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이런 익명 커뮤니티 사이트를 이용하지 않는 편이지만, 이번 일은 다양한 분들의 의견을 꼭 들어보고 싶어 이렇게 글 남기게 되었습니다.

저는 25살 여자고, 여동생이 한 명 있습니다. 엄마아빠 사이는 모두 좋으시고, 문제될 것은 없다는 전제 아래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와 동생은 본가에 지내고, 부모님은 주말에도 맞벌이를 하십니다.

어제 저희 집에 보일러가 터져서 할아버지와 그 외 가족분들이 도우러 집에 오셨습니다.

고생하실거 생각하니 얼른 뭐라도 사와야겠다 싶어 무엇을 선호하실지 몰라 따뜻한 레쓰비와 빨간 병뚜껑이었는데 생각이 안나네(쓴 맛나는 음료였던 것 같아요 뭐더라.. 아무튼 어른분들이 드시는 거) 를 사와서 모두 챙겨드렸어요.


할머니도 오셨길래 식탁에 앉아서 말동무도 해드리고 말씀하시는거 들으면서 그렇게 있었어요.

그런데 저희 할머니가 조금 별나세요 말이 상식 이상으로 아주 많으시고 그 이야기의 90%가 남욕이고요, 독자님들이 생각하시는 수치 그 이상으로 사람을 진빠지게 하는 그 무언가가 있어요. 예를 들어 가족 중 누군가가 철물점에 갔다 하면 할아버지한테 가서 "철물점 안 열었을텐데?" "ㅇㅇ 철물점은 오늘 주말이라 안열었을텐데?" "누구랑 갔어?" "누구 차타고 갔어?" 이런식으로 제가 듣기에는 이걸 굳이 물어본다고? 하는 것까지 끄집어와서 말을 이어가는 그런 음.. 신기한 분이세요.


그리고 정말 희한했던 건, 보통 자기 사위를 욕하고 싶어도 영감한테 가서 하지 손녀한테 하나요? 앉아있던 식탁과 보일러실의 거리가 아주 가까웠음에도 불구하고 저한테 속삭이면서 고모부는 어찌 됐든 너희랑 남이야~ 갑자기 이러시고, 고모부 하나도 할 줄 모르는데 괜히 온 거다 이러면서 저한테 갑자기 고모부 욕을 하세요.

저는 이 광경이 익숙하니 아무렇지 않게 생각해왔지만, 이 글을 쓰면서 문득 드는 생각은 저정도면 무슨 병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그러다 일처리가 길어지는 것 같아 바로 안방으로 모시고 온수매트 틀어서 따뜻하게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할머니가 이곳 저곳 구경하고 매의 눈으로 살피시더니 "이건 못 본 물건이네?" "이거 할머니가 본 적 없는 물건인데?" "언제 샀나?" "아빠돈으로 샀나 엄마돈으로 샀나?" 이런 세세한 질문을 저에게 하셨어요. 주로 엄마의 화장대, 침대 커버(엥? 이건 왜..), 티비(대체 이것도 왜..?) 등을 물어보셨어요.

정말 모르기도 하고 이렇게까지 질문하는 사람도 처음이라 당황하는 찰나에 혹시 할머니가 부러워서 그런건가 싶어 할머니댁에 있는 물건들을 언급하며 "그런데 우리 할머니는 이런 것도 있고, 저런 것도 이래서 엄청 멋있던데!!?" 라고 말하며 방향을 돌리려 했어요.


할머니의 남욕은 여기서 다시 시작됐어요. tv를 봐도 나오는 출연진의 얼굴을 폄하하고 욕하시고, 손이 못생겼다는 둥, 얼굴이 납작하다는 둥 정말 이제는 자존감이 너무 낮아서 남욕 말고는 어딘가서 세울 수 없게 된 지경까지 가신건가하는 생각도 들 정도로요.

이것도 할머님들 특성이라 생각하며 그냥 들어주었습니다.

여기서 의문이 드는 점도 있으실 거라 생각해요 "그럼 넌 니 방 가서 너 할 일 하지 왜 굳이 사서 고생을 하느냐?"

제가 마크를 하지 못하면 할머니가 보일러 작업하고 있는 곳에 가서 계속 떠드십니다. "그거 그렇게 하는 거 아니지 않냐" "그렇게 하면 물이 안 새는 것이냐" "지금 떨어지는 물은 난방 돌릴 때 나왔던 물이냐, 틀어서 나온 물이냐"

이게 참 글로 표현해서 제대로 와닿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 아쉽지만, 우리 생각으로는 떠올릴 수 없는 것들까지 꺼내서 일하고 있는 사람을 귀찮게 해요.

저는 일하시는 분들도 힘든데 저렇게 진빠지게 하는 것도 보기 싫어서 일부러 데리고 있던 것도 사실이었어요.


그렇게 일을 마치고 아빠가 아무것도 못드신 가족분들을 위해서 짜장면 사먹자고 저에게 시키라길래 주문사항을 받고 짜장면을 시켰어요.

(아빠는 일을 일찍 마치고 중간에 집에 오셔서 보일러 고치는 것을 돕고 계셨어요.)

저는 그동안 보일러실에서 뺐던 세간살이(?) 치우고 있었고, 아빠도 같이 도와서 함께 하고 있었어요. 동생이 감기에 걸려서 컨디션이 많이 안좋아보이길래 같이 하자 하기에도 뭐하더라고요. 그렇게 짜장면이 오고, 식탁에 세팅 다 해두고 물 따라드리고 다시 정리하고 있었는데 여기서부터 제가 많이 서운하고, 서러웠어요.


그 아무도 저에게 밥 먹고 하라는 말을 하지 않았고, 할아버지는 동생한테 밥그릇에 짜장면을 덜어주며 조금이라도 먹으라며 챙겨주셨습니다.

할아버지가 동생을 조금 더 예뻐하고 편애했다는 것은 이미 어릴 때부터 눈치 채고 늘 그래왔던 일이라 놀랍지도 않았어요.

할아버지가 동생만 챙긴 것도 서러운데, 남는 짜장면 하나가 다 불겠다는 얘기가 나오니까 할머니가 갑자기 "그럼 ㅇㅇ이(제 이름)가 먹겠지" 이러셨어요.

저 정말 그 뒤에서 정리하고 치우는데 눈물날 것 같은 거 겨우 참으면서 그 얘기 못들은 척 하고 정리만 했어요. 제가 가축도 아니고, 어떻게 그런 말씀이 쉽게 나오시는지 아직도 이해하기가 어려워요.

아빠도 제 감정을 읽었는지 보일러실 닦다가 나와서 제가 쓰레기 정리하는거 옆에서 거들고, 아빠 손을 보니까 눈물이 더 나올 것 같아서 괜찮다고 앉아서 쉬고 계시라 했어요.


이게 정말 손녀한테 할 수 있는 대우인가요? 저 어제 이 수모를 겪고, 방 청소하고 밖에 나가서 엄마랑 전화하면서 펑펑 울었어요.

엄마는 화가 잔뜩 나셨고, 저는 잘못한거 하나도 없으니 위축되지도 말고 기죽지 말라 하셨고요.

술도 잘 안 하는데, 어제 너무 속상해서 맥주 한 캔 뜯었네요.


동생은 성격이 살짝 까칠..? 예민한 면이 있어요. 저는 동생이 그렇다는 것을 아니 오히려 더 둥글둥글하게 하려 노력했고요.

가족들에게 예의를 차리는 건 당연한 것이고, 베푸는 것 또한 마찬가지라 생각해서 제가 집에서 뭘 만들면 항상 조부모님 가져다 드렸고, 생신날 케이크 등 제가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까지 가족이라는 이유 하나로 해왔어요.

아무래도 제가 제 이미지를 호구로 만들어 놓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가족인데? 정말 가족인데 날 호구로 취급할 수 있어? 라는 생각도 들어요.


그래서 내린 결심은 부모님 외에 뭘 해드리고 싶지 않아졌어요. 할머니는 늘 저에게 사촌동생들 욕하고, 작은엄마 욕하고 가족들 욕하시는데 다른 가족구성원한테 가서 제 욕인들 안하시겠나요. 제가 내린 결심이 불효일까요? 제가 이런 생각 하면서 죄책감을 느끼는데 이런 제가 너무 답답해요.

여기 계신 분들의 생각은 어떠신지 정말 궁금해요.


긴 글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