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키 신사쿠 - 주요 참가작으로 모노노케 히메 (원화), 마법소녀 마도카 마기카 반역의 이야기 (콘티) 가 있다.

1990년 스튜디오 지브리 2기 연수생으로 입사. 타카하타 작품은 추억이 방울방울, 폼포코에서 동화로, 카구야 공주 이야기에서는 콘티 보좌 중 한명으로 참가했다.


안도 마사시 - 애니메이터, 애니 감독. 주요 참가작으로 모노노케 히메(작화감독), 너의 이름은(작화감독), 사슴의 왕(감독) 등. 스튜디오 지브리 2기 연수생으로 입사. 

타카하타 작품은 추억이 방울방울(동화), 폼포코(동화), 이웃집 야마다군(원화), 카구야 공주 이야기(작화)에 참가했다.


카노 세이지 - 영상연구가. 도쿄조형대학 특임교수. 타카하타 이사오전 기획 어드바이저, 도록 담당. 오오츠카 야스오전 기획, 주최.





- 저는 '알프스 소녀 하이디', '엄마 찾아 삼만리', '빨강머리 앤'을 본방송으로 본 세대입니다만, 그때는 어려서 그저 매주 재미있게 본 느낌이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고등학생 때 재방송으로 본 '빨강머리 앤'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하이디'나 '엄마 찾아 삼만리'도 재방송을 보면서 좋아하게 된 것 같아요. '루팡 3세' 1기는 처음부터 좋아했지만, 그게 미야자키 하야오 씨 작품인지 타카하타 이사오 씨 작품인지 잘 모르겠더군요. '판다코판다', '말괄량이 치에', '첼로 켜는 고슈'도 정말 좋아합니다.

하지만 그 이후의 작품에 대해서는 솔직히 말해서, 타카하타 씨는 제 안에서 형태가 상당히 희미해진 사람입니다. '카구야 공주 이야기'는 사실 재미있게 봤지만, '이웃집 야마다군'에 이르러서는 아직 보지 않았습니다…….


사사키: 미야자키 씨는 알기 쉽죠. '미야자키 아니메'라는 말이 나올 정도니까요. 하지만 타카하타 씨의 작품이 어떤 것이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뭔가 막연하다는 느낌이 아마 저보다 어린 세대에게는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반면 조금 윗세대에게는 '타카하타 쇼크' 같은 것도 상당했을 것이라고 상상됩니다. 

저는 1990년에 지브리에 들어갔는데, 그때도 상당히 대략적으로만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일을 시작하고 나니, 미야자키 씨의 작품과는 전혀 다른 거라는 점을 인식해야만 하는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뭐, 생각하지 않아도 일은 할 수 있지만, 생각하라는 압박도 있었고 (웃음).


안도: 미야자키 씨는 그런 의미에서 굉장히 알기 쉬운 아이디어맨이자 엔터테이너죠.


카노: 그렇네요.


안도: 타카하타 씨는 역시 '연출가'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미야자키 씨를 연출가라고 부르는 건 좀 다른 느낌이 들어요.


사사키: 어렵네요. 무슨 말인지는 잘 알겠지만요 (웃음).


안도: 게다가 미야자키 씨는 아이디어가 독창적이어서 '작가'라 불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타카하타 씨는 원작을 어떻게 분석하는가 하는 그 분석력, 분해력 같은 것의 깊이, 날카로움 같은 부분을 생각하면 '연출가'라는 표현이 더 어울립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사실 그것만으로는 다 담을 수 없는 느낌도 있어서…….


사사키: 미야자키 씨는 자기 자신을 '연출가'라고 말하지 않죠.


안도: 절대 말 안 하죠.


사사키: 지금은 '화공(画工)'이라고도 하지만, 일단 스스로를 '애니메이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다만, 세간에서 말하는 애니메이터와 미야자키 씨가 생각하는 애니메이터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어서, 미야자키 씨의 그 정의에 부합하는 사람은 미야자키 씨밖에 없습니다.


안도+카노: (웃음)


사사키: 옛날에는 더 있었을지도 모르지만요.


디즈니적인 애니메이터란 말인가요?


사사키: 비슷하다면 비슷하지만, 일단 간단히 말하자면 세계관 전체를 통째로 만들어 버릴 수 있는 사람이랄까요.


카노: 그렇군요.


사사키: 미야자키 씨가 생각하는 애니메이터에게는 아마 그런 감각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할 수 있는 사람은 미야자키 씨 정도밖에 없지 않을까 하고 저는 생각하게 됩니다.


카노: 역사상 매우 드문 사람이죠 (웃음).


사사키: 지금 일반적으로 불리는 애니메이터는 좀 더 한정되어 있어서, 원화가이거나 동화가이거나 하는 것이죠. 현장에서는 레이아우터를 애니메이터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안도: 기술로서의 움직임, 물리 현상 재현에 능숙한 사람을 우수한 애니메이터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아마 미야자키 씨가 요구하는건 그런 게 아닐 겁니다.


카노: 맞아요.


안도: 그리고 미야자키 씨가 자신을 '애니메이터'라고 생각하는걸 고집하는 이유 중 하나는, 타카하타 씨라는 '연출가'가 있었다는 사실이 굉장히 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미야자키 씨가 타카하타 씨와 팀을 이루어 표현해 온 것들을, 애니메이터들은 해야 한다는 의식이 미야자키 씨에게는 강하게 있는 것 같습니다.


- 디즈니나 옛날 애니메이션은 연출가보다도 애니메이터가 더 높은 위치에 있었다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이 씬을 만든건 누구누구 라는 식으로 알려져 있었죠.


안도: 모리 야스지 씨나 다이쿠하라 아키라 씨가 작업했던 여명기 작품에도 당연히 연출가는 있었지만, 현장을 굴리는 것 등에 관해서는 애니메이터들이 어느 정도 관리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가 최근에 타카하타 씨가 만드신 '태양의 왕자 호루스의 대모험'(1968) 콘티 북을 구했는데, 거기에 오오츠카 야스오 씨가 후기를 쓰셨고…….


카노: 긴 문장을 쓰셨죠.


안도: " '호루스'는 그때까지와는 전혀 다른 제작 방식, 연출가 주도의 그림 콘티 제작 같은게 그 작품에서 처음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혁신적이었다"고 쓰여 있습니다. 

'호루스'의 마지막 액션 씬도, 오오츠카 씨 등이 그 부분은 컷백으로, 짧은 컷을 연속으로 보여주는 편이 엔터테인먼트로서 화려한 맛이 있어 좋지 않겠냐고 제안했더니, "여기서는 이미 시점이 민중에게 가 있기 때문에, 한 명의 히어로 같은 것을 만들어내는 시점이 아니라 다른 시점이 필요하다"고 타카하타 씨에게 논리정연한 설명을 듣고 설득당했다고 합니다.

그 점이 '호루스'가 그때까지 만들어진 작품들과 확연히 다른 점이었습니다.

즉, '호루스'는 그때까지의 애니메이터 주도가 아니라, 연출가를 중심으로 애니메이터와 함께 만들어 나가는 구조를 처음으로 구축한 작품이었다고 합니다.


- 무시 프로덕션은 쭉 연출가 주도가 아니었나요? 저는 그렇게 생각했는데요.


카노: 적어도 초기에는 제작 규모가 다르기 때문에 단순 비교는 어렵지 않을까요. 초기 토에이 동화는 '쿠시당고 방식(串団子式)'이라고 해서, 각 에피소드를 각 치프 원화가가 팀을 이끌고 검토한 뒤, 그것들을 모아 염주처럼 이어 붙인 단편 모음 같은 형태였고, 연출은 그 사이사이를 정리하는 역할이었습니다.


- 디즈니 방식과 비슷하네요.


카노: 디즈니보다 예산이나 인원도 소규모고, 섹션 간의 경계를 넘나드는 일도 적었다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그런 전통이 있었던 거죠.

'완파쿠 왕자의 오로치 퇴치'도 오오츠카 씨와 츠키오카 사다오 씨가 원화를 담당한 오로치 퇴치 장면은 당초 예정보다 훨씬 짧았지만, 재미있는 아이디어라는 이유로 연출가인 세리카와 유고 씨가 점점 채택해 나갔습니다.

'호루스'는 그와는 반대로, 그룬왈드와의 마지막 결투는 더 길어서, 어두운 동굴에서 호루스와 그룬왈드가 검을 맞대는 씬 같은게 있었던 것 같습니다. 

미야자키 씨도 얼음 매머드와 바위 거인과의 결투를 좀 더 진하게 보여주고 싶어 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둘 다 타카하타 씨가 남기고 싶어 했던 핵심은 아니었습니다.


안도: '호루스'에 관해서 이후 타카하타 씨가 "만약 시간 분량을 늘릴 수 있다면 어떻게 하겠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그건 클라이맥스가 아니란 식으로 말하셨죠.




애니메이터의 일


사사키: 무시 프로덕션이 연출 주도였다고 하는 건, 좀 미묘한 부분이 있어요. 

확실히 무시 프로덕션은 토에이 동화처럼 애니메이터의 아이디어로 이야기가 굴러가는 일은 별로 없었을지 모르지만, 상하 관계적으로도 그랬는지는 좀처럼 알기 힘들어요.


안도: 무시 프로덕션은 애니메이터가 그대로 연출가가 되는 경우도 많았으니까요.


사사키: 어쨌든 옛날에는 '애니메이터'라는 용어 자체가 굉장히 애매하고 상당히 포괄적인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애니메이터 사이에서도 격차랄까, 차별 의식 같은 것도 꽤 있었어요. 토에이 동화 출신이라든가.


카노: 뭐, 그건(웃음).


사사키: 무시 프로덕션의 야마모토 에이이치 씨가 '무시 프로 흥망기'라는 자전적인 책을 썼는데, 주인공 이름이 '아니메타安仁明太', 즉 '애니메이터'에요. 당신은 애니메이터가 아니잖아, 연출가잖아!


안도+카노: 아하하하하하.


사사키: 게다가 꽤 프로듀서 같은 일도 많잖아요. 

어쨌든, 줄곧 '애니메이터란 무엇인가'에 대해 누구도 제대로 정의하지 못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제가 입사했을 때도 꽤 애매해서, 개인적으로는 애니메이터가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이해하게 된 건 90년대 중반 이후가 아닐까 싶은데요.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카노: 그렇군요.


사사키: 그전까지 제게 애니메이터는 캐릭터를 그리는 듯한, 저에게는 그런 이미지가 있었는데, 그게 아니라 애니메이션 움직임의 근간적인걸 어떻게 표현하느냐가 애니메이터의 일인거죠.

근간적인게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좀 어렵지만, 애니메이터의 일은 그런거라고 이해하게 된 게 딱 그 무렵이었던 것 같습니다.


카노: 움직임의 근간이요?


사사키: 이걸 자세히 말하면 작감(작화감독)의 일과 원화의 일, 또는 원화 안에서의 제1원화와 제2원화의 일의 차이 같은 이야기가 되는데, 그런 것들을 업계 전체가 어렴풋이 이해하게 된 게 그 무렵이었어요. 그전까지는 좀 더 조잡한 레벨로 모두가 이해하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카노: 그건 지금도 말단까지는 철저하지 못한게 아닐까요.


사사키: "이해 못한 건 너뿐이야"라는 말을 들을 것 같지만 (웃음), 다들 그렇게 자세히 알지는 못한게 아닐까요.


안도: 사사키 씨는 구체적으로 어떤걸 상정하면서 지금 이야기를 하고 계신가요?















사사키: 오키우라 히로유키 씨가 'THE 팔견전'(1990~1991, 1993~1995)에 참가해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받던 시점의 이야기입니다. 오오히라 신야 씨나 타나베 오사무 씨가 작업한 '팔견전'을 하고 오키우라 씨가 완전히 변했죠.


카노: 아, 그 이야기였군요!


안도: 이건 확실히 하나의 흐름으로 되어 있죠.


사사키: 80년대적인 의식으로는, 캐릭터를 좀 더 진하게 그리거나, 더 입체적으로 그리고, 더 밀도 높게 그리는 방향성이 있었는데, "이대로 정보량만 늘리는 게 맞는가"에 대해 현장적으로도 좀 아니라는 느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카노: 과연.


사사키: 차라리 실루엣으로 생각하는 편이 애니메이션으로서 보다 본질에 가까워지는 게 아닐까 하는, 그런 의식이 다들 어딘가에 있었고, 아마 오키우라 씨 등은 '팔견전'에 참여했을 때 '이쪽에 무언가가 있다'고 느꼈던 것 같아요.


안도: '융커스 컴 히어'의 파일럿 필름(오오히라 신야가 작화감독을 맡고 원화에 하시모토 신지, 타나베 오사무, 오오하시 마나부 등이 참여)도 컸을지 모릅니다.

그 작품에는 오오히라 씨 등에게도 애니메이션을 본질적으로 재검토하려는 의식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 의식이 당시의 미야자키 씨 등에게 있었다고 생각하세요?



사사키: 미야자키 씨에게도 그런 실루엣으로 생각하는 사고방식이 있었고, 그게 어디서부터 왔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미야자키 씨의 캐릭터 움직임 방식은 때때로 입체감이나 중력 같은 것에서 살짝 자유로워지는 순간이 있어요. 

저런 건 어떤 원리일까 계속 생각했는데, 결국 미야자키 씨는 어딘가에서 감각적으로 성립시킬 수 있다는 실감을 얻었던 거겠죠.


카노: 역사적 연구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드로잉에서는 전후의 기점으로서 마사오카 켄조 씨와 오오후지 노부로 씨가 있고, 그 외에도 오이시 이쿠오 씨나 아시다 씨 등도 있습니다만…


사사키: 아, 죄송합니다. 이젠 모르겠네요 (웃음).


카노: 마사오카 켄조 씨와는 다른 흐름이 있어요. 다이쿠하라 아키라 씨는 아시다 이와오 씨를 통해 오이시 이쿠오 씨의 흐름을 이어받은 사람으로, 원래 니치도 영화(日動映画 토에이의 전신) 출신이 아닙니다. 

마사오카 씨의 직계라고 불리는 모리 야스지 씨도 하나하나 가르침을 받은건 아니에요. 모리 씨가 마사오카 씨와 직접 함께 일한 것은 '토라쨩과 신부'(1948) 한 작품뿐이었을 겁니다.













사사키: 과연. 그렇군요.


카노 : 전후 일본 애니메이션은 줄곧 어깨너머로 배우는 가내수공업이었습니다. 

등을 보며 어렴풋이 배우는 식으로, 논리화, 체계화되어 있지 않았죠. 

이건 토에이 동화 장편 영화 제1작 '백사전'(1958) 이후에도 쭉 그랬는데, '안쥬와 즈시오마루'(1961) 정도까지는 공간 설계에 대한 의식이 애매했습니다. 

'백사전'에서는 다이쿠하라 씨가 배경도 그렸습니다. 배경 미술가도 없었죠. 

토에이 동화 이전에는 애니메이터가 배경, 채색, 촬영도 겸하는 현장이 당연했다고 들었습니다.


안도: 그렇군요.








카노: '백사전'에서는 레이아웃(캐릭터, 배경 배치, 카메라 워크, 움직임 등을 정하는 화면 구성 설계도)도 제대로 없이 배경을 바로 그려버리는 일도 있었다고 하며, 다이쿠하라 씨는 재주가 좋아서 여러 가지를 했는데, 화려하고 엉망인 디자인이나 작품에 전혀 맞지 않는 것들도 아무렇지 않게 점점 집어넣으며 '재미있으면 그만'이라는 식의 면이 있었습니다. 

움직임도 엉망진창이었지만, 그만큼 모리 씨보다 훨씬 많은 양을 그렸죠. 

모리 씨는 정확하게 그리며 입체적으로 움직였지만, 두 사람 모두 공간은 주로 옆으로 이동하는, 평면적인 인상이었습니다.


안도: 흠흠.


카노: 하지만 마사오카 켄조 씨에게는 공간에 대한 의식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타카하타 씨는 마사오카 씨의 카메라 워크 실험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거미와 튤립'(1943)의 공간 설계는 매우 공들여져 있습니다. 모리 씨의 '새끼 고양이의 낙서'(1957)에는 '거미와 튤립' 같은 수직 공간과 깊이감이 없습니다.


사사키: 모리 씨의 작품은 마사오카 씨가 했던 것 같은 공간 표현은 아니었다는 말씀이시군요.


카노: 디즈니도 옆으로 이동하는 평면적인 무대가 중심이었습니다. 

저는 마사오카 씨 유래되고, 모리 씨를 거친 흐름과, 아시다 이와오 씨를 거친 다이쿠하라 씨의 경향 같은 것들이 오오츠카 씨 안에서 하나로 통합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오오츠카 씨는 여기에 자신만의 디즈니 연구를 더해서, 이론으로서 후배에게 전하려고 했습니다. 

작화 기술을 연구하고 논리적으로 체계화하려 한 애니메이터는 토에이 동화에서 오오츠카 씨가 유일했습니다.


사사키: 그렇군요.


카노: 거기에 타카하타 씨가 합류해서 연일 의론이 벌어졌습니다. 타카하타 씨에 의하면, 그런 체계화의 근거, 애니메이션의 논리, 애니메이터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공간을 어떻게 설계해야 하는지 같은 것들은 오오츠카 씨에게서 배웠다고 합니다. 

오오츠카 씨는 디즈니 스타일의 스트레치 & 스쿼시, 팔로우 스루, 실루엣을 보여주는 방식 등, 프레스턴 블레어의 교본을 전부 스스로 번역해서 머릿속에 넣고 있었습니다.


안도: 대단하네요!


카노: 오오츠카 씨는 그걸 '서유기'(1960)에서 전부 시험했습니다. 

손오공과 우마왕의 결투에서, 그때까지 없던 수직적 공간을 도입해, 바로 위에서 내려다보는 부감으로 아래에서 위로, 위에서 아래로의 상승을 보여줬어요. 

오오츠카 씨는 '백사전' 이후에 "왜 정면과 바로 옆면인 화각밖에 안그리나요?"라고 야부시타 타이지('백사전' 각본/연출 감독) 씨나 다이쿠하라 씨에게 물었더니, 비스듬한 앵글이나 위에서 내려다보는 부감은 그리기 어렵고 아이들이 이해하기 어려워서 넣지 않는다는 대답을 들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오오츠카 씨는 납득할 수 없었죠. 그래서 '서유기'에서 스스로 그 틀을 깨버린 겁니다. '서유기'에서는 크레딧에 오오츠카 씨의 이름이 다이쿠하라 씨보다 앞에 놓여져 있습니다.


사사키: 그런가요?


카노: 모리 씨, 후루사와 히데오 씨, 오오츠카 씨 인 순서에, 다이쿠하라 씨는 그 뒤입니다. 

오오츠카 씨가 초기 토에이 동화에서 행한 실험은 파도나 이펙트 작화 등을 포함해 더 높이 평가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장화 신은 고양이'(1969)에서 미야자키 씨가 마왕의 성에서 선명한 수직 무대를 도입하며 두각을 나타낸 근거는, 오오츠카 씨가 그 이전에 개척한 토대 위에서 성립된 것이 아닐까 하고 저는 생각합니다.


사사키: 흠흠.


카노: '완파쿠 왕자'의 극단적인 부감이나 아오리(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는 구도)를 츠키오카 씨가 그린 것도, 원래 '서유기'에서 오오츠카 씨가 했던걸 재밌어 해서, 다음 세대가 그것을 더 첨예하게 발전시킨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안도: 그렇군요.


카노: 오오츠카 씨의 공적 위에서, 자연스럽게 공간을 설계하는 레이아웃이라는 공정이 중요하다는 이야기가 됐어요. 

그리고 애니메이터들이 그때까지 그저 막연히 멋진 그림이라고 생각하며 그리던 것들이, '호루스'에서 타카하타 씨가 미야자키 씨와 팀을 이루면서 논리적으로 체계화되었습니다. 

타카하타 씨는 '호루스'는 모두의 아이디어를 담아내기에도 벅차서 자신의 작품이라고 말하기는 외람되다고 했지만, 다른 스태프들이 모두 타카하타 씨의 작품이라고 생각하는건 그런 구성상의 시공간적 연속성이 크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사키: 그렇군요.


카노: 그건 '타카하타 이사오전'을 준비하면서, '호루스'의 후카자와 카즈오 씨와 타카하타 씨가 5고까지 다듬었던 시나리오의 수정 과정을 전부 읽어보고 확실히 느꼈습니다. 

처음에는 완성된 형태와 전혀 달랐고, 바위 거인도 나오지 않습니다.


안도: 그랬군요 (웃음).


카노: 타카하타 씨는 아이누 신화를 다루고 싶어 했기 때문에, 구조적으로는 인간 마을로 내려온 신의 아이와 악마의 이야기였습니다. 미야자키 씨가 그린 바위 거인이 등장하는 것은 한참 뒤였고, 힐다를 만나기 전이었습니다.


안도: 여행 도중에요?


카노: 호루스는 늑대를 쫓아 마을을 떠나, 강 건너편 힐다의 마을에 도착합니다. 그전에 평원에서 바위 거인을 만나는 이야기였죠. 

하지만 미야자키 씨가 "자연의 상징과 만나는 것은 맨 처음이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해서, 그 의견이 받아들여진 것 같습니다.


사사키: 그 이야기의 계기는 바위 거인 다음에 있는 할아버지의 죽음이죠.


카노: 처음에는 할아버지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웃음). 아기인 호루스가 갑자기 마을에 나타나고, 촌장이 보호하죠. 하지만 호루스가 온 것이 불길한 징조라며 마을에서 쫓겨나 강에 떠내려가고, 호루스는 산의 신에게 길러집니다.


사사키: 원래 아이누 설화가 그런가요?


카노: 이것은 원안이 된 아이누 신요神謡와도, 후카자와 카즈오 씨의 인형극(春楡の上に太陽)과도 다릅니다. 

타카하타 씨가 직접 '호루스' 시나리오 초고에 쓴 내용이 그랬습니다. 신화적인 시작으로, 신의 아이이기 때문에 악마와 대결하는건 숙명인 거죠.


안도: 그렇군요!


카노: 타카하타 씨나 미야자키 씨, 오오츠카 씨 등은 토에이 동화의 흐름을 잇는다고 자주 말하지만, 오오츠카 씨는 이걸 부정했습니다.  "자신과 타카하타 씨 등은 오히려 이단이었다"고요. 

토에이 동화에는 여러 사람이 모여 있었지만, 논리적으로 기술을 통합하여 하나의 크리에이터 집단으로서 퀄리티를 유지하는 제작 스타일까지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호루스'는, 거기에 타카하타 씨가 나타난 것과 당시 토에이 동화의 노동조합 운동이 유기적으로 결합하고 첨예화되면서, 타카하타 씨 아래서 통합된 작품이었습니다.


안도: 토에이 동화의 다른 작품과 비교해서 '호루스'만 전혀 다른 느낌이 드는 게 그래서였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