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dec9e2cf5d518986abce89545837d6f769d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생에 대한 미야자키 하야오의 태도는 조금씩 달라져 왔습니다.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 만화판의 마지막 대사였던 生きねば(이키네바), '살아야 한다'는

<모노노케 히메>에서 生きろ(이키로), '살아라'로 변주되었고

<바람이 분다>에 이르러 그의 생은 다시 生きねば(이키네바)로 되돌아옵니다.

종전의 완결형 카피들과 달리 그가 이번 작품에서 우리에게 건네는 생은 의문형입니다.

どう生きるか(도우이키루카),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입니다.



7def9d77abc236a14e81d2b628f1756f7cb837a101


7def9d74abc236a14e81d2b628f1766f2acf12d273


7def9d75abc236a14e81d2b628f175648418385cbe


7def9d72abc236a14e81d2b628f1756f15a5a9056b


지브리의 영화는 주인공의 이주로부터 시작되는 작품이 많습니다.

익숙함을 떠나 낯선 땅으로 온 인물의 마음에는 불안과 고독이 싹트고, 극은 이 점을 파고들며 출발합니다.

<그대들> 또한 주인공의 이주로부터 시작되는 작품입니다.

전쟁 중 어머니를 잃은 마히토는 실업가인 아버지와 함께 도쿄로 이주하게 되고

새로 이사한 저택에서 이상한 왜가리를 만나 불가사의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모험을 하고, 정서적으로 성장하는 드라마가 이번 작품의 골자입니다.



7dee9d77abd828a14e81d2b628f1756f1b1b6297


7dee9d74abc236a14e81d2b628f1756bdb34c9f068


<그대들>은 미야자키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입니다.

전쟁통에 어머니를 잃은 일, 도쿄로 이주했던 일, 아버지가 부유한 실업가였던 것 모두 그의 실제 경험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미야자키 감독은 명백히 주인공 마히토에게 자신을 투영하고 있지만

슬픔이 있고 어둠이 있고, 소년답지 않게 올곧으며 신념도 있는 마히토의 모습은

과거의 미야자키 감독 자신의 모습이 아닌, 어쩌면 그가 되고자 했던 소년의 형태가 아닐까 싶습니다.

작중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 책을 읽고 눈물을 흘리는 마히토의 모습을 통해, 그러한 의도를 엿볼 수 있습니다.



7de99d77abc236a14e81d2b628f1776fee334be065


7de99d74abc236a14e81d2b628f1766a1d50cb36f7


7de99d75abd828a14e81d2b628f1756e07fe4f17


<그대들>은 직선적인 스토리라인을 가지고 있지만, 그 표현 방법은 굉장히 비선형적입니다.

작품은 꿈과 현실과 환상을 지속적으로 교차하며 우리를 현혹하고

일상적으로 장면을 엇갈리게 해, 의도적으로 관객들이 드라마를 따라가기 어렵게 만듭니다.

비주얼과 묘사, 비현실적인 세계에서 모험을 해나가는 이야기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떠올리게끔 하지만

작품 속에 옅게 깔린 스산함으로 인해 기괴하고 꺼림칙한, 왠지 모를 섬뜩함까지 느껴지기도 합니다.



7de89d77abd828a14e81d2b628f176644184f447


7de89d74abd531a04e81d2b628f1756eb1c8d345


7de89d75abc236a14e81d2b628f1776d7b4a32cf08


7de89d72abc236a14e81d2b628f1756484828d1876


아방가르드 장르는 특유의 난해한 문법으로 인해 극장 애니메이션에서 배척되어 왔습니다.

73년작 <슬픔의 벨라돈나>, 85년작 <은하철도의 밤>과 <천사의 알>

셀 애니 이후로 확장하면 04년작 <마인드 게임>과 06년작 <파프리카> 등에서 이러한 연출이 시도된 적이 있습니다.

위 작품들은 모두 평단에선 호평을 받았지만 상업적인 성공은 이루지 못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아방가르드는 감독의 색을 깊게 입히면서도, 자신이 원하는 걸 맘껏 표현하는 데 유리하지만

관객들에겐 불친절함을 안겨주며 메시지를 전달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미야자키 감독은 자신의 마지막 작품에 이러한 연출을 담았습니다.

<그대들>의 장면은 의식의 흐름에 따라 변하고 드라마의 템포는 일정하지 않습니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화면이 인물이 실제로 겪고 있는 일인지, 그가 꾸는 꿈인지도 알 수 없습니다.

정합성을 갖춘 극을 보듯이 감상하지 않고, 흘러가는 예술 작품을 보듯 감상하는 게 이 작품의 올바른 관람법입니다.



7deb9d77abc236a14e81d2b628f1756e9c39898740


7deb9d74abd828a14e81d2b628f1756878c2f974


7deb9d75abc236a14e81d2b628f1756ec76f924a57


미야자키 감독의 이번 작품이 유독 논란이 된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그대들>은 상업 영화를 표방하지만 예술 영화의 화법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작품 속에는 과거 미야자키 작품의 수많은 오마주를 비롯해, 까다로운 은유와 복잡한 상징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습니다.

이야기는 단순하지만 그 속에 포개진 것들은 결코 단순하지 않아, 미야자키 감독이 강렬하게 주장하고 있는 생의 말은 관객에게 와닿지 않습니다.

생명에 관한 이야기가 아닌가, 소년이 상실을 겪고 어른이 되는 이야기가 아닌가, 물음표를 띄우며 다만 추측해 볼 뿐입니다.



7dea9d77abd828a14e81d2b628f1756da0e66053


7dea9d74abd828a14e81d2b628f17c6aa791c2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이렇게 살아라'라고 훈계하는 작품이 아닙니다.

'이렇게 살면 된다'는 정답을 제시해 주는 작품 또한 아닙니다.

<키키>나 <토토로>, <센과 치히로>나 <하울>을 기대하고 극장에 가면 실망할 수 있습니다.

오락성은 뛰어나지 않고, 기존작들과 같은 동화적인 낭만이 깃들어 있지도 않습니다.

몰입할 수 있는 드라마도 부족하기에, 어쩌면 그의 이야기는 지루하게까지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대들>은 관객을 위해 만든 영화가 아닌, 미야자키 당신을 위해 만든 영화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