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이런 고민을 하는 게 형들한테는 되게 우스울 수 있다.
근데 나는 진짜 너무 고민이다.
도대체 친구가 나한테 왜이렇게 엄청난 번뇌를 안겨주는지 모르겠다..


내가 이 친구를 만난 것은 대학교 1학년 때인데,
교양수업에서 만났어.
알고보니 서로 같은 고등학교를 나왔고 집도 가까이에 살고 재수해서 들어온지라 서로 어려움이 많았던 시기에 만났기 때문에 급속도로 친해졌고 많은것을 공유했어.
나는 근데 이 친구의 이런 행동들이 도대체 왜이러는건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1. 일부러 뭘 하거나 어디 같이 갈때 엄청 느리게 함. 내가 본인을 기다려주는 것을 당연시하는데, 진짜 너무 느림.


- 이게 어느 정도냐면 화장실 갔다오겠다 했는데 1시간이 걸려서 나옴. 내가 학교에서 이 친구를 만나면 진짜 거짓말 안하고 도서관 입구에 1시간을 서서 기다린 적이 너무 많음.


- 어느날은 같이 세종시에 놀러간 적이 있는데, 세종시에 가본 형들은 알다시피 버스편이 복잡함. 50분에 1대씩 오는 버스도 많고.
근데 이제 BRT라고 대전으로 다니는 버스가 있는데, 이게 정부청사인가 어디 정류장 보니까 진짜 무슨 도로 한가운데에 2개씩 있고 도로 사이드에 2개씩 있는데 이게 정류장 이름이 다 똑같더라. 그리고 무슨 임시정류장이니 뭐니 풀밭에다 만들어놓음. 그래서 처음 가면 진짜 헷갈리는데,


그때당시 여행하고 나서 밤에 돌아가려고 겨우 길을 찾아서 맞은편 정류장에 있던 친구한테 여기로 오라고 소리치니 저쪽에서 멀찌감치 서 있다가 엄청 천천히 걸어옴.. 그래서 저기 멀리서 느리게 오던 버스를 놓쳐버림.. 그때 밤 10시 50분이었음. 식은땀이 나더라. 거의 막차 시간이라. 택시도 그 시간에 세종시에서 대전까지 가주는 택시가 몇대나 있겠어. 더구나 저 시간에 택시타고 대전갈려면 비용이 3만원은 넘게 나옴.


얘는 이걸 알고도 일부러 엄청 천천히 걸어온거였음.

2. 내가 집안사정이 어려워서 쇼핑가서 뭘 사고 나오는 게 힘들다, 내가 옷같은거 이렇게 사서 집에가면 엄마가 엄청 화내고 분노한다, 하면서 설명한 적이 6년동안 80번이 넘음. 근데 아직도 기억을 못함..


- 내가 지금 20대 후반인데, 21살때 만났으니 거의 6년이 넘게 친해옴. 근데 이 친구가 지금 거의 6년넘게 만나면 만날때마다 계속 쇼핑가자고 함. 옷도 1벌만 사서 나오면 눈치 되게 줌. 최소 3벌은 사서 나오게 함.


그래서 내가 우리집 사정 어렵다고 지금껏 진짜 거짓말 않고 80번은 설명한듯함. 쇼핑갈 상황이 못된다, 미안하다, 근데 너가 쇼핑가달라면 언제든 같이 가주겠다, 이렇게

역전할머니맥주에서 술먹을때마다 매번 설명을 했는데


그 다음날 되면 다 까먹음.


불과 며칠 뒤면
"OO, 왜 넌 나랑 같이 쇼핑 안가줘..?"
"OO, 왜 나만 사고 너는 안사..?",
....하면서 계속 이럼.


3. 나랑 만날때 뭐 재밌는 얘기라거나 정보공유라거나, 하다못해 주식이든 비트코인 얘기조차 단한번도 한적이 없음. 일부러 내앞에선 완전 굳은 표정으로 하소연만 함.


- 내가 다른 얘기를 꺼내려고 하면 절대 그 주제에 대해 얘기하려고를 안함. "OO, 왜그래..ㅎㅎ", 이러거나 "OO, 정신차려!", ㄹㅇ 이러기만 함.


- 그래서 처음에는 이렇게 생각했음. 세상살이에 관심이 없고 잘 몰라서 그러는 줄로만 알았음. 근데 알고보니 그것도 아님.. 내가 삼전 사볼까 고민하고 있으니까 "삼성전자는 1주에 200만원이야..ㅎㅎ 너 그거 살수 있겠어? ㅎㅎ..." 하면서...
약간 눈치를 주더라고.. 나는 그때 취준생이라 그것도 잘 몰랐음.
한마디로 얘는 그정도로 대화소재가 없던 것도 아닌데 내앞에서만 진짜 아무 주제도 안꺼내고 굳은 표정으로 앉아있던 거였음. 하소연만 줄기차게 함. 다른 주제를 좀 꺼내볼까 하면 아예 그쪽 대화는 안할려고 함.

나는 그래서 처음에는 이 친구가 진짜 좀 엄청 둔한 스타일인가 그렇게 생각했거든.
자세히보니 그것도 아님. 다른 사람이랑 있을때나 이따금씩 친구 얘기를 꺼내는걸 보면 그다지 눈치없는 성격도 아님.


가령 내가 1년간 짝사랑하던 사람이 있었는데
서로 몇달 안보다가 오랜만에 봤으면 "너 그사람이랑 어떻게 됐어?", - 이런말 꺼낼수도 있잖아. 근데 이런 얘기는 아예 안꺼냄. 이런거보면 진짜 눈치 없다거나 그런 성격은 아님. 또 내가 뭐 고민상담을 하거나 그럴때 대답해주는 걸 보면 그다지 뭣모르고 눈치없지도 않음..



근데 대체 왜이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