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 애니메이션 영화 『화록청이 밝아오는 날에』는 강렬한 작품이었다. 지금까지 본 적 없는 독특한 색채, 안료인 '화록청'이나 지역 개발이라는 모티브.
아트 영화적이면서도 오락작품인 점이나, 이야기와 영상의 콘셉트를 끝까지 파고드는 점도 흥미롭다.
감독인 시노미야 요시토시는 일본화가로서 활동하면서 애니메이션 제작에도 관여해 온 인물이다.
『화록청이 밝아오는 날에』는 그런 그이기에 만들 수 있었던 작품이다.
시노미야 요시토시
1980년 출생. 혈액형 AB형. 가나가와현 출신. 2003년에 도쿄예술대학 미술학부 회화과 일본화 전공을 졸업, 2008년에 도쿄예술대학 대학원 미술연구과 후기 박사과정 미술 전공 일본화 연구 영역을 수료하고 박사 학위를 취득.
재학 중부터 일본화가로서 활동하며, 일본화를 베이스로 회화 작품, 입체 작품, 영상을 발표. 2011년부터 애니메이션 제작에 참여하게 되어, 단편 애니메이션에서 감독을 맡는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너의 이름은.』에서는 회상 장면의 연출·원화·촬영을, 카타부치 스나오 감독의 『이 세상의 한구석에』에서는 극 중 수채화를 담당했다.
『화록청이 밝아오는 날에가 첫 장편 감독 작품이다. 주식회사 SUIRO 대표.
――시노미야 씨는 어릴 적에는 어떤 아이였나요?
시노미야: 프리미티브 한 부분부터 시작하시네요(웃음). 자주 "언제 화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나요" 같은 질문을 받는데, 특별히 결심한 적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예전부터 그림을 그리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굳이 말하자면 고등학교 입시 때입니다. 집을 나가보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당시 도쿄에 누나가 살고 있었고 도쿄에 미술 코스가 있는 고등학교가 있었어요.
그 고교에 들어가서, 잘하는 것을 살려 나갈 수 있다면 그대로 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당시로서는 큰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본격적으로 그림을 배우셨나요?
시노미야: 부모님 곁을 떠난 점도 있어서 비교적 자유롭게 지냈다고 생각합니다. 그림은 열심히 그렸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쯤, 미술 입시학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일찌감치 가고 싶어졌습니다.
그건 대학 입시 때문이라기보다도, 당시는 인터넷도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웹상에서 정보를 찾는다는 것은 할 수도 없었고,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생각하면 학교나 학원에서 배우는 수밖에 없었죠. 거기서 배우는게 기뻐서 어쩔 줄 몰랐네요.
――그리고 도쿄예술대학에 들어가셨습니다. 몇 년 계셨습니까?
시노미야: 9년쯤일까요. 학사과정이 4년, 석사과정이 2년, 박사과정이 3년이라서요.
――9년이라는건…….
시노미야: 최단이에요.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나오기에는 최단 기간이군요. 박사 과정 무렵에는 그림 일을 하며 살아가야겠다고 생각하셨나요?
시노미야: 그림으로 밥벌이하는 직업을 가지려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 무렵 개인전이나 그룹전을 하기 시작했으니, 뭐, 학창 시절부터 작가로서 활동하고 있었던 거잖아요.
제가 졸업한 2000년대 초반이라면 취업하는 사람은 동기 중에 1명 있을까 말까 정도였습니다.
애초에 그림 이외의 무언가를 한다는건 선택지로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다들 파인 아트를 하셨나요?
시노미야: 그렇네요. 대학에서는 일본화라는건 평면 회화 이외에는 인정받지 못하는 분위기도 있어서. 이번 영화에도 일부 나옵니다만, 스토익하게 소재 연구 같은 것도 했습니다.
일본의 화구는 일본 국내에서 조달할 수 있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박사 과정 3년은 이바라키 쪽의 교지——실험림이라고 불렀습니다만, 밭에서 30종류 정도의 식물을 키웠습니다. 키운다고는 해도 뭘 하고 있었냐고 하면, 계속 잡초를 뽑는 겁니다.
――식물을 키우는 것은 그림을 그리기 위한 소재이기 때문입니까?
시노미야: 그렇습니다. 거기서부터 물감 소재까지 가져갈 수 있는 식물은 아주 적지만요.
예를 들어 닥나무라는 화지의 원료가 되는 식물이 있어서. 그것을 심어서 기르거나, 여러 가지 식물을 만져본 경험이 지금에 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3년간 그것만 했던 것 같은 기분마저 듭니다.
――그 시기에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습니까?
시노미야: 그렸습니다. 그리는 일과 그걸 했던 것 같은.
――미술의 세계라면, 그리기 위한 소재를 만든다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까?
시노미야: 장르에 따라 다르다고 생각하네요. 일본화는 그런 방향으로 탐구해 나갈 수 있습니다.
유화에서 캔버스를 꿰매는 것부터 이미지 하는 것에 비하면, 화지 쪽이 그나마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을까요.
일본화에서 화지를 만드는 것부터 시작하는 사람은 있습니다. 당초에는 선생님이 주신 과제를 탐구해 나가는 것에 가치를 찾고 있었습니다만, 빠져들수록 깊이가 깊어진다는 점도 있어서 어려움도 느꼈습니다.
여름방학이라든가, 아무도 없는 교사의 복도에서 '이건 무엇으로 연결되는 걸까?' 생각하며 먼 곳을 바라보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시골 쪽에 있었기 때문에 작품을 만들거나 발표하거나 하는 일에 대한 거리감이 생겨버리는 것에도 조금 불안해지거나 했습니다.
자신이 키운 소재만으로 작품을 만들 정도의 기술은 없었습니다만, 그런걸 파고들려는 사람들도 있었고, 자신이 그런 일을 해나가고 싶은 것이나, 그런 사람들과 관련이 있다는 것으로 이번 『화록청이 밝아오는 날에』에 리얼리티 같은 것을 낼 수 있었다는 자부심은 있습니다.
――연구소의 길을 택할 가능성도 있었나요?
시노미야: 대학에 오래 있다 보면, 논문을 발표하거나 학회 같은 곳이 가까워지거나 해서 작가라기보다 연구자에 가까워져 가는 듯한 감각도 있기도 하고. 그래서 '나는 화가가 되고 싶었던 건가? 아니면 연구를 하고 싶었던 건가?' 하는 의문도 솟아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런 와중에 또 하나의 의문도 솟아났습니다. '어라. 이건 애니메이션을 하지 않는 인생이 되는 건가?' 하고. 단순한 마음으로서, 예전부터 좋아했던 애니메이션이나 영상 작품도 발표하고 싶었어요…….
주제가 바뀝니다만, 일본화를 하는 사람들은 계속 '일본화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해 계속 생각해야 하는 숙명 같은 부분이 있어서.
아마 고전 예능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은 다들 그럴 거라고 생각해요. 아트인가? 전통 예능인가? 라든가.
타카하타 이사오 씨는 헤이안 시대의 에마키 그림에서 애니메이션의 뿌리를 찾고 계셨고, 그에 대한 저서도 있습니다. 저는 그게 굉장히 납득이 갔습니다.
그 연장선상에 "화사의 계보가 만약 현대에 태어났다면, 똑같이 에마키 작품을 그릴 것인가, 카메라를 들 것인가"라는 질문이 필연적으로 현대의 화가, 작가에게 들이밀어지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일본화는, 일본 회화를 베이스로 하고 있기 때문에 화조풍월에 대해 어떻게 어프로치 할 것인가라든가, 소재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 같은 어프로치가 들어가기 쉽고 표현의 주제로 삼기 쉬운 반면, 자신의 작품의 콘셉트 같은 부분이 모호해지기 쉬워서 그것이 약점이 되고 있다고 느끼는 시기도 있었습니다.
'나는 현대의 작가다'라고 말하고 싶은 부분도 물론 있고, 왠지 전통적인 측면이라고 느껴지는 부분과 이율배반하고 있다고 계속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아서.
저는 이번 작품에서 '집'을 냈습니다. 일본화와 창호와 가옥의 관계성에 대해 계속 흥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목조 건물이란 나무와 흙과 종이로 만들어져 있어서, 일본화가 구성하는 소재도 기본적으로는 일본 가옥과 다르지 않아요. 지금처럼 다양한 소재는 없었기 때문에.
지금은 일본화가 독립된 회화로서 인지되고 있습니다만, 순수한 예술이 아니라 맹장지 그림이나 병풍 그림 등의 세간으로서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제 이미지로는, 한발 물러서서 보면 일본화는 가옥의 한 공간을 구성하는 소재 같은 것으로 보입니다. 반대로 뒤에서 바깥쪽으로 시선을 향하면, 구획된 공간에 그림이 들어가 있고 가옥이 그 측면(껍데기)이 되어 있어요.
그리고 그 가옥의 바깥쪽에 자연, 혹은 사회——그것을 세계라고 불러도 좋고, 그것을 감상하는 타자도 존재하고 있어요. 또는 공간 안에 타자를 내포할 수도 있어요.
실은 이 틀이 일본화가 본래 가지고 있는 힘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여기서부터는 저의 가설도 포함됩니다만, 일본화는 애초에 일본 가옥 같은 입체적인 구조도 포함해서 공간을 표현했었고, 에마키를 현대로 치환한다는 발상으로 말하자면 일본화는 영상 표현을 포함하고 있었다.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이 화제가 기사가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쓴웃음).
작가로서 일본화라는 것과 마주해 나가는 과정에서 저 나름의 하나의 답변이 됐습니다.
일본화는 어디까지 확장 가능할까. 이것은 작가로서의 지극히 내적인 동기라서, 영화를 본 사람들에게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은 전혀 없습니다만, 연구 대상 안에 영상이라는 것이 분명히 있다는 것은 틀림없었습니다.
――그것이 『화록청이 밝아오는 날에』로 결실을 맺은 것이군요. 대학을 졸업하고 갑자기 『화록청이 밝아오는 날에』를 만든 것은 아니고, 일본화가로서의 활동과 병행하여 영상 작품에 스태프로 참여하거나 단편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기도 하셨죠. 신카이 마코토 씨의 존재도 크지 않았나요?
시노미야: 처음에는 아트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것도 생각했었습니다. 데지하리(디지털 헐리우드 대학)에 다니며 After Effects를 배우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신카이 감독님의 작품에 도쿄예술대학 출신인 탄지 타쿠미 씨가 미술 감독으로 참여하고 있고, 마찬가지로 예대 출신이며 이번 작품에서 함께 하고 있는 마지마 료코 씨, 그리고 히로사와 아키라 씨가 미술 스태프로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같은 대학 사람이 애니메이션을 하고 있어?' 하는 신선한 놀라움이 있었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지금처럼 정보가 없는 시대였기 때문에 어느 과든 작가를 지망하고 있다는 이미지가 있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탄지 씨 등이 애니메이션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고 동질감을 느꼈습니다.
당시 저에게 애니메이션계에서 콘 사토시 감독님과 신카이 감독님의 비주얼은 무척 인상 깊었고, 그 당시 신작도 만들어지고 있던 신카이 감독님의 현장에 흥미가 생겨서 가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신카이 감독의 현장에 간 것은 우연이 아니었군요.
시노미야: 우연이 아닙니다. 제가 스스로 갔습니다. 신카이 감독님의 작품 DVD를 처음 빌렸던 비디오 대여점이 어느 가게였는지도 기억할 정도입니다.
――신카이 감독으로부터는 어느 정도 영향을 받았습니까?
시노미야: 존경은 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것을 그대로 답습해도 의미가 없다고도 생각해서요.
제가 처음 만든 CM은 제작이 코믹스 웨이브 필름이었는데, 시작할 때 "신카이 씨 느낌이 나는 건 그만둡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결과적으로 신카이 씨 적인 작품이 되어버리고 말았어요.
그 정도로 신카이 작품의 세계관에서 밖으로 나오는 것은 어려웠습니다.
촬영하시는 분이 신카이 감독 현장 사람이어서, 마지막에 Optical Flares를 넣어달라고 하니 엄청 예뻤거든요.
"이건 빼주세요"라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을 정도의 퀄리티가 되어 있어서요.
하지만 넣으면 신카이 풍이 되어버리고(웃음). 거기에 갈등이 있었지만, 그 겉모습의 강렬함은 당시 제 경험치로는 저항할 수 없는 설득력이 있었죠.
――시노미야 씨를 '신카이 팔로워'라고 파악 하고 있는 사람도 있을 텐데, 그런 말을 듣는다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시노미야: 기쁜것 같으면서도, 안 기쁜 것 같은 느낌이네요(웃음).
콘 사토시 감독이 "오오토모 카츠히로의 어시스턴트 출신이니까 그림이 리얼하다"라는 말을 듣는데 거부감이 있었던 것과 비슷할지도 모르겠네요. 아,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딱 첫 CM을 찍었던 이 무렵부터 작가 활동을 하면서, 애니 실적이 서서히 쌓여갔어요. 이 이율배반적인 것들을 통합하고 싶습니다.
――통합하고 싶은 것은 일본화 작가 활동과 애니 일인가요?
시노미야: 네. 만들 때의 콘셉트를 하나로 하고 싶어요. 상업 애니메이션 일은 당초, 1명의 작가로서의 작품과는 달리 생활을 위한 수단이라는 느낌이었습니다.
일본화로 작품을 만들 때의 콘셉트와 애니를 만드는 콘셉트가 같다면, 1명의 작가가 만든 것으로서 확실하게 명시할 수 있죠.
영화를 한 편 찍지 않는 한, 언제까지나 그 틀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영화를 만들고 싶어서 상업 애니업계에 온 이유도 있기 때문에, 그것을 위한 첫 한 편이라는 느낌이었을까요.
――'애니메이션을 좋아해서 하고 있다'는 것과 '일본화가 확장된 영상 작품'이 하나로 합쳐져, 본인이 애니메이션을 감독하게 된 것이군요.
시노미야: 그렇습니다. 작가로서 하는.
뭐, 작가라는 단어가 나타내는 범위가 추상적이긴 하지만요.
줄곧 저는 일본화로, 공간의 연속성 속에서 어떤 아트 표현을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것을 해왔습니다.
소재 연구를 했었기 때문에 "그 지역에서 얻을 수 있는 소재로 무엇을 조립해 낼 수 있을까" 같은 것을 하거나, 혹은 전시하는 장소에 주목하여 역사의 연속성 위에 무엇을 놓을까 하는 식의 작품을 만들어 왔습니다.
(화록청의 극중 이야기) 바다가 없어져도 거기에 대체할 수 있는 것이 있고, 같은 불꽃놀이가 쏘아 올려진다면 그 토지의 연속성은 담보되는 것이지요. 글로벌리즘이라든가, 에너지 문제로 전통이나 환경이 변해버리는 가운데, 인간이 어떻게 그 토지에 아이덴티티를 담보해 나갈 수 있을까 같은, 그런 아트 작품으로서 『슈하리 (극중에 등장하는 환상의 불꽃놀이)』 혹은 『화록청이 밝아오는 날에』를 이미지화하고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물론, 이야기를 만드는 일에는 흥미가 있고, 거기에 엔터테인먼트로서 재미있는 것을 확실히 얹고 싶다는 마음도 있습니다.
――슈하리와 태양광 패널에 관해서는, 본인이 작품 세계관 내의 아티스트라면 이런 표현이 가능합니다, 라는 것을 이야기 속에서 했다는 것이기도 하군요.
시노미야: 그것은 굉장히 예리한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영상 작품이지, 현실의 장소가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아트 작품과는 콘셉트를 달리합니다만, 태양광 패널에는 실제 경치의 모델이 있고, 일종의 에스키스같은 의미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런 제안이 가능합니다" 같은 것을 메타 구조로서 포함시키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아트라는 단어가 나왔습니다만, 본인의 작품은 아트로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군요. 또는 아니메가 아니라 애니메이션.
시노미야: 아트와 아니메를 함께 다루려고 하면 조금 거리를 두게 되는 듯한 인상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얼마 전, 이 작품의 스톱모션 애니를 만들어 준 프랑스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들은 아트와 애니메이션을 구분하지 않더라고요. '아트의 한 장르가 애니메이션이다'라는 감각.
거기엔 납득이 가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일본의 아니메는 어느 나라보다 발달하고 세련되어서 하나의 장르로서의 규모가 아주 큽니다. 아트와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스케일이 있는 것처럼 생각됩니다.
그에 비하면 미분화된 나라도 아직 많지 않을까요.
혹은 그런 장점도 있다고 할까. 저는 80년대, 90년대 아니메를 보고 자랐습니다만, 거기에 아트적인 표현으로 승화할 수 있는 요소——아트적이라는 말을 쓰면 오해를 살지도 모르겠네요. 좀 더 순화시킴으로써 표현으로서 대단한 것이 될 것 같은 것을 많이 봐 왔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아트라고 부를지, 아니메라고 부를지에 대해 제 안에서는 별로 구분이 없습니다만, 보시는 분들이 그것을 구분하고 싶은 마음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한 요소들 중에서, 지금은 없어져 버린 듯한 표현이나 기술을 적극적으로 다루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아트라는 것——하이 아트의 맥락이나 표현으로서의 즐거움 같은 것을 잘 해내면, 엔터테인먼트로서의 아니메에 녹여낼 수 있다는 것에 쾌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도 있습니다.
평범하게 아니메를 보고 있어도, 훌륭한 것에는 아트의 맥락도 느껴져요. 그런 의미에서는 엔터테인먼트 안에 아트를 숨겨두는 것이 상업 애니메이션을 하는 데 있어 큰 목표 중 하나일지도 모릅니다.
――기존 애니메이션에 대해 '이 부분은 아쉽다'든가 '나라면 이렇게 만들 텐데'라는 생각은 감독을 하기 전부터 품고 있었나요?
시노미야: 있었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은 저렇게 되어있는데, 다른 TV 아니메는 왜 그렇게 되어있지 않을까라든가, 특별한 작가성이 결집되어 있던 OVA에 있던 움직임에 대한 충동 같은 것이 다른 작품에서는 느껴지지 않는건 왜일까라든가.
――미야자키 씨의 작품은 그렇다 치고, OVA의 밀도도 인정하시는군요.
시노미야: 인정한달까, 좋아해요. 저는 많은 애니팬, 작화팬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80년대부터 90년대의 OVA를 좋아하는군요.
시노미야: 그야말로 우메츠 야스오미 감독의 『메가존 23 PARTII』라든가, 그 시대의 애니메이션을 극한으로 추구한 표현에 감동했었고, 지금의 TV 애니에도 대단한 작화는 있습니다만, 옛날의 극장판이나 OVA에는 무언가의 틀을 뛰어넘은 것이 있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시노미야: 그리고 그림이 CG로 대체되어 버리는 것에 대한 쓸쓸함 같은 것도 있습니다.
CG로 만들어진 것이라도 작품으로서 감동하는 일은 있습니다만, 제가 하는거라면 그건 아니에요.
제가 일본화를 해왔던 것도 있어서 "장인과 수작업을 피처하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흙을 만진다든가, 소재부터 만든다든가. 그것이 인간의 본질적인 노동의 기쁨이 아닐까, 근원적인 체험의 첫걸음이라는, 그런 부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재밌다고 제안을 하기 위한 표현은 역시 어디까지 가도 그림인 것이죠. 그림으로 무언가를 표현하는 것의 감동을 전하고 싶다는건 흔들림 없는 것 같습니다.
――미야자키 감독이나 OVA를 예로 든 것은 그림에 매력이 있기 때문이네요.
시노미야: 그렇습니다.
―― 매력이 느껴지는건, 사람의 손으로 그린 그림에 매력이 있으니까?
시노미야: 지금까지의 이야기에서 비약해버릴지도 모릅니다만, 중요한건, 막연한 세계나 풍경 속에서 무엇을 선택해 낼 것인가에 대한 센스일지도 모릅니다.
―― 과연.
시노미야: 저도 만들어보고 새삼 그렇구나 하고 생각합니다만, 시간이 없는 가운데 "무엇을 움직이고 무엇을 움직이지 않을까" 같은 취사선택을 하는 것으로, 그 사람이 세계라든가, 사회라든가, 타자에 대해 무엇에 주목하고 있는지, 즉 어떤 요소로 세계가 구성되어 있는가 하는 것을 제시하고 있어요.
크게 말하면 '세계의 성립'을 재정의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요.
"작가의 얼굴이 보이는 작품"이라는걸 좋아하는건 그런 부분 때문이 아닐까요.
문학이나, 영화나, 애니메이션에서도, 표현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는 '세계를 재정의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세계라는 것은 이런 것입니다"라고 강하게 내세우는 작품이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 같습니다. 추상적인 화법이라 죄송합니다.
――아뇨 이해합니다. 미야자키 감독은 작품을 만들 때마다 세계를 재정의하고 계시는 거군요.
시노미야: 그렇네요. 실사 영화라도 바이올런스 영화라면 "거리를 걷는 사람 중에 아이가 없다"든가, 그런 취사선택을 하고 있을 겁니다.
보는 쪽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만, 만드는 쪽은 불필요한 것을 신중하게 배제하고 있고, 혹은 본능적으로 배제하고 있어요. 그 부분의 순도가 높은 영화에 감동했던 걸까 하는 생각은 듭니다만.
――자신이 감독을 한다면, 손으로 그린 것에 가치를 찾아내는 것 같은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나요?
시노미야: 그렇네요. 그리고 싶었던 부분으로 말하자면, 역시 차나 식물의 움직임 등이 CG로 대체되어 버린다거나, 미술이 사진이나 복사-붙여넣기의 대량 생산품이 되기 쉽다거나, 그런 것에 대한 아쉬움이랄까 불만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작화=캐릭터를 그리는 것이 목적화되어 버렸다고나 할까. 일본화를 해왔기 때문에 더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동식물이 작화되어 있지 않은 것에 대해 떨떨함 같은 것을 느끼거나, 혹은 풍요로움을 잃어버린 것처럼 보여버려요. 그래서 "가능한 한 손으로 합시다"라고 말했습니다. 다들 싫어했지만요(쓴웃음).
――CG도 쓰지 않고 손으로 그린다?
시노미야: CG도 쓰고 있지만요. 레이아웃에도 썼고, 차를 CG로 한 부분도 있고. 다만, 차라고 해도 중요한 부분은 인간이 재해석한 형태가 아니면 의도를 발휘하지 못한다고 강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없어도 새가 날고 있으면 손으로 그리고 싶거나.
물론 손으로 그린다고 해도 디지털화의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이번 작품은 특수한 제작 방식으로서 '직필 원화'나 'BG 원화'라고 불렀습니다만, 특히 극 중의 바람 표현이나, 날아가는 새라든가, 식물 등은 동화·채색을 거치지 않고 제가 그렸습니다. 작화감독인 하마구치 쇼헤이 씨도 그렸다고 생각합니다만.
새를 날리게 되면 크리스타(CLIP STUDIO PAINT) 상에서 그려버립니다. 이치화2値化도 피하고 있습니다.
그럼 셀에 칠할 색을 어떻게 하느냐 하면, 색도 그때 정합니다. 동시에 배경도 그려버립니다.
미술 감독과 색채 설계라는 포지션을 겸임하고 있는, 이런 사정에도 이유가 있습니다.
저는 미술도 하고 색도 정하기 때문에 '이 색으로 새를 그려서 움직인다'든가 '여기의 식물을 흔들리게 한다'는 걸 캐릭터를 움직이기 전에 정할 수 있었습니다.
더 말하자면 캐릭터 자체도 직필 원화로 처리한 곳도 있습니다. 마지막에 미술과 셀이 갖춰졌을 때 또 덧그려버리는 일도 있었습니다. 감독 자신이 셀을 만들어서 바람의 흔들림을 그린건 이번 작품의 특색일지도 모르겠네요.
――『화록청이 밝아오는 날에』에서 거실에 많은 물건이 배치되어 있는 컷이 인상적입니다. 배치되어 있는 물건은 하나하나를 3DCG로 만든건가요?
시노미야: 열심히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것을 미술 스태프가 따라 그리는 건가요? 어레인지하는 건가요?
시노미야: 기반이 되는 3D는 미술 보드를 참고로 만들어 받았습니다.
하지만 3D가 있다고 해도 미술로 열심히 그린게 아니면 화면이 유지되지 않아요.
예를 들어 해먹에 관해서는 "해먹의 부드러운 느낌이 3D상에 있는가"라고 한다면, 없기 때문에 그것은 마지막에 수정했어요.
기둥도 직선으로 긋는 편이 간단하기 때문에, 집의 기둥이나 들보가 직선적인 그림으로 올라오는데, 그것을 부풀리거나 움푹 파이게 하지 않으면 그림으로서 성립하지 않거든요.
―― 3DCG를 베이스로 배경을 그리지만 3DCG 그대로를 사용한건 아니군요. 현재의 TV 아니메에서는 3DCG에 그대로 색을 입히는 배경이 당연해졌습니다만.
시노미야: 그렇습니다. 「화록청」에서는 CG 데이터 그대로 쓴건 정말 없었어요.
중요한 부분은 손으로 그린 쪽이 많을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인상적인 컷은 손으로 그린 레이아웃이기도 합니다.
일본 가옥의 다다미 6조 방을 표현하는데 1점 투시 같은 구도로 그리면, 두 눈으로 본 6조 방과 감각이 다른게 되어 버립니다.
이 작품에서 하마구치 씨는 '작화'라는 직책으로, 마지마 씨는 '작경作景'이라는 직책으로 엔딩의 처음에 크레딧을 내보냈습니다.
정말 애니메이터가 레이아웃을 그리는 습관이 없어져 버렸어요.
이번 작품에서 배경이 유지되어 있는건 마지마 씨의 힘이 커서. 저는 작화도 봤고 색도 봤기 때문에 후반에는 마지마 씨가 풀가동으로 계속 배경을 고쳐 줬어요.
마지마 씨는 정말 대단해서, 퍼스를 맞추는 공간 파악 능력과 색감이 있는 그림도 그릴 수 있다. 이 두 가지를 겸비한 사람은 좀처럼 없습니다.
마지마 씨는 그 능력이 있었다는 것입니다만, 하마구치 씨는 세대도 가깝고 이상으로 삼는 작화 이미지의 공유가 쉬워서 '그 작품의 누구 같은 원화'같은 대화도 원활하게 되어 무척 든든했습니다.
――지브리 작품이나 콘 사토시 감독의 작품처럼 색만 칠하면 되는 듯한 레이아웃이 척척 올라와서 미술 스태프는 색으로 승부할 수 있는 그런 상황은 아니었군요.
시노미야: 아니었어요. 저는 신카이 씨의 『별을 쫓는 아이』에서 처음으로 애니메이션 현장에 참가했어요.
거기서 본 것이 탄지 씨, 마지마 씨, 와타나베 타스쿠 씨나 히로사와 씨 같은 분들의 일이었어요.
다들 그림을 잘 그리고, 게다가 레이아웃에 얽매이지 않고 개성적인 것도 그려내는 거에요. 그래서 '아아, 미술이란 이런 거구나'하고 감동했습니다.
신카이 씨 현장의 대단함은 바로 거기에 있다고 생각해요.
미술을 하는 사람들이 레이아웃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형태로 여러 가지를 그리고 있는, 그 풍요로움.
저는 입문이 거기였기 때문에 '미술이라는 건 이런 일이구나'라고 생각했는데, 그 후 다른 현장에 가도 그런 것을 하고 있는 곳은 하나도 없었어요.
내재화가 되어 있는 현장에서는 그런 일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외주로 하는 한에는 그런 일은 절대로 있을 수 없어요.
이번 작품에서 마지마 씨에게 부탁하고 싶었던 것은 그런 일을 해 오셨기 때문이기도 하고, 부탁해서 도움이 되었던 부분도 그런 부분입니다. 마지마 씨가 미술적인 여러 설정을 생각한 부분도 있습니다.
――참여한 애니메이터는 젊은 사람이 많았습니까?
시노미야: 작화 등의 기간이 1년 반 정도였는데 스튜디오에 있던 애니메이터는 2명뿐. 그중 한 명은 저입니다(웃음). 또 한 명은 작감인 하마구치 씨.
스튜디오에는 2명밖에 없었고, 나머지는 전부 온라인으로 연결해서 일했어요. 절반이 지나고 나서 작화감독 보좌로 후지이 리나 씨가 원격이지만 참여해 주셨습니다.
정말로 제작이 끝나지 않게 되었을 무렵에 무엇을 했냐고 하면, SNS로 외국 사람들을 계속 섭외했습니다.
그날의 일이 끝나고 나서 '매일 할당량 3명' 같은 느낌으로 계속 말을 걸었습니다. 오전 1시 반이라든가, 15분 퇴근길에 필사적으로 외국 사람을 찾아서 영문을 스마트폰으로 쳐서 보냈습니다.
말을 걸었던 시기가 한 달 반입니다.
88명에게 말을 걸어 20명이 해주셨습니다. 오리지널 작품이고 지명도 있는 감독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 당시에는 일본 사람을 붙잡을 수 없었습니다.
――크레딧을 보면 나카무라 타카시 씨, 오오히라 신야 씨, 마츠모토 노리오 씨 같은 레전드 클래스의 사람들도 참여하고 있죠.
시노미야: 정말 기적이죠. 마츠모토 노리오 씨는 미팅에도 와 주셔서, 저와 하마구치 씨 두 명이 얼굴을 붉히며 긴장한 채로 미팅을 했어요.
마츠모토 노리오 씨는 스토리도 파악해 주시고 스스로 해석을 넣어 그려주셨습니다 (영화의 전반부에서 오르가 춤추는 3컷).
(힘을 주며)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츠모토 노리오 씨는 현역 느낌이 장난 아니었어요.
촬영인 사토 미츠히로 씨가 『(나카무라 타카시 작품인)사진관』에서 촬영감독을 하셨기 때문에 "나카무라 타카시 씨가 비어있으니까 말을 걸어보는 게 어때요"라고 하셔서 나카무라 씨에게 연락을 취해 주셨어요. 그랬더니 흥미를 가져 주셔서.
――나카무라 씨는 몇 컷 정도 하셨나요?
시노미야: 6컷일까요. 불을 피우는 기계에 불꽃놀이를 거는 일련의 컷입니다만. 다만, 이쪽이 (레이아웃을) 돌려드리는 게 늦었던 것도 있어서……. 나카무라 씨가 전력을 낼 수 없었어요.
기계 같은 건 설정이 세밀해서 제 쪽에서 그릴 수밖에 없었어요. 사실은 나카무라 씨의 메카가 보고 싶었는데.
메카는 제가 그리고, 나카무라 씨가 캐릭터를 얹어주신 느낌입니다.
39~
――오오히라 씨는 쏘아 올리는 씬에서 케이타로와 카오루가 뛰어내리는 컷이지요.
시노미야: 그렇습니다. 오오히라 씨는 프로듀서인 후지오 츠토무 씨가 소속사에 부탁해서 해주시게 되었습니다.
신카이 감독 작품에서 작화감독을 하고 있는 니시무라 타카요 씨와 히로사와 씨는 저와 마지마 씨가 말을 걸고.
그 밖에도 이토 노부타케 씨, 모로누키 테츠로 씨, 나쿠라 야스히로 씨도 해주셔서. 이렇게 나열해놓고 보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멤버입니다만.
――크레딧을 보면 호화 애니메이터 총집합처럼 보이지만, 그분들은 막바지 시기에 조금씩 도와주는 형태였군요.
시노미야: 정말 보기에 빛나는 컷을 척척 해주신 분도 있고, 조금만 도와주신 분도 있습니다. "그분들이 50컷씩 했습니다" 하는 느낌은 아니에요.
――차기작은 애니메이터가 더 모일거에요.
시노미야: 그러면 좋겠습니다만. 그래서 작화의 아쉬움은 많이 있습니다. 애니메이션 업계에는 그런 크레딧이 있습니다만, TP수정. 요컨대 마무리 데이터를 수정하는 것도 거의 전 컷 다 했습니다. 그래서 제작 기간이 늘어나버렸지만요(쓴웃음).
――애초에 시노미야 씨는 애니메이션을 그릴 수 있는 사람인가요.
시노미야: 저는 미술하는 사람이라고 생각되기 쉽지만, 애니메이션을 하고 싶은 동기가 역시 움직임을 그리고 싶다는 욕구이기 때문에, 작화 쪽을 더 좋아할지도 모르겠네요(웃음).
전부는 아니지만 이펙트나 불꽃놀이도, 캐릭터의 연기도 수정을 넣었어요. 이번 작품에서는 원화도 가장 많이 그렸다고 생각합니다.
――과연.
시노미야: 자신이 미술하는 사람이라는 것은 특색 중 하나이기도 하니까 특별히 부정하고 싶지도 않지만, 캐릭터 디자인, 작감, TP수정, 색도 정했습니다.
마지막 화재에서 연기가 뭉게뭉게 소용돌이치는 컷은 시간이 없어서 이틀만에 이펙트를 그렸습니다(쓴웃음). 사실은 한두 달 걸려서 하고 싶었는데요.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만, 『화록청이 밝아오는 날에』 예고편을 봤을 때 조용하고 차분한 영화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주인공들이 농성하거나 자동차를 문에 부딪히거나, 이야기적으로도 표현적으로도 젊은 것이었죠. 그런 에너지가 있는 것을 만들고 싶었나요?
시노미야: 저는 차분한 걸 만들었다는 감각도 있어요(웃음). 제 감각과 다른 게 전달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네요.
제게 에너지가 남아있었다는 의미일지도 모르고.
제가 20대부터 애니메이션 업계에 있어서, 이 나이에 감독을 했다면 전혀 다른게 되었을 거라고는 생각합니다. 제가 애니메이션 첫 편을 감독한 게 2014년이에요.
그럴듯한 커리어는 없기 때문에, 아직 하고 싶은 것들이 프러스트레이션으로 남아있는 거겠죠.
――차기작을 만든다면 끌어낼게 있나요?
시노미야: 아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 안에는 큰 도전이 단계적으로 있어서, 그걸 정말로 넘을 수 있을까 하는 건 있습니다만.
――그림적인 면의 아이디어는 어떤가요. 지금은 파란색을 키로 삼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만.
시노미야: 녹색이나 파란색은, 제가 어떤 작품에서든 쓰고 있는 색이에요. "그럼 다음은 주황색과 노란색이다" 같은 식이 될까 하면, 전혀 모르겠어요.
디지털로 작업을 시작하고 "이것이야말로 내가 가장 잘하는 색"이라고 매 작품 생각합니다만, 그래도 조금씩 변하고 있습니다. 이번 작품에서도 제작 개시 초기의 색과 후반에는 쓰는 색이 전혀 다르다는 생각도 듭니다.
――다음번에도 오락 작품이 될 것 같습니까?
시노미야: 일본화가라는 직함으로 일하고 있어서 "아트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줄 알았다"는 말을 듣는 경우도 많아요. 하지만 상업 애니메이션으로 하는 이상은 엔터테인먼트로 만들고 싶고, 가능한 한 대중에게 호소하고 싶다고 생각하며 하고 있습니다. 선배 여러 분들에 대해 동경을 품고 있고 저도 열심히 하고 싶습니다.
(2025년 3월 17일 도쿄·롯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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