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살 엇나가서 집을 나와 일탈을 했다.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여자친구와 그림,음악에빠져살았다
입시에실패, 20살이돼고 재수를 결정했다
해본적없는 공부하는것이 너무힘들었다.
미술도 전보다 배로 열심히했다.
수능을 보고 모의고사에서 받아본 적없는 내 수준에서
정말 높은 점수를 받았다.
운이좋았다.
국어2등급 영어3등급 사탐(세계사,생활과윤리)1등급
성적은 미대 어디든 쓸 수 있을 만큼 받았다고 생각했다
실기도 나 나름대로는 잘보고왔다.
이제 결과만 기다리면 됐다
H대학 예비 2번 G대학 탈락 G대학 탈락.
H대가 붙길 정말 간절히 기도했다.
그러나 결과는 예비1번에서 커트.
난 입대를 결정했다.
18년4월10일 입대하던날
어머니는 자신의 췌장암말기소식을 통보하였다.
실은 5개월전부터 아프셨는데
아들들 힘들까 알려주시지않으셨던것이다.
재정신이 아니였고, 훈련소에서도 너무힘들었다.
어머니는 4월 27일 수술을 하신다하셨고
26일 그날은 총기사격이 있던날,
총기 안전끈을 풀고 내 턱아래로 총구를 돌리고싶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런일은 없었다.
27일 어머니의수술날
매일매일 소대장님은 어머니와 통화를 시켜주셨지만
그래도 너무 보고싶었다.
눈물 흘린적 없는 나인데, 그날은 정말 온종일 눈물이났다.
그리고 그날저녁 13시간 수술이 끝나고
수술을 정상적으로 마쳤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제서야 마음이 풀렸다.
상병말쯤, 난 맞후임이 정말 늦게 들어왔는데, 후임도 들어오고 이제 군생활좀 피겟거니 싶었을 때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니의 장기에 암이 전이 돼었다는 소식이였다.
대장,위,간, 어머니는 다시한번 수술을 진행하게 돼었다.
위의 1/3정도를 절재하셨다.
이전 수술로 인해 너무나도 헬쓱해진 어머니셨는데,
이젠 더욱더 힘들어하셨다.
췌장암말기 5년이상 생존률이 10퍼센트고 완치율은 그중에서도 1프로라고하니 사실상 완치율은 0.1퍼센트정도라고 하는데, 그 가장 큰 이유가 전이율이 너무 높아서라고한다.
그리고 그 일주일후
들려온 여자친구의 이별통보.
고등학생때부터 4년동안 사귀었던 내 인생에서 잊을수없는 여자친구가 바람을 피웠던것이다.
여자친구한테는 엄마가 아프다고 말도안했다.
말을 했으면 적어도 내가 이렇게 힘든데
다른남자가 생겼다고 이야기는 안하지않았을까
내 인생은 왜이렇게 불행할까...라는 말 정말하기싫었다. 나약해 보이니까. 힘들수록 열심히 살아야지 라고 생각하면서 살았었는데, 그때는 도저히 그게안됐다.
군생활 처음으로 대대장님께 직접 찾아갔다.
그리고 그린캠프에 가게 돼었다.
내가 이렇게 눈물이 많은사람이였나 싶을정도로 매일매일 울었다. 엄마한테 거는 통화버튼을 누르면서도 눈물을 흘렸고, 엄마 괜찮으니 군생활 열심히해라라는 말에도 눈물이났고, 끊으면서도 눈물이났다.
꿈을 꾸면서도 눈물이 났고, 중간에 깨도 눈물이났다.
그래도 이제 군생활 거의다했는데 불명예스럽게 전역하고싶지는않았다.
난 전역하지않고 그대로 복귀했다.
그후 나름대로 열심히 군생활을 했고, 12월 4일 정상적으로 전역을 하였다.
다시 미술을 하고싶진 않았다.
그래서 군대에서 생각했던 제과제빵일을시작했다.
전역한 당일날 바로시작했다
6개월간 일을했는데 여기서는 빵을 배우기는 힘들것같았다. 제과점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배울 수 있었지만,
빵을 만드는 것에 대해서는 배우기 힘들었다.
그래서 일을 그만두고 그동안 벌었던 돈으로 제과제빵 학원을 다녔다.
음악도 했다. 간간히 무료비트에 내가 쓴 가사들을 녹음하여 보관했다.
그렇게 20년도가 끝나갈때쯤, 그냥 갑자기 다시 미술을 시작했다. 입시시기가 다가오니 그냥 갑자기 미련이생겼던것 같다.
그렇게 k미술전문대학교에 입학했다.
그동안 너무나도 외로웠는데, 입학 후 정말 좋은 친구들을 많이사귀었다.
어머니도 올해로 5년째 투병중이시다.
10퍼센트안에는 드신거다.
또 많이괜찮아지셨고 의사선생님도
이정도 경과면 곧 완치판정을 할 수있다하셨다.
이제 내 인생 조금씩 치료돼는 듯 했다.
여자친구도 조금씩 잊혀지고,
만족하는대학은 아니지만, 그래도 학교 잘 댕기고있고
근데 얼마전부터 우리집고양이가 아프기시작했다.
케토산증이라는 당뇨질환인데, 완치할 수 없는 당뇨라고한다.
16년말쯤 학교가 끝나고 집에 가는 도중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어디서 나는 소리일까 싶어 소리가나는곳으로 가니
테니스장 담장 틈 사이에 몸이 끼여 움직이지 못하고있는 간난 새끼 고양이가 있었다.
못봤으면 몰라도 이미 본 이상 그냥 둘수는 없었다.
다행히 담장이 플라스틱재질이였고,
미술을 했던 나는 항상 연필깍이용 칼을 들고다녔다.
그 칼로 담장을 끊고 고양이를 구해주었다.
근데 이상하게 도망가지않고 울면서 나를 따라왔다.
고양이가 나를 따라오는 일이 처음이였어서 신기하기도했고 배가고파서그런가 싶어서 동물병원에서 캔을사서 주었다.
허겁지겁먹는모습이 너무 귀여웠고,
키워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와함께 6년째 살고있는 고양이다.
그리고 맨날 내 배위에 올라와서 골골송을 불렀던 애가 갑자기 하루종일 움직이지도않고 매일 토하고, 침대에 올라갈 힘이없어서 바닥에만 누워있었다.
너무 가슴이 아팠다. 아직 6살이면 어린고양이다.
그렇게 나이가 많은편도아닌데, 내가 잘못해주었나 하는 자책감이 너무많이들었다.
너무나도 미안했다.
내가 사랑한 주변 모든것들에 미안함밖에 없는 내인생이 너무나도 보잘것 없었다.
아직 인생에서 이룬것도 없고, 시작하지도 못했는데
너무 억울했다. 나 이렇게 성공했다고 보여줄 때
아무것도 없을까봐 너무 무섭다.
지금은 학교를 휴학했다.
부산으로 여행을 와있다. 부산뿐아니라 지금 그냥 이곳저곳 계속 여행다니고있다.
이글을 쓰면서 내 인생을 다시 되집어 보는 중이다.
왠지모를 외로움, 공포감, 공허함 또 일말의 창피함이
온몸을 둘러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내 일탈이 엄마가 아픈 이유일까?
여자친구한테 나의 감정을 너무 많이 공감받길 바랬나?
내가 고양이한테 너무 못해주었을까?
예전 친구들은 왜 나한테 연락한통이 없을까?
내가 너무 소홀히 했나?
술을 마셔볼까?
담배를 끊을까?
그때 여자친구 한번만 잡아볼걸 그랬나?
다시 연락이 왔을 때 받아줄걸 그랬나?
어제 모기 한 40방정도 뜯기면서 새벽에 모래바닥에 앉아 바다를 보며 생각한 것들이다.
뭔가 내가 이건 정말 잘했다. 할만한게 없었다.
전부다 후회밖에 없었다
너무나도 외롭네요. 이제 25살인데 너무 외로워요.
나를 정말 깊게 위로해줄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런사람이 없네요 ㅋㅋ...


<첨부사진은 저희집 고양이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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