좆같다.
시발.
20대는 시발 됏고 30대에 이른 지금까지도 하루하루 돈때문에 개빡치는일 투성이다.
대학교졸업하고 어릴적 자라던곳으로 다시 돌아왔다.
장애인 할머니, 할아버지가 아픈데 돌봐줄 사람이 없어서
다때려치고 내려와서 간호하고 병수발들었다.
아버지 어머니 두분다 계시만 아버지가 사업을 다 말아 쳐먹는바람에
집도, 돈도 한푼없는신세라 교회에서 얻어준 지하방에서 겨우 두분 몸만 가누고있는상태기에
가난한 장애인 노부부 돌봐줄 사람이 하나도 없어 직장때려치우고 내가 내려왔다.
이후에는 내청춘 조지면서 그냥 수발들었다. 노는거좋아할나이에 대소변치우면서
하루하루 억지로 버텼다. 모아놓은 돈이 떨어져서 알바도 뛰고 돈될만한 물건도 팔면서 억지로 버텼다.
그와중에 아버지가 감옥에 갇혔다. 빌린돈을 갚지못하니 사기죄가 되더라.
먹고살아야되는 어머니는 새벽일을 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버티다 도저히 안되겠으니 수발을 들면서 준비 할 수 있는 직업을 구하자는 마음으로
개나소나 지원한다는 공무원 시험 준비를했다. 공단기 해커스 할거없이 내가 살 수 없는금액대의 인강을 팔고있어
독학을 결심했다. 지난년도 문제집을 중고로 구해 남이 풀고난 문제에서 손바닥으로 정답을 가리며 그렇게 혼자 준비했다.
병행은 너무나 힘들었다. 시간은 한정되어있었고, 남들이 공부할 시간에 대소변이 물들인 더러운 이불을 빨아야했다.
세탁기가 고장나는 바람에 2주넘게 세탁기를 살돈이 모일때까지
알바를뛰고, 이불을 밟으며 그 겨울을 보냈다.
그렇게 3년을 보내니 안되는건 안되는거라는 교훈만 배우고 때려쳤다.
돈이 너무나도 필요했다. 그래서 일을 시작했다.
지인의 소개로 시작한 일은 우연한 계기로 말미암아 수중에 돈이 생기기 시작했다.
마이너스 통장은 어느새 0원을 지나 통장잔고가 쌓이기 시작하고, 나도 이제 미래를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가 형기를 다채우고 출소했다.
벌금 500만원은 새벽일을 하시는 어머니가 허리디스크를 얻어가며 갚아나갔고,
그런 어머니를 보며 아버지는 노가다라도 뛰어 어머니와 다시한번 꾸려나가겠다고, 이야기했다.
제버릇 개못준다.
아버지는 노가다를 뛰지 않았다.
출소이후 다시 사장님 소릴 들으며 큰물에서 놀길 원했지만 동전 한푼없는 출소자,
무일푼인 사람이 다시 일을 시작할 순 없었다. 그는 돈이 필요했고, 아주 가까히에 돈을 가진 이가 있었다.
처음에는 10만원이었다.
그저 달라는말도 하지 않았다. 빌려주면 갚겠다고 했다.
두번째는 20만원이였다
그리고 세번째부터는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많은 횟수가 이어졌다.
요구 항목은 다양했다.
술값, 접대비, 교통비, 공과금, 심지어 변호사 비용까지
액수도 다양했다. 5만원부터 3천만원까지,
돈을 주지 않으면 곧 죽을것같은 소리를 했다.
이번 한 번만으로 시작하는 그대사는 어떻게서든 돈을 해봐 로 종결나기 일수였고
더이상 돈을 줄수없어, 기여코 달라는 돈을 못준 몇번은 모든 실패의 책임이 나에게 돌아왔다.
그 힐난의 책임과 무언의 압박은 나를 좀먹어갔다.
떄로는 달콤한 당근도 주었다.
사업을 하는 사람이 누구나 그러하듯, 자신이 왕년처럼 일만 하면, 또 어디서 누가 돈을 좀 보태어주면,
몇억은 우습다는 뉘앙스의 그말, 그 거짓이 점철된 말들은 결국 내가 번 돈은 다 네것이라는 달콤한 거짓말로 포장되었고
아비에게 잘하는 자식, 세상에 둘도없는 자식, 몇마디의 허울좋은 장식들로 꾸며져 결국 나에게로 돌아왔다.
그사이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장례식장 사무실에서 커피를 마시며 네가 장례비용을 좀 대거라 라는 말은
돌이켜보면 돈을 맡겨놓은 사람이 할법한 대사였지만, 당시의 슬픔이 더 컸기에 아무대꾸도 하지 못했다.
그나마 모아온 돈도 없어졌다.
그래도 요구는 지속되었다.
어떻게서든 방법을 찾아서 돈을 드렸다. 번돈도 모은돈도 있었지만, 내돈이 아닌돈이 훨씬 많았다.
그돈들은 주기적으로도, 그리고 때로는 돌발적으로도 나에게 부과되었다.
하지만 나는 버텼다. 어떻게해서든 어디서든 돈을 만들어내어 여러의미로서의 나를 지켰다.
내가 진행하는 일들은 다행히 자리를 잡았다. 나에게는 한달에 천만원 이상의 돈이 쥐어졌다.
하루에 6시간을 제외한 18시간을 일을하며 열심히 돈을 모아갔다.
그렇게 나는 아버지가 복역한 3년보다 많은 날들을 지나쳐왓다.
그동안 송금한 액수가 3억을 넘었다.
내가 입는옷은 3가지가 넘지않아 조합은 항상 똑같고 신발도 두켤레, 벌써 일년째 그대로지만
나는 올해만 5천만원을 넘는돈을 보내드렸다.
오늘도 다음주 인건비 100만원을 준비하라는 말을 들었다.
통장의 잔고는 1300, 이번달 카드값은 900 , 갚아야될돈을 제외하고도 400이라는 돈이 남았지만
하나도, 전혀, 기쁘지 않다.
시발.
병신.
좆같다.
괙트냐? 너 혼자라도 빨리 탈출해
할만큼 했다 그만 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