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폴란드의 유대인 학살 프로파간다 - 디어본인디펜던트. 1920.10.30.

 폴란드에 대한 유대인들의 끊임없는 흑색선전, 매년 수십만의 폴란드 유대인 이민자들이 미국에 유입되는 작금의 현실, 그리고 폴란드가 수백 년 동안 유대인 문제와 씨름해온 나라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 폴란드의 유대인 문제가 미국의 유대인 문제와 관련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따라서 폴란드 유대인 문제의 실상을 살펴보고, 특히 폴란드 유대인의 대량이민을 정당화하기 위한 폴란드 유대인 박해 프로파간다를 살펴봐야 한다.


 폴란드의 유대인 박해에 대한 진상파악을 위해 미국과 영국 정부가 파견했던 조사단의 공식 보고서들이 있다.


 1) 미국보고서 - 1919년 7월 13일부터 9월 13일까지 조사단을 이끌었던 헨리 모겐소 前 주터키 미국대사의 보고서, 그리고 에드가 재드윈 美육군준장의 보조적 보고서로 이루어져 있다.


 2) 영국보고서 - 미국조사단에 이어 유대인인 스튜어트 사무엘이 이끄는 영국조사단이 같은 해 12월까지 폴란드에 머물렀다. 스튜어트 사무엘의 보고서에는 영국무관 P.라이트 대위의 보조적 보고서와, 바르샤바 주재 영국대사인 H.럼볼드의 개괄적 보고서가 포함되어 있다.


 폴란드의 유대인 박해라는 주제와 관련해 헨리 모겐소, 에드가 재드윈, 스튜어트 사무엘, P.라이트, H.럼볼드가 제출한 5개의 보고서가 존재한다.


 그런데 미국조사단의 보고서와 관련해 기이한 일이 있었는데, 보고서가 일반에 배포되자마자 극도로 희귀해졌다는 사실이다. 마치 하룻밤 사이에 보고서가 증발한 것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유대인 사회는 같은 유대인인 헨리 모겐소의 보고서를 달갑게 여기지 않았고, 보고서가 희귀해진 것도 이와 연관이 있다. 실제로 유대인 언론이나, 폴란드의 유대인 박해 프로파간다에서 이 보고서가 언급되는 일은 거의 없다.


 5개의 보고서들 가운데 미국의 유대인들이 배포하고 있는 보고서는 오직 스튜어트 사무엘의 보고서 뿐이다. 사무엘 보고서는 유대인의 폴란드 관련 프로파간다에 있어 어김없이 등장한다. 사무엘 보고서는 구하기도 쉽다. 사무엘 보고서를 출간하면서도 미국의 유대인들은 럼볼드 보고서, 라이트 보고서를 누락시켰다. 왜 나머지 4개 보고서는 배제되었을까? 사무엘 보고서 외의 4개 보고서는 모두 편향되지 않은 시각에서 냉정한 진실을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이 4개 보고서를 접하게 되면 폴란드의 유대인 박해 프로파간다가 그저 프로파간다임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5개 보고서들에 실린 주요 내용들을 살펴보자.


 폴란드 유대인 박해와 관련하여. 


 사무엘 - "일반적으로 폴란드인은 인정 많은 사람들로, 만약 폴란드 정부가 반유대주의를 부추기는 언론의 행태에 강력히 대처한다면 지난 800년 동안 그랬듯이 유대인은 아무런 문제없이 폴란드인과 함께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사무엘이 언론통제를 쉽게 얘기하는 것은 특기할 만하다. 폴란드의 유대인 언론과는 달리, 폴란드의 민족주의 언론이 폴란드인을 위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그런데 사무엘은 자국민의 권익을 위해 이제 막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폴란드 언론에 정부가 강력히 대처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특권적 위치를 누렸던 폴란드의 유대인 언론에 대해 유대인 학자 이스라엘 프리들랜드는 <폴란드 유대인 문제>에서 이렇게 말한다. "폴란드인의 우려와 비판만 보더라도 유대인 언론의 영향력이 어떠한지를 알 수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바르샤바의 한 유대계 유력 일간지의 발행부수가 나라 안의 모든 폴란드 일간지들의 발행부수를 합한 것보다 더 많았다."


 모겐소 - "렘버그의 폴란드군과 시민들 사이에선 유대인이 공산주의자이며 우크라이나의 편을 든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유혈사태는 반유대주의적, 정치적 성격을 띠고 있었습니다. 일부 유대인의 잘못으로 유대인 전체가 비난받는 것이 불공평한 것과 같이 일부 폴란드 군인이나 통제불능에 빠진 폭도들의 잘못을 폴란드 전체에 전가하는 것은 옳지 않을 것입니다. 유혈사태는 분명 사전에 조직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희생자는 280명이 아니라 수천에 달했을 것입니다. 항시 존재해왔던 반유대적 감정에 더해 유대인은 폴란드 국가에 적대적이라는 믿음이 유혈사태를 촉발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럼볼드 - "역사적으로 폴란드에서 유대인은 많은 특권을 누려왔는데, 이제와서 고립된 사건을 빌미로 폴란드를 비난의 표적으로 삼는 것은 유대인 자신에게도 득이 될 게 없을 것입니다."


 라이트 - "유대인이 유럽에서 가장 핍박받는 민족이라는 관념에는 다분히 문제가 있습니다. 다른 나라의 국경 안에 거주했던 유대인 외의 여러 소수민족들이 겪었던 일들을 생각하면 유대인은 오히려 유럽에서 가장 많은 것을 누려왔던 집단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재드윈 - "11월 21~23일 사이에 일어난 렘버그 유혈사태는 국제적으로 전개 중이었던 反폴란드 프로파간다 캠페인에 큰 탄환을 제공했습니다. 특히 폴란드 공화국의 탄생에 적대적이었던 독일,오스트리아의 언론이 이 사태를 과장 보도했습니다... 실제로 봤다는 증인들 중에는 2,500~3,000명의 유대인이 희생되었다는 이도 있으나, 유대인 지역사회의 자체적 집계에 따르면 사망자 수는 76명이라고 합니다... 폴란드 역시 전시 전쟁당사국들간에 난무했던 뉴스의 왜곡,날조,억압을 통한 악의적인 프로파간다의 희생자일 뿐입니다."


 뉴스의 왜곡,날조,억압을 통한 악의적인 프로파간다는 두말할 나위없는 국제유대인의 장기다. 한편 가자의 보고서에서 폴란드 反유대인 유혈사태로 인한 희생자의 수를 사무엘은 348명, 모겐소는 280명, 럼볼드는 18명으로 기술하고 있다.


 세계대전 이전 폴란드의 유대인 문제에 대하여.


 사무엘 - "폴란드와 갈리시아의 유대인 인구는 300만에 달합니다. 1912년 러시아 의회 총선을 기점으로 바르샤바에서 시작된 유대인 상점들에 대한 보이콧은 폴란드인들 사이에서 그동안 누적되어왔던 반유대주의의 표출이었습니다... 전쟁 전 러시아와 폴란드 사이의 교역량은 상당했는데, 무역과 상품생산의 주역은 유대인이었습니다... 폴란드에서 상업은 전적으로 유대인의 영역입니다... 폴란드엔 유대인 말고는 중산층이 없다는 사실은 특기할 만합니다. 이 나라엔 유대인 위로 귀족층과 아래로는 농민층 밖에 없습니다. 유대인과 농민층의 관계가 딱히 나쁜 것은 아닙니다. 농민층의 젊은이들은 문맹이 많아 신문을 읽지 못하는 관계로 군대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반유대주의에 오염되는 경우가 드뭅니다. 폴란드 농민들은 분쟁해결을 위해 랍비들이 운영하는 법원에 찾아오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사무엘 보고서는 유대인이 폴란드 인구의 대다수를 이루는 농민층보다 상위계층을 형성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럼볼드 - "폴란드와 러시아 간의 교역에 대한 사무엘 경의 기술에는 오류가 있습니다. 두 나라 사이의 무역이 대부분 유대인을 통해 이루어져 왔던 것은 사실이나, 상품생산의 주역이 유대인이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라이트 - "지난 세대까지만 하더라도 폴란드의 상인들은 거의 모두 유대인이었습니다. 지주가 아니면 농민이었던 폴란드인들은 상업을 유대인에게 맡겨 두었습니다. 오늘날에도 폴란드 상인의 75% 이상이 유대인입니다. 도시든 농촌이든 유대인은 생산자가 아니라 중간상인이라는 일반적인 관념은 이 나라에서도 여지없는 현실입니다... 유대인은 농민도,노동자도,장인도 아닙니다. 유대인은 대부업자 아니면 중간상인입니다. 이제껏 이 나라의 유대인이 달리 해온 일은 없습니다... 폴란드는 농경국가입니다. 따라서 이 나라의 유대인은 서구의 유대인과는 달리 농촌에서도 큰 역할을 합니다. 귀족의 영지나 농촌에는 어김없이 유대인이 있는데, 이 유대인들은 귀족의 영지를 관리해 수입을 올려 주는 한편, 농민들의 수확물을 상대로 중간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며, 농민들에게 필요한 생필품을 제공하는 상점을 운영합니다. 영지나 농촌 유대인의 이러한 위치는 대게 세습됩니다... 폴란드의 사정이 어떠한가는 다음과 같은 상상을 통해 이해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느 외국인이 런던에 도착했다고 가정합시다. 그런데 이 외국인이 런던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두 명 중 한 명, 또는 세 명 중 두 명이 유대인이고, 수백 개의 유대교 회당들이 있습니다. 이와 같은 사정이 농촌인 뉴버리나 버크셔도 다를 바가 없다고 합시다. 모든 상점이 히브리어 문자로 된 간판을 달고 있으며, 이들 지역엔 공장과 상점이 모두 유대인 소유입니다. 만약 영국의 상황이 이와 같다면 이에 대해 영국인들은 어떤 기분일까요?"


 왜 유대인 언론이 럼볼드 보고서와 라이트 보고서는 외면하면서 사무엘 보고서를 선호하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세계대전 중 폴란드의 유대인 문제에 대하여.  


 사무엘 - "이디시어가 독일어와 비슷한 관계로, 전시 독일의 폴란드 점령 시 많은 유대인들이 독일군에 부역한 바 있습니다. 전후 유대인 사업체들에 대한 보이콧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표명한 폴란드 정부였지만, 유대인 부역자와 폴란드인 부역자에 대한 처리에 있어 차별적인 행태를 드러냈습니다." ☞ 이디시어는 9세기 경 중유럽에서 발생되었으며, 고지 독일어를 바탕으로 한 방언에 히브리어,유대아람어,슬라브어(폴란드어),로망스어(라틴어계열) 계열의 요소들이 결합된 언어다. 초기 아슈케나지 유대인 집단을 중심으로 사용되었으며, 표기로는 히브리 문자의 자모음 표기가 가능한 판을 사용하며,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쓴다.


 럼볼드 - "이디시어가 독일어와 비슷한 이유로 전시 독일 점령군은 많은 수의 유대인을 고용했습니다. 그러나 이들 부역자들 중에는 독일어를 구사하는 폴란드인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폴란드 부역자들은 마음속으로는 독일을 계속 적으로 간주했다는 점입니다."


 재드윈 - "독일어와 이디시어의 유사성과 승자의 편에 가담하려는 심리 때문에 많은 유대인들이 독일군에 부역했고, 독일군은 유대인 사회에 대한 특별보호와 자치권의 약속 등으로 보답했습니다. 독일군의 전시 폴란드 점령이 유대인들 덕분에 수월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독일의 폴란드 자원착취도 유대인을 매개로 이루어졌습니다. 독일군은 유대인들의 곡물투기가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전시식량 확보에 도움이 된다 하여 이러한 투기행위를 장려했습니다."


 라이트 - "전쟁 동안 폴란드의 유대인은 독일군의 보호로 특별한 위치를 누렸습니다. 언어와 문화적 유사성으로 많은 유대인들이 독일군에 부역했으며, 폴란드의 자원착취에 일조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또한 많은 유대인들이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언어와 문화적 유사성과는 상관없이 유대인이 독일에 헌신한다는 폴란드인들의 주장은 사실이 아닙니다. 유대인들이 반유대주의의 중심국가인 독일에 충성할 리는 없습니다. 유대인은 항상 그래 왔듯 유대인일 뿐입니다... 폴란드의 유대인에겐 독일제국이나 러시아제국 그 어느 편이 이기든 문제될 것이 없었습니다. 문제는 유대인이 혐오하는 폴란드 국가의 부활입니다. 전쟁이 끝난 뒤 폴란드가 독립주권국가로 재탄생한 것은 유대인들에겐 아직도 믿기지 않는 일입니다." ☞ 폴란드는 1795년 러시아,오스트리아,프로이센 삼국에 의한 영토분할로 국가가 소멸되었다가, 1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연합국에 의해 1918년 독립국가로 재수립되었다.


 모겐소 보고서는 이 주제에 대해 언급이 없다.


 폴란드 대중의 유대인 보이콧에 대하여. 


 사무엘 - "1912년 바르샤바에서 시작된 유대인 사업체 보이콧 운동은 전쟁기간 동안의 물자부족으로 수그러졌다가 종전과 함께 예전의 기세를 회복했습니다. 일부지역 법원에서는 유대인과 거래한 폴란드인에게 출두명령이 떨어지는 일도 있습니다. 폴란드의 언론이 보이콧 운동의 불을 계속 지피고 있는데, 폴란드 일간지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등장하는 일이 예외가 아닙니다. '갈리시아에 거주하는 아나 야블로프스카 백작부인이 최근 스트리스카 18번지와 20번지에 있는 저택 두 채를 도길레프스키,휴브너,에릅센 등의 유대인에게 매각했다. 폴란드인들이여, 언제까지 이런 일들을 방관하고만 있을 것인가?'"


 유대인들의 거주용 부동산 매입과 관련해서 존 포스터 프레이저의 <정복자 유대인>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등장한다. "런던 화이트차펠 구역의 아파트들에는 흔히 '영국인 사절'이라는 간판이 걸려 있다. 도시의 한 블록 전체를 매입한 뒤 유대인 부동산 신디케이트가 첫 번째로 하는 일은 비유대인 임차인들을 모조리 쫓아내는 것이다."


 미국 대도시들에서도 유대인 부동산업자 신디케이트가 비싼 지역의 가옥을 몇 채 매입해 흑인가족에게 임대하는 방식으로 지역전체의 집값을 떨어뜨린 뒤 싼 값에 블록 전체를 사들여 유대인 구역으로 만드는 일들이 드물지 않게 일어난다.


 폴란드,영국,미국에서 유대인에 대한 반감은 유대인이 주장하는 것처럼 단순히 인종적 편견에서 연유하는 것이 아니다. 유대인에 대한 반감은 유대인의 부정적인 행태가 원인이다.


 유대인의 이러한 '자신들끼리 똘똘 뭉치기' 행태에 맞서 폴란드인들 역시 자기방어 차원에서 '그럼 우리도 우리 사이에서만 사고팔자'라는 각성이 표출된 것이 1912년 바르샤바에서 시작된 보이콧 운동이다. 폴란드의 상업은 유대인의 수중에 있고, 바르샤바의 가장 비싼 부동산들도 유대인 소유이다. 이런 마당에 폴란드인들이 자구책으로 벌이고 있는 보이콧 운동이 '박해'라고 전 세계의 유대인들이 목청을 돋우고 있는 것이다.


 럼볼드 - "1832년 이후 러시아제국이 폴란드인의 공직임용을 금지하자 많은 수의 폴란드인들이 상업에 뛰어들었고, 이때부터 폴란드 상인과 유대인 상인과의 경쟁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경쟁관계는 러시아 정부가 폴란드에 협동농장제도를 도입하면서 더욱 심화되었습니다. 결국 협동농장제도로 인해 가장 큰 피해자는 유대인 소상인들이었습니다... 반대의사 표명이나 입법을 통해 폴란드 정부가 보이콧 운동을 금지시킬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자국민에게 '누구와 거래하고 거래하지 말라'고 강제할 수 있는 정부는 없을 것입니다."


 한편 모겐소 보고서는 협동농장제도에 대해 다른 시각을 제공한다.


 모겐소 - "유대인 상인들은 협동농장제도가 자신들에 대한 차별이라고 주장합니다만, 사실 이 제도는 중간상인이 취하는 이윤을 축소하고자 하는 정당한 수단입니다. 불행히도 협동농장제도가 도입되면 유대인 중간상인들을 몰아낼 수 있다는 식으로 홍보된 것이 문제였습니다. 유대인들이 협동농장제도를 자신들에 대한 '박해'로 간주하게 된 데에는 이런 배경이 있습니다. 그러나 반유대적 성격 여부를 떠나 협동농장제도는 자신들의 권익을 위해 농민들이 선택할 수 있는 하나의 정당한 경제활동 방식입니다."


 800년 전 폴란드는 유럽 각국에서 쫓겨난 유대인들을 기꺼이 받아들였고, 자유를 선사했을 뿐만 아니라 유대인들이 나라 안의 나라를 만드는 것까지 허락했다. 종교가 다르다고 핍박한 일도 없는 폴란드는 유대인에게 가장 좋은 친구였다.


 그러던 중 1795년 폴란드가 주변 열강들에 의해 분할되고, 하나의 주권국가로서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일이 벌어졌다. 이 치욕의 기간 동안 유대인은 막강한 세력이 되어 폴란드인들 위에 군림하는 존재가 되었다.


 지난 세계대전으로 폴란드는 다시 주권국가의 지위를 회복했다. 그러나 유대인은 이를 반기지 않았다. 지난 의리와는 상관없이 유대인은 폴란드 국가의 복원에 적대적이었다. 폴란드를 침공하는 볼셰비키 군대를 환영했던 유대인들의 행태가 이를 잘 드러내 준다.


 이 모두에 800년 동안 유대인을 품어 주었던 폴란드인들이 분노했음은 물론이다. 그리고 폴란드인들은 민족언론을 통해 이런 감정을 표출했고, 이 와중에서 불행한 사건들도 있었던 것이다.


 폴란드에 대한 서구 유대인들의 프로파간다 공세는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리고 이 프로파간다 공세의 주된 목표는 폴란드에 상처를 내는 것과 동시에, 미국인들의 의식을 호도하는 것이다. 폴란드의 유대인들이 얼마나 불쌍하고 핍박받는 집단인지를 강조해 폴란드 유대인의 대거 미국유입에 반대하는 여론을 무마하고자 하는 것이 본 의도인 것이다.


 


 41. 파리 평화회의가 폴란드에 강요한 유대인의 특권적 지위 - 디어본인디펜던트. 1921.3.05.

 폴란드 유대인 문제 관련 사무엘 보고서와 나머지 4인의 보고서에는 한 가지 분명한 차이점이 있다. 사무엘 보고서의 경우 결과만 나열하고 있는 반면, 모겐소,재드윈,럼볼드,라이트 보고서는 그런 결과를 초래한 원인들도 간과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 결과론과 인과론의 차이다. 학자들의 가장 잘못된 습관 중 하나가 결과론의 함정에 빠지는 것이다. 결과론은 유대인들이 프로파간다에서 자주 써먹는 무기다.


 유대인과 유대인이 거주하는 나라의 주인민족 간에는 항상 반목의 감정이 존재해왔고, 이는 앞으로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호간의 반감으로 인한 피해자는 유대인일 때도 있고 비유대인일 때도 있다. 그러나 세계가 이런 문제와 관련된 뉴스를 접하게 될 때는 오직 유대인이 피해자가 될 때 뿐이다. ☞ 유대인 반감에는 유대인 특유의 배타성에 있다. 이는 유대인 스스로가 자초하는 것이다.


 유대인이 정상에서 주인민족 위에 군림하는 이상, 그 나라 사람들이 유대인의 지배를 떨쳐 내고자 아무리 목청을 돋워도 세계는 아무런 소리도 듣지 못하며, 따라서 무슨 국제조사단이 파견되는 일도 없다. 오직 유대인의 입지가 불리해질 때에만 전 세계를 통해 유대인 박해라는 외침이 퍼져 나가는 것이다.


 놀라운 단결력으로 절대적 소수임에도 다수의 주인민족을 지배하는 유대인을 본 폴란드인들의 반응은 대략 "그럼 우리도 유대인들처럼 민족적 기치 아래 단결해 무슨 일이든 우리 동포에게 이익이 돌아가게 하자."는 것이었다. 폴란드인들이 이러한 각성을 실천에 옮기기 시작했을 때 유대인 박해라는 비명이 터져 나온 것이었다. 그리고 뒤이은 전 세계 유대인들의 反폴란드 프로파간다 캠페인은 폴란드인들을 더욱 자극했고, 몇몇 유감스러운 사건들이 일어났던 것인데, 양자간의 분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유대인은 동족에 대한 각종 박해들을 세세한 부분까지 놓치지 않고 세계인들에게 전하는데 열심이다. 그러나 유대인은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지에 대해서는 함구로 일관한다. 물론 유대인이든 아니든 무고한 사람들이 해를 입는 일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서구에는 유대인 못잖게 고난을 겪은 민족도 여럿 있음을 기억할 때 유독 유대인의 고난만 강조되고 자주 접하게 되는 세태도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 인과론은 진실로 향하는 가능성을 갖고 있지만, 결과론은 진실을 호도하기 쉽다... 남북 아메리카 인디언, 아프리카인, 집시, 쿠르드족 등은 유대인 이상의 고난을 겪은 민족이다.


 진실을 알고픈 이들이 묻는 첫 번째 질문은 Why?이다. 왜 유대인들에게 이런 일들이 자꾸 일어나는가? 폴란드인에겐 소수민족을 못살게 구는 못된 기질이라도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지난 800년 동안 유대인들이 폴란드에서 누렸던 만족스런 삶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그렇게 잘 살아왔건만 왜 요즘에 들어 유대인에 대한 폴란드인의 감정이 악화되고 있는 것일까? 진실에 제대로 접근하려면 배경에 대한 이해는 필수적이다. 사실 유대인인 모겐소의 보고서가 유대인 사회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는 이유는 유대인들이 원하는 것 이상의 배경정보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 인과관계. 맥락.


 사실 유대인에 대한 폴란드인들의 반감을 설명하는 데 가장 풍부한 배경지식을 제공하는 것이 라이트 보고서다. 유대인 지역사회 언론이 라이트 보고서에 대해 표출하는 적대감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유대인이 원하는 것은 진실의 전파가 아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그들에 대한 동정심과 폴란드인에 대한 전 세계인들의 손가락질 뿐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든, 문제해결의 첫걸음은 언제나 원인에 대한 이해다.


 5인의 보고서는 유혈사태로 인한 유대인 희생자가 프로파간다 꾼들의 주장보다 훨씬 적은 수준이라는 데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유대인 희생자가 수만에 달한다는 프로파간다 꾼들의 선전에 비해 사무엘 보고서는 전쟁으로 인한 혼란이 심하지 않았던 지역에서 목숨을 잃은 유대인은 18명, 그리고 폴란드 전 지역을 통해 348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음을 마지못해 인정하고 있다.


 라이트 - "폴란드 전 지역에서 발생한 유대인 사망자 수는 200~300명 정도로 추정되는데, 유대인에 대한 폴란드인들의 반감을 염두에 두면 이는 오히려 적은 수준입니다."


 럼볼드 - "외부의 선전대로 만약 폴란드의 민간, 군당국이 유대인에 대한 집단학살을 조직했다면 희생자의 규모는 훨씬 더 컸을 것입니다."


 다음 요약문들을 통해 렘버그에서 일어났던 유혈사태 관련 5인의 보고서가 어느 부분에서 일치하고, 불일치하는지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1) 렘버그 유혈사태는 1918년 11월 21~23일 일어났다. 이 도시는 전쟁이 끝난 뒤 전쟁 중 오스트리아군에 복무했던 우크라이나군에 의해 점령당했다. - 사무엘,모겐소,라이트,재드윈.


 2) 몽크준스키 장군이 남자,여자,소년들, 그리고 일부 범죄자들로 1,500명 규모의 폴란드 민병대를 조직해 치열한 전투 끝에 도시의 절반을 회복했다. - 사무엘.


 폴란드 소년들과 범죄자들로 구성된 자원병 수백 명이 도시의 절반을 탈환해 11월 21일 지원군이 도착할 때까지 렘버그를 사수했다. - 모겐소.


 휴전 직후의 반란으로 독일 점령군 조직이 붕괴된 상태에서 몇몇 폴란드 장교들이 렘버그에서 1,000~2,000명 규모의 자원병 부대를 조직했다. 이 부대는 소년들,건달들,범죄자들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군복을 입은 여자병사들도 있었다. 우크라이나 군을 상대로 두 주간의 치열한 시가전을 벌인 이들은 폴란드 지원군이 도착하자 힘을 모아 우크라이나 군을 렘버그에서 몰아냈는데, 이는 참으로 대단한 무훈이었다. - 라이트.


 3) 렘버그의 유대인 사회는 중립을 표방했다. - 사무엘.


 렘버그의 유대인들은 중립을 선언했으나, 유대인 거주구역이 우크라이나군 점령지역에 있었고, 유대인들이 자체적으로 민병대를 조직했으며, 이 민병대가 폴란드군에 발포했다는 소문이 폴란드 자원병 부대에 돌면서 유대인에 대한 적대적인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분위기는 도착한 폴란드 지원군 부대에도 전염되었다. - 모겐소.


 렘버그 전투 당시 유대인 인구는 중립을 표방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우크라이나군의 편에 서서 전투에 가담하는 일은 없었다 해도 우크라이나군에게 많은 편의를 제공했던 것으로 보인다. 유대인들 사이에서는 우크라이나군이 이길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 라이트.


 4) 유혈사태에 대한 책임이 있는 폴란드군 장교들 가운데 처벌을 받은 이는 없다. - 사무엘.


 1918년 12월 24일을 기점으로 폴란드 정부는 11월 21~23일 렘버그에서 일어났던 유혈사태에 대한 엄중한 조사에 들어가 현재 164명(이중 10명이 유대인)이 재판을 받았고, 더 많은 유혈사태 관련 혐의자들이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위 164명 가운데 44명이 10일에서 18개월에 이르는 징역형을 언도받았다. 한편 유혈사태와 관련된 범법혐의로 군사재판에 회부된 군인들에겐 최고 3년형이 선고되었다. - 모겐소.


 모자람이 있으나 이제까지 폴란드 정부는 최선을 다해 관련자들을 처벌했다. 대중의 반발을 우려해 이러한 처벌사실이 대외적으로 공표된 적은 없다. - 라이트.


 유혈사태 관련자들에 대한 처벌이 미약하다는 시각도 있지만, 폴란드 정부의 공권력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 럼볼드.


 5) 피해보상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 사무엘.


 폴란드 정부는 공식조사 결과에 근거해 유혈사태의 피해자들을 상대로 보상금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 모겐소.


 미국조사단이 폴란드를 떠나기 전 폴란드 정부는 빌나핀스크,렘버그에 거주하는 피해자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 재드윈.


 폴란드군의 렘버그 탈환 직후에 일어났던 반유대적 유혈사태는 그 어떤 구실로도 정당화할 수 없는 사건이다. 그러나 사무엘 보고서를 보면 책임은 전적으로 폴란드인들에게 있는 것으로 비춰진다. 반면 나머지 4인의 보고서는 이러한 유혈사태의 배경을 이해하는데 있어 설득력 있는 정보들을 제공한다. 사무엘 보고서를 제외하고, 나머지 4인의 보고서는 폴란드 정부가 처벌과 보상에 있어 나름대로 성의를 다했음을 보여 주고 있다.


 또한 다음과 같은 한 미국 일간지의 보도 역시 참고할 만하다. "폴란드군의 민스크 진주 당시 현장에 있었던 미국육군 재드윈 준장은 폴란드군 당국이 민간인에 대한 폭력행위를 엄중히 단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세계대전 말기의 혼란 속에서 일어났던 일련의 반유대적 유혈사태는 불과 며칠 만에 종료되었고, 이후 폴란드 정부는 보상과 재발방지를 위한 조치들을 취했음을 알 수 있다. 사실이 이러한데도 2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유대인 프로파간다 꾼들은 지금 마치 폴란드에서 수만 명의 유대인들이 조직적으로 학살당하고 있는 것 마냥 떠들어대고 있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1919년 4월 5일 핀스크에서 일어난 유혈사태와 관련된 보고서 내용들은 유대인에게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었음을 드러낸다.


 1) 폴란드군이 볼셰비키군으로부터 탈환한 핀스크는 주민의 75%가 유대인, 25%가 폴란드인이었다. 볼셰비키군과의 전선이 멀지 않은 상황에서 오직 소수병력으로 지역을 지켜야 했던 폴란드군 지휘관은 유대인들의 親볼셰비키 성향을 알고 있었기에 불안할 수 밖에 없었다. 따라서 지휘관은 어떠한 주민들의 모임도 극형으로 처벌할 것이라고 공포했다. - 재드윈,라이트.


 2) 한 정부관리가 마을 유대인에게 협동농장제도에 대한 토론모임을 허락했다. - 사무엘,모겐소,라이트.


 3) 폴란드 병사 두 명이 토요일 오후 마을 유대인들이 시온주의자들의 본부인 인민회관에서 모임을 가질 것이라고 군당국에 신고했다. - 사무엘.


 마을 유대인들이 모이기로 한 장소는 매우 反폴란드적 성향을 띤 시온주의 단체의 사무국이 있는 건물이었다. - 라이트.


 폴란드군 지휘관은 두 유대인 병사들로부터 마을 유대인들이 親볼셰비키적 음모를 꾸미고 있음을 전해 들었다. - 모겐소.


 두 유대인 병사의 얘기를 들은 지휘관은 마을 주민들이 회관에 남아 시온주의 단체 관계자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따라서 외형적으로는 이들이 모임을 갖는 것으로 비춰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 라이트.


 이후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5인의 보고서 사이에 이견이 없다. 라이트 대위는 유대인들의 親볼셰비키 성향만 아니었다면 핀스크 유혈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첨언했다.


 핀스크 유혈사태에 대한 재드윈 준장은 이렇게 요약했다. "핀스크 사건은 순전히 군사적 판단에 근거한 사건이었습니다. 두 유대인 병사의 얘기를 들은 지휘관은 마을 주민들에 의한 親볼셰비키 반란이 곧 일어날 것 같은 두려움에 빠졌습니다. 반란을 막기 위해 지역 유대인 주민들을 공포에 빠뜨릴 필요성을 느낀 지휘관은 유대인 주민 35명을 즉결 처형했고, 다수를 감금하고 구타했습니다. 이와 같은 모든 행위는 전적으로 지휘관의 결정에 의한 것이므로 폴란드 정부, 군, 해당지역 폴란드 주민들은 핀스크 사건과 무관합니다."


 미국인들은 대부분 폴란드가 아직 전시상태에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문서상으로 폴란드는 이제 독립주권국이지만 현재 진행되고 있는 싸움의 결과에 따라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갈 수도 있는 것이 지금 폴란드의 상황이다. 따라서 러시아 공산혁명 이후 볼셰비키는 대대적으로 폴란드를 침공했는데, 가는 곳마다 볼셰비키군을 환영한 이들이 바로 유대인들이었다. 이는 소비에트주의의 유대적 성격을 감안하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폴란드인들이 볼셰비키군을 몰아낸 뒤 어김없이 발견했던 것도 볼셰비키군의 진주를 기다렸다는 듯이 오랜 동안의 준비 끝에 지역 유대인들이 세워 놓았던 소비에트위원회들이었다. 그러니 폴란드인이 유대인을 의심과 경계의 눈초리로 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유대인은 폴란드인이 되기를 거부한다. 바로 이 점이 두 민족 사이에 일고 있는 분쟁의 근원에 있다.


 이 문제에 대해 사무엘 보고서는 이렇게 말한다. "유대인과 폴란드인이 별개 민족이라는 시온주의자들 주장이 폴란드인들의 분노를 산 바 있습니다."


 이 정도의 언급에 그친 사무엘 보고서에 비해 모겐소 보고서는 보다 상세한 정보를 제공한다. "현지의 시온주의 단체들은 폴란드 정부가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유대인만의 문화적 자치권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해 가장 많은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라이트 보고서다. "폴란드 유대인 사회의 목표는 입법권과 조세권을 보유한 유대인만의 자치기구를 수립하는 것이며, 폴란드 정부가 이 기구를 재정적으로 책임질 것을 원합니다. 유대인 사회는 또한 자치기구와는 별도로 폴란드 정부와 의회에 그들의 인구수와 비례하는 의석들이 보장되기를 원합니다. 일부 유대인들은 유대인만을 위한 별도의 법원 설치와 모든 법적 절차에 있어 이디시어를 사용할 권리를 요구하기도 합니다. 이 모두가 실현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1918년 1월 9일 우크라이나의 유대인 사회는 우크라이나 정부로부터 주권과 자치권을 인정받은 바 있습니다. 우크라이나에선 이디시어로 인쇄된 화폐가 별도로 발행됩니다."


 사람들은 묻는다. 시온의정서가 사실이라는 증거가 어디 있느냐고. 그 증거는 유대인이 권력을 획득한 곳에서, 권력을 획득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경전인 탈무드에서, 미국에서 유대인이 보이는 행태에서, 전후 발칸반도 국가들에 대한 유대인의 요구에서, 러시아 공산혁명에서 어김없이 발견되는 것이다.


 폴란드 유대인의 '비참한 현실'을 선전하며 유대인의 대거 미국이민을 정당화하려는 미국 유대인들은 물론 노골적으로 나라 안에 또 다른 나라를 만들려는 폴란드 동족의 행태에 대해서는 함구한다. 그렇다고 이 폴란드 유대인들이 그들의 머릿속에 박혀 있는 관념들을 뉴욕 항구 밖에 두고 미국에 들어올 수 있을까?


 라이트 대위는 영국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다음과 같은 가정을 제시한다. "만약 영국 유대인의 숫자가 불어 그들이 자치권과 조세권을 요구하기에 이른다고 생각해봅시다. 그리고 이 모두를 위한 비용은 영국정부가 지불해야 합니다. 그들은 또한 정부와 의회에 유대인만을 위한 고정된 숫자의 대표석을 요구합니다. 영국 교육당국은 유대인 아동들이 유대인 학교에서 교육받는데 대한 비용을 부담해야 합니다. 또 유대인들 중에는 유대인만을 위한 법원설립을 요구하는 이도 등장하고, 이디시어가 영어와 함께 영국의 공식언어로 인정받기에 이릅니다. 지폐도 영어와 이디시어로 인쇄됩니다. 이 모든 일이 현실로 나타날 때 비유대계 영국인은 어떤 기분이 들까요? 물론 유대인에 대한 호감은 아닐 것입니다."


 폴란드인과 유대인 간의 분쟁에 이러한 중대한 사안이 걸려 있음에도 사무엘 보고서와 모겐소 보고서에는 이 문제에 대해 거의 언급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유감스런 일이다. 폴란드의 유대인 박해에 대해 보도한다면서 위와 같은 문제에 대해서는 함구로 일관하는 유대인 언론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이들 언론은 중요한 사실을 알려 주는 라이트 대위의 보고서를 모욕적 언사를 섞어 폄훼하는데 급급하다.


 그러나 라이트 보고서도 아서 굿하트가 최근 출간한 책에 비하면 많이 자제하고 있는 편이다. 아서 굿하트는 미국 육군대위 출신으로 모겐소 조사단의 고문관을 역임했으며, 현재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의 특별연구원으로 있다. 폴란드에서의 경험을 기록한 그의 책 161쪽을 보면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구절도 등장한다.


 "저녁식사 후 모겐소는 폴란드에는 하나 밖에 없었던 성약의 형제단 롯지 모임에 참석했다. 러시아엔 이 단체의 롯지가 하나도 없었는데, 혁명 전까지 차르의 정부는 그 어떤 비밀결사도 자국의 영토 내에서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유대인이 아니었던 나와 오토 소령은 그 시간 동안 마을을 구경했다."


 아서 굿하트의 책은 미국에 매년 25만 명씩 이민 오는 폴란드 유대인들이 머릿속에 어떤 생각을 품은 사람들인지를 잘 드러내 준다. 특히 이들이 품은 정치적 야심과 권력에 대한 의지는 미국인들이 꼭 유념하고 있어야 할 대목이 아닐 수 없다.


 한편 파리 베르사유 평화회의는 폴란드 유대인에 대한 편향적인 결정으로 폴란드인들을 더욱 자극했다. 평화조약의 결과로 폴란드 정부는 토요일을 선거일이나 그 밖의 공식행사일로 지정할 수 없게 되었고, 토요일 날 재판을 열 수도 없게 되었다. 일요일엔 뭘 해도 좋으나, 토요일은 유대인의 안식일이기 때문에 이 모든 일들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다음은 폴란드에 강요된 베르사유 평화조약의 11항이다. "직접적,간접적으로 유대인의 안식일 엄수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 또한 안식일 엄수를 위해 공식업무나 법적 절차들에서 빠진 유대인에게 그 어떤 불이익이 가해져서도 안 된다."


 폴란드 정부는 이러한 요구에 최대한 부응할 것임을 천명한 바 있다. 러시아에선 볼셰비키들에 의해, 폴란드에선 베르사유 평화조약에 의해 유대인의 안식일러소의 토요일이 그 특별성을 인정받은 것이다. 그리고 베르사유 평화조약에 이런 조항이 포함되도록 가장 큰 힘을 쓴 이가 미국의 대통령 우드로 윌슨이다. '미국의 대통령이 타국인 폴란드를 상대로 이러한 이질적인 관습을 성공적으로 강요할 수 있었다면, 자신의 국가를 상대로는 더욱 수월하게 이런 일을 이루어 낼 수 있지 않을까?'라고 폴란드에서 몰려오는 유대인들이 생각하지 않을 거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베르사유 평화조약은 또한 폴란드에 분리된 유대인 학교들의 설립과 운영을 강제해 폴란드의 분열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폴란드인과 유대인 사이의 문제는 오직 이들이 함께 유년시절부터 폴란드어로 민족적 교육을 받아야 해결될 수 있다. 그러나 베르사유 평화회의를 주도한 국제유대인이나 폴란드의 유대인은 이를 원하지 않는다. 따라서 분쟁은 계속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한편 11항에선 '유대인'이라는 용어가 사용되는데, 9항에서는 '폴란드 국적을 소지한 민족적,종교적,언어적 소수민족들'이란 표현이 사용되었다.


 베르사유 평화조약의 9항 - "폴란드 정부는 폴란드 국적을 소지한 민족적,종교적,언어적 소수민족들이 그들만의 언어로 교육받을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폴란드는 폴란드인 학생들이 누리는 모든 혜택에서 소외되는 일이 없도록 학생수에 비례하는 교육예산을 소수민족 출신 학생들에게 할당해야 한다... 예산의 용처는 폴란드의 유대인 지역사회들이 선임한 교육위원회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소수민족 할당 교육예산이 유대인 기구에 넘겨진 뒤 자체적으로 배분된다는 점이다. 돈 얘기가 나오자마자 '민족적,종교적,언어적 소수민족들'은 간데없고 '유대인'이 즉각 등장하는데,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이러한 조항들은 세계대전의 전승국인 미국,영국,프랑스,이탈리아,일본이 국제연맹을 대표해 폴란드에 요구하는 형태를 띠고 있다. 이것은 자국 내의 유대인에 대한 폴란드 정부의 통제력 상실을 의미하는 것 외에 다름 아니다. 만일 폴란드 정부가 무엇을 위반할 경우 폴란드의 유대인이 국제연맹에 호소하면 나머지는 국제유대인이 알아서 해결해주는 구도다.


 그리고 다른 나라의 주권을 침해하는 이러한 구도가 뿌리내리게 하는데 큰 역할을 했던 이가 미국의 윌슨 대통령이었다. 그러나 미국인들이 이를 위한 집행자가 되는 일에 동의한 적은 없다.


 매년 폴란드로부터 25만 명의 유대인이 미국에 들어오고 있다. 독자들은 이 유대인들이 폴란드에서 무엇을 요구했는지, 또 평화회의를 통해 무엇을 얻어냈는지 이제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럼 묻지 않을 수 없다. 폴란드 유대인들이 미국에 와서도 변치않는 행태를 보인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저들이 反폴란드 프로파간다 캠페인을 통해 드러냈던 것은 자신들을 800년 동안 품어 주었던 폴란드인들에 대한 사악한 복수심과, 평화조약을 통해 폴란드인들에게 굴욕을 안겨 주었다는 득의만만함이 아니었던가?


 


 42. 현 시점에서 본 미국의 유대인 문제 - 디어본인디펜던트. 1921.1.29.

 미국에서 유대인 문제는 오랫동안 존재해 왔고,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지만, 서로 눈치만 볼 뿐 누군가 목소리를 내는 일은 거의 없었다. 문제를 건설적인 공론의 장으로 끌어낼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용기부족은 이 문제에 대한 침묵이 말해준다. 유대인 문제를 규명하려 했던 통찰력 있는 인물들이 소수 있었지만, 보이지 않는 권력에 의해 이들이 치러야 했던 대가는 이후 많은 사람들의 입을 닫게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유대인 때문에 진실을 말할 수도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한때 이 나라에선 두려움 없이 반대의사를 표명하는 행위가 미덕으로 칭송받았던 시절이 있었는데, 미국역사 속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시절이기도 했다. 이 시절 한 사람의 발언은 반대자나 동의자 수와는 상관없이 존중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연약해졌고, 환영받지 못할 진실을 말하기보다는 박수를 이끌어 낼 수 있을 만한 빈 소리를 하는데 더욱 익숙해졌다.


 정치인들의 연설에선 뼈대가 사라졌고, 언론은 옳은 편에 서기보다는 중립을 선택하기에 이르렀으며, 대중은 강자에게 반기를 들 만한 기골을 잃어버렸다. 이념적,정파적 주장이나 反대기업 진영에 설 수는 있으나, 이러한 공론들은 대본영이 주도하고 관리하는 것으로, 이런 일에 가담하는 이들은 아무런 불이익도 받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이 대본영 자체를 표적으로 삼을 경우 상황은 물론 달라진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중요한 일들에 대한 몰이해는 대개 누가 유대인이고, 또 유대인들의 진정한 목표가 무엇인지에 대한 무지에 기인한다. 유대인은 세상사를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열쇠다.


 우리의 의도는 단순히 유대인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에게 유대인 문제를 둘러싼 사실들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유대인 문제라는 주제에 대해 우리가 사실만을 전해왔다는 엄연한 증거는 본 시리즈가 제시한 사실들에 대해 유대인 사회로부터 단 한 차례의 시비제기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인종차별,유대인박해라는 비난은 무성했으나, 사실관계에 대한 반박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풍부한 증거와 자료들로 뒷받침되고 있는 본 시리즈에 대해 유대인 사회의 지도자들은 상투적인 비난 외에는 아무런 반박도 제기하지 못함으로써 그들은 본 시리즈의 진실성을 그들 스스로 인정해준 것이다. 물론 이것이 유대인 사회 지도자들의 본의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반박의 와중에서 그들이 비밀시하는 추가적인 사실들이 드러날 수도 있는 터, 그들의 침묵은 불가피했을 것이다.


 유대인들은 진실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이들은 부분적인 진실보다 훨씬 더 두려워하는 것은 총체적인 진실이다.


 유대인들은 세계에서 가장 잘 조직된 집단이다. 미국인들이 국익을 위해 조직되어 있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잘 조직되어 있다. 어느 나라든 유대인 사회는 대개 그 나라의 정부보다 잘 조직되어 있다. 유대인들이 미국의 언론과 초창기에 있는 라디오산업을 비롯한 대중매체들을 괜히 지배하는 것이 아니다.


 유대인들은 그저 이런저런 단체들에 모여 친목을 나누는 집단이 아니다. 유대인은 국가 안에 또 다른 국가를 형성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 국가의 목표는 유대인 권력의 확대와 이 나라와 전 세계에 대한 유대인의 민족적 의제들을 실천하는 것이다. 불행히도 이 목표와 의제들이 미국인을 비롯한 전 세계 비유대인의 이익과 상충된다는 것이 가장 심각한 문제다. 만약 유대인이 그들의 단결력을 통해 이 나라와 사회에 기여한다면 비판할 이유가 없다. ☞ 유대인들은 유대인들이 가는 곳마다 사회가 번영했다는 프로파간다를 성공적으로 퍼뜨렸다. 예컨대 스페인,포르투갈,네덜란드,영국,미국으로 유대인이 이주하면서 그 지역이 번영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번영이 그 지역사회의 번영이 아니라, 유대인의 번영이었다는 것이다. 그들이 가는 곳마다 유대인은 번영하고, 번영의 이유는 생산이 아니라 기생,착취구조의 산업재편에 있었다. 유대인은 특유의 단결력으로 번영했지만, 지역사회와 세계는 항상 양극화현상이 일어났다.


 문제는 유대인의 성향이 反미국적이라는 데 있다. 유대인이 親독일, 혹은 親멕시코적이란 차원에서 反미적이라는 것이 아니라, 이 나라를 오늘날의 미국으로 만든 전통,관습,신앙,가치관에 반대하고 적대시한다는 차원에서 反미국적이라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전통적인 미국인들의 시각과는 달리, 미국을 아직 국가적 정체성이 완성되지 않은 나라로 보고, 누구든 힘이 있으면 자신의 뜻대로 이 나라를 재창조할 권리가 있다고 본다. 유대인은 비유대인이 만든 미국을 부정한다. 유대인은 미국을 자신들의 세계관,윤리의식,취향에 맞는 나라로 만들고 싶어하는 것이다.


 이 나라에서 이민제한법에 반대하는 집단은 유대인 밖에 없다. 그럼에도 전국의 언론을 동원해 마치 모든 미국인들이 이민제한법에 반대하고 있는 것과 같은 분위기를 조성했다. 이민제한법의 통과로 가장 큰 타격을 입게 될 대상은 동유럽의 유대인들이기 때문이다. 태프트 대통령 시절의 러시아와의 통상조약 폐기 사례와 마찬가지로, 미국의 안위나 국익은 안중에도 없고, 무엇이든 자신들의 의지를 관철시키는 유대인의 행태는 이제 모두가 다 아는 것이 되었다.


 현재 국제유대인은 폴란드인들이 현재 유대인을 집단학살하고 있다는 구실 아래 폴란드에서 자신들의 동족을 빼내는데 열중하고 있다. 그러나 폴란드의 유대인 박해는 프로파간다에 불과하다. 사실 유대인은 폴란드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을 알고 있기에 그토록 빠른 속도로 그 나라를 떠나고 있는 것이다.


 유대인이 폴란드를 무리를 지어 떠나고 있는 것은 폴란드에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이란 증거다.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날지 유대인들이 미리 알고 있다는 것은, 이 일을 일으킬 주체가 유대인이라는 점도 말해준다. 러시아의 유대인 볼셰비키들은 폴란드의 공산화를 원한다. 이것이 바로 폴란드에서 일어날 그 무슨 일이다. 이로 인해 빚어질 환란을 피해 유대인이 지금 폴란드에서 빠져나가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유대인 부호들은 지금 대리인들을 폴란드에 보내 현지의 친척들을 미국으로 데려오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폴란드 유대인들의 엑소더스는 폴란드에겐 다가오는 불행을 의미한다. 이 모든 일에 있어 미국은 이 대량의 폴란드 유대인 이민자들을 받아 주는데 이용되고 있다. 공산화를 통한 러시아의 파괴에 이 나라가 이용되었듯이, 폴란드의 경우에도 역시 이 나라가 이용될 조짐이 보이고 있다.


 우리가 제기하는 본 시리즈에 대해서 유대인 지도자들은 "이 나라에서 反유대주의가 확산되는 것을 크게 우려할 일"이라고 말하는데, 사실 反유대주의를 들먹이는 것은 진실이 드러남으로써 궁지에 몰린 유대인이 상투적으로 써먹는 최후의 자기방어수단일 뿐이다.


 최근 미국의 유력 일간지들에 비유대계 인사 다수의 서명이 담긴 <反유대주의에 대한 항의>라는 제목의 광고가 게재된 일이 있었다. 처음엔 기대만큼의 반향을 못 일으켰는지, 재차 실린 항의문 광고엔 우드로 윌슨의 서명이 추가되어 있다.


 우리 역시 유대인이 단지 유대인이어서 증오하는 反유대주의에 반대한다. 그러나 <反유대주의에 대한 항의> 광고는 反유대주의와는 무관하다. 항의문의 의도는 유대인 문제의 공론화를 억누르는 것이다. 대단한 지성의 소유자가 아니더라도 항의문의 표적이 본지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특히 항의문을 작성한 비유대인들이 "유대인 사회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으며, 단지 반유대주의라는 거대한 불의에 항거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나선 일"임을 강조하는 대목에선 쓴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유대인이든 비유대인이든 반박을 환영한다. 보통 유대인들이 본 시리즈를 읽지 못하도록 동분서주하고 있는 유대인 사회의 지도층과는 달리 우리는 그 어떤 책이나 논의도 억누를 생각이 없다. 또한 우리와 반대입장을 취한다고 해서 누구를 보이콧할 생각도 없다. 우리는 발언과 양심의 자유를 신봉한다. 그리고 이러한 수단들을 통해 이 나라를 정화하고자 하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다.


 불행히도 유대인은 우리가 믿는 발언과 언론의 자유를 믿지 않는다. 지금 모든 주들에서 성약의 형제단은 유대인 문제에 대한 거론을 불법화하는 법을 통과시키려 로비를 벌이고 있다. 말하자면, 정당한 비판을 제기하는 사람의 입에 재갈을 물리려는 행동이야말로, 본 시리즈에 대한 유대인 사회의 궁극적인 대답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