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녀 동물원계, 백합 일상물. 우리는 들뢰즈가 말한 차이와 반복의 미학을 재패니메이션 식으로 겪고 있다. '유루유리', '러브라보', 'GJ부', '킨이로' 등. 급박한 서사적 긴장 대신 잔잔한 일상 반복에 주력한다. 분명 최근 이런 애니메이션이 유행인 건 사실인데, 거기에서 지금 우리는 무엇을 보고 있는 걸까. 라캉식으로 말하자면, 우리가 보고 있는 미소녀 동물원계는 우리에게서 무엇을 보고 있는가.
그 답을 찾기 위해서 먼저 미소녀 동물원계 이전 대세 장르인 진성 하렘물을 짚어 봐야한다. 진성 하렘물은 근래 그 지분을 미소녀 동물원계에게 뺏겼으나, 여전히 하렘적 요소는 다양한 장르와 결합해 매력을 과시한다. '오니아이', '투러브루' 같은 정통 하렘 뽕빨의 수는 줄었지만, 요즘의 '내청춘', '나친적' 등에서 하렘적 특징을 찾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다는 말이다. 하렘물과 미소녀동물원계 사이에는 외적인 공통점이 많다. 여자 캐릭터가 많으며, 남자 주인공의 이야기보다는 여자 캐릭터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짜인 것이 아닌 느슨한 서사가 주를 이룬다. 그러므로 정통 하렘물의 이해가 선행된다면 우리는 미소녀 동물원계에 관해서도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하렘물에서 무엇을 보고 있었는지 말해보자. 요점을 놓치는 가장 무딘 생각은, 우리가 여자 캐릭터를 욕망하며 애니를 본다는 관점이다. 여자 캐릭터를 직접 욕망하는 오타쿠의 입장에서, 남자 주인공은 명백한 잉여다. 우리뿐 아니라 하렘물의 남자 주인공 또한 여자 캐릭터를 욕망하지 않는다. 그들이 그녀들을 직접 욕망하는 것처럼 보이는 하렘물 - '학생회의 일존' 과 같은 - 에서조차 개그 요소에 불과할 뿐, 주 내러티브에선 여전히 그들은 욕망하지 않는 존재로 남는다.
즉 우리는 여자 캐릭터를 욕망하지 않는다. 우리가 욕망하는 것은 여자 캐릭터에게 욕망 받는 남자 주인공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히로인에게 사랑 받는, 히어로를 우리와 동일시한다. 왜 하렘물의 남자 주인공은 실제로 그렇지 않음에도, 자신의 평범함을 그토록 강하게 주장하는가. 남자 주인공이 특정한, 특별한 성격을 갖는 순간 우리와 남자 주인공의 동일시는 깨지기 때문이다.
또한 하렘물에서 목욕탕 엿보기는 왜 항상 실패해야만 하는가. 여자 캐릭터가 우리를 보지 못하고 우리만 여자 캐릭터를 일방적으로 보는 것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여자 캐릭터가 우리의 욕망을, 엿보기를 알아차릴 때만 욕망은 비로소 완선된다. 다시 말해, 우리가 여자 캐릭터를 몰래 엿보는 것이 실패할 때 진정으로 우리의 욕망은 충족된다. 하렘물의 남자 '주인공'은 우리의 동일시 대상이고, 그 주인공 '남자'는 여자 캐릭터에게 욕망 받는 것에 의해 주인공이 된다.
그렇다면 미소녀 동물원계에서 우리는 무엇을 동일시하며, 미소녀는 무엇을 욕망하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는 미소녀 동물원계의 무엇과도 동일시 하지 않으며, 미소녀는 아무것도 욕망하지 않는다. 제목의 질문을 다시 던지고 싶다. 미소녀 동물원계의 원장은 누구인가?
미소녀 동물원계를 좀 더 자세히 말해보자. 미소녀 동물원계의 핵심 특징은 침해 받지 않는, 보장된 일상의 평안에 있다. '주문 토끼'에서 아무도 카페의 재정 상태를 걱정하지 않으며 'GJ부'에서 아무도 부원 간의 갈등에 대해 고밍하지 않는다. '러브 라이브', '아이마스'에서도 비참한 인기 하락은 없다. 단적으로 말해 그녀들의 고난은 해결이 전제되어 있다. 서사적 긴장을 위해 쓰이는 도구로써의 시련은 있으나 오타쿠는, 보는 우리는 그것이 해결이 동반되며, 특정 선을 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칸코레', '걸스판져'에 이르면 정도는 더 심해진다. 그녀들은 죽음이 제거된 전쟁, 안전이 보장된 위험, 갈등이 사라진 다툼을 겪는 데에 이른다. 해결은 예정되어 있고, 고통은 정도가 있고, 위험 요소는 죄다 빠진 곳, 그곳이 미소녀 동물원이다.
우리는 이 동물원 '바깥'에 있다. 우리는 그녀들이 안전하다는 걸 알고 있다. 즉, 앞서 말한 그녀들의 안전을 보장하는 역할을 맡은 것이 바로 우리다. 우리는 미소녀들과, 이해할 수 없고 비참한 '바깥'을 구분 짓는 울타리를 만들고 지킨다. 우리가 미소녀 동물원장이다.
그녀들은 자신의 인생에 위협이 배제된 것을 모른다. 모든 시련에 그녀들은 진지하게 대처하고 이겨내지만 우리는 고전 창작물과는 다르게, 거기서는 어떠한 서스펜스도 카타르시스도 느낄 수 없다. '아이마스'에서 치하야가 트라우마를 이겨내는 과정은 우리에게 별 감동을 주지 못한다. '아이마스' 애니의 장르 상, 우리가 트라우마의 존재를 안 순간 트라우마의 극복은 우리에 의해 보장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시련을 딛고 일어선 그녀가 보장된 안정 속에서 부르는 노래, 바로 그 자체다. 그녀가 시련을 이겨냈다는 증거, 우리가 안전 보장의 역할을 잘 해냈다는 증거로서의 노래가 우리에게 충족감과 만족감을 준다.
이제 우리는 철저히 미소녀 동물원 외부에서 안전을 보장한다. 더 이상 애니 내부에 우리의 동일시 대상은 없고, 미소녀는 우리-남자를 욕망하지 않는다. 우리는 '바깥 세계' (심각하고 진정한 위험과 비극이 있는 곳)에서 안전하게 보호된 동물을 보며 만족해하는 관람객을 보고 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애니메이션의 바깥에서, 오타쿠의 존재로 안전이 보장된 미소녀를 보는 오타쿠를 보고 있다. 라캉식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무정형의 끔찍한 실재계로부터 미소녀를 지키는, 상징적 아버지의 역할을 하고 있다.
'칸코레'를 말하기 위해 많은 것을 말했다. 앞서 말했듯 우리는 '칸코레'에서 '칸무스'들의 안전을 보장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제독'은 우리의 '파편'이다. '제독'은 하렘물 남자 주인공처럼 우리의 동일시 대상이 아니다. 메가데레 대상으로 '남자'가 될 수 있더라도 그는 우리가 욕망하는 '주인공'이 아니다. '제독'은 '칸무스'들의 일상을 보장하는 우리 능력의 자그마한 현존이다. 유사한 역할을 '아이마스'의 '프로듀서'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아이마스'와 '칸코레'에서 볼 수 있는 우리의 파편 또는 잔재는, 서사에 적당한 긴장감을 부여한다. 완벽한 응시자로서의 우리와, 인간으로 격하된 '제독', '프로듀서' 사이에 메꿀 수 없는 심연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만 '칸코레'에서 '제독'이 인간화된 전능으로 너무나 무의미한 것은 아쉽다. 우리의 분석에 따라 안전과 승리를 보장하는 역할은 충실히 수행하나, 그 역할뿐인 군더더기다. '아이마스'의 '프로듀서'처럼 나름대로의 능동성과 인격을 가지고 행동하지 않을 거라면 굳이 '제독'이 존재할 필요가 있는가. 외적으로 유사한 성공작 '걸스판쳐'와 '칸코레'를 가른 것은 많지만, 결정적 지점은 바로 이 곳이다. 간단하게 말해 우리가 '칸코레'를 보고 있는 한, '제독'은 완전히 불필요하다.
글의 끝은 처음으로 되돌아간다. 미소녀 동물원의 원장은 누구인가. 그것은 우리다. 우리는 미소녀를 보호하고, 안전을 지켜주는 우리 자신을 보고 있다. 그리고 미소녀는 보이지 않는 우리의 보장, 권능을 응시한다. 한 때 동일시되던 '주인공'과 여자 캐릭터가 욕망하던 '남자'는 아주 작은 수준으로 축소되고, 대신 그 자리엔 우리 '파편'만 남아있다. 앞으로 미소녀 동물원계와 우리 사이의 간격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는, 흥미로운 일이다.
밖이라 개추 해놓고 나중에 읽을게요
이제 딱히 누구에게 감정이입하니 누굴 대변하니 이런건 없는듯
으그르 라뷰는 어째 갈 수록 느냐...
와 씨발 이걸 니네 읽었어?
?? 엿보기가 실패하는 이유는 그 짓이 부도덕해서지. 주체거 쥔공이라도 부정한 일에는 적절한 응징에 뒤따라야 감상자들이 안정감을 느낌
ㄴ 띠용~ 서브컬쳐에서 부도덕? 나쁜 사람이 벌 받는 이야기는 이미 아리스토텔레스부터 븅신 같다고 까인 구도인데. 씹덕이야 말로 도덕심과 가장 멀리 떨어진 존재 아닌가.
개쓸데없는글
으그르/?? 아리스짱이 어떻게 깠음? 권선징악이(아리스짱 샹각으론) 역겹다고? 아니면 권성징악은 일반 감상자들의 기분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 한다고?
선인이 성공하는 이야기, 악인이 실패하는 이야기는 관객에게 어떠한 감정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선인도, 악인도 아닌 사람이 한순간의 실수, 하마르티아로 실패하는 이야기만이 좋은 비극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시대에는 비극만이 제대로 된 걸로 인정 받았으니, 현대에는 그의 비극론을 확장해도 괜찮을 듯.
하렘물의 엿보기가 대부분 남자 주인공의 의도가 아닌 점, 항상 어쩔 수 없이 일어난다는 점, 제대로 처벌 받지도 않는 점, 오히려 여자 캐릭터들이 그것을 기대하는 듯한 연출이 자주 나온다는 점 등을 근거로 '적절한 응징'도 아니고 '안정감' 또한 아니지 않나 라는 생각을 ㅐㅎ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