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 저녁 서리가 왼쪽 팔을 가누지 못했다. 다리 사이에 큰 종양이 있어서 뒷다리를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지만 팔에 힘이 완전히 없는 것처럼 고개마저 왼쪽으로 눕고 거의 힘을 내지 못했다. 아, 혹시 이게 뇌하수체종양인가 하는 생각이 스쳤다.

서리의 질병은 점진적으로 진행됐다. 처음엔 가슴팍에 작은 종양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하루가 다르게 커지고, 돈이 여유롭지도 못했지만 수술이 어려워보일 만큼 금방 악화됐다. 단기간은 이상한 악취도 났다. 그럼에도 잘 먹고, 잘 싸고, 잘 움직였기에 끝까지 곁에 있을 테니 편히 있다만 가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 다리 사이의 종양이 커졌다. 내 기억이 이상한 건지, 아님 수술을 하지 않기로 한 죄책감 때문에 제대로 보지 않은 것인지 모르지만 딱 봐도 불편해 보이는 거대한 종양이 다리 사이에 자리잡았다. 그새 가슴의 종양은 흉터지고 단단한 질감으로 굳건히 자리잡은 상태였다. 반면 다리의 종양은 말랑했으나, 그러고부터 정상과 다름없이 움직였던 서리가 어려움을 좀 겪기 시작했다. 뛰고, 달리고, 올라가는 받침목이 되어야 할 다리가 말썽이니 침대 위에 올라오는 건 고사하고 작은 계단을 오르는 것도 어려움을 겪었다. 사실 거의 바닥을 기어다녔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 시점부턴 삶에 꼭 필요한 밥, 잠을 내가 옆에서 도와줬다. 원한단 듯이 가만히 쳐다보다 내 기척이 느껴지면 고개를 들고 손을 뻗어 내게로 오려 했던 너. 나를 잘 이용해주어 고맙다. 저녁 밥시간이면 침대맡으로 나와 내가 케이지로 옮겨주길 기다리고, 밥을 한참 맛있게 먹고 멍때리다가 내가 다가가면 거의 무조건 손 위에 올라와 이동했다.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정말로.

사료나 익스, 고구마 등도 살짝 입에만 댈 뿐 잘 먹지 않아 갈비뼈, 어깨, 척추가 그대로 만져져 그때부턴 매일 쌀밥을 조리해 먹였다. 밥에 강아지 화식, 사골국물, 계란, 북엇국 등등 밥이 마르지 않게 하면서도 영양소랑 맛을 챙길 수 있는 요리를 거의 매일 했다. 가위로 아주 잘게 잘라 먹기 쉽도록 했다. 그렇게 2주 정도 새벽 동이 트기 전까지 한참을 케이지에 있으면서 밥을 싹싹 긁어 먹었다.
사랑하는 내 아가. 오늘은 몸을 못 가누는 모습을 보고 정말 주사기로 밥, 물을 먹여야 하나. 안락사를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해 봤다. 안 그래도 힘들 텐데, 배고프고 목마르게 가는 건 너무 고통스럽지 않을까 싶어서.

밥을 조금 먹었다. 요거트를 조금 먹고 그대로 누워서 쉬었다. 고구마는 안 먹었다. 저염소세지도 안 먹었다. 전에 들어올리면 엉덩이가 많이 무겁지만서도 중심을 잡느라고 꼬리를 홱홱 돌리고 다리를 허우적대 내가 다른 손으로 발을 받쳐주곤 했는데, 반응이 적었다. 그냥 순순히 옮겨졌다. 케이지 밥 앞에 두고도 여전히 머리를 가누지 못했다.
쓰러져 있다가, 잠시 후 입구로 와 있는 걸 보고 침대로 옮겼다. 새벽 6:30-7:00쯤 누워있는 서리를 쓰다듬었다. 옆에서 자던 솔피도 같이 쓰다듬었다. 반응이 적었다. 너무 적었다. 서리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좋은 곳으로 갈 거라고, 하나도 안 아프고 건강하고, 맛있는 거 많이 있고, 안전하고 어둡고, 편안하고 위험할 거 하나도 없고, 뭣보다 반드시 행복할 거라고 했다. 나는 거짓말하지 않는다고 했다. 양심에 조금 찔렸다.

가만히 누워 있었다. 나를 바라봤는진 모르겠지만 아이 바로 앞에 누워 눈을 마주쳤다. 빛이 어두워 또렷이 보이진 않았다. 고요함을 즐겼다. 숨이 약했다. 발이 차가웠다. 앞발은 괜찮았는데 뒷발이 차가웠다. 우리 집에 온 첫날부터 발이 살짝 찼으니 너도 나처럼 수족냉증이 있냐고 말하고 웃었다. 손의 온기로 발을 덥히려 했다. 계란보다도 살살 쥐었다. 뒷발을 모두 덥혔다. 앞발을 만졌다. 뒷발과 거의 비슷하게 찼다. 앞발도 덥혔다.

이제 됐다며 이불 속으로 들어가려는 듯 고개를 돌리고 몸을 뒤집어 몇 센치 이동했다. 아니 거의 굴러갔다. 대각선으로 배를 보이고 누웠는데, 갑자기 허공에 뒷발길질을 했다. 가려운 곳에 안 닿는 건 자주 봤기에 여기가 가려워? 하고 귀 뒤를 긁어줬다. 헛발길질을 계속 했다. 나는 계속 긁었다. 그러다 앞발도 흔들었다. 뭔가 이상했다. 그대로 뒤로 누워 있었다. 이불에 살짝 가려진 얼굴을 보았다. 눈이 떠져서 감기지 않았다. 많이 이상했다. 아이를 불렀다. 믿을 수 없었다. 믿기지 않았다.
부드러웠다. 따뜻했다. 생전과 똑같았다. 몇 분간은 계속 만지고 불렀던 것 같다. 울음이 나서 코가 살짝 막혔다. 냄새를 기억하기 위해 울음을 참았다. 냄새를 맡았다. 살짝 구수한 냄새와 털냄새, 엉덩이에선 친숙한 지린내가 조금 났다. 울음이 나왔다. 크게 울 수 없어 온몸에 힘을 줬다. 아이는 생전과 그대로 있었다. 발바닥의 색이 조금 빠졌지만 온기가 있었다. 냄새가 있었다. 부드럽고 말랑했다. 내가 아는 서리 그대로였다.

힘이 완전히 빠져서 평소보다 훨씬 부드러웠다. 영화에서 보면 눈꺼풀을 감겨주던데, 감기려 해도 눈이 떠졌다. 그렇게 어루만졌다. 온몸을 쓸어줬다. 아직 너무 소중했다. 계란 다루듯 만졌다. 잊지 않기 위해 모습의 사진을 찍었다. 예뻤다. 내가 아는 서리 그대로였다. 한참 자던 솔피를 깨웠다. 서리에게 인사하라고 했다. 솔피는 내 입을 검사하곤 멀뚱멀뚱 바라봤다. 서리를 보았다. 서리의 발톱을 살짝 깨물고 눈꺼풀을 그루밍했다. 잠깐 눈알을 건드는 건줄 걱정했다. 솔피는 괜찮아 보였다. 쥐들의 세계에선 당연한 걸까? 아주 친하진 않아서인가? 미리 알고 있었나? 슬프진 않은가? 아무튼 평소와 다름없어 보였다. 그리고 솔피는 바로 자러 갔다.

준비해야 했다. 찾아보니 데려가기 전까지 비닐에 이중밀봉해서 서늘한 곳에 아이스팩을 대고 보관하라고 한다. 그렇게 했다.
차가운 베란다에 데리고 나와 앉았다. 비닐에 카드보드지를 대어 부목처럼 쓰려고 했다. 상자를 자르다 서리를 보았다. 잠깐 사이에 너무 푸르렀다. 입술이 너무 파랬다. 다리의 종양도 파랬다. 회푸른 피부가 되었다. 털은 여전히 부드러웠다. 살은 말랑하고 꼬리도 부드러웠다. 안고 울었다.

하나님을 잠시 찾고 자연스래 기도했다. 많이 울었다. 너무 사랑하는 사랑했던 내 아기. 나한테 와 줘서 고마워. 다음 생엔 반드시 더 행복하길

날이 추우니 감기 조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