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하나 스물둘

너희는 너희 인생에서 막바지를 살고 있으니 그렇게 느낄 만 하다.
무슨 막바지냐고? 시간 순서상 너네는 니네가 이제까지 살아온 인생의 막바지에 있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지.

누구나 이제까지 살아온 인생에는 과거만 있다. 이제까지 살아온 인생에 미래는 포함되지 않는다. 아직 오지 않았거든. .

내 인생은 너네보다는 조금 일찍 시작됐고,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의 인생을 사니까 너네들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지나온 시간으로 보면 너네들의 두배가 조금 안되는 기간을 살고있다. 그러니까 반대로 말하면 너네가 나아가지 못하고 넘어져 있는 그 구간이 내게는 지나온 길의 절반 조금 안되는 곳에 있다는 뜻이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궁금하지? 안궁금해도 궁금했으면 좋겠다.
내가 뭐 남들 위로한답시고 쓰는 글에서 나도 비슷한 적이 있었다 라고 말을 하지만 사실 남들이 하는 모든 고민을 다 해본건 아니다. 근데 그래도 이것 하나는 말할 수 있는게, 생각보다 너희가 가진 고민을 남들도 하고, 그 남들중에는 과거의 나도 포함되어 있다는 거다. 심지어는 아직 고민하고 있지 않겠지만 너네들보다는 미래의 시점에 비슷한 고민을 할, 미래의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겠지.

누구나 인생 살면서 위기와 좌절이 찾아온다. 사랑이 실패하기도 하고 원하던 대학에 가지 못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건강을 잃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덫에 빠진 것 같은 절망감을 느끼기도 한다. 잘하는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는데 도대체 나는 무얼 해야 할까? 이런 고민들. 삶을 살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느끼는데 뭘 해야할지도 모르겠고 설사 뭔가를 선택한다 하더라도 그게 최선의 선택인지 확신도 안든다. 최선이 아니라 최소한 남들 하는 만큼만이라도 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을때도 있다. 그런데도 선택을 하라니... 세상이 나에게 너무 잔혹하게 구는 것 만 같다.

이건 너네들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지금의 나에겐 과거가 되어버린 어린 시절의 '나'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너네들 주변에서 그저 행복해 보이기만 하는, 아무 고민도 없을 것 같은 친구들에게는 먼 훗날의 이야기기 될 지도 모른다. 인생이 그렇다. 누구나 시련이 찾아온다. 시련이 없는 인생은 만족을 느낄 수 없다. 만족은 부족함을 채워야만 누릴 수 있는데 부족함이 없으면 자신이 가진 것이 가지고 싶어서 가진 것이 아니기에, 별 다른 만족감을 주지 못한다. 다리가 없이 태어나 평생을 휠체어와 바닥에서 보내던 누군가가 그토록 자유롭게 달리고 싶어 갈망하던 것을, 너희는 두 다리를 가지고도 그 사람이 느끼고 싶을 만족감을 누리고 사는가? 아마도 아닐 것이다. 원래 그렇다.

이쯤되면 너희가 겪는 시련이 모습만 다를 뿐 누구에게든 찾아오는 일이라는 걸 알았을 거다. 너희가 어릴때 너희 부모님도, 학교 선생님도 친구들도 누구도 알려주지 않은 이 평범한 사실이 그토록 낯선 이유는, 너희가 일찍 좌절하지 않도록 이런 사실을 일찍 알게 하고 싶지 않았던 것도 있을거고, 아예 이런 일을 겪지 않길 바라는 마음도 있을거다. 하지만 그 사람들도 이런 일들을 미래에 겪게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몰랐기에 그랬을 수도 있다.

잘 하는게 없는건 고민할 필요가 없다. 내가 며칠전에 "인생이 참 힘들지?"라는 제목으로 써놓은 글이 있다. 너네 이전에 삶에 낙담하던 스물다섯짜리 친구가 있길래 그 친구 보라고 적어놨던 글인데. 그거라도 읽어보길 바란다. 가급적이면 그 글 이전에 있던 그 스물다섯 친구의 고민도 같이 읽어봐라.

문제는 하고 싶은게 없는 경우다. 이건 또 다른 문제지. 물론 심각한 문제는 아니다. 누구나 겪는 시련중에 너네 나에 또래에 시련이 찾아오는 경우라면 열에 아홉은 다 너네같은 고민을 한다. 나이들어서 하는 고민은 종류가 조금 다르더라. 그쪽은 당장 너네가 겪을 일이 없으니 자세하게 말하지는 않겠다. 나에게 있어서도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일들이 될수도 있는거고...

아무튼 그런 고민들이 너희들에게 참 어려운 이유는,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무엇이 '하고 싶은 것'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면 하고 싶은 것들이 뭔지 생각해보기 이전에 '하고 싶은 것'이라는 표현이 갖는 의미가 뭔지 정확하게 모르기 때문에 이런 고민들을 하는 거다.

너희가 너희 인생에서 중요한 결정을 할 때, '하고 싶은 것'이라는 단어는 단순히 초등학교 때 '장래희망'이라는 단어를 접했을 때 너희가 느끼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 달라야 한다. 장래희망은 단순히 그때 당시에 어렸던 너희들, 나 또한 마찬가지로 어렸던 우리들이 막연히 품고 있는 어떤 환상이나 선망의 대상, 그리고 흥미와 관계된 것들이다. 인생 고작 십 몇년을 살아본 어린아이가 장래희망을 선택한다고 해서 누구도 그 아이가 반드시 그 직종을 택할것이라 기대하지 않는다. 심지어 잘할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누구나 한살 한살 먹을 때 마다 장래희망이 손바닥 뒤집듯 바뀌고, 또 그렇게 바꾸는 것을 두고 뭐라 하지도 않는다. 왜냐? 장래희망은 단지 흥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흥미가 떨어지면 금방 바뀌는 게 장래희망이다.

하지만 너네가 인생의 기로를 두고 골라야 하는 '하고 싶은 것'은 그렇지 않다. 어른들이나 선생님이 물어보니까 대답하는 장래희망은 남들에게 말하고 그 누구도 너에게 그 말의 책임을 묻지 않지만, 인생의 기로에서 정하는 하고 싶은 일은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지만 너희들 스스로가 책임져야만 하는 것들이다. 일단 그 길을 정하고 열심히 달리지 않으면 그 여파를 너희들이 직접 뒤집어 쓰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대한 결정이고, 그래서 더 어렵다고 느낀다. "난 ㅇㅇ가 되고 싶어요."와는 완전히 다르다.

그런데 하고 싶은 것이 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잘하는 것도 없다고 말한다. 잘하는 것은 보통 하고싶은 일이긴 하지만 항상 그렇지는 않다. 대체로 하고 싶은 일을 열심히 하기에 잘하게 되었을 뿐인 경우가 많다. 인과관계가 반대인 거다. 뭘 해야 할까? 뭘 해야 옳은 선택일까? 이런 고민을 해봤다면 너희들도 똑같이 스스로에게 함정을 씌운거다. 해야하는 것은 없고 뭘 골라야만 옳은 것도 아니다. '하고 싶은 것'에는 의무나 정답이 없다. 그렇다고 아무거나 고르라는 것도 아니다. 어쩌라는 거냐고? 질문을 조금 바꾸면 어떻게 해야할지 보인다.

하고 싶은 일은 직업이 아니라 너희가 앞으로 살아가게 될 일상의 모습이다.

너희가 삶의 낙이 되는, 즐거움이 되는 활동들은 반드시 너희의 생계를 위해 하는 일과 일치할 필요는 없다. 물론 덕업일치라고 그게 일치하는 경우도 있지만, 반드시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게임을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게임 개발자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심지어 게임 개발은 게임을 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일이더라.) 그렇다고 프로게이머가 될 실력이 있는 건 또 아니다. 나는 만화를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만화가가 될 생각은 없다. 만약 내가 집 짓는 것을 좋아하면서 건축가가 되고싶다면 건축가를 직업으로 삼아도 좋았을 거다. 근데 그런식으로 고민하다보면 너희가 선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굉장히 좁아진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평생의 덕질을 위해 취미와 관계없는 직업을 선택하기도 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고 보니 좋아하지는 않았던 그 일들을 잘하게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내가 어떤 것들을 하며 앞으로의 일상을 보낼 것인가? 이 질문은 이제 사회생활을 시작할 너희들에게 굉장히 중요한 고민이다. 고작 저 몇글자의 질문에 제대로 답하기 위해서는 너희가 이제까지 보고 들었던 남들의 사는 이야기를 총 동원해서 거기에 나를 대입하고 상상해 봤을 때 그 상상속의 나는 행복할까? 즐거워할까? 이런 것들을 생각해야 되기 때문이다. 당연히 어렵다.

그런 어려운 질문이라도 일단 뭐라도 선택하고 밀어부치면 좋을텐데 너희가 그렇게 하지 못하게 만드는 함정이 또 하나 있다. 뭐냐고? '일단 선택하면, 돌이킬 수 없다'는 생각이다.

아니 일단 선택하면 돌이킬 수 없는거 맞지 않냐고? 인생을 허비하게 되니까 당연한거 아니냐고 물을거다. 그래 니들 말이 맞다. 일단 선택하고 그 길로 인생을 보내면 그 지나간 시간은 돌이킬 수 없다는 건 맞다. 근데 저 문장이 주는 부담감을 누그러뜨려주는 또 다른 진실이 있다.

'인생이 꼭 계획한 대로만 흘러가는 것은 아니다.'

이 말이 의미하는건, 너희가 어떤 길을 선택하더라도 반드시 그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는 것도 아니거니와 중간에 선택을 바꿀 수 없는 것도 아니라는 거다. 일단 골라놓고 살아보니 더 나은 길이 있으면 거길 향해서 가도 된다. 중간에 바꾸면 손해 아니냐고? 그동안 허비한 시간은 어떻게 되냐고? 그건 너네가 중간에 목적지를 바꿨기 때문에 허비한 게 아니라 이제까지 걸어오던 과정을 재미없게 보냈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목적지는 중요하지 않다. 너네가 나이 80-90먹어서 삶의 마지막 한 숨을 내뱉을 때, 너희가 어떤 사람이 되어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너희가 어떤 사람으로 삶을 살아왔느냐가 중요하다. 평생을 즐기지도 못하고 죽도록 일만하다가 부자가 된 날 밤에 심장마비로 죽는 사람을 생각해봐라. 100조 규모의 재산을 가진 부자로 죽더라도 지나온 80년 인생이 불행과 힘겨운 나날들의 연속이었다면 그런 삶을 살고 싶을까? 그래서 목적지는 중요하지 않은거다. 결국 너희들에게 남는 것은 과정과 그 과정에서 얻는 기억과 추억 그리고 그 기억과 추억에 함께하는 사람들 뿐이다. 그래서 너희가 목적지를 바꾸더라도 그 과정이 즐겁거나 열정적이었거나 몰입해서 미쳐있었다면 그건 그 자체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 게다가 그런 과정일 수록 스스로가 더 강해지거나, 무언가를 잘하게 되거나, 많은 것을 알게되거나 하는 것들은 덤이다.

원하는 목적지는 정해져있는데 길목에 험난한 장애물이 가로막고 있다고? 돌아서 가면 된다. 계획에 없는 다른 길을 가다보면 생각지도 못했던 멋진 풍경을 만날지도 모르고, 또 거기서 예상치 못했던 인생의 짝을 만날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는 안될 것 같다고? 열정적으로 살다보면 기회는 수도 없이 지나친다. 단지 내가 좁은 시야로 목적지 그 한 곳 만을 바라보고 달리니 죄다 지나치는 것들이다. 아까 말했지. 목적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그러니 방금 말한 좁은 시야로 한 곳 만을 보고 달리는 행위가 얼마나 어리석은 건지 알게 되었을 거다. 왜 그동안 이걸 몰랐을까? 어떤 사람이 멋진 과정을 거쳐 가면, 주변의 사람들은 그 사람을 볼 뿐 그 사람이 지나온 길을 보지 않는다. 그래서 과정보다 결과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풍조가 만연한 것이다.

과정보다 결과가 더 중요한 것 아니냐고 묻는 사람도 있다. 결국은 결과만이 그 사람이 들인 노력을 보상해주지 않으냐고. 열심히 노력했으니 좋은 결과를 얻는 것은 당연하지 않느냐고. 물론 맞는 말이지만 반드시 맞는 것은 아니다. 열심히 노력한 끝에 좋은 결과를 얻는 것은 바람직하고 아름다운 일이다. 그러나 세상은 공평하지도 않을 뿐더러 그렇게 뻔하게 흘러가지 않는다. 열심히 노력한 사람이 끝을 보기도 전에 젊은 나이에 요절하는 경우도 많고 열심히 노력하다가 과로사로 숨지는 경우도 많다. 너희는 이런 사람들에게 결과가 좋지 못했으니 노력이 부족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노력하면 안되는 것이 없다고? 다 그저 희망찬 면 외에는 눈가리고 아웅하는 무책임한 소리일 뿐이다.

결과를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남들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았다는 증거? 삶을 비교할 수 있을까? 너의 삶과 나의 삶이 다른데 어떻게 비교할 수 있을까? 3차원 공간상의 두 좌표를 비교하는 것이 가능할까? (1, 2, 3)과 (3, 2, 1)을 비교하라고 하면 너희들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삶은 단순히 숫자 세 개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데 도대체 무슨 수로 그 복잡한 삶을 비교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너의 삶은 너만이 살아볼 수 있고, 또 너가 이미 살기 전까지는 너조차도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다. 그 미지의 세계를 살아가는 것을 두고 너 스스로가 아닌 그 누구도 너에게 비난할 자격은 없다. 너가 아니기 때문에, 너의 입장이 되어볼 수 없기 때문에, 그래서 네 삶의 전문가는 너 외에는 그 누구도 되지 못한다. 그러니 남들과 비교하지 말고, 남들의 의견이나 생각, 비난을 두려워 말고 너희들 스스로의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 경쟁은 나 자신과 하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남이 나에게 없는 것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내가 불행한 것이 아니다. 내가 그것을 갖고 싶음에도 불구하고 나 스스로에게 그것을 사주려고 움직이지 않는 스스로에게 섭섭할 뿐인 것이다. 나를 사랑하라는 말은 이런 것이다. 거울 보며 나는 잘생겼어 나는 예뻐 이런 것이 아니다. 내가 어떤 것을 갖고싶어 했던 과거의 나에게 그 무언가를 선물하기 위해, 또 미래의 내가 그 선물을 샀다는 이유로 곤경에 처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현재의 내가 두 시점의 나를 위해 희생하는 그 과정을 즐길 수 있어야 비로소 인생은 행복해진다. 그게 너희 스스로를 사랑하는 길이고 그래야만 남들도 너희를 보고 사랑하고 싶은 마음에 빠진다. 여기서 갖고 싶은 것은 단순히 물건이 아님을 잘 알 것이다. 하고 싶은 것, 이루고 싶은 것, 그 모든 것들이 해당된다.

그래서 더더욱 과정이 중요해지는 것이다. 사람은 죽기 전에 한 평생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고 한다. 너희가 언젠가 숨을 멎는 그 순간에 너희에게 주어지는 것은 너희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그것이 사랑이든 값비싼 전자기기든, 노력하고 즐거워하고 울고 웃고 했던 그 모든 시간들이다. 그 자리에 너희가 도달한, 너희가 이룩한 결과물은 포함되지 않는다. 그것들은 그저 너희가 세상에 버리고 갈 유산들이다. 남겨진 사람들은 너희가 남겨놓고 간 것들을 보며 너희를 이해해보려 하겠지만 너희가 달려왔던 그 찬란한 과정들을 곁에서 함께 해 보지 못한 이들을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마찬가지고, 너희도 다른 사람들의 그 치열하면서도 열정에 넘치는 과정은, 그저 바라보는 것 만으로는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이제 현실로 돌아오자. 너희는 시간이 많이 있다.

스물 한 살 친구야. 사수를 하든 조금 낮은 대학을 가든, 너가 원하는 대학을 당장 갈 수 없다면 돌아가도 좋다. 인생 그리 쉽게 망하지 않는다. 너가 갈 생각이 없었던 길을 간다고 해서 너의 인생에 큰 문제가 생기는 것이 아니며, 너가 가고 싶었던 길을 간다고 해서 너가 생각한 대로 그 길이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심지어 너가 지금 가려고 하는 그 목적지는 니 인생의 최종목적지도 아니다. 내가 위에서 말했던 대로 네가 누리고 싶은 일상의 모습을 생각하면 그 목적지는 훨씬 더 먼 곳에 있을거고, 그 곳을 향해가는 길에 있는 수 많은 정류장들 중 어느 곳을 지나친다고 해서 그 길이 오염되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방향을 잃지 않고 달려가려는 노력, 그리고 또 그 와중에도 주변 경치를 바라볼 수 있는 여유, 그리고 막상 달려보니 그 목적지가 내가 원했던 것이 아니었거나, 그보다 더 좋은 곳이 있거나, 아니면 그 곳에 갈 수 없게 되었을 때 다른 목적지를 고를 수 있는 유연함이다. 다만 군수는 추천하지 않는다. 군대는 하나의 미니버전 인생이다. 신병은 갓 태어난 아이와 같고, 말년은 인생을 정리하는 노인과 같다. 자대에 막 온 신병은 모든 것이 낯설겠지만 이미 자대에 있던 사람들에게 있어 너는 새로 태어난 아이와 같이 반가운 존재일 것이다. 네가 전역하고 부대를 떠나가면 남겨진 이들은 너와 함께했던 추억을 가지고 또 그들만의 군생활을 이어간다. 어쩌다 한번 너가 부대를 방문해서 반가운 얼굴들을 볼 수는 있겠지만 그들에게 있어 면회온 너는 돌아가신 삼촌의 무덤에 찾아가 절 한번 하고 지난 추억이나 떠들다가 되돌아가는 일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미니 버전의 인생이다. 그 안에서 서로 울고 웃고 떠들고 힘들어하고 싸우고 미워하고 화해하고 신뢰하고 고생하고 즐거워할 일들을 앞에 두고 바깥을 그리워하다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 될까. 과정이 즐거워야 시간을 허비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러니 군대에 있을때는 군대에 집중해라. 오히려 거기서 거기 일에 집중하는 것이 너의 고민으로부터 너를 잠시나마 홀가분 하게 해 줄 것이다. 명확한 해답은 없다. 너가 선택하고 네가 그려가는 미래의 너의 모습에 맞는 방향으로 끊임없이 미세조정을 반복하면 된다. 해보고 아니면 조금 조정하고, 너무 간거 같으면 한걸음 물러서고, 갔더니 길이 막혀 있으면 때로는 돌아가기 위해 지나온 몇십 걸음을 되돌아 가기도 하는 것이 인생이다.

스물두살 친구야. 너는 이 문단을 읽을 즈음에는 이미 다른 친구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을 느꼈으리라고 생각한다. 타인의 고민을 듣고 조언을 해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있다면 너 스스로도 너의 인생을 돌아볼 수 있는 강인함이 있다는 것이겠지. 인생에서 무엇을 선택하든 정답은 없고 네가 즐길 수 있으면 된다. 버릴 각오까지 했던 인생이라면 남들이 우러러 보는 인생이 아니면 어떻겠나, 내가 행복하면 되는 것 아니겠나 싶다. 다른 친구가 진로 선택의 기로에 서 있었다면 너는 생과 사의 기로를 고민했던 것 같다. 너에게 만큼은 꼭 이 비유를 들어주고 싶다. 거친 물살에 떠내려가는 너를 상상해봐라. 어떤 곳은 가파르고 빠르게 흘러가고 어떤 곳은 느리지만 바닥이 깊다. 이것 저곳을 떠내려가며 부딫혀 상처가 나기도 하고 물을 잔뜩 마시기도 하는 상황을 상상해봐라. 어쩌면 헤엄을 쳐 보려고 노력도 하겠지만 거센 물살을 이겨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지. 세상은 너를 두고 계속 등을 떠밀고 너는 그 물살에 거칠게 휘말려 인생을 맛보는 중인 셈이다. 근데 부딫힐 때는 아프다고 생각했을 건데 내가 보기엔 너는 더 강하다. 너는 네가 약하다고 생각할 때 가장 약할 거다. 반대로 너 스스로가 나는 괜찮다고 생각할 때에는 그 누구도 흠집을 내지 못할 강한 멘탈을 자랑할 수 있을거다. 아마도 이제까지 살아온 삶에서 받은 상처나 후회, 좌절들이 너가 느끼고자 할 때에만 너에게 큰 상심을 주었겠지. 스스로의 인생을 버리는 선택은 쉽게 하는 것이 아니다. 좌절과 절망속에 더 큰 고통을 피하기 위해 죽음의 공포와 고통을 감내하고서 찾는 마지막 선택이기 때문이다. 보통은 거기까지 가지 못하고 좌절속에 끊임없이 고통받는 채로 생을 이어간단다. 그걸 어떻게 아는 지는 묻지 말고. 너 죽지 말라고 하는 소리가 아니라, 너는 죽을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바라는 미래의 삶을 그림으로 상상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어느 방향으로 가야하는지 찾고, 가다가 이 길이 너무 힘들어 아니다 싶으면 한발 물러서서 그림을 살짝 고쳐 그려보렴. 처음부터 완벽한 그림을 그릴 필요는 없고 무엇이든 아주 작은 것부터 시작해서 그 주변에 무엇을 그릴지 차차 생각나는 대로 채워넣고 나면 다 그려놓고 멀리서 보면 근사한 그림이 나온다. 인생도 그렇게 살면 된다. 목표도 완벽할 필요 없고, 그 목표를 위한 실행도 완벽할 필요가 없다. 그저 하나하나 그려넣고 하나하나 실천해 나간 다음 멀리서 네 인생을 뒤돌아 보면 그것이 생각보다 근사했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될 거란다. 너에게는 그런 능력이 있다고 본다. 무슨 소리를 하는거냐고? 살다가 어느날 아 이거였네 하는 날이 올거다. 그때 이 글을 생각하며 그 말이 맞았네 하며 웃을 수도 있고 그 돌팔이 새끼 별 소리를 다 했던거네 하고 코웃음 칠지도 모르지.

아무튼 주저리 주저리 말이 많았다. 이제 가서 재미있게들 살아봐라. 인생 그리 쉽게 망하지 않고, 너희 인생은 죽기 전까지 너희 스스로 포기하지만 않으면 근사한 한편의 드라마같은 일들이 펼쳐질 거란다. 주인공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달려봐라.

- dc official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