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 애니 『룩백』은 이야기로서 재미있을 뿐만 아니라, 영상의 매력으로 넘쳐나 관객에게 「손으로 그린 그림의 훌륭함」을 전해주는 작품이었다.
감독 오시야마 키요타카는 뛰어난 애니메이터이며, 이 작품에서 캐릭터 디자인, 작화 감독 등도 겸임.
그뿐만 아니라 전체 컷의 절반에 달하는 원화까지 직접 그렸다.
이번 취재에서는 그의 「그림」에 주목하여, 독특한 작화 스타일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들어봤다.
- 2000년 이후의 애니메이션 작화를 되돌아봤을 때 「소박계素朴系」가 있었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씨, 코니시 켄이치 씨와 오시야마 씨가 그것을 대표하는 크리에이터로, 프리미티브한 애니메이션을 지향하는 작화를 가리킵니다.
오시야마 : 그것은 처음 듣습니다만, 왠지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는 알 것 같습니다.
- 「소박계」에는 이소 미츠오 씨도 크로스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위 아니메적인 날카로운 느낌이 아니라는 점 등에서요.
오시야마 : 그렇네요. 알기 쉬운 퍼스를 넣거나 디자인에서 아주 날카롭게 만드는 등, 그런 치장이 부족하기 때문일지도 몰라요. 그런 의미에서는 소박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 자신이 아니메적인 기호나 룰, 로직에 얽매이는걸 싫어하고, 어느 쪽이냐 하면 이상향으로부터 자신만의 방법으로 1차 창작한 느낌으로 그리고 싶어요.
이펙트를 그리더라도 실제 현상을 보고 거기서 어떻게 애니 작화로 녹여낼지 고민하는 순서로 작업하기 때문에. 그런 것을 의식하며 하는 사람은 적은 편일까요.
- 상당히 적다고 생각합니다. 중학교, 고등학교에서는 어떤 느낌으로 그림을 그리셨나요?
오시야마 : 당시는 후쿠시마에 있어서, 엔터테인먼트라고 하면 주변에 있던 만화나 지방에서도 볼 수 있었던 TV 애니메이션과 게임이었고, 그 당시 나이에 매력적인 그림에 반응했었습니다.
「주간 소년 점프」를 샀지만, 「드래곤볼」처럼 그림이 마음에 든 작품의 그림만 보는 듯한 느낌으로 읽었습니다. 그에 비하면 캐릭터가 말하고 있는 애니는 보기 편했기에 여러 애니를 평범하게 즐기며 봤지만, 그림에 관해서는 만화를 모사하는 일이 많았던 것 같네요.
- 본격적으로 그림을 배운 적은 없나요?
오시야마 : 없는 것 같네요. 고등학교 시절 미술부에 재적은 했었지만, 열성적으로 활동한 것도 아니었고, 마음대로 그리거나 귀가부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입부 초기에 처음으로 정물화나 석고 데생을 그렸을 때, 상급생 미술부원에게 칭찬받았던 기억이 있네요.
- 고등학교 시절에도 만화 모사를 했나요?
오시야마 : 고등학교 때는 지브리 작품의 필름 코믹이나 아오야마 고쇼 씨의 「명탐정 코난」 등을 보고 그렸던 기억도 있습니다만, 어느 쪽이냐 하면 캡콤의 격투 게임 모사네요.
캡콤에 재직 중인 몇몇 일러스트레이터분의 그림이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부활동을 땡땡이 치고 게임 센터에 틀어박혀 살았고, 돈도 별로 쓸 수 없어서 직접 게임을 하기보다 남의 플레이를 보고 있는 시간이 더 길었습니다. 게임 화면의 애니메이션이 기분 좋았습니다. 게임 포스터라든가, 그런 것도 자주 봤던 기억이 있네요.
-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전문학교에서 컴퓨터 그래픽을 배우고 나서 상경. 몇 군데 애니 회사에 이력서를 보내고, XEBEC에서 애니메이터로서의 걸음을 시작하셨군요. 2003년 말에 연수를 받고, 2004년 「창궁의 파프너」에서 원화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동화기간은 짧았나요?
오시야마 : 2월부터 10월까지 동화를 8개월 했습니다.
첫 달에는 100장 정도였던 것이 200장, 300장이 됐고, 후반에는 700장 정도 그릴 수 있게 돼서. 어느 정도 생활이 유지됐었죠. 원화가가 되기 위해 1,200장을 그린 적도 있었지만, 그런데도 바로 원화가가 되지 못해 의욕을 잃고 다음 달에는 300장이었습니다.
- XEBEC은 이 시기에 우수한 사람을 많이 배출했는데, 그런 토양이 있었나요?
오시야마 : 도쿄에 아는 사람이 없는 상태라 당시 주변과 비교를 할 수가 없었거든요. 다른 곳에서는 여러 대단한 작품을 만들고 있어서 「XEBEC에서 만드는 작품은 더 많이 움직이게 할 수 없는 걸까?」 정도로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XEBEC 내부에도 실력 있는 선배들은 있었고, 그림에 관해 XEBEC에서 가장 큰 영향을 받은 분이 이시하라 미츠루 씨입니다. 이시하라 씨의 책상에 흩어진 그리다 만 그림을 훔쳐보며 「아, 이런 식으로 그리는구나. 이런 느낌으로 그릴 수 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선배들이 가지고 있던 원화 카피를 본 것도 컸고, XEBEC 시절 도중에 인터넷으로 작화 MAD를 볼 수 있게 됐거든요.
사내에 컴퓨터가 한 대 있어서 그걸로 유튜브에서 이소 씨나 마츠모토 노리오 씨, 나카무라 유타카 씨, 유아사 마사아키 씨의 MAD 등을 지긋히 보고. 거기서 처음으로 움직임의 쾌감을 포함한 작화에 흥미와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그로 인해 회사를 나가서 다른 스타일의 작화를 해보고 싶다는 욕구가 솟아오르게 됐죠.
- 중견 애니메이터분 중에는 작화 MAD로 작화에 흥미를 갖게 된 분이 적지 않은데, 오시야마 씨도 작화 MAD 세대군요.
오시야마 : 아슬아슬하게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 때에 『전뇌 코일』의 스태프 모집 정보가 흘러나와서 「작화 MAD로 보던 이소 씨의 첫 감독이다. 이건 가야만 해」 같은 느낌으로. 밖에서 일하는 것에 대한 욕구가 높아졌던 때였어요.
그보다 이전에 이시하라 씨가 BONES의 「극장판 강철의 연금술사 샴발라를 정복하는 자」 일을 몰래 소개해 주셨거든요. 캐릭터 수정집이나 나카무라 씨의 작업 등, BONES의 숙련된 장인 기술이 신선하고 큰 자극이 돼서, 그 후 바로 XEBEC에서 나갈까 생각했을 정도였어요. 계기를 찾고 있을 때 『전뇌 코일』이 있었단 느낌입니다.
- XEBEC에 계셨던 것은 4년 정도인가요?
오시야마 : 그렇게 오래 있지는 않았네요. 2년 정도가 아닐까요.
- 『코일』에는 이른 시기부터 참가하셨군요.
오시야마 : 저는 「파프리카」 반이 합류하기 전부터 있었으니까요. 「전뇌 코일」은 변칙적인 순서로 만들고 있어서 2화 제작이 끝나고 1화를 아직 만들고 있던 시기입니다.
저나 무로이 야스오 군이 들어오고, 그 후에 「파프리카」 제작이 끝남에 따라 이노우에 토시유키 씨나 모리카와사토코 씨, 이노우에 에이 씨, 하타 아야코 씨, 이타즈 요시미 씨 같은 베테랑을 포함한 사람들이 들어오는 느낌이었습니다.
- 『코일』을 다시 보면 실력 있는 분들이 대거 참여한 것처럼 보이는데, 당시 현장은 어땠나요?
오시야마 : 사내가 소수 정예였다는건 틀림없지만, 자신은 그 안에서 커리어도 짧고 최연소라 정말 신인 같은 기분으로 있었습니다.
다만 자신의 원화 그리는 방식을 실험하는 동안 작감 회차 등에서 묘하게 고집이 생겨서, 경험이 적은 탓에 올라오는 원화맨의 소재를 좁은 시야로 대부분의 레이아웃을 원도부터 다시 그리는 듯한 일은 했었습니다만.
『코일』에서는 바로 뒷자리에 있던 이노우에 토시유키 씨나 이소 씨, 혼다 타케시 씨의 작업이 역시 매력적이고 자극적이어서, 아직 갈 길이 멀다고도 생각했습니다. 단순하게 경험치나 단련이 부족하다고 생각했죠.
- 그 후, 「보쿠라노」에서 OP의 타나베 오사무 씨가 그린 달리기에 오시야마 씨가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오시야마 : 「보쿠라노」는 「녹색거인전」 이후의 작업입니다만, 저보다도 야마시타 신고 군 등이 더 자세히 보고 작업에 응용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당시 곤조의 「보쿠라노」 반에 있던 젊은이들은 모두 보고 있었어요.
저도 저런 틀에 박히지 않은 작화를 좋아합니다. XEBEC도 그렇습니다만, 역시 제작 현장에서는 신인 교육으로서 즉전력으로 만들기 위해 처음에 정형화된 달리기 같은걸 가르치거든요.
처음에 배우는건 머리에 박히기 쉽달까, 그런 지점에서 스타트하고 있으니까 애니 작화는 매뉴얼화되어 룰로 꽁꽁 묶여 있는 것처럼 느껴져서 그런 인식으로 머리가 굳어 있었어요.
그걸 보고 마음에 울리는 표현이라는건 그런 기본 룰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금 생각했습니다.
다만 작화 MAD에서 보던 이소 씨의 작업도 그런 틀로 그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 이듬해 「영화 도라에몽 노비타와 녹색거인전」에 참가하셨는데, 노비타가 물을 긷는 장면에서 매우 인상적인 작화를 하셨죠. 그건 와타나베 아유무 감독이 그런 작화를 하도록 지시한건가요?
오시야마 : 그 부분은 와타나베 아유무 감독으로부터 「맡길 테니 메타모르해 주세요」라는 지시를 받았던걸로 기억하고, 움직임의 뉘앙스에 대해서는 제가 자유롭게 그렸고 그대로 사용됐습니다.
- 꽤 공을 들인 작화였죠.
오시야마 : 『전뇌 코일』이 끝나고 바로 직후 정도의 작업입니다.
『전뇌 코일』 초기에는 캐릭터에 익숙해지지 않아 쩔쩔맸는데, 후반 20여 화 정도가 되니 자신의 그리는 방식 같은걸 조금씩 잡아갈 수 있었거든요.
이소 씨가 보기에는 제 그림이 디자인과 닮지 않게 되어가고 있었던 것 같지만요. 다만 이전보다 시야가 넓어져 「애니는 이런 느낌으로 그리면 움직일 수 있구나」라든가 「이런 느낌으로 그리면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게 보이기 시작했었습니다.
그 타이밍에 「녹색거인전」에 참가했어요.
그리고 『도라에몽』처럼 심플한 디자인으로 작화할 수 있었던 덕분에 움직임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과, 유아사 씨의 신에이 동화 시절 작화를 보고 있었던 것도 영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단순히 부드럽게 움직이려고 생각했던 것이 아니라, 역시 『전뇌 코일』 반의 영향을 받았기에 제대로 리얼리즘을 느끼게 하는 움직임을 만들고 싶다는 욕구도 강했어요.
그래서 실제 인간의 움직임에 가깝다고 느끼게 하는 동작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애니의 궁극적인 과장 표현 같은걸 동시에 하고 있었습니다.
물 이펙트도 생략한 움직임으로 해서 보는 사람이 머릿속에서 보완해 주는 묘사로 하거나.
어디를 리얼하게 하고 어디를 과장할지에 대해, 나누어 그리려고 하며 그렸던 기억이 있네요. 그리고 그때까지 도1박처럼 타이밍을 맞췄던게 처음으로 퀵 체커를 사용함에 따라 타이밍의 정밀도가 격하게 올라갔습니다.
- 그 전후로 다른 작화적인 시도를 해본 작업이 있나요?
오시야마 : 각각의 작업에서 그렇게 제가 질리지 않도록 했던 것 같습니다.
그 전후에 이타즈 씨와 함께 「망념의 잠드」의 작감을 했는데, 등장하는 인물이나 몬스터를 부드러운 폼으로 그리는 기법을 응용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며 그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액션 컷에서 킥을 했을 때 수수께끼의 이펙트가 날아가는데, 그것도 자연 현상 이펙트의 연장선상에서 자유롭게 그릴 수 있겠다고 당시 생각했던 기억도 있습니다.
- 그 후에는 「에반게리온 신극장판」, 「마루 밑 아리에티」 등의 극장 작품 참가가 이어지는데, 스스로 그런 작품을 선택하신 건가요?
오시야마 :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그런 작품에 참가하는 사람이었기에 소개받는 작품이 그런 것들뿐이었거든요.
『전뇌 코일』을 하는 도중에 사실 『에바: 서』를 조금 아르바이트했으니까요.
혼다 씨가 「조금 2원 도와줄 수 없겠냐」고 하셨죠. 「모모와 다락방의 수상한 요괴들」은 이노우에 토시유키 씨를 통해서였는지 오키우라 히로유키 감독을 소개받아 오오히라 신야 씨의 2원을 했습니다.
- 『에바: 파』에서는 메카 액션 전문이었나요?
오시야마 : 그렇네요. 혼다 씨가 메카 작감이었잖아요. 혼다 씨가 불러서 참가하고 있으니 혼다 씨가 하는 파트를 맡는 느낌으로 메카 액션을 전문으로 맡았죠. 캐릭터는 메카 앞에 있는 캐릭터의 등을 그린 것이 유일한 것 같습니다.
- 「에바」에는 「에바」만의 작법이 있어서 그렇게 자유롭게는 그리지 못했나요?
오시야마 : 메카 액션이라 그만큼 거북하지 않았고, 꽤 자유롭게 그리게 해주셨다고 생각합니다. 혼다 씨의 그림이 뛰어나서 맞추는 것이 싫지 않았습니다. 구 극장판 「Air」의 이소 씨의 2호기 배틀에 강한 영향을 받았기에 「그것을 하면 되겠다」고 생각해서 그런 기분으로 그렸더니 혼다 씨도 받아들여 주셨던 것 같습니다.
https://www.sakugabooru.com/post?tags=kiyotaka_oshiyama+neon_genesis_evangelion_series+
- 『파』에서 그린건 구체적으로 2호기 등장부터의 액션?
오시야마 : 우선 2호기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스카이다이빙 파트를 했고, 그 후 지상의 사도를 쓰러뜨릴 때까지네요.
그다음 초호기가 압도적인 파워로 3호기를 해치우는 클라이맥스일까요. 3호기의 머리를 지면에 비비고 몸을 뜯어내어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는 듯한. 그 근처네요.
후반도 했습니다. 각성한 초호기가 엄청난 파워로 최강 사도를 해치우는 장면의 전후.
스시오 씨가 손으로 공격을 멈추는 부근을 하신 것 같은데, 저는 그 전후를 하고 있습니다. 눈이 두근두근하고 각성해서 초호기가 일어나고 빔으로 날아가는 사도라든가. 그런 파트를 몇 군데 했네요.
- 상당한 양을 했네요. 지브리 작품에도 많이 참가하셨죠. 지브리 작품은 어떠셨나요?
오시야마 : 작품에 따라 상황이 달랐어요. 「아리에티」 때는 너무나 화풍이 그때까지 그려온 것과 다르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저로서는 종잡을 수 없는 푹신푹신한 그림이라 처음에는 "그리기 힘드네" 란 인상이었죠.
다른 사람들이 그리는 원화에 대해서도 원화 1장으로 보면 어딘가 미덥지 못한 그림입니다만, 퀵 체커를 사용해 영상으로 보면 움직임의 해상도나 정밀도가 높아서 역시 지브리라고 느꼈습니다.
멈춘 그림으로 빛나는 것이 아니라 움직임 속에서 빛나는 그리는 방식을 독자적으로 진화시켜 온 팀이라는 인상을 받았네요.
그리고 동화맨이 원화맨 곁에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다른 현장이라면 동화맨과 원화맨한테는 거리가 있는거죠.
지브리는 동화 단계에 대해 원화맨과 동화맨이 커뮤니케이션 하면서 최종적인 룩을 조정해 가는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원화맨도 책임감을 느끼고 동화에 일을 넘기려고 하고, 최종적인 퀄리티 보증도 됩니다. 그런 점은 이상적인 현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리에티」 도중에 「누룩과 계란 공주」 현장이 스타트하고, 미야자키 하야오 씨가 제 바로 옆자리에 왔거든요. 그래서 「원화맨을 소개해 달라」고 하셔서 키타다 카츠히코 군과 쿠츠나 켄이치 군을 소개했습니다.
https://www.bilibili.com/video/BV1oE411W7UU/
- 그래서 쿠츠나 군이 지브리에 들어온 건가요?
오시야마 : 그렇습니다. 데코보코한 3명이 나란히 미야자키 씨 바로 근처에서 일하는 수수께끼의 부스가 만들어졌습니다.
저 외에는 「누룩과 계란공주」를 하고 있었고, 다들 몽글몽글한 것을 그리고 있어서 즐거워 보였어요.
하지만 「아리에티」를 하고 있는 마당에 "저쪽도 하고 싶다"고는 말할 수 없어서 일단 「아리에티」를 끝냈습니다.
그때 아직 「누룩」에 나눠주지 않은 컷이 남아 있었어요. 어쩌면 남겨주신걸지도 모르겠지만, 제일 마지막 씬에서 빵 거인과 계란 공주를 배웅하는 장면을 맡았습니다.
- 미야자키 씨와 본격적으로 일하는 것은 「바람이 분다」부터인가요?
오시야마 : 「누룩」은 단 3컷뿐이니까요. 그린 레이아웃과 원화도 별로 조정되지 않았습니다. 미야자키 씨 자신도 단편이라서 극장 장편보다 마음 편하셨을 겁니다.
- 「바람이 분다」는 자신에게도 큰 작업이었나요?
오시야마 : 그렇네요. 2011년 지진 재해 전부터 2년 이상 관여했으니까요. 마침 서른 살 전후로 일의 요령을 잡아오고 기력도 체력도 있는 타이밍이라, 동세대가 팍팍 새로운 일을 해내고 있어서 저 혼자만 우라시마 타로가 된 기분이 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바람이 분다」 초기에 「작감을 시켜달라」고 제가 미야자키 씨에게 말하러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 후 「조금 그려볼래?」가 되어 캐릭터 설정 러프를 그리라는 말을 듣고, 그것을 몇 번 다시 했습니다만, 미야자키 씨로부터 OK가 나지 않아서, 그래서 작감은 맡길 수 없으니 원화로 참가하게 됐습니다.
미야자키 씨와 극장에서 일하는 것이 목적이었기에 다른 현장에 가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고, 달리 하고 싶은 일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2년 동안 어떤 의미로 참았네요.
- 「달리 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건 여러 타입의 것을 하고 싶다는 뜻이었나요?
오시야마 : 제가 팀의 선두에 서도 될 타이밍이라고 생각했거든요.
- 「강철의 연금술사 미로스의 신성한 별」 이후니까요.
오시야마 : 맞아요.
- 이야기를 되돌리겠습니다만, 「미로스」는 20대 때의 큰 작업이죠. 코니시 씨에게 이야기를 들어도 "오히려 내가 오시야마 군에게 맞췄습니다"라고 말하실 정도라서.
오시야마 : 그건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 처음부터 이런 애니메이션으로 만들고 싶다는 의식이 있었나요?
오시야마 : 직접 원화를 그려 눈앞에 나타나기 전까지는 대략적인 이미지였습니다.
「샴발라」에 참가했던 제가 작품에 전념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때까지의 BONES 스타일에서 바꾸고 싶었어요.
「아리에티」 이후였기에 「지브리를 거친 그리는 방식이나 움직이기 쉬움」이라는 것이 제 안에 있었고, 그 에센스를 다른 작품에도 응용하고 싶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제 힘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감독 무라타 카즈야 씨와는 그때가 처음이었지만, 애초에 디자인이 코니시 씨고 「보쿠라노」에서도 함께했던 나츠메 신고 씨도 있었어요.
메인 스태프와 말이 통할 것 같아 괜찮겠다고 생각하며 참가를 결정했습니다. 처음에 애니메이션의 방향성을 잡기 위해서도 서두 액션 씬을 직접 원화 담당했습니다.
처음에는 직함 없이 했다고 기억하고, 애니메이션 디렉터라는 직함은 도중에 나온 이름이었다고 기억하거든요.
저는 작감으로서의 일보다 애니메이션 움직임의 방향성을 잡는 듯한 역할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서.
그림을 최종적인 룩으로 다듬는 것은 코니시 씨가 해준다는 스탠스였습니다. 애니메이터들은 평소 익숙한 스타일과는 다른 것과, 제가 젊었던 탓도 있어서 일부 베테랑 층의 시선이 따가웠습니다만, 가능한 한 제가 지향하는 방향으로 당긴 느낌이죠.
- 「미로스」에서는 성취감이 있었나요?
오시야마 : 끝난 후에는 다 같이 만들었단 축제감이 있었습니다. 다만 콘티가 무거웠던 것과 여러 가지가 부족해서 「저렇게 할걸, 이렇게 할걸」 같은 불완전 연소입니다. 늘 있는 일입니다만.
극장 작품에서 작화 감독적인 역할은 처음이었던 것과, 그때까지와는 다른 스타일로 작품을 완성했다는 점은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바람이 분다』 다음이 『스페이스☆댄디』가 되나요?
오시야마 : 「스페이스☆댄디」 전에 「마크로스」를 했었습니다. 그것이 첫 콘티였고 연출이었을지도 모릅니다.
(※ '마크로스 시리즈' 30주년 기념 PV로 제작됐지만 제반 사정으로 전편이 공개되지 않았다. 그 영상의 일부가 소셜 게임 마크로스 카드 파이터 광고에 사용되었다.)
- 의욕을 가지고 한 작업이었나요?
오시야마 : 의욕이라기보단 불안과 호기심이네요. "콘티는 다들 어떻게 그리는 거지?" "뭐가 정답이지?" 같은 느낌입니다. 딱히 스토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영상 플랜도 자유로웠기에 생각나는 장면을 그려서 나열하고, 그것을 퍼즐처럼 조합해 가며 콘티를 그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 그 무렵쯤 연출 쪽으로 가겠다는 의식이 있었군요. 자신의 기분으로서도 연출로 가고 싶었나요?
오시야마 : 연출에도 흥미가 있다고 일부 사람들에게 떠벌리기 시작했습니다. 애니메이터만 하고 있으면 자신이 그리고 싶은 대로 그리지 못하는 일이 쌓여가거든요. 저는 그 부분에서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어요.
예를 들어 정말 마음이 잘 맞는 감독님이 곁에 있고, 그 사람과 작품을 질리지 않고 계속할 수 있는 편안함을 느꼈다면 연출이나 감독으로 진로를 잡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주변과 비교해 애니메이터에 적합하다고 생각했기에 그것만으로 살아갈 길도 있었을지 모릅니다.
- 『스페이스☆댄디』는 각 화 담당 스태프가 개성을 내도 좋은 시리즈였죠. 그것을 알고 참가하셨나요?
오시야마 : 그렇네요. 이런 자유로워 보이는 기획은 드물기에 각본부터의 참가를 희망했습니다. 다만 각본이 통과되지 않았으면 찬스가 사라졌을지도 몰라요. 와타나베 신이치로 총감독과 캐치볼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1화를 맡게 됐습니다.
- 그 화에서 가장 하고 싶었던 곳은 어디? 그림인가요, 아니면 분위기?
오시야마 : 전부 하고 싶었어요. 저는 학생 시절에 자주 제작 애니를 만들지 않았기에 자주 제작을 만들고 싶다는 욕구가 있었거든요.
거의 자유로운 각본부터 할 수 있어서 꽤 그것에 가까웠어요. 각본뿐만 아니라 콘티도 시리즈 1화 분량의 길이로 그려보고 싶었어요.
주요 캐릭터의 기본은 있으면서도 제 화수에서 캐릭터 디자인이나 미술 설정도 만들 수 있었고 색에도 고집할 수 있었어요. 일부는 2원화가 되었습니다만, 애니메이터로서도 1인 원화로 망라적으로 컨트롤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자주 제작을 목적으로 즐겁게 만들었습니다.
- 애니메이션 타입으로서도 그런 너그러운 것을 하고 싶었나요?
오시야마 : 그때는 그랬다, 같은 느낌이네요. 그편이 그리기 편했고 제가 그리면서 기분 좋다고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애니메이터로서 10년 정도 그리다 보니 자신의 지향점이 명확해진 점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그때까지 관여했던 작품에 몸이 순응해 있어서 아무 생각 없으면 과거 참가 작품과 닮아버리는 점은 피할 수 없었습니다.
- 「플립 플래퍼즈」는 당시에는 잘 알 수 없었습니다만, 오시야마 씨의 작업 경력으로 보면 챌린지였군요.
오시야마 : 시리즈 감독은 처음이었기에 제 안에서는 모든 것이 챌린지였습니다.
- 오리지널 작품이고, 코어 유저를 향해 만드는 일을 하셨죠.
오시야마 : 프로듀서가 보고 있는 코어 유저죠.
계속 애니메이터로 해왔기에 저에게는 작품 너머에서 재미있어해 줄 시청자는 의식해도, 돈을 지불해 주는 유저가 있다는 시점에는 그때까지 서 있지 않았어요.
감독을 맡으면 어느 정도는 수요에 대해서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데, 실제로는 작품을 세상에 내놓기 전까지는 알 수 없지요.
- 자신이 만들 수 있는 방향성과 프로듀서가 생각하는 코어 유저를 향한 방향성이 하나가 되어 『플립 플래퍼즈』가 된 것이군요.
오시야마 : 그렇습니다만, 프로듀서라고 해도 출자 회사마다 있고, 제작 스튜디오 대표, 각본가, 메인 스태프 등 작품을 방향 짓는 요소는 실제로는 복잡합니다.
다만 처음인 감독이기에 이 시리즈를 통해 여러 경험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했습니다.
기획안으로서도 있었을지 모르지만 「아베노바시 마법☆상점가」처럼 화수마다 대담하게 연출 텐션을 바꿀 수 있는 폭 넓은 작품으로 해버렸어요.
그것을 함으로써 그 후 어떻게 되어버릴지 지켜볼 여유는 없었어요.
매 화수 세계가 다르니 화수마다 신규 설정이 필요해진다든가 하는거죠.
색 설정도 각 화마다 만들어가야 한다든가, 리소스가 적은 신진 제작 스튜디오에서 만드는 것의 어려움 등 그런 것들에도 어두웠습니다. 상당히 하이리스크한 일을 하고 있다고 진행하는 도중에 깨달았습니다.
코지마 타카시 군에게 디자인을 부탁했습니다만, 저는 애니메이터를 해왔고 남들 이상으로 그림에 고집이 있었어요. 그때까지의 코지마 군은 저와 작화 스타일이 가까운 인간이 아니었기에 어떻게 서로 허용할 수 있는 지점에 화풍을 정착시킬 것인가 하는 점이 힘들었네요.
하지만 그는 매우 터프해서 올라온 디자인에 제가 몇 번이나 리테이크를 내도 그만두지 않고 매달려 줬습니다. 도중부터는 신뢰하고 작업을 맡길 수 있게 되어 최종적으로는 그에게 도움을 받으며 어떻게든 끝까지 달릴 수 있었다고 생각 됐네요.
- 「플립 플래퍼즈」에서는 엄청난 업무량이었죠.
오시야마 : 그렇네요. 기본적으로 『전뇌 코일』 때부터 제 작업 스타일은 바뀌지 않아서 어쨌든 닥치는 대로 그려대는 식으로, 감독이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자신의 한정된 시간과 에너지를 어디에 쏟아야 작품이 더 좋아질지 생각하면, 각본이나 콘티가 나오고 나서는 애니메이터적인 시점에 서는 것이 효과가 크다는 생각이 들어 배경 원도부터 다시 그리는 레이아웃 수정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했던 것 같네요.
- 콘티도 고치지만 레이아웃까지도 고친다고.
오시야마 : 시리즈로서는 그때까지 『스페이스☆댄디』 한 번밖에 콘티를 그린 경험이 없었고, 정말로 더듬더듬 그렸고, 체크도 했습니다.
그림으로 고칠 수 있는 부분은 오히려 편한데, 몰랐던 것은 각본입니다. 각본 회의 결정에서 중요한 키잡이 일을 몇 번이나 실수했어요.
편집이나 음향도 마찬가지로, 해나가며 익혀 나갔습니다만, 이쪽은 작품에 미치는 영향이 비교적 작았어요.
다른 감독 밑에서 연출이나 연출 조수로서 경험을 쌓았다면 좋았겠지만요. 모든 것이 더듬더듬하는 상태였습니다.
- 보람이 느껴졌나요?
오시야마 : 고생한 만큼 성취감은 있었습니다만, 그 이상으로 교훈이 된 작품이네요.
다만 특출난 작품이 되는걸 목적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 「플립 플래퍼즈」 이후에는 여러 작품에서 디자인을 하거나 각 화에서 원화를 그리는 듯한 업무가 중심이 됩니다. 그중에서 특수한 것으로 「SHISHIGARI」가 있나요?
오시야마 : 「미로스」나 「플립 플래퍼즈」는 어쨌든 계속 고쳐야 하는 작업이었어요. 스케줄을 우선시해 인해전술로 만들어야 했죠.
닥치는 대로 원화를 받아서 그걸 메인 스태프가 계속 고쳐 어떻게든 볼 수 있는 레벨까지 끌어올린다. 그런 제작 방식에는 넌더리가 나서 그 후의 감독 오퍼는 계속 거절했습니다.
그래서 직접 팀을 조성하고 싶어졌고, 「미로스」나 「스페이스☆댄디」에서 함께 일을 했던 나가노 유키 에게 말을 걸어 스튜디오 두리안을 세운거죠.
가능한 한 자신이 홀가분한걸 최우선으로 두고, 소수로 무언가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습니다.
뒷받침도 자본도 없었습니다. 해나가는 과정에서 좋은 기획과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정도였습니다만, 우리들이 애니메이션 제작 회사라는 것을 세상에 보여주기 위해 기획을 제로에서부터 세워 그것을 작품으로서 세상에 발표하는 부분까지 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 그것이 「SHISHIGARI」였군요. 이 작품의 자금은 누가 냈나요?
오시야마 : 보조금도 나오고 있습니다만 그 이외에는 저희가 직접 내고 있네요. 이상한 말이지만 출자를 모집한다는 발상도 없었기 때문에.
(※ SHISHIGARI는 영상산업진흥기구에서 보조금이 지급됐다)
- 배경 외에는 전부 혼자서?
오시야마 : 그렇네요. 채색조차 저와 나가노 둘이서 분담해서 칠했으니까요.
배경도 케빈 에메릭 씨라는 미술가 한 분이 그려주고 계십니다. 「스페이스☆댄디」에서 지향한 자주 제작적인 제작 방식을 어떤 의미에서 궁극적인 형태로 실현한 것이 「SHISHIGARI」입니다.
살기 위해 멧돼지를 사냥하는 수렵 민족처럼 우리들도 작은 팀으로 작품을 만드는 활동을 하고 싶다.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지금 어떤 이야기를 그리고 싶은가 함과 동시에 우리들의 한정된 리소스로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세계관과 이야기가 베스트인지를 고민했습니다.
- 등장인물이 적다든가 같은거요?
오시야마 : 그렇네요. 무대가 계속 눈 덮인 산이라 발이 지면에 접지하는 부분을 그리지 않아도 된다든가, 또 옷을 두껍게 입고 있으면 몸 형태의 데생을 그리는 데 에너지를 쏟지 않아도 된다든가 하는거죠.
일상적인 연기로 하면 동화의 부담이 커지므로 그렇게 하지 않도록 액션을 많이 넣어서. 저는 빨리 그리기 위해 선이 거칠어지므로 거친 선이라도 잘 어우러지는 세계관으로 형성했습니다.
- 과연 그렇군요. 스튜디오 두리안으로서의 큰 작업이 『룩백』이었군요. 두리안에서 하는 이상 『룩백』도 팀으로서는 작게 해서 가능한 한 오시야마 씨가 많이 그리는 형태로 하고 싶었던 것이군요.
오시야마 : 그렇네요. 제작위원회 안에서의 저희 출자 비율을 높이기 위해 적은 예산 안에서 가능한 한 절약하며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했습니다.
애니 제작은 거의 다 인건비이므로 평범하게 만들면 엄청난 적자입니다. 저 자신이 가능한 한 업무를 겸임할 필요도 있었죠.
- 결과적으로 『룩백』은 많은 사람에게 받아들여지고 평가도 받았습니다만, 그것은 어느 정도 예상을 하셨나요?
오시야마 : 아뇨, 이렇게 주목받는 상황이 될 줄은 역시 생각치 못했네요.
원작은 훌륭하고 발표되었을 때 화제가 되긴 했습니다만, 애니메이션 영상화로 큰 매출을 기대할 수 있는 원작은 아닐거라고 예상했습니다.
- 원작이 만화를 그리는걸 모티브로 한 작품이죠. 자신들의 애니 제작과 원작의 궁합이 좋다는 점이 있지 않았을까요?
오시야마 : 저희도 굉장히 소수로 개인적으로 만들고, 애초에 제가 그림 그리는 사람이기에 이야기를 자신의 일처럼 겹쳐보기 쉽습니다.
그림이라는 점이 강조되는, 손그림감 있는 스타일을 특기로 두고 있어요.
원작 후지모토 타츠키 씨와 제 화풍의 방향성도 멀지 않고, 「체인소맨」에서 악마 디자인을 했기에 화풍이나 후지모토 씨의 작가성도 알고 있었습니다.
후지모토 씨 자신도 「플리플래」나 제 SNS에서 그리는 일러스트를 마음에 들어 해서 저를 선택해 주셨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모로 궁합이 좋았던 것이 아닐까 생각하네요.
- 이야기는 돌아갑니다만 오시야마 씨의 둥근 형태나 프리미티브한 애니메이션 스타일에 지브리의 영향이 있는거죠.
오시야마 : 지브리의 영향도 물론 있고, 그것뿐만도 아닙니다.
우선은 자신이 잘 질리고 잘 잊어버리는, 그리고 자유를 좋아하는 성격도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애초에 기본이 프리미티브한 편이 작품마다 스펀지처럼 순응하기 쉬워요.
프리랜서 애니메이터의 처세술로서도 어떤 의미에서 이치에 맞다고도 생각됩니다.
그래도 실제로 손을 움직인 작품의 영향은 강하게 몸에 배어 있고, 그것과 개인적인 취미 취향이나 성질이 숙성된 형태가 지금의 제 스타일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자신의 작화에 질리지 않고 즐길 수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 향후 만들어질 작품이 「대규모의 실력 있는 애니메이터를 모아 그리게 한다」는 식의 제작 방식이 될 가능성은 있습니까?
오시야마 : 제가 원해도 이제 사람 중에 실력 있는 사람을 모으는건 무리이지 않을까요? 만약 실력 있는 사람이 많이 모인다면 소수 제작 그만둘 겁니다(웃음). 하지만 그런 미래는 보이지 않아요.
오히려 신뢰할 수 있는 강력한 작화감독과 팀을 이룬다면 작화를 맡겨보고 싶습니다.
예를 들어 3D 같은거라면 그림체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까 손으로 하는 것보다는 남에게 맡기며 감독하기 쉬울지도 모릅니다.
- 3DCG로 작품을 만들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오시야마 : 저는 잘 질리는 성격이라 손그림 애니메이션이 아니어도 좋겠다고 생각되면 3D를 할 때도 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 애니메이션 이외의 것을 할 가능성은 있습니까? 그림책이라든가.
오시야마 : 그것도 있습니다. 그림책도 그리고 싶습니다만 그것은 노후에 해도 될 것 같기도 해서 (웃음).
『룩백』의 영향도 있는지 지금은 만화를 그리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잘 그릴 수 있을지는 별개의 문제로서 지금은 그쪽으로 트라이하고 있는 중입니다.
- 이 호가 나오는 달에는 「극장 애니메이션 룩백전」이 개최되네요. 이것은 오시야마 씨가 확실히 감수하고 계시는군요.
오시야마 : 그렇네요. 감독이 애니 전시에 대해 이렇게까지 커밋하는건 전례가 없는 것 같습니다.
본래는 감독이나 연출이라면 「작품을 보고 느껴주세요. 각자가 원하는 대로 해석해 주세요」라는 스탠스가 기본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룩백』은 여러 각도에서 읽어낼 수 있는 작품이라고 보거든요.
그래서 감독의 시선에서 「이런 마음으로 만들었습니다」라는걸 가능한 한 세밀하게 언어화해서 보여주고 싶어요.
영화를 몇 번이나 봐주시는 분들께 그때까지와는 다른 만남의 방식을 가지게 해드리고 싶다.
「룩백 전」이 그 계기가 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거든요. 애니메이션 표현을 지탱하고 있는 제작자가 어떻게 작품을 마주하며 만드는지 더 세상에 알리고 싶다. 그리고 그것을 기록으로서 후세에 남기고 싶다, 그런 마음이 강하게 있습니다.
다만 주최도 하고 있어서 솔직한 말로 손님이 별로 오지 않으면 번 영화 매출이 날아가서 스튜디오 두리안은 파산합니다(웃음).
(2025년 11월 11일 도쿄 고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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