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포드의 국제유대인    


The International Jew : The World's Foremost Problem  


서문

 이 책은 유대인 문제에 대한 포괄적인 심층 조사서이다.

제1권. 국제유대인     

 "유대인이야말로 인류 역사상 가장 경탄을 금치 못하게 하는 민족이다. 고금을 막론하고 생존문제에 직면했을 때마다 그들은 거의 불가사의한 직관으로 인간본성,자연성,현실, 그리고 세계의 내면과 외면을 위조해왔다. 생명의 자연적인 존재조건에 반하는 관념들은 모두 그들의 의식세계에서 잉태된 것이다. 그들은 하나 둘씩 종교,문화,도덕,역사, 그리고 인간정신을 복구가 불가능할 정도로 본연의 의미와는 반대되는 것으로 바꿔 놓았다. 모든 것을 왜곡,전복할 수 있는 능력으로 말미암아 유대인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운명적인 민족이다." - 니체. <안티 크리스트>.


 1. 유대인의 성격과 비즈니스 - 디어본인디펜던트 1920.5.22.

 유대인은 2천년 이상 반유대주의에 시달려 왔지만, 원인이 제대로 설명된 적이 없었다. 그들이 겪은 박해의 원인을 제대로 규명하고자 한다.

 "유대인은 장사를 좋아한다." 유대인을 그 어떤 민족보다 잘 기술해주는 말이다. 어떤 민족보다 생산근로고용직을 혐오하는 반면, 장사는 두 팔을 벌려 환영한다. 비유대 소년은 대개 생산직 또는 기술직 업무를 통해 회사에서 승진한다. 그러나 유대인 소년은 대개 통신원,판매원,사무원 등 무슨 일이든 회사의 상업적 측면에 관련된 일을 선호한다.

 유대인의 민족사를 보면, 디아스포라 이전의 유대인은 대개 농민,유목민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나라도,정부도 없이 만국에 흩어져 어느 나라에서든 어떤 식으로나 차별을 당하는 유대인이 세계의 비공식적 군주로 지목받고 있다. 어떻게 이렇게 기이한 상황이 도래하게 된 것일까?

 민족적 정체성이 형성되기 시작할 무렵 유대인은 사회에서 금권귀족층이나 극빈계층의 출현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법 아래 살고 있었다. 이상적인 사회체제의 모델을 찾는 요즘시대의 개혁가들은 아마 초창기의 유대인 사회를 연구해보면 좋을 것이다. 모세의 율법 하에서는 오늘날에 존재하는 것과 같은 금권귀족의 출현이 불가능했다. 이자를 취하는 행위를 금지했기 때문이다.

 모세율법 아래서는 타인의 고통을 담보로 지속적인 이윤축적이 불가능했다. 유대인 사회체제는 부당한 이윤추구와 투기에 관대하지 않았다. 소수가 토지를 독점하는 일도 없었다. 땅은 사회구성원들 사이에 공평히 분배되었다. 비록 부채나 경제적 어려움 탓에 토지소유권을 상실하는 일도 있었겠지만, 매 50년마다 토지소유권은 원래의 주인이나 가족에게 돌아갔다. 희년(The Year of Jubilee)은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되는 해였다.

 이러한 사회체제 하에서는 대지주나 금권귀족층의 부상이 가능하지 않았다. 물론 짧지 않은 50년이란 기간은 더 창의적이고 근면한 사회구성원들이 공정한 경쟁을 통해 자신의 삶을 개선할 충분한 시간을 부여했다. 그러므로 만약 유대인이 모세율법을 따르는 팔레스타인의 일개 국가로 존속해 왔다면 유대인이 오늘날처럼 세계금융의 군주로 치부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유대인은 동족들간의 경제활동으로 부자가 된 적이 없다. 이는 근대에 들어서도 마찬가지다. 결국 유대인의 부란 그들이 거주하게 된 이방인의 국가와 그 나라의, 국민들에게서 나온 것이다.

 유대인의 법은 비유대인과 거래하는 유대인에게 이중적인 잣대를 허락한다. 이방인의 법(Law of the Stranger)에 의하면 유대인은 동포에게 이자를 받고 돈을 대출할 수 없지만, 비유대인에게는 같은 행위가 허락되는 것이다. 유대인은 이방인의 법을 수백 년 동안 활용해왔다. 대개 잔혹하리만큼 유대인에게 적대적인 이방민족의 나라에 거처하게 된 유대인들에게 이러한 거래행태는 금전적 이득 뿐만 아니라 보복적 차원에서 정신적 만족감을 동시에 가져다 주는 것이었다.

 유대인 디아스포라는 바빌론 유수 이후 2천5백년 동안 이어져 오고 있다. 만약 유대인이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하고 임금을 받는 직업을 선호하는 민족이었다면 유대인 디아스포라는 그렇게 광범위하게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누구에게 묶여 있는 피고용인이 아니라, 스스로를 위해 일하는 상인이었기에 유대인은 사람 사는 곳이면 어디든 발을 디뎠다.

 오래 전 유대인은 중국에도 있었다. 우리의 청교도 조상들이 플리머스 락에 상륙하기 100년 전, 유대인 상인들은 이미 남아메리카에 정착하고 있었다. 유대인들에 의해 세인트토머스 섬에서 사탕수수 재배가 시작된 것도 1492년의 일이었다. 미국의 동부연안을 따라 소수의 식민지들만이 존재했던 시기에도 유대인은 브라질에 확고히 자리잡고 있었다. 그들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아메리카 대륙에 퍼져 있었는지는 미국 조지아 주에서 태어난 첫 번째 백인 아이가 아이작 미니스라는 유대인이었다는 사실이 입증해준다.

 그들의 성공에 지대한 공헌을 한 유대인의 또 다른 재주 하나는 비즈니스 활동에 유용한 도구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유대인이 세계무대에 등장하기 전, 비즈니스는 투박한 수준에 머물렀다. 오늘날 비즈니스 활동이 원활하고 효율적으로 진행될 수 있게 해주는 장치들의 대부분은 유대인들이 만들어 낸 것이다. 가장 오래된 환어음은 시몬 루벤스라는 유대인이 발행한 것이다. 어음,무기명채권,증서,수표 등도 유대인의 발명품이다.

 이 무기명증서들에는 흥미로운 역사적 연고가 있다. 역사에서 유대인들은 그들을 적대시하는 비유대인들에게 재산을 강탈당하는 일이 빈번히 일어났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유대인들은 곧 회복해 다시 부자가 되었다. 재산을 무기명증서들을 통해 은닉해두었기 때문이다.

 주식시장 또한 유대인의 금융적 재능이 만들어 낸 산물이다. 베를린,파리,런던,프랑크푸르트에 최초의 주식시장을 세운 것도 유대인이었다. 무역과 금융으로 번성했던 시절의 베니스와 제노아 또한 공공연히 유대인 도시로 불렸다. 英蘭銀行은 네덜란드에서 건너간 유대인 거상들의 권고와 원조로 설립되었고, 암스테르담은행,함부르크은행의 설립과정도 다르지 않다.

 유대인이 한 나라를 떠나 또 다른 나라에 정착할 때마다 대륙의 금융과 상업의 중심지가 그들을 따라 이동했다. 유대인이 스페인에서 자유롭게 살았던 시절, 스페인은 세계 金 거래 중심지였다. 그러나 스페인이 유대인을 추방한 뒤 스페인은 금융적 리더십을 상실했고, 회복하지 못했다. 유럽 무역과 상업의 본거지는 스페인,포르투갈,이탈리아,네덜란드,독일,영국으로 이동했다. 경제중심지의 이동은 스페인이 유대인 추방과 같은 시기에 일어났다. 유대인이 이동할 때마다 세계 귀금속 거래의 중심지 역시 이동했다.

 세계에 분산되었음에도 유대인은 혈연,신앙, 그리고 공통된 박해와 시련의 경험을 통해 어느 민족이나 상인집단에게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국제적 연대를 유지했다. 전 세계에 퍼져 있는 것은 미국인,러시아인 역시 마찬가지이지만, 유대인처럼 지속적으로 연락을 취하며 단결하지는 못한다. 유대인은 상업관련 국제기구들이 존재하기 이전 시절부터 이미 그들만의 독자적인 민족적 정체성을 구심점으로 잘 조직되어 있었다.

 중세 문헌들을 보면 유대인은 유럽의 정부들보다 유럽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는지에 대해 더 잘 알고 있었다는 얘기가 자주 나온다. 유대인은 또한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국가별 내부형편이 어떠했는지 그 나라의 정치지도자들보다 더욱 소상히 일고 있었다. 유럽 각국의 유대인 사회는 서신교류를 통해 이러한 정보들을 공유했다. 이러한 방식을 통해 획득한 정보는 분명 유대인들이 벌였던 투기성 사업들의 성공에 결정적 공헌을 했을 것이다. 사전지식의 가치는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잘 조직된 국제적 협력 네트워크에 힘입어 유대인 금융가들은 유럽국가들의 차관을 알선하고 중개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유대인 금융가들에게 한 개인이나 일개 회사가 아닌, 국가라고 하는 큰 고객은 언제나 환영의 대상이었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유대인 국제금융가들을 비난하는 이유도 이들이 여전히 국가들과 민족들의 운명을 담보로 삼는 이윤추구에 치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 세계를 포괄하는 국제금융시스템을 살펴볼 때마다 그 배후에는 어김없이 유대인 자본가들, 유대인 금융가문들, 그리고 이들이 지배하는 중앙은행제도가 발견되기 때문에, 논란의 소지가 많은 이 인종적 요소가 유대인 문제라는 담론에 엮여질 수 밖에 없다. 어느 나라를 가든 유대인에 대한 주인민족들의 반감은 저주처럼 따라다닌다.

 단 한시도 유대인이 인기있는 민족이었던 적은 없다. 물론 남들의 호감을 살만한 자질 덕에 개인적으로 인기가 있었던 유대인들이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한 집단으로서 유대인이 환영받는 존재였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또한 유대인 역시 비유대인 민중과 친해지기 위한 노력을 거의 하지 않는다.

 유대인은 자신들이 거처하게 된 나라의 왕과 귀족들과의 관계를 다지는데 주력했다. 왕과 귀족들을 친구로 두었는데, 민중이 유대인에게 이를 갈던 무슨 걱정일까? 그러므로 역사에 등장하게 되는 것이 바로 궁정유대인(court jew)이다. 유대민족에겐 아무리 암울한 시기였다 해도 유럽의 궁정들에서 유대인이 사라진 적은 없었다. 왕과 귀족들의 재정적 문제를 해결해줌으로써 이들 궁정유대인은 항상 권력자들과 지근거리에 있었다.

 유대인의 정책은 "항상 최고위층만 상대한다."는 것이다. 유대인이 러시아 궁정에 접근한 적은 있지만, 이들이 러시아 민중과 친해지려 한 적은 없었다. 유대인이 독일 민중과 친해지려 노력한 적은 없었지만, 이들은 독일 궁정 요소에 진출해 있었다. 영국에서 영국 민중의 반유대감정이 폭발할 때에도 유대인은 그저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사실 영국의 귀족들을 발꿈치로 누르고 있으며 그 나라의 돈지갑을 움켜쥐고 있는 유대인이 아니던가?

 유대인의 변화에 적응하는 능력과, 끊임없이 새로운 사업방식을 고안해내는 창의력 또한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현지실정에 맞는 방향으로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국외에 지사를 설립하는 것도 유대인들이 처음 시작한 일이다.

 유대인들이 시초한 新개념 사업방식의 또 하나는 관련 산업들을 한데 묶어 경영하는 것이다. 예컨대 전력회사를 인수한 다음에는 전기로 운행되는 전동차 회사도 인수한다. 내세우는 이유인즉, 전략생산부터 전동차 운행까지 발생하는 단계적 비용들을 절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통합된 사업라인을 통해 경영진은 전력가격을 인상시켜 전동차 회사에 부담을 지우고, 전동차 회사는 탑승가격을 인상해 승객들에게 부담을 지우는 식으로 추가적인 이윤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최종소비자를 상대하는 사업부문 경영진은 가격인상이 경제환경의 변화에 따른 것이라고 변명할 뿐, 전력회사의 전력가격 인상이 실제 이유라는 얘기는 하지 않는다.

 오늘날 세계에는 분명 세계지배를 목표로 하는, 방대하고 매우 잘 조직된 게임을 벌이고 있는 구심체적인 금융세력이 존재한다. 소위 경제이론이라고 하는 것들을 내세워 많은 현상들을 설명하려 하지만, 사실 이런저런 비정상적인 현상들의 대부분은 특정한 목표와 이윤을 추구하는, 세계적 권력을 지닌 한 소수집단의 이기심에 기인하는 것이다.

 금융은 국제적이다. 그리고 국제금융은 경쟁의 원칙에 의해 가동되는 것이 아니다. 일부 독립적인 은행들이 존재하지만 영향력은 미미하다. 계획의 전체그림을 숙지하고 있는 소수의 대금융가들은 휘하에 거느리는 수많은 은행들과 트러스트 회사들을 움직여 이런 목표와 저런 목표를 달성하고, 이 과정에서는 서로간의 경쟁도, 분쟁도 없다.

 사람들은 공장주,생산관리자 등 노동자에게 일터,생산도구,일감을 제공하는 경영진을 자본가로 치부하는데, 이는 큰 오해다. 경영자 위에 군림하는 이 자본가 권력은 경영자가 노동자를 상대로는 감히 생각조차 할 수 없을 정도의 냉담함과 무자비함으로 경영자와 노동자를 다룬다. 勞와 使가 스스로는 해결할 힘이 없는 문제들을 두고 끊임없이 대립하고 반목하는 것은 참으로 이 시대의 비극이라 아니할 수 없다. 문제의 근본 해결책은 이러한 불행한 상황을 조장하고 통제하는 국제금융가 집단으로부터 금융권력을 빼앗아 오는 것 밖에는 없다.

 오늘날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金만이 진정한 부라는 거짓말에 의해 지탱되고 있는 超자본주의다. 이를 바탕으로 만국 위에 군림하며 세계의 모든 정부들에 손을 담그고 있는 超국가적인 정부가 있다. 그리고 이 超국가적인 정부는 이제까지 단 번도 인류의 일원으로서 환영받았던 과거가 없는, 또한 그 어떤 민족도 성취하지 못했던 차원의 세계권력을 획득한 유대인의 것이다. 超국가적,超자본주의적 국제유대인 정부의 문제가 먼저 해결되지 않고서는 노동문제,임금문제,토지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

 "전리품은 승자가 독차지하는 것이다."라는 옛말이 있다. 맞는 말일 수도 있다. 유대인이 슈퍼맨이 아닌 이상,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불행한 일들에 대한 책임은 그런 일들이 일어나도록 방관하고 있는 비유대인들에게도 있다.

 

 2. 독일과 유대인 - 디어본인디펜던트 1920.5.29.

 지금 독일이 앓고 있는 질병의 주된 근원으로 유대인이 지목되고 있다. 전 계층의 독일국민은 휴전에 이은 독일제국의 붕괴와 나라의 재건을 가로막고 있는 좌익혁명의 주범이 유대인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방대한 분량의 증거를 제시한다. 손님이 주인이 되고자 함으로써 진정한 주인을 화나게 만들었다. 독일인과 유대인만큼 기질적으로 상반된 민족도 없을 것이다.

 유대인은 독일인을 증오했고, 지난 전쟁 동안에도 유대인이 득세한 나라일수록 독일에 대해 도가 넘는 증오심을 표출했다. 이들 나라에서 국민을 상대로 독일에 대한 적개심을 고취시키고 중상모략을 퍼부었던 자들은 대부분 유대인 언론들이었다. 이 전쟁의 유일한 승자는 유대인이었다.

 독일인들이 제시하는 증거들을 살펴보면, 카이저의 왕정이 무너진 직후, 새 정부의 6인 내각은 국무부를 장악한 유대인 Haase와 Landsberg가 주도했다. Haase는 또한 외무부장관을 겸직했고, 차관은 체코 출신의 유대인 Kautsky였는데, 1918년까지 그는 독일국민도 아니었다. 재무부 장관과 차관도 유대인이었다. 내무부 장관과 차관도 유대인이었다. 정부언론담당 에이전트도 유대인이었다.

 베르사유 평화회의에서 독일을 대표했던 3인 중 2명이 유대인이었고, 나머지 1명은 유대인의 하수인으로 이름 난 인물이었다. 게다가 독일대표단에는 맥스 워버그 등 많은 수의 유대인들이 고문과 국제문제 전문가 자격으로 참여했다. 영국,미국,프랑스 등 주요국 대표단들 역시 유대인들로 들끓었다. 평화회의가 유대인 일색이었다는 것이 수많은 비유대개 옵저버들의 한결같은 증언이었다. 그러나 유대인 언론인이나 저술가는 베르사유 평화회의를 논하면서 이와 같은 사실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전쟁 동안 독일에 사는 유대인들은 독일의 애국자가 아니었다. 이는 자신들이 거주하는 나라에 그 나라 국민들 못잖게 충성한다는 유대인들의 주장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든다. 유대인들이 독일에서 1918년 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과연 그와 같이 권좌에 오를 수 있었을까? 유대인들이 아니었다면 과연 독일에서 좌익혁명이 일어났을까?

 독일의 기존질서를 붕괴시킨 유대인의 주된 영향 4 가지는 다음과 같다.

 1) 독일 사회주의로 위장했던 볼셰비즘.

 2) 유대인의 언론매체 독점.

 3) 유대인의 식량 및 생필품 산업 독점.

 4) 최상부에서 이 모두를 주재하고 조율하는 독일의 유대인 금융가들.

 전쟁발발 후 채 2년이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독일의 유대인들은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부상하려면 독일이 이번 전쟁에서 꼭 패전해야 한다고 공공연히 설교하고 다녔다. 나라 어디에서든 독일이 전쟁에서 승리하면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무산될 것이라는 프로파간다가 유대인들에 의해 퍼져 나갔다. 이와 같은 사례들은 어떻게 독일의 유대인들이 독일에 충성하기보다는 나라 밖의 동족과 연대해 독일에 혼돈을 야기하고, 붕괴시키고, 직후의 혼란을 틈타 집권에 성공했는지를 보여 준다.

 전쟁발발 직후부터 유대인들은 독일정부의 군수품 관련부서, 은행, 군수회사, 유통조합 등을 대거 점령해 갖은 수단을 동원해 부당이득을 취하고 투기를 일삼았다. 흔하던 생필품이 자취를 감추었다가 얼마 후 고가의 가격표를 달고 재등장하는 일이 되풀이되었다. 전시 국민들에게 식량과 생필품을 공급하도록 약정된 회사들은 모조리 유대인들의 소유였다.

 이러한 행태가 국민 사기에 악영향을 미치자 독일정부는  단속에 나섰다. 그러나 유대인들을 처벌해야 할 위치에 있는 검사,판사도 유대인인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자연히 조사는 지지부진했고, 사건은 유야무야 종결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럼에도 피의자가 독일인인 경우에는 온 나라의 언론이 달려들어 사건을 낱낱이 보도했고, 피의자는 중형을 선고받았다. 독일로 여행을 가보면, 어느 지역이든 보통 독일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독일인들이 전쟁기간 동안 유대인들의 권력남용으로 얼마나 큰 마음의 상처를 입었는지 알게 될 것이다.

 돈 많은 유대인은 대개 독일의 지배층이나 국가전체의 이익관련 산업들에 대한 금융권력을 손에 넣음으로써 사회적 지위와 명성을 얻었다. 돈 없는 유대인은 민중을 선동해 사회에 혼란을 야기하고, 혼란을 이용해 한 나라를 정복하고, 부와 권력을 획득하는 데 골몰한다. 유대인은 태생적으로 무정부주의자가 아니다. 유대인에게 무정부주의는 단지 그들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가난한 유대인들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다. 만약 가난한 유대인이 선동한 무정부주의가 성공한다면 그는 돈과 권력을 지닌 유대인의 반열에 오를 것이고, 실패한다 해도 그가 야기한 혼란은 부자 유대인에게 새로운 돈벌이 기회를 제공할 것이기에 유대인은 잃을 게 없다.

 많은 나라들이 경험을 통해 체득했듯이, 러시아 또한 유대인을 그들이 국가와 사회에 해악을 끼칠 수 없는 사회적 지위에 묶어 두었다. 지상의 국가들 또한 유대인을 상대로 장벽을 쌓았다. 그러나 근대에 이르러 유대인은 장벽을 부수고 나라를 혼란과 무질서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뒤 폭동과 반란을 통해 그들이 오랫동안 탐내 왔던 그 나라의 권좌를 탈취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러시아의 왕정이 무너진 직후 등장한 이가 누구였던가? 케렌스키라는 유대인이었다. 그러나 그는 충분히 급진적이지 못했고, 그의 뒤를 이어 트로츠키라는 또 다른 유대인이 등장했다. 미국의 공고한 사회체제 앞에서 좌절했던 트로츠키가 러시아의 취약점을 파고들어 마침내 혁명을 성공시켰고, 이제 더 나아가 세계를 상대로 모든 나라와 국민을 병들게 만드는 공산주의를 퍼뜨리기에 이른 것이다.

 오늘날 적화된 러시아에서 정치위원들은 죄다 유대인이다. 러시아 민중을 선동해 나라에 무질서와 혼란을 불러오고, 이 와중에 합법적 정부를 끌어내린 뒤, 미리 계획한 듯 유대인들이 일제히 권력의 자리에 오른 것이다.

 독일에서도 똑같은 일이 일어났다. 가난한 유대인들이 그들의 야심을 채우기 위해서는 독일주의라는 천정을 파괴해야 했다. 이제 이 일에 성공한 유대인들이 독일국가의 최상층에 모여들어 독일국민들 위에 군림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같은 일들을 보면 왜 유대인들이 전 세계에 걸쳐 공산주의나 무정부주의 같은 파괴적,체제전복적 정치운동들을 주동하고 있는지 설명될 것이다.

 미국에서도 급진적 이념을 퍼뜨리는 집단은 유대인으로,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미국은 온갖 착취와 불의가 판을 치는 존재할 가치도 없는 나라다. 그들은 자본주의를 타도해야 한다고 떠들지만, 그들이 실제로 의미하는 것은 비유대인의 자본이요, 비유대인의 정부요, 비유대인의 권력이다. 사실 세계에서 자본가라고 할 만한 사람들이 유대인들 말고 누가 있나? 자본주의를 타도하자는 유대인 공산주의자들의 선전활동은 거짓말이다. 이들의 목표는 비유대인들에게 남아있는 자본과 권력을 빼앗는 것이다.

 러시아혁명(1917),독일혁명(1918)이 보여 주듯, 부자 유대인은 나라의 상층부를 상대로, 가난한 유대인은 일반대중을 상대로 일을 벌인다. 그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국가의 최고권력을 수중에 넣는 것이다. 독일인들이 내린 결론은 이러한 것이다. "혁명은 유대인이 지닌 권력에 대한 의지의 표현이다." 이에 있어 비유대인 사회주의자,민주주의자,자유주의자 따위는 자신들의 득세를 위해 유대인이 이용하는 쓸모있는 바보들이다. '프롤레타리아 계급독재'라는 것도 사실은 유대인의 독재를 의미하는 것이다.

 어쨌든 지난 세계대전과 이후 러시아,독일에서 일어난 일들을 볼 때 유대인과 관련해 주목해야 할 사실들은 다음과 같다.

 1) 유대인은 지구상 가장 밀도있게 조직된, 대영제국보다 더 강력한 권력체다. 유대인은 어디에 살든, 부자든 빈자든 이 유대인 국가(All-Judaan)에 무조건 충성한다.

 2) 유대인 권력체(All-Judaan)는 자본,저널리즘, 즉 돈과 프로파간다를 통해 권력을 유지,행사한다.

 3) 세계정부의 역량을 지닌 국가는 오직 유대인국가(All-Judaan) 밖에 없다.

 4) All-Judaan의 주된 문화는 저널리즘적인 것으로, 근대 유대인의 기술적,과학적,문화적 성과는 모두 유대인의 이 저널리즘적 활동에 의존한다. 저널리즘에 있어 유대인의 성공은 관념적인 것들에 대한 그들의 신속한 이해력에 기반한다. 유대인의 자본과 저널리즘적 재능은 서구언론이라는 영역에서 집결되며, 이 언론은 All-Judaan의 정치,경제,사회,문화적 프로파간다 매체로 활용된다.

 5) All-Judaan은 매우 잘 조직되어 있다. All-Judaan의 최초 수도는 파리였으나 지금 파리는 제3의 수도다. 전쟁 전에는 런던과 뉴욕이 각각 제1과 제2의 수도였다. All-Judaan의 수도가 영국에서 미국으로, 런던에 서 뉴욕으로 옮겨질 지는 아직 두고 봐야 할 일이다.

 6) All-Judaan은 자체적인 상비 육군과 해군을 보유할 수 없는 처지에 있으므로 이 유대인 국가는 다른 나라들의 군대를 이용한다. 대영제국의 해군이 바로 All-Judaan의 해군으로 전 세계에 분산되어 있는 국제유대인의 이해관계를 보호해준다. 이에 대한 보답으로 유대인 국가는 전 세계에 대한 대영제국의 헤게모니를 위해 재정적,정치적,외교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이번 전쟁으로 팔레스타인이 영국의 지배 하에 들어갔다. 어느 나라의 군복을 입고 있든, All-Judaan에 봉사하는 육균은 항상 영국의 해군과 함께 움직인다.

 7) All-Judaan은 주요 국가들의 정부를 조종하는 일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 All-Judaan은 또한 비유대인들의 세계가 민족적 경계선을 따라 조각나 있는 것을 열렬히 성원한다. 한편 유대인은 그 어느 민족과도 동화되지 않는다. 유대인은 항상 따로 거하는 민족이었고 앞으로고 그럴 것이다.

 8) 어느 국가가 자국의 산업적,금융적,천연자원적 수익에 대한 유대인의 착취를 거부할 경우 그 나라는 All-Judaan과 분쟁에 빠지게 된다. 이럴 경우 All-Judaan은 자신의 지배 하에 있는 나라들을 동원해 그 국가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킬 수도 있고, 혁명으로 그 나라의 권력층을 제거할 수도 있다. 세계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All-Judaan은 유대인과 유대인의 계획에 맞도록 국가들 사이에 권력을 배분한다.

 9) 서구언론을 지배하고 있는 All-Judaan은 무슨 일을 벌이기에 앞서 항상 비유대인 대중의 마음을 준비시킨다. 그들의 지배 하에 있는 각종 매체들을 동원해 그들의 목적에 맞도록 비유대인 대중의 의식을 형성하고 여론을 주도한다. 누군가가 나서서 유대인의 이러한 언론지배나 여론조작을 고발하면 유대인에 대한 박해라고 전 세계가 들을 수 있을 만큼 큰 소리로 떠든다. 유대인에 대한 반감의 원인은 비유대인에 대한 유대인의 금융적 억압과 착취이지만, 이 사실에 대해서는 철저히 함구한다.

 10) All-Judaan의 양대 본산은 런던과 뉴욕이다. 국민들이 양선하고 타민족,타인종에 관대한 미국은 유대인에게는 매력적인 정복대상이다. 아마도 미국이 유대인의 다음 주무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주무대는 변할지 몰라도 유대인은 변하지 않는다.


 3. 미국에서의 유대인 역사 - 디어본인디펜던트. 1920.6.05.

 "미국주의란 증류된 유대인의 정신이다." - 베르너 좀바르트. <유대인과 근대자본주의>.

 1492년 8월 2일, 30만 명의 유대인이 스페인에서 추방되었다. 다음날 8월 3일 콜럼버스는 일단의 유대인들이 포함된 선단을 이끌고 서쪽으로 항해를 시작했다. 배에 탄 유대인들은 콜럼버스의 계획에 큰 관심을 갖고 있었던, 스페인의 영향력 있는 유대인들이었다. 콜럼버스 자신도 항해의 성사를 위해 유대인들과 긴밀히 협력했음을 증언한 바 있다. 신세계의 발견을 알리는 그의 첫 번째 편지도 한 유대인에게 보낸 것이었다.

 이사벨라 여왕이 보석을 팔아 콜럼버스의 항해에 돈을 댔다는 얘기는 사실과 다르다. 당시 스페인 궁정에는 영향력 있는 유대인 세 명이 있었는데, 이들은 표면적으로는 기독교로 개종했지만 속으로는 유대교 신앙을 간직한 마라노(Marrano) 혹은 비밀유대인들이었다. 발렌시아 지방의 거상으로 스페인 정부를 위해 세금을 거둬들이는 일도 담당했던 루이스 산탕겔, 그의 친척이자 스페인의 재무장관이었던 가브리엘 산체스, 그리고 이들의 친구로 스페인 왕의 시종이었던 후안 카브레로였다.

 이 세 사람은 이사벨라 여왕을 상대로 재정적자의 위험을 경고하는 한편, 인도와의 무역으로 스페인이 벌어들일 수 있는 수익에 대한 여왕의 상상력을 끊임없이 자극했다. 마침내 여왕의 재가가 떨어졌을 때 항해비용을 전담하겠다고 나선 이는 산탕겔이었다. 그는 모든 비용을 변제하고도 남았을 거금 17,000듀카트를 내놓았다.

 이런 가운데 최소한 5명의 유대인이 콜럼버스의 항해에 직접 참여했다. 천문학적 항해도구들과 지도들 역시 유대인들이 제작한 것이었다. 신세계에 첫발을 내딛은 유대인 토레스는 서구인 최초로 담배를 발견했다. 이후 쿠바에 정착해 담배생산에 뛰어든 그는 오늘날 유대인이 지배하는 담배산업의 시조라 할 만하다.

 산탕겔,산체스는 콜럼버스의 항해를 후원한 보상으로 많은 부와 더 높은 지위를 얻었지만, 정작 콜럼버스는 항해에 동참한 유대인 의사 베르날이 꾸민 음모의 희생양이 되어 투옥되는 처지에 이른다.

 아메리카 대륙은 유럽 유대인들에게 매력적인 이주대상으로 부상했고, 많은 유대인들이 남아메리카, 특히 브라질에 이민해 정착하게 된다. 그러나 이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포르투갈과 네덜란드의 분쟁으로 브라질을 떠나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브라질을 등진 이 유대인들은 1654년 네덜란드의 식민지였던 오늘날의 뉴욕에 도착했다.

 그러나 당시 뉴암스테르담 총독 피터 스타이브센트는 유대인을 좋게 보지 않았고, 유대인의 공직진출이나 상점개업을 금지했다. 그로 인해 유대인들이 눈을 돌리게 된 쪽이 무역업이었는데, 그들은 유대인 특유의 국제적 커넥션을 활용해 곧 뉴욕의 해외무역을 독점하게 된다.

 조지 워싱턴 시대의 미국에는 약 4천 명의 유대인이 살고 있었다. 그러나 유대인은 미국인이 되지 않았다. 그들은 당시의 미국인들처럼 고용직에 취직하거나 농사를 짓거나 뭘 만들어 내지 않았다. 그들은 오직 미국인들이 생산한 농작물과 상품을 사고팔 뿐이었다.

 지난 50년간 미국의 유대인 인구는 5만 명에서 330만 명 이상으로 폭증했다. 현재 영국에는 30만, 팔레스타인에는 10만 정도의 유대인이 살고 있다. 현재 세계의 유대인 인구는 1,400만 명으로 한국과 비슷하다.

 유대인이 제조업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근래의 일이다. 그나마도 마케팅 차원의 일환으로 제조업에 눈을 돌렸다고 할 수 있다. 상품을 직접 제조하면 비용이 절감될 뿐 아니라 추가적 이윤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유대인이 제조업에 뛰어들면서 상품가격이 오르고 소비자에게 부담이 전가되었다는 사실이다. 유대인은 사업을 단순히 돈을 버는 방법으로 볼 뿐, 사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서는 무신경이다. 제반 경제환경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설명도 없는 가격폭등이 관찰되는 품목은 대개 유대인들이 생산에 관여하는 경우다.

 유대인에게 비즈니스는 오직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다. 유대인의 이윤추구에 있어 인정이니 도리니 하는 이상주의적인 발상은 설자리가 없다. 노동자들의 열악한 상황에 아픔을 느껴 자발적으로 노동조건 개선에 나서는 것과 같은 일은 유대인에게선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비즈니스의 요체는 상품과 돈이지 사람이 아니라는 시각이다. ☞ 이주국가에 동화되지 않고, 나그네 민족을 자처하는 유대인들에겐 당연한 비즈니스관이다. 오늘날 이러한 유대적 비즈니스관이 경영학에 깊이 스며들어 있다. 자회적 책임을 외면하는 주주가치의 극대화 관념이 대표적이다.

 만약 어느 유대인이 당신이 곤경에 빠져 고통받고 있는 모습을 보면 연민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 그 유대인이 차압해야 할 당신의 집이 관련되어 있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당신의 곤경과는 상관없이 그 유대인은 당신의 집을 차압하는 것이 사업상 정의로운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매정하다는 비난에도 그 유대인은 수긍하지 않을 것이다. 유대인에게 이 모두는 그저 비즈니스일 뿐이다.

 유대인 부호들의 자선활동 자체는 칭찬받을 만하다. 그러나 그들이 번 돈을 자선을 베풀기에 앞서 그들의 경영방식이 적잖은 사회문제들을 만들어 내고, 이로 인해 그들과 같은 부호들의 자선행위가 절실해지는 상황이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유대인 부호들 중에는 자선활동으로 명성을 쌓은 이들은 많아도, 산업을 생산에 있어 좀더 인간적이고 이윤분배에 있어 보다 공정한 것으로 만드는 데 기여한 유대인은 없다.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유대인이 비유대인의 미움을 받는 것이다. 유대인은 일단 자신의 수중에 들어온 돈으로 자선을 베푸는 일은 있어도, 돈을 버는 과정은 철저히 이기적이다. 설령 유대인에게 악의적 동기가 없었고, 그것이 단지 유대인의 냉정한 사업관에 기인한다고 해도 유대인의 축재방식은 똑같은 반사회적인 결과들을 초래한다. 단순히 인간적인 도리에 입각해 노동자들의 처우를 개선하는 것은 유대인에겐 1달러짜리 물건을 아무 이유없이 2달러를 지불하고 구입하는 것만큼 정신 나간 짓이다. ☞ 뜨내기 민족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방기하고, 오직 이기적 비즈니스만 고집하기에 미움받는다.

 미국의 유대인은 미국인이 되지 않는다. 유대인은 원한다면 얼마든지 미국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원하지 않는다. 유대인은 동화되지 않는다. 일부 유대인은 비유대인들이 그들을 받아 주지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하지만, 융화를 거부하고 자신들만의 분리된 정체성을 유지하는 건 유대인들 스스로의 선택이다. 이런 가운데 스스로를 미국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유대인들이 이 나라의 주요 산업들을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은 주목을 요한다. ☞ 한 나라의 국민임을 자처하지 않고, 사회적 책임에 무심한 자들이 사회를 재배할 때는 심각한 문제가 된다. → 1868년 흥선대원군의 아버지인 남연군 분묘 도굴사건을 일으킨 상인 오페르트는 독일 태생의 유대인이었다.

 희생과 노력의 정당한 보상인 번영은 지배와 다르다. 남북전쟁의 결과로 부상한 유대인의 미국의류산업 독점은 단지 유대인의 번영 뿐만 아니라 지배를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유대인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노력하고 땀을 흘리면 성공과 번영을 누릴 수 있다. 그러나 비유대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현재 유대인이 보유하고 있는 정도의 지배는 달성할 수 없다. 비유대인에게선 유대인에게서 발견되는 끈끈한 민족적 연대감,협동심,총성심, 그리고 추구하는 목표의 통일성이 여실히 부족하기 때문이다. 단지 돈이 많은 것과 지배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얘기다.

 참으로 유대인은 미국에서 손을 대는 일마다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예외가 있다면 농업일 것이다. 유대인은 기초 생산활동과는 거리가 멀다. 유대인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일부는 유대인이 처음부터 농경민족이 아닌 상인민족이었다는 의견을 제시한다. 그들은 유대인의 조상이 농업보다는 상업에 유리한 팔레스타인에 정착했음을 근거로 든다. 팔레스타인이 역사적으로 동양과 서양의 교통로 역할을 했음을 상기할 때 이와 같은 의견은 설득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