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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에 묘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한 건, 그대에게 수선화 꽃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나서부터였습니다. 수선화는 자존심이 강하면서도 외로움을 많이 타서 남들보다 앞서고 싶은 마음에, 남들보다 뒤처지기 싫은 마음에, 모두가 잠든 한겨울 홀로 아름다운 꽃을 피워낸다는 이야기를요. 그날은 유독 추웠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대의 이야기를 반쯤 가벼운 농담으로 여기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시린 두 손을 코트 주머니에 찔러 넣고 칼바람에 고개를 푹 떨군 체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기던 저는 신비로운 광경과 마주했습니다. 지난날 내린 폭설로 길 한쪽 소복이 쌓인 눈 속에 푸릇한 잎사귀가 보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호기심에 홀린 듯 가까이 다가가자, 그제야 그 식물은 눈 속에 숨긴 자신의 얼굴을 환히 드러냈습니다. 겨울 공기를 한 모금 머금은 듯 고요하고 단정한 자태에 맑은 밤하늘을 보고 자란 듯 별 모양으로 부드럽게 펴진 노란 꽃잎. 이야기로만 들었을 뿐 한 번도 수선화를 본 적은 없지만, 그 꽃이 수선화라는 것을 저는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얼어붙은 대지 위에 고개를 내민 가련한 생명, 그건 단순히 꽃 한 송이가 아닌 겨울의 끝을 알리는 마침표이자 새로운 봄의 시작을 전하는 개척자였습니다. 몽환적인 경험이 있은 뒤로 그대를 만나러 그 길을 지날 때마다 수선화는 한 송이, 두 송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순백의 도화지를 노란 점으로 채워갈수록 살을 에던 날씨는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겨울 동안 내린 눈은 온데간데없어지고 그 자리를 군집의 수선화들이 대체했을 무렵, 생명이 싹트는 계절 봄이 찾아왔습니다. 내일 그대를 만나러 가는 길에는 드넓은 화원에 털썩 몸을 맡겨도 보고, 코끝에 감도는 짙은 꿀 향기를 크게 들이마셔도 보며, 이 봄을 만끽해야겠습니다. 그리고 이만 자리를 털고 일어날 때에는 그대를 위해 싱그런 수선화 몇 송이 꺾어다 꽃다발을 만들어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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