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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혀오는 타임 리미트 속에서 3년 간의 자신과 마주보며


아이묭이, 두 번째 앨범 [瞬間的シックスセンス]의 발매로부터 1년 7개월 만에 새 앨범 [おいしいパスタがあると聞いて]를 9월 9일에 발매한다. 코로나바이러스의 확산으로 인해, 밴드투어와 원맨투어를 연기한 아이묭. 그런 상황 속에서 제작이 진행된 본 앨범은, TBS드라마 [나의 가정부 나기사]씨의 주제가 [裸の心]를 시작으로, 400곡을 넘는 팽대한 미발표곡 중에서 그녀가 지금 부르고 싶다 생각한 곡들이 수록되어있다.

[裸の心]을 포함해 수록곡의 대부분은 아이묭이 2017,18년도에 만든 곡이다. 어째서 이 시기에 만든 곡들을 이제와서 아이묭이 부르고 싶었던 것인지, 또 자숙기간 중 25살 생일을 지내며 어떤 심경 변화가 있었는지, 게다가 ‘DISH//‘에게 곡을 제공하고 3년이 지나 히트 중인 [猫]에 대한 이야기등, 인터뷰의 화제는 앨범에 얽힌 일 뿐만 아니라 다방면에 걸쳐있다. 아이묭이 정성껏 이야기해준 만 글자를 넘는 인터뷰를 즐겨줬으면 한다.

멀어지고 있는 게 아니라 가까워지고 있는거야

──나탈리에서의 인터뷰는 2019년 2월의 두 번째 앨범 [瞬間的シックスセンス] 발매 이후인데, 앨범 발매 직전에는 첫 무도관 공연, 그 후에도 밴드공연이나 아레나 투어를 개최하는 등, 여러 화제가 있었어요. 그 와중에, [おいしいパスタがあると聞いて]의 제작은 언제쯤부터 시작했나요?

원래 앨범은 올해 7월에 발매 예정 이었기에, 12월 즈음에는 타이틀을 생각해 미발표곡 중에서 수록곡을 고르기 시작했어요.

──12월이라면 전국투어 [AIMYON TOUR 2019 -SIXTH SENSE STORY-]를 하고 있었던 무렵이겠네요. 전국의 홀과 아레나를 도는, 추가공연도 포함하면 총 26개 공연에 이르는 아이묭 사상최대 규모의 투어로, 전국의 홀과 아레나를 돌았어요.

전반은 홀, 후반은 아레나였는데, 아레나에 서 보니 홀 공연에서 무기라고 생각했던 것은 통하지 않구나라며 생각하는 등, 여러가지 공부가 됐어요. 정말 재미있는 투어였어요. 조명이나 음향 스탭, 라이브 제작 하는 쪽 분들도 고정이기에 함께 팀이 되어 전국을 돈 것은 이 투어가 처음이기도 하고, 스탭 모두가 없었다면 할 수 없었겠지라고 매 공연마다 생각했어요.

── 팬클럽 [AIM]의 일기에는, 2월 12, 13일 개최된 오사카・오사카성 홀이 특히 인상에 남았다 라고 쓰여져 있네요.

오사카성 홀은 정말 마지막(피날레) 공연이었으니까요. 오사카성 홀의 1일 째가 저에게 있어서는 최악의 공연이었어요. 보러 와 주신 모든 분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실지도 모르겠지만, 제게 있어서는 잊을 수 없는 공연으로, 2일째는 그만큼 기합을 넣고 스테이지에 올라섰네요. 그렇기에 2일째 마지막 곡이 끝나고 스테이지에서 내려와 밴드 멤버의 얼굴을 보니 눈물이 났어요.

── 그 눈물은 성취감 때문에?

그것도 그렇고, 허전한 느낌도 안도하는 마음도 여러가지 감정이 뒤죽박죽 되어서 ‘끝났다......’라는 느낌이었어요.

── 원래부터 아이묭 씨는 팬들을 생각하는 사람이구나 라고 느꼈지만, 라이브 규모가 커진 후로 ‘모두 소중히 생각하고 있어’ 라는 말을 더 자주 말로 하게 되었군요.

역시 규모가 커지는 것에 따라, 팬 분들은 왠지 섭섭함을 느끼는 것 같았어요. 그래도 저는 작은 공연장에서부터 더 큰 곳으로 가고 싶어서 지금까지 열심히 해왔고, 고맙게도 모두가 도움을 많이 줬죠. 공연장이 커지면 거리를 느낀다 라던지 아이묭이 먼 곳으로 가 버렸다 라는 소리가 들리는데, 저로서는 전보다 더 모두의 곁에 다가갈 수 있게 되었어요. 이전까지는 공연장도 작았기에 보러 와 주시는 사람도 제한되어 있었고, 지방에도 가기 힘들었어요. 그렇기에 모두와 멀어진 것이 아니라 가까워지고 있는 거라고, 확실히 전하지 않으면 안되겠다고 생각했어요.

── 아이묭 씨가 일기에 쓴 발언을 인용하자면, 노래로 모두의 고리를 연결시킬 수 있는 접착제가 되고싶다. 라고 말씀하셨어요. 예를 들면 [君はロックをかない]의 떼창은, 정말로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노래가 가진 “접착제”로서의 강도를 늘리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君はロックをかない]의 떼창을 아레나에서 들었을 때는 감개무량했어요. 그 순간이란, 저를 정말로 객관적으로 보게돼요. ‘모두 왜 이렇게나 나를 응원 해주는걸까’ ‘어째서 모두 와 준걸까’ 라던지. 모두 자기 일도 있을텐데, 사람을 응원한다는 건 대단한 일이잖아요? 그렇게까지 해 주는 모두에게 감사한 마음도 있고, ‘나는 정말 그렇게 응원 받을만한 사람인걸까, 모두에게 이렇게나 많은 걸 받아도 되는 사람인걸까, 어울리지 않는게 아닐까’ 라던지 그런 것도 생각해요. 또 고마운 마음이 부풀어오르는 순간도 있고 이러한 연결고리를 넓혀가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 지금까지 해 왔기에, 이렇게나 커졌지만, 아직도 실감나지 않는 부분도 있어요. 이전의 저에게는 역시 상상도 하지 못할 풍경이니까요.

어떤 상황이던, 약속을 지키지 못했던 것은 나 자신

──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세계에 위세를 떨쳐, 긴급사태선언을 발표하고 활동이 중지된 동안은 자신과 마주 볼 수 있는 시간이 많았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어떤 것을 생각하며 보내셨나요?

다음 투어 타이틀을 [ミート・ミート]로 한 것은, 미트소스 파스타에 뿌리는 것도 있지만, ‘다시 나와 만나자, meet・meet 하자’ 라는 이유가 가장 강했어요. 그래서 역시 모두와 만나고 싶다고 매일 생각했어요. 아직 가망이 있는 공연도 있지만, 중지 되어버린 공연에 오기로 했던 모두 만나고 싶고, 원래 그런 생각으로 만든 투어였기에 괜히 분한 마음도 있네요. 점점 상황이 나빠지고 있는 중에 단독 투어 (AIMYON き語りTOUR 2020 “風とリボン” supported by 淡麗グリーンラベル)가 취소되었는데도, ‘우울해 하지말자’ 라고 생각했어요. 그래도 역시 아레나 지방 공연이 중지 되었을 때는 우울 해졌고, 여러가지를 생각했습니다.

── 말하자면?

‘상황이 상황이니까’ 라고 말해버리는 건, 아니다 라고. 이 상황은 아무도 나쁜 게 아니니까 화를 풀 상대가 없어서 힘들어요. 그렇기에, 이번 투어를 기대해 주고 있던 모두에게는 제가 대표로서 사과하고싶다 생각했어요. 그렇지 않으면 저도 견딜 수 없으니까요. 하기는 ‘다음 투어에서 다시 만나요’라고 약속한 것도 저고,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도 자신이기 때문에 그런 기분으로 항상 활동하고 있으니, 투어 중지도 현 상황의 탓으로 돌리고 싶지 않다고 할까.

──그래도 그건 엄청난 중압감이 들거 같은데요? 아이묭 씨는 지금까지 라이브를 취소한 적도 없고, ‘또 다음 투어에서 만나요’와 같은 약속을 계속 지켜왔으니까요.

음, 중압감은 느끼지 않지만,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을 이 상황 탓으로 돌려버리면, 왠지 진 듯한 기분이 들기 때문에.. 게다가 어떤 상황이더라도,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은 제 책임이라는 마음으로 임하지 않는다면 활동은 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육상부 였던 때에 담당 선생님께 들었던 ‘지각 이유가 전철 지연인 것은 본인 책임이다. 그런 일은 세상에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빨리 와야지’ 라는 말이 제 깊은 곳에 있는지도 몰라요. 저는 팬 모두가 있어 주기에 활동을 할 수 있는거니까, 이럴 때 제가 책임을 져야해요. 그야 ‘웃기지마, 이런 상황따위 이런 일이 없었다면 지금 쯤 모두와 즐겁게 라이브도 하고 있을텐데!’ 라고도 생각하지만, 상황 탓을 해서 그 책임으로부터 도망쳤다면 그 후에, 아무것도 이길 수 없다고 타이르고 있어요. 그래도 힘들 때는, 모두 분명 억울함을 느끼고 있다, 나만이 힘든 게 아니라고 멋대로 내 편을 만들어서, 어떻게 할 수 없는 분노나 억울함을 어떻게 소화해야할지 고민했어요.

“앞으로 5년 후에 가수로서 인생이 끝난다면” 이라는 마음으로

── 자숙기간 중에는 생일도 있으셨죠?

네? 누구 생일이요? 아! 저 말하시는 거구나 (웃음). 
25살이 되었어요.

── 3월 6일이었네요. 축하드립니다. 25살은 바꿔말하면 한 세기의 4분의 1인데요, 아이묭 씨가 예전부터 상상하던 25살의 자신과 지금이 자신의 차이는 있었나요?

25살은 30대가 눈 앞에 쫓아오고 있고, 인생에서 중요한 나이라고 생각했어요. 게다가 조금 더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저를 상상하고 있었기에, ‘이렇게 중요한 25살을, 이런 집에서 계속 보낸다니......’라는 기분이 되었어요 (웃음). 소중한 시기에 아무 것도 하지 않고 2개월 정도 가만히 있는 것은 아깝다, 억울하다 같은 느낌? 여전히 집에서 작곡은 하고 있었기에 곡은 남겨두고 있지만, 그 이외에도 25살인 동안에 남길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단 말이에요. 25살의 저를 보여줄 자리가 없고, 남지도 않는 게 좀 분해요.

── 아이묭 씨에게 있어서, 아티스트 인생에 있어서 25살은 어떤 나이인가요?

자기 자신이 아티스트로서 몇 살까지 활동할 수 있을지는 솔직히 몰라요. 그렇기에, 한 해 한 해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해요. 저는, 제멋대로 시간 제한을 매우 짧게 잡아두었어요. 예를들면 앞으로 10년 밖에 활동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25살의 저는 제가 놓여져있는 환경이나 체력적으로도 가장 활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중요한 시기라면서요. 그렇기에 라이브를 많이 할 예정이었고, 30, 40, 50, 60이 되어도 건강하게 노래를 부르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제 몇십 년 후의 일은 모르니까, 시간 제한을 짧게 설정해 두는 편이 매일 온 힘을 다해 노력할 수있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5년 후에 아티스트 인생이 끝난다면, 좋은 음악을 온 힘을 다해 만들고 싶다, 와 같은 마음가짐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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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나면 뒤에 내용도 더 올리겠습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