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렸을때 조부모님이랑 우리 세 가족이 같이 살았고, 맞벌이로 바쁘신 엄마아빠 때문에 기억도 잘 안나는 그땐
그때까지 살아계셨던 증조할머니랑 할아버지, 할머니가 날 맡아 키우셨다고 한다.
내가 초등학교 1학년 되던 해인가 동생이 태어나면서 우리 가족은 원래 살던 동네에 작은 집을 하나 지어서 이사를 왔다.
그때부턴 조부모님과 따로 살았지만 걸어서 2분이면 왕래하는 짧은 거리에 살아서 여전히 하교하고 나서는 조부모님과 함께 있었던 기억이 난다.
한 십몇년 지나서 난 잼민이에서 디씨나 하면서 고추 벅벅 긁는 대학생으로 대학생에서 앰생백수로 진화했다.
대학교는 서울에서 자취하며 다닌 탓에 할머니 할아버지 얼굴 보는것도 명절때가 다였고,
일년에 두어번 뵐때마다 나같은것도 하나밖에 없는 장손이라고 항상 반겨주셨는데
참 나는 그때 할머니 할아버지가 하는 잔소리가 그렇게 싫었다.
앞에다 대고 싫은티내면서 대못박은건 아니지만 그냥 슥 가서 저 내려왔어요 짧게 인사하고 되도록 안마주치게 집에 콕 박혀있고 그랬다.
대학교도 졸업하고 서울에서 그냥저냥 쓰레기같이 지내다가
작년에 28살먹고 고향에 겨우 취업해서 이젠 집에 들어와 부모님이랑 산다.
할아버지도 나이가 벌써 아흔을 훌쩍 넘기셔서 매번 뵐떄마다 기운없어하시고
할머니는 오랜시간 해녀로 물질을 다니셔서 그런지 안들리던 귀 상태가 더 심해져서
바로 앞에 있어도 무슨 클럽에 있는것처럼 소리지르지 않으면 내가 하는 말을 알아듣지도 못하신다.
와중에 보청기를 하나 사다드렸는데 불편하다며 끼고 다니지도 않으시더라.
그래도 건강하게 소일거리 하시고 가끔 마주치면 동네 어르신들이랑 경로당도 가고 낚시도 하시고 놀러 잘 돌아다니셔서 그랬는지
같이 살 수 있는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는걸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그게 잘 느껴지지가 않았다.
한달 전인 작년 12월부터 할아버지는 음식도 잘 못 드시고, 자리에 가만히 앉아계시는 날이 늘어났다.
어른들끼리 무슨 말이 오갔는지 왕래가 별로 없었던 고모들이 차례대로 집에 찾아와서 할아버지와 병원엘 같이 가고,
아빠와 같이 돌아다니며 할아버지 앞으로 되어있는 선산이나 밭같은걸 정리하시는 것 같더라.
할아버지가 셋째 고모에게 당신이 올해(2022년)를 못 넘길것 같다라고 얘기하셨다는데 이게 계기가 된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이때까진 할아버지가 나이가 있으시니 겨울에 기운이 빠진거 아닌가 정도였는데 며칠 전부터 상태가 아주 안좋아지셨다.
죽을 쒀 드려도 한두수저밖에 못 드시고 매번 오시던 제사에도 몸이 안좋아 불참하셨다.
병원엘 가 보니 이미 폐는 상태가 많이 안좋으시고 배에는 복수가 차서 입원해서 투석을 받으셔야 할 것 같다고 얘기했지만
할아버지 본인의 강력한 반대로 흐지부지 무산됐다.
할머니는 집에 찾아와 할아버지가 밥도 안 먹고 따뜻한 방에서 누워있으라해도 고집만 피운다며, 저러다가 일이주일 뒤에 죽는다며 악담같은 소리를 늘어놓고
같은 조의 말을 몇번이고 계속 반복해서 하는 걸 들으며 고모들이랑 아빠엄마가 막 웃는데
어른들이야 마음의 준비가 어느정도 돼있었겠지만 참 나는 그 사이에 앉아서 같이 웃을 수가 없더라.
우리집에서 제사한다니까 할아버지가 오늘 제사인줄도 몰랐던거같다고 밤 9시인데 아침 9시인줄 안다면서 마침내 노망이 났다고
저러다가 죽을거라고 무슨 죽길 바라는 사람처럼 얘기하는 할머니가 너무 미웠다.
어른들이 우리집에 모여서 악담이나 하고 있을때 혼자 계신 할아버지가 걱정돼서 찾아가보니 추운 마루에서 난로 하나 켜고 몇시간이고 가만히 앉아계셨다.
할아버지 저 왔어요 얘기해도 고개만 한번 돌려보시고는 말씀도 못 하시는 기운 없는 모습에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어서 몰래 밖에서 엉엉 울었다.
어제는 결국 할아버지가 입원하셨다.
병원 무슨과 무슨과 이곳저곳을 다 돌아다니고 간병인 구하는것도 일이라 시간이 꽤 오래 걸렸던 것 같다.
할머니는 여전히 별 것도 아닌 일로 우리 집에 찾아오셔서 우리를 찾는다.
어제는 밥솥이 고장났다고, 1년도 안썼는데 닫히질 않는다며 날 찾으셔서 직접 가 확인해보니,
밥솥 뚜껑의 잠금버튼을 잠궈놓은채로 닫으려고 하시기에 이걸 열림으로 놓고 닫으셔야한다고 말씀드렸다.
잘 못 알아들으셔서 5번정도 반복해서 말했다.
와중에 할머니가 너네 할아버지 있었으면 밥솥 들고가서 고치고오는데 안된다고, 할아버지가 사온거라고 몇번이나 말씀하시는데 참
그렇게 악담을 해대더니 결국 맨날 옆에 계시던 할아버지가 없으니 섭섭하신가보다.
오늘은 퇴근해서 돌아오는 나를 집 앞에서 내내 기다리시다가 날 보고 반색하시며 팩우유가 세 개 들어있는 비닐봉지를 건네셨다.
할아버지가 밥은 안 먹어도 우유는 마셨다면서 병원에 가져다 주라고 하시더라.
할머니 병원에 함부로 외부 음식 가져가서 환자 주고 그러면 안돼요 그리고 거기에도 우유 다 있어요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말이 안나와서 그냥 예 그러고 우유 갖고 집에 들어왔다.
아마 내일도 할머니는 아침이든 저녁이든 우리 집에 불쑥 찾아올 것 같다.
나가디져라 ㅂㅅ새기 이새기도욕하는새기네 소설써라 ㅂㅅ아
그렇게 한분 한분 보내면서 배우게 되는거 같다. 난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차례대로 돌아가셨는데 두분 다 각각 말년에 치매로 고생하시고 그 과정에서 엄마가 돌보시느라 엄청 고생하셨지. 나보다는 훨씬 더 가까웠던 엄마가 더 힘들었을거 같은데 의외로 엄마는 고생하시다 이제 편히 가셨으니까 됐다고 덤덤해하셨다. 외할머니가 나 볼때마다 엄마 속썩이지 말라고 그렇게 말씀하셨는데 마지막에는 그래도 자신있게 대답했던게 생각나서 조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도 외손자로서 자주 찾아뵈지도 못한게 아쉬워서 눈물이 막 나는건 어쩔 수 없고. 이제 친할머니만 남았는데 난 엄마처럼 덤덤히 보내드릴 수는 없을거 같다. 그래도 어쩌겠나. 누구나 다 그렇게 이별을 겪어야 한다는데...
너도 지금이라도 한번은 꼭 따뜻하게 안아드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