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펼쳐진 부채가 있다. 부채의 끝 넓은 테두리 쪽을, 동국대 행정학과 학생 낙화가 걸어간다. 가을이다. 겨드랑이에 낀 대학 신문을 꺼내 들여다본다. 약간 자랑스러운 듯이. 여자를 깔보지는 않아도, 알 수 없는 동물이라고 여기고 있다. 

책을 모으고, 입시 설명회를 구경하러 다닌다. 

재수는 경멸하고 있다. 그 경멸이 실은 강한 관심과 아버지 일 때문에 그런 모양으로 나타난 것인 줄은 모르고 있다. 다음에, 부채의 안쪽 좀더 좁은 너비에, 노량진이 보이는 언덕이 있다. 거기서 보면 갈매기가 날고 있다. 노력에게 말하고 있다. 노력 날 믿어 줘. 17시간으로 날 믿어 줘. 고기 썩는 냄새가 역한 방안에서 고개가 흔들리다가 깜빡 잠든 사이에, 서울대의 꿈을 꾸고 있는 그 자신이 있다. 죄수생 정규반 교실의 창에서 불타는 저녁놀의 힘을 부러운 듯이 바라보고 있는 그도 있다. 구겨진 바바리 코드 속에 시래기처럼 바랜 모평 성적표를 안고 엄마가 기다리는 하숙으로 돌아가고 있는 9월의 어느 저녁이 있다. 도어에 뒤통수를 부딪치면서 악마도 되지 못한 자기를 언제까지나 웃고 있는 그가 있다. 그의 삶의 터는 부채꼴, 넓은 데서 점점 안으로 오므라들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영어 듣기평가가 울려퍼지는 시험장이 그 부채꼴 위에 있다. 사람이 안고 뒹구는 재수의 꿈이 다르지 않으니, 어디선가 그런 소리도 들렸다. 그는 지금, 부채의 사북자리에 서 있다. 삶의 광장은 좁아지다못해 끝내 그의 두 발바닥이 차지하는 넓이가 되고 말았다. 자 이제는? 모르는 대학, 아무도 자기를 알 리 없는 먼 대학으로 가서, 전혀 새 사람이 되기 위해 이 배를 탔다. 사람은,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 성격까지도 마음대로 골라잡을 수도 있다고 믿는다. 성격을 골라잡다니! 모든 일이 잘 될 터이었다. 다만 한 가지만 없었다면, 그는 두 마리 새들을 방금까지 알아보지 못한 것이었다. 무덤 속에서 몸을 푼 삼수의 용기를, 그리고 마침내 그를 찾아 내고야만 그들의 열정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