫다고 누워서 울며 떼를 썼지만, 전 울지 않으려 노력하며 말했습니다. 보육원에 있으면, 지원도 더 많이 받을 수 있고, 수시나 정시 원서를 쓸 때도 전형이 더 다양해진다, 내 미래를 생각해서라도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는 보육원에 계속 남아있고 싶다, 라고 말했습니다. 엄마는 울었습니다. 저도 이상하게 눈물이 났습니다. 왜 울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눈물이 났습니다.
고1 때는 그냥 평범하게 보냈습니다. 그러다 고2때 코로나 사태가 터졌습니다. 오히려 기회라고 생각하고 더 열심히 했습니다. 고3이 되고, 힘든 날은 더 많아졌지만, 학교 친구들, 보육원 친구들 생각하며 버텼고, 수능만 끝나면 놀 생각에 더 열심히 했습니다. 그리고 대망의 수능날이 왔습니다. 제가 시험을 치르는 고등학교 정문에 도착하자 심장이 터질 것 같았습니다. 열심히 준비했다고 생각해도 떨리는 건 어쩔 수 없더라고요. 그러다 저 멀리 서 있는 엄마를 보았습니다. 초콜릿이나 과자 같은 간식을 챙겨오셨습니다. 눈물이 났습니다. 엄마는 왜 우냐, 지금은 너만 생각해라며 토닥였습니다. 눈물을 닦고 시험실로 향했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점심시간이 아닌 다른 쉬는 시간에 간식을 챙겨먹진 못했지만 한참이나 엄마가 주신 초콜릿을 만지작 거렸습니다. 그리고 잊을 수 없는 수능이 끝났습니다. 이제 모든 게 다 끝났구나, 생각했습니다. 조금 어려웠지만, 지금 그런 건 다 잊고 뭐하고 놀 지만 생각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대기 시간이 끝나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아침보다 춥진 않았지만 옷을 더 여몄습니다. 얼굴을 가리려고 모자도 썼습니다. 이상하게 저 멀리, 수많은 학부모들 사이에 서있는 엄마를 보자 눈물이 났습니다. 엄마는 아무 말없이 안아주었습니다. 그냥 그렇게, 한참을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스무살을 앞둔 고3의 끝자락 시기에, 코로나라고 학교도 안 가는 지금, 전 대입보다 더 큰 고민이 있습니다. 집 문제입니다. 보호종료예정아동인 저는 앞으로 살 집을 구해야 합니다. 저에겐 세 가지 선택지가 있습니다. 대학교 기숙사, 월세 집, 그리고 엄마 집. 보육원 아이들과는 사이가 좋지만 싸울 때도 있었습니다. 18년을 보육원에서 지내면서 만족스러웠지만 제 혼자만의 공간이 필요함을 절실하게 느꼈습니다. 그래서 전 월세 집을 얻길 원합니다. 돈으로 인한 고민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런 건 국가에서 지원을 많이 해주기 때문에 별로 고민이 없지만, 엄마가 문제입니다. 저는 사실 아직도 가족같지 않습니다. 폐륜아라고, ㅆㄹㄱ라고 욕해도 좋습니다. 저도 이런 생각을 하는 제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몇 년동안이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지난 18년, 엄마와 보낸 시간은 턱없이 작습니다. 그런 이유뿐만 아니라 엄마는 뭔가, 저보다는 저로 인해 얻을 이익을 더 생각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제 생각이지만, 그냥 같이 있을때마다 그렇게 느껴졌습니다. 후원금은 얼마나 모였어? 지원은 얼마나 해주는 거야? 물품 지원도 해주나? 저에 대한 질문보다는 이런 질문을 더 많이 들은 것 같습니다.
엄마는 몇 년동안 저랑 살고 싶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전 저만의 공간이 필요하고 아직 엄마가 가족같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전 월세 집에서 지내고 싶습니다. 아직 엄마한텐 이런 이야기 하고 싶지 않아 미뤄왔습니다. 하지만 이젠 해야겠죠. 제가 원하는대로 하는 게 맞을까요, 아니면 엄마가 원하는대로 하는 게 맞을까요? 제가 원하는대로 한다 해도,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까요? 고민입니다. 도와주세요.
정말 어머니가 사랑때문이 아니라 그런 이익을 위한거라고 확신하신다면.. 혼자 사는게 맞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