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 미국 聯準은행의 창설자 폴 워버그 - 디어본인디펜던트. 1921.6.25.

 "아직 미국시민권을 취득하지 못했던 외국인" 폴 워버그가 넬슨 올드리치 상원의원을 비롯한 일단의 뉴욕 은행가들과 남부의 한 외딴 섬에 모여 비밀모임을 가졌다. 실로 이 비밀모임은 이 나라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빈부귀천,남녀노소를 떠나 이 나라의 모든 국민이 이 모임에서 결정된 통화제도 아래서 살게 되었으니 말이다.


 여기서 우리는 유대인이 이 나라의 향방을 결정했던 또 다른 사례 하나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1915년 이 나라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었던 유럽의 전쟁에 대해 유대인 버나드 바룩이 미국의 참전을 주도한 일을 말하는 것이다.


 이렇듯 이 나라의 중대지사가 결정되고 실행되는 곳에는 항상 유대인이 발견되는 것이다. 이런 중요한 국사들로부터 유대인이 철저히 배제되어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라, 유대인들이 그들만의 의제와 이익을 위해 이 나라를 좌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사실 이 나라의 전시산업을 통치할 만한 경륜과 능력을 가진 인물이 버나드 바룩 밖에 없었다는 정부의 설명을 믿는 이는 아무도 없다. 만약 이것이 사실인 만큼 미국인들 중에 똑똑한 인물이 없다면 이 나라를 공식적으로 뉴욕 케힐라에 갖다 바치는 것이 나을 것이다. 버나드 바룩이 그런 자리에서 그런 권력을 누렸던 것은 그의 능력도 능력이지만, 무엇보다 그가 미국의 참전을 원하는 국제유대인의 권부가 내세운 대리인이었기 때문이다.


 이같은 일은 영국도 마찬가지다. 영국인들은 최근 언론보도를 통해 독일의 전쟁배상금 협상을 주도한 이가 로이드 조지 수상이 아니라, 유대인 에드윈 사무엘 몬태규, 알프레드 몽드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대영제국에서 이런 중요한 일을 떠맡을 능력을 가진 이가 이 두 유대인 밖에 없었다는 말인가? 몬태규 가문은 세계 銀시장의 통치자이고, 알프레드 몽드는 팔레스타인에 있는 영국군 묘지에서 십자가를 제거한 매우 유대적인 인물들이다. 둘 다 금융가로 로이드 조지 수상의 고문이다.


 대서양을 사이에 둔 두 앵글로색슨 국가들을 유대인들이 좌우하고 있는 셈이다. 유대인 재벌 사순 가문과 사돈관계인 로이드 조지는 한때 영국대중으로부터 왜 그렇게 유대인들에 둘러싸여 있는지를 비판받은 적이 있는데, 그에 대한 대답이 걸작이었다. "성경을 그리 열심히 읽는 사람들이 왜 성경의 민족을 문제 삼나?"


 폴 워버그는 유서 깊은 가문의 자손이기 때문인지, 길거리 스타인 버나드 바룩과는 달리 자신의 권력과 영향력에 대해 떠벌이지 않는다. 따라서 그는 자신이 미국 연방은행제도를 만들었다고 자랑하는 일도 없다.


 다음은 폴 워버그를 위한 만찬석상에서 유대인이자 뉴욕 컬럼비아大 정치학교수인 E.R.A 셀리그만이 행한 연설의 일부다.


 "워버그 씨가 연방준비은행법의 통과와 관련이 있다는 것은 어느 정도 대중에게도 알려진 일입니다. 또한 그가 연방준비은행이사회의 이사로 임명되었을 때도 많은 이들이 기뻐하며 축하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워버그 씨가 실제로 연방준비은행의 창설에 얼마나 큰 공헌을 했고, 또 이로 인해 미국이 그에게 얼마나 큰 빛을 지게 되었는지는 오직 소수의 인사들만이 알고 있습니다. 실로 연방준비은행은 그 누구도 아닌 폴 워버그 씨의 자식입니다... 정치적 타협안으로 채택된 12개의 지역준비은행 창설이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것은 워버그 씨와 본인(E.R.A 셀리그만)이 공유하고 있는 생각입니다. 그는 시간을 갖고 중앙은행에 대한 대중의 의심과 경계의 눈초리를 극복해야 한다는 점을 잘 알았습니다. 법안에 수많은 복잡다단한 조항들이 추가된 것도 대중을 중앙은행 설립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워버그 씨는 대중에 대한 교육적 차원에서 추가된 이러한 조항들은 앞으로 하나 둘 씩 없애 나가면 될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1840년 영국에서 중앙은행에 독점적인 화폐발행권을 부여한 필은행법이 제정된 것은 실용적인 은행가 사무엘 존스 로이드 씨의 공이었습니다. 그는 공로를 인정받아 오버스턴 경으로 서품되었습니다. 다행히 우리 미국에도 이런 오버스턴 경이 있습니다. 그는 다름 아닌 폴 워버그 씨입니다. 그는 미국 연방준비은행제도의 창시자로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 E.R.A 셀리그만. 컬럼비아대 연설.


 이처럼 폴 워버거는 이 나라에 참으로 중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그 영향이 얼마나 중대한 것인지는, 좋은 것들로 넘치는 이 나라에서 왜 국민의 대다수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이득을 누리지 못하는가를 궁금하게 여기는 이들이라면 꼭 생각해봐야 할 성질의 것이다.


 다음은 1914년 폴 워버그의 聯準이사회 이사 임명 관련 청문회 내용이다.


 리드 상원의원 : 그런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그 일에 투신한 동기는 뭡니까?


 폴 워버그 : 나의 목표는 이 나라의 통화제도를 개혁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의 생각을 발전시켜 현실화했다는데 있어 나는 스스로를 대단한 행운아라고 생각합니다.


 E.R.A 셀리그만 교수는 연설에서, 대중을 안심시키기 위해 여러 안전망 조항들을 삽입했다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대중의 관심이 멀어지면 이들을 차차 삭제하는 식의 방법을 암시했는데, 폴 워버그 또한 조직상의 문제도 행정의 기술로 극복될 수 있다는 시각을 드러낸다.


 예컨대 폴 워버그가 원했던 것은 12개의 지역은행들로 구성되어 있는 현재의 聯準체제가 아니라, 하나의 중앙은행이었다. 화폐남발과 금융통제에 있어 이 나라의 정부도,국민도,은행들도 뭐라 할 수 없는 권위를 보유한 단일 중앙은행 말이다.


 브리스토우 상원의원 : 의회통과가 좌절되었던 올드리치 법안과, 통과된 연방준비은행 법안의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폴 워버그 : 올드리치 법안은 단일 중앙은행을 제시했지만, 연방준비은행 법안은 12개의 지역준비은행 창설을 제시했습니다. 설명하기엔 좀 복잡합니다만, 이러한 조직상의 문제는 행정적인 방법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봅니다. 본인도 원래 지역은행 창설 안에 반대했습니다.


 결국 마음에도 없는 계획을 대중에게 홍보하고 뒤에서는 행정적 방법을 통해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조직을 운영하겠다는 얘기다. 좀더 비판적으로 말한다면, 행정적 방법이란 교묘한 조작 외에는 다름 아니다. 이런 맥락에서 1919년 한 연설에서 폴 워버그가 농담조로 한 말은 흥미롭다.


 "옛날 한 술집 주인이 가게를 넘겼는데, 새 주인이 현금등록기 사용법을 묻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현금등록기를 어떻게 쓰는지는 내가 가르쳐 주겠네. 그러나 현금등록기를 어떻게 조작하는지는 알려 줄 수 없네.'"


 청문회에선 폴 워버그를 비롯한 쿤앤로엡 파트너들의 정치적 성향에 대한 질문도 제기되었는데, 와중에 그는 모든 정파와 정당을 지원해 누가 지더라도 유대인 금융가들은 항상 이기게 되어 있는 현실을 드러내는 증언을 했다.


 포메른 상원의원 : 워버그 씨, 귀하는 어느 정당을 지지합니까?


 넬슨 상원의원 : 관련없는 질문입니다.


 리드 상원의원 : 꼭 그렇다고 볼 수도 없습니다. 워버그 씨, 대답해주시죠.


 포메른 : 聯準이사회는 민주당 일색인데, 귀하는 공화당원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렇습니까?


 폴 워버그 : 글쎄요. 전에는 전적으로 공화당 편이어서 태프트 대통령과 루즈벨트 대통령을 지지했는데, 3자 대결에선 윌슨을 지지했습니다.


 브리스토우 : 귀하와 쿤앤로엡 파트너들이 윌슨 대통령에게 큰 선거자금을 제공했다고 여러 언론보도를 통해 알고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폴 워버그 : 쿤앤로엡 파트너들의 정치성향은 좀 묘한 편이라서... 소액은 몰라도 큰 액수를 기부한 파트너는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내 동생 필릭스 워버그는 태프트 진영에 기부했습니다...


 브리스토우 : 귀하의 파트너들 가운데 윌슨 진영에 기부한 사람이 있습니까?


 폴 워버그 : 제이콥 쉬프 씨가 기부했습니다. 이는 이미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이미 알려진 것 외에 쿤앤로엡 파트너들이 누구에게 기부했는지를 내가 얘기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봅니다.


 브리스토우 : 하지만 귀하의 동생인 필릭스 워버그는 태프트 진영에 기부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폴 워버그 : 쿤앤로엡 파트너들에 대한 얘기는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습니다.


 브리스토우 : 루즈벨트 진영에 기부한 파트너는 없었다고 들었는데, 맞습니까?


 폴 워버그 : 그런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브리스토우 : 지난주 귀하는, 열렬한 공화당원이었는데 공화당의 태프트 후보, 진보당의 루즈벨트 후보, 민주당의 윌슨 후보가 나섰던 1912년 대선에서는 윌슨을 지지했다고 말했죠? 그리고 귀하의 동생은 태프트를 지지했다고요?


 폴 워버그 : 맞습니다.


 브리스토우 : 그러니 혹시 파트너들 중에 루즈벨트를 지지한 사람은 없었는지 궁금한 겁니다.


 폴 워버그 : 루즈벨트를 지지한 파트너도 있었습니다.


 브리스토우 : 그럼 루즈벨트 진영에 기부한 파트너가 누구인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폴 워버그 : 곤란합니다. 파트너들에 대한 얘기는 더 이상 할 수 없습니다.


 태프트,루즈벨트,윌슨이 맞붙은 1912년 대선에서 세계 굴지의 유대인 투자은행 쿤앤로엡은 3인 모두에게 골고루 힘을 실어 주었다. 제이콥 쉬프가 윌슨을, 필릭스 워버그가 태프트를, 그리고 밝혀지지 않은 제3의 파트너가 루즈벨트를 동시에 밀었는데, 이 세 번째 사나이는 혹시 오토 칸이 아니었을까? 어쨌든 윌슨이 승리했고, 그에 의해 쿤앤로엡의 파트너인 폴 워버그가 미국 금융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리에 임명된 것이다.


 브리스토우 : 귀하가 쿤앤로엡에서 수행하는 역할을 통해 검증될 부분들이 있지 않겠습니까?


 폴 워버그 : 그 회사를 떠나겠습니다.


 쿤앤로엡이 1억 달러에 달하는 서던퍼시픽 철도회사의 주식발행 과정에서 일었던 부정의혹에 대한 질문이 제기되자,


 폴 워버그 : 또 회사 얘기입니까?


 브리스토우 : 쿤앤로엡의 파트너로서 귀하도 그 거래로부터 수익을 올리지 않았습니까?


 폴 워버그 : 물론입니다. 그러나 원칙상 회사업무나 파트너들에 대한 얘기는 할 수 없습니다.


 브리스토우 : 나는 지금 귀하의 업무를 얘기하고 있는 겁니다.


 폴 워버그 : 내가 번 게 아니고 회사가 번 겁니다. 나는 그 중에서 내 몫을 받았을 뿐입니다.


 쿤앤로엡에서의 위치나 그의 국제적 커넥션으로 보아 폴 워버그가 이 나라에 지대한 영향을 행사할 聯準이사회를 실질적으로 주도할 인물로 간주되었던 만큼, 1914년 여름 청문회 의원들은 그가 오직 이 나라의 이익을 위해 봉사할 인물인지를 가늠하기 위한 질문들을 던진다.


 히치콕 상원의원 : 聯準이사회 주요 기능들 중 하나는 미국의 金보유고를 수호하는 것입니다. 이런 중책을 맡은 사람의 마음속엔 오직 미국의 이익만이 있어야 마땅할 것입니다. 듣자니 귀하가 독일의 어느 은행과 연관되어 있다고 하던데, 이 말고 유럽에 또 다른 이해관계들이 있습니까?


 폴 워버그 : 전부 소소한 것들입니다. 하지만 이들도 모두 정리를 할 것입니다.


 오웬 상원의원 : 지금 유럽에서 큰 전쟁이 일어나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만큼 聯準이사회를 외국과 관련이 없는 인사들로 구성하는 것은 국가안보 차원에서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폴 워버그 : 본인은 현재 함부르크에 있는 한 회사의 대표로 있는데, 곧 자리에서 물러날 것입니다.


 여기서 함부르크에 있는 회사란 그의 형 맥스 워버그가 회장으로 있는 독일 워버그은행의 한 자회사를 말한다.


 


 59. 정부 위에 군림하는 사설 중앙은행 - 디어본인디펜던트. 1921.7.02.

 독일 출신의 유대인 은행가 폴 워버그는 자신의 계획을 성취했다. 쿤앤로엡의 파트너가 되었고, 미국의 통화제도를 자신의 생각대로 만들었다.


 이런 가운데 미국인들이 聯準은행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고, 또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매우 중요한 사실 하나가 있다. 연방준비은행이라는 기관이 정부가 통과시킨 법에 의해 출현하게 된 개인회사라는 것이다. 99.9%의 미국인들은 聯準이 공익에 봉사하기 위해 만들어진 한 정부기관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마치 우정국이나 세관처럼 말이다.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당연하다. 나라와 국민 전체의 이익에 봉사해야 하는 중앙은행이 당연히 정부기관일 것이고, 또 그래야 마땅하다는 시각은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사설은행들의 카르텔이라 할 수 있는 聯準의 탄생으로 이 나라에는 국민이 선출한 정부 위에 군림하는 새로운 권력층이 생겨났다.


 분명한 것은 聯準은 정부로부터 몇몇 엄청난 특권들을 넘겨받아 이 나라의 금융에 독점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설기관이라는 사실이다. 애초에 폴 워버그가 원했던 것은 단 하나의 중앙은행이었으나, 정치적 이유로 12개의 지역준비은행들이 연방준비은행을 구성하는 체제로 가게 되었다. 중앙은행이 세워질 뉴욕으로 온 나라의 돈이 집중될 것이라는 이유에서 다른 주의 정치인들과 시민들이 단일 중앙은행 안에 호의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대중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수용된 것이 12개의 지역은행 안이다.


 그러나 표면적으로는 12개의 지역은행이 있지만, 행정적인 방법을 통해 실질적으로는 뉴욕 聯準은행을 주축으로 마치 하나의 중앙은행만이 존재하듯 체제를 이끌어 가고 있다. 聯準체제는 1913년 출범 이후 바로 이런 식으로 오늘날까지 운영되어 왔다. 현재 이 나라가 처해 있는 이해하기 힘든 상황을 설명해주는 단서도 여기에서 발견된다.


 현재 뉴욕에는 돈이 넘친다. 그러나 지금 이 나라의 진정한 부가 생산되는 농촌들에선 돈을 구경하기가 힘들다. 자연적 원인들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다. 미국은 세상에서 가장 부유하고 물자가 풍부한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이 막대한 부가 돈 가뭄에 꽁꽁 묶여 있어, 부가 생산되는 곳으로 흘러가고 있지 못한다. 이 모두가 통화량에 대한 聯準의 교묘한 조작 탓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에 대해 무지하다. 이들에게 돈이란 그저 물건을 사고팔 때 주고받는 것이다. 그러나 돈의 정체와 작동원리를 꿰뚫고 있는 사람들은 돈의 가치와 유통량을 교묘히 조종해 이득을 취하는 한편, 자신들이 원하는 의제들을 추진해 나갈 수 있다. 말 그대로 행정적 방법을 통해서 말이다.


 불행히도 이 나라엔 한두 명을 제외하곤 이 문제를 이해했던 대통령이 없었다. 대부분의 대통령들은 그저 당대의 유력 금융가들에 귀를 기울였고, 또 이들의 조언을 따랐을 뿐이다. 오늘날 국민의 모든 일상에서 그 무엇보다 중요한 역할을 하는 돈 문제에 있어 정부에겐 아무런 권한도 없다. 정부도 보통 국민들처럼 돈이 필요하면 돈을 쥔 사람들에게 손을 벌리는 것 외엔 달리 방도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돈을 쥐고 있는 이들은 폴 워버그 같은 유대인 금융가들이다. 유대인 금융가들에 의한 돈의 통제야말로 유대인 문제의 핵심이다. 이 문제만 제대로 해결된다면 다른 유대인 문제들은 전혀 어려운 것들이 아니다.


 폴 워버그는 州와 지역에 따라 차별화된 금리가 적용되어야 한다고 믿은 사람이다. 그의 뜻이 반영되어 지금 이 나라에는 사람들이 사는 곳마다 금리가 다르다. 이는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지만, 왜 그래야 하는지를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요즘 도시에 사는 식료품가게 주인은 인접한 카운티에서 농사를 짓는 농부보다 싼 이자에 돈을 빌릴 수 있다. 만약 농부가 돈을 빌릴 수 있기라도 한다면 말이다.


 왜 농촌지역의 이자가 더 비싸야 하는가? 이런 합당한 질문에 은행가나 경제전문가들은 아무 말도 없다. 마치 이들이 聯準이 사설기관이라는 중요한 사실에 입을 봉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 문제와 관련해 청문회에서 폴 워버그는 말한다.


 폴 워버그 : 연방준비은행 법 아래서는 지역마다 차별화된 금리를 적용할 수 있습니다. 올드리치 법안 아래에서는 이것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브리스토우 : 올드리치 법안이 제시했던 단일금리 안 때문인가요?


 폴 워버그 : 그렇습니다. 나는 단일금리 안이 실수라고 보았습니다.


 그럼 이제 폴 워버그는 국민들에게 설명해야 할 책임이 있다. 왜 진정한 부의 생산과는 상관이 없는 사업자들은 싼 이자에 돈을 빌릴 수 있고, 진정한 부의 생산자인 농부들은 돈을 빌리기조차 힘든가를 말이다. 이 나라의 통화제도를 개혁하겠다는 그의 사명의식이 지배와 통제를 노리는 소수 금융집단이 아니라 이 나라 전체를 위한 것이었다면 얼마든지 설명이 가능할 것이다.


 한편 폴 워버그와 관련해 또 한 가지 눈길을 끄는 대목은, 유럽 중앙은행들의 사설기관적 성격에 대한 그의 언급이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유럽의 중앙은행들은 예외없이 개인회사들이다. 영국,프랑스,독일 정부는 자국 중앙은행에 대해 아무런 지분도 소유하고 있지 않다. 英蘭銀行은 철저히 사설 주식회사의 형태로 운영된다. 주주들이 이사들을 선임하면 이들이 순차적으로 이사회의 대표를 맡는다. 그러나 프랑스 정부는 프랑스중앙은행 총재와 몇몇 이사들에 대한 임명권을 행사한다. 독일 정부는 총재와 5인의 감독위원을 임명하는 대신 중앙은행 이사회 이사들에 대한 임명권은 전적으로 주주들의 몫이다...


 미국 의회 통화문제특별위원회가 애초에 주목했던 모델은 정부로부터의 아무런 간섭도 없이 철저히 주주들이 임명한 이사화에 의해 운영되는 영국중앙은행이었다. 금융 문제에 무지한 정치인들이나 정부관리들의 영향을 배제한 채 금융전문가들이 나라의 금융과 통화 문제를 전담한다는 구도이다...


 중앙은행의 운영에 있어 얼마나 많은 권한을 정부에 부여하는가라는 차원에 있어 미국의 聯準체제는 프랑스와 독일 모델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 중앙은행들은 법적으로는 개인회사이나 정부의 승낙 아래 자국의 통화를 발행하니 半공공기관 성격을 띠고 있기도 하다. 통화발행과 더불어 이 중앙은행들은 자국이 보유하고 있는 金과 정부자금을 보관해주는 역할도 한다. 따라서 국가적 정책들의 발안과 시행에 있어 정부는 이들 중앙은행 운영자들의 협력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 - 폴 워버그. 기고문 <미국과 유럽 중앙은행제도에 대한 비교>.


 참으로 몇 가지 대단히 중요한 사실들을 알려 주는 글이다.


 1) 금융문제에 무지한 정치인들이나 정부관리들의 영향을 배제한 채 금융전문가들이 나라의 금융과 통화 문제를 전담한다는 구도이다.


 2) 이 중앙은행들은 법적으로는 개인회사이나 정부의 승낙 아래 자국통화를 발행하니...


 3) 통화발생과 더불어 이 중앙은행들은 자국이 보유하고 있는 金과 정부의 자금을 보관해주는 역할도 한다.


 4) 국가적 정책들의 발안과 시행에 있어 정부는 이들 중앙은행 운영자들의 협력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이 나라가 지금 이런 체제 하에서 운영되고 있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다. 특히 4)번은 주목해야 할 항목이다. 나라와 국민을 위하는 순수한 애국심 차원에서 정부가 정책을 펴나가려 해도 개인기업인 중앙은행 운영자들의 협력이 없으면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한편 <Political Science Quarterly> 1920년 12월 호에서 폴 워버그는 자신의 유럽방문과 미국의 통화체제 개혁에 대해 얘기한다.


 "나는 통화체제 개혁에 대한 우리의 경험을 들어 대선이 끝날 때까지 좀 참아 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그들에게 어떻게 공화당 대통령이 민주당이 장악한 의회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해 올드리치 법안이 좌절되었는지를 환기시켜 주었다. 중앙은행에 대한 민주당의 반발은 거센 것이었다. 그러나 대선 뒤 백악관과 의회를 모두 차지한 민주당은 올드리치 법안이 조금 다르게 포장되었을 뿐인 오웬-글래스 법안(聯準체제)을 아무런 저항 없이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탄생한 것이 聯準체제다." - 폴 워버그. <Political Science Quarterly> 1920년 12월.


 결국 폴 워버그의 말은, 공화당이나 민주당의 기본정강이 무엇이든 교묘한 홍보,로비가 가미된 막후의 정치게임을 통해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얻어냈다는 얘기다. 영리한 술수로 원하는 것이 무엇이든 얻어낼 수 있다는 폴 워버그의 자신감은 물론 聯準 법의 통과로 더욱 강화되었을 것이다.


 폴 워버그는 또한 정치인들이 그들의 허수아비로는 유용해도, 중앙은행 운영에 있어서는 철저히 배제되어야 할 대상이라고 본다. 그는 정치인들은 은행가가 아니기 때문에, 금융,은행과 관계된 일에는 끼어 들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치인들이 정부를 운영할 수 있을 지는 몰라도 중앙은행 운영에 참여할 만큼 똑똑하지는 못하다는 게 그의 시각이다.


 "미국에선 아무 것도 모르는 온갖 어중이떠중이들이 선거에 나서고 대통령 후보 선거전에 돈을 보탠 보상으로 공직에 오르는 이들도 있다. 이러한 정치인들의 마음속엔 어떻게 대중의 환심을 사서 그들의 자리를 계속 유지할까라는 생각 밖에 없다. 이러한 관심사에 묶여 있는 사람들이 중앙은행의 운영에 간섭한다면 이 나라에 치명적인 결과가 초래될 수도 있다." - 폴 워버그. <Political Science Quarterly> 1920년 12월.


 그럼 정부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운 聯準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을까? 정부의 고위인사 몇 명이 윌슨 대통령의 결정사항에 대한 사전지식을 이용해 주식시장에서 6천만 달러의 부당이득을 취했다는 1916년의 정보누출 스캔들이 있었다. 스캔들을 조사하기 위한 의회청문회에 소환된 버나드 바룩의 일부 증언은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의회청문회의 시기는 1916년 12월로 당시 폴 워버그는 聯準이사회 이사였고, 버나드 바룩은 부당이득을 취한 고위인사들과 공모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었다.


 위원장 : 여기 전화회사가 제공한 통화기록이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 귀하가 누구와 통화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버나드 바룩 : 내가 전화를 건 사람은 두 명이었습니다. 한 명은 폴 워버그 씨였는데, 그와는 통화하지 못했습니다. 또 한 명은 매커두 재무장관이었는데, 그와는 통화를 했습니다. 두 분 다 같은 용건에서 전화를 했습니다. 재무장관에게 전화를 한 건 지인에게 소개받은 인사를 聯準이사회 이사로 추천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와 관련해 두세 차례 장관과 통화를 했습니다.


 켐벨 상원의원 : 그 지인이 누구입니까?


 바룩 : 에드워드 만델 하우스 씨입니다.


 이것이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는' 정부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운 聯準이 운영되는 방식이다. 평생 은행을 운영해본 일이 없는 월가의 주식투기꾼 버나드 바룩과, 윌슨 정부의 실세이긴 하나 역시 은행 일에는 무지했던 에드워드 만델 하우스의 전화통화에 의해 聯準이사회의 신임이사가 결정된 것이다. 결국 폴 워버그가 개혁했다는 이 나라의 통화체제는 국민이 선출한 정부와는 상관없이 막후의 소수 유대인 실력자 서클이 좌우하는 체제로 낙착된 것이다.


 폴 워버그의 오만한 태도는 다음과 같은 시온의정서의 한 구절을 연상케 한다.


 "각국의 정치지도자들은 우리가 민중 가운데서 뽑아 준 것이어서 우리에게 노예와도 같이 순종적이며 정치능력 같은 것이 있을 까닭이 없다. 그들은 우리가 두는 장기의 卒과 같은 존재 밖에 안 된다. 배후에서 이들을 조종하고 지도하는 역할은 어릴 적부터 세계를 지배하기 위해 교육된 우리 전문가들의 몫이다. 제군도 잘 알다시피 우리의 전문가들은 우리의 정치적 계획에 따라서 지배에 필요한 지식을, 역사적 연구나 사회적 관찰을 통해 숙지하고 있다." - 제2의정.


 


 60. 유대국제금융은 국제정치에 어떻게 작용하는가? - 디어본인디펜던트. 1921.7.09.

 "이러한 배경에서 국제은행가들을 어느 한 국가의 충성스런 국민으로 간주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실상 그들은 전 세계에 걸쳐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세계시민이다. 국제적 차원에서 이들의 활동을 감시하고 통제할 수단이 꼭 강구되어야 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 조지 파툴로.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


 유대인 국제투자은행 쿤앤로엡이 1912년 대선에서 윌슨,태프트,루즈벨트 3인을 동시에 밀었던 것 같은 행태는 다른 영역들에서도 거듭 관련된다.


 1911년 러시아를 무너뜨리는 게 지상과제였던 제이콥 쉬프는 자신의 영향력을 동원해 미국과 러시아의 통상조약이 폐기되도록 만든 바 있다. 덕분에 독일 유대인들은 미국과 러시아의 무역을 중계하는 데서 나오는 막대한 이권을 얻는 동시에, 혁명전야에 있었던 러시아에 대해 더 큰 지렛대를 보유하게 되었던 것이다.


 당시 태프트 대통령에게 이 나라와 우호선린 관계를 유지해온 러시아와의 통상조약을 폐기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따라서 태프트는 국익 차원에서, 또한 양심적 차원에서 유대인 실력자들의 통상조약 폐기 요구를 거부했었다. 이에 분기탱천한 제이콥 쉬프는 회담 후 대통령과의 악수도 거부하고 걸어나오며 "이건 선전포고야!"라고 내뱉은 바 있다. 그러나 통상조약 폐기가 성사된 이후 태프트는 오늘날까지 유대인들에게 고분고분한 태도를 유지해오고 있다.


 제이콥 쉬프의 쿤앤로엡은 또한 러일전쟁에서 일본을 밀어 준 전력이 있다. 일본의 승리를 도와 러시아를 궁지에 몰아넣는 한편 일본을 국제유대인의 동맹국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수를 읽은 일본인들은 이들과의 관계를 돈 거래의 영역에 국한시켰고, 이 때문에 제이콥 쉬프는 일본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품게 되었다. 요즘 언론의 反일본 프로파간다도 이 일과 무관하지 않다.


 어쨌든 제이콥 쉬프는 일본의 승리를 도와 러시아제국 붕괴의 초석을 놓았다. 그리고 러시아 타도라는 그의 지상과제는 유대인 볼셰비키들에 의해 완수되었다. 제이콥 쉬프는 러일전쟁 직후 일본에 억류되어 있던 러시아 포로들을 상대로 공산혁명 의식화 교육을 하는데 돈을 댄 일도 있다. 그는 러시아 황제가 물러났다는 소식이 뉴욕에 전해졌을 때 가장 많은 축하를 받은 인물이다. 결국 제이콥 쉬프의 투자는 러시아 차르 니콜라스 로마노프와 그의 가족이 유대인들에게 몰살된 참극에서 그 결실을 보았다.


 사실 뉴욕의 이스트사이드 유대인 게토에서는 1917년 10월 혁명 수 개월 전부터 이미 "트로츠키가 곧 차르의 자리를 꿰어차게 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었다. 그리고 때가 무르익자 유대인들의 하수인 노릇으로 유명한 한 정부 고위인사의 지시 아래 유대인 트로츠키는 정상적인 출국절차도 거치지 않고 러시아 행 배에 올랐다.


 트로츠키를 수상쩍게 여긴 캐나다 관리들이 그를 핼리팩스에 억류해 놓았을 때도 미국정부의 한 고위인사가 캐나다정부와 접촉해 그를 풀어 주게 했고, 덕분에 혁명은 차질없이 진행되었다. 따지고 보면 미국정부도 러시아혁명의 성공에 적잖은 기여를 한 셈이다.


 어쨌든 제이콥 쉬프의 쿤앤로엡 경영진은 모두 독일 출신 유대인들이다. 그런데 이들 중 한 명인 오토 칸의 주무대는 오히려 영국,프랑스인 듯하다. 쉬프,워버그 등 다른 파트너들과는 달리 오토 칸이 親독일 성향을 드러낸 적은 없었다. 오토 칸은 철저한 언론관리 덕분인지 독일 출생임에도 자신은 독일 편이 아니라는 인상을 심는데 성공했다. 덕분에 오토 칸은 독일을 제외한 국가들에서 제 세상을 만난 듯 활동한다.


 영국에서 오토 칸은 의회출마를 생각해본 적도 있을 만큼 영국 커넥션도 깊다.


 오토 칸이 동유럽을 향할 때마다 그 나라들에서는 유대인에 대한 처우와 관련해 변화가 일어난다.


 오토 칸은 프랑스에서 주요 일간지에 미국의 유럽정책에 대해 기고문을 써줄 만큼 지명도도 있고 권위를 인정받는다. 프랑스는 세계에서 가장 유대화된 나라들 중 하나다. 미국처럼 동유럽 출신 유대인 이민자들이 넘치지는 않아도 유대인 은행가들의 영향력에 있어 프랑스는 미국과 별 다를 바가 없다. 그러니 유대인 은행가인 오토 칸에게 프랑스는 아주 편안한 무대이다. 그는 프랑스인들에게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미국은 물자와 자원이 엄청난 나라다. 그러나 이러한 국부의 규모에 비해 사람들이 실질적으로 쓸 수 있는 돈은 그리 많지 않다."


 맞는 말이다. 그리고 이런 현실은 그의 쿤앤로엡 동료인 폴 워버그가 나라 전체의 부에 상응하는 통화량을 안정적으로 유지시키겠다고 약속하며 만들었던 통화제도에 기인하는 것이다.


 또한 오토 칸의 주목할 만한 활약상 가운데 하나는 지난 전쟁 중 親독일 프로파간다를 비난함으로써 미국인들 사이에 프랑스에 대한 심정적 지지를 이끌어 낸 일이다. 해괴한 것은 이 와중에서도 그의 동료 폴 워버그는 독일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고 다녔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쿤앤로엡은 필요하다면 미국,독일,프랑스,영국을 동시에 연주할 수도 있는 범세계적인 오케스트라다.


 워버그 가문의 이해관계는 물론 독일에 집중되어 있다. 폴 워버그의 동생 필릭스 워버그 역시 미국국적이자 쿤앤로엡 파트너다. 필릭스 워버그는 미국유대인위원회 집행위원이다. 폴 워버그의 형인 맥스 워버그는 독일에서 가문의 수장 역할을 하고 있다. 폴 워버그가 미국의 전시정부와 긴밀한 관계였듯이, 맥스 워버그도 독일 전시정부와 긴밀한 관계였다.


 전쟁이 끝난 뒤 형과 동생은 각각 독일과 미국 대표단의 일원으로 베르사유 평화회의에서 만났는데, 얼마나 많은 유대인들이 있었는지, 옵저버들은 독일대표단을 코셔대표단 또는 워버그 대표단으로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유대인이 많기로는 미국대표단도 마찬가지였다.


 맥스 워버그는 러시아의 공산화 관련해서도 흥미로운 인물이다. 러시아의 붕괴가 독일의 군사력이 아니라, 유대인들의 음모로 무너졌다는 것은 역사가 입증해주는 사실이다. 이 일에 있어 한 몫을 한 인물이 맥스 워버그다. 러시아혁명에 대한 미국정부 문서를 보면, 맥스 워버그의 은행이 트로츠키의 돈줄 가운데 하나였음을 알 수 있다.


 러시아혁명과 공산주의 운동의 주체가 유대인임을 보여 주는 수많은 증거나 증언들에도 불구하고, 존 스파르고 같은 비유대계 사회주의 운동가가 이를 부정하는 것은 딱한 일이다. 그러나 그런 인물의 무지나 의식적인 거짓말과는 상관없이 러시아 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공산주의는 볼셰비키들이 앞장서고 뒤에서는 유대인 금융가들이 밀어 주는 운동이자 정치적 지향점이다.


 유대인 은행가들의 관심사는 그야말로 국제적이다. 이들은 자신이 속해 있는 나라와 사회에 대한 책임감은 간과해 버린다. 유대인 은행가들은 전쟁이든 평화협상이든, 자신이 속해 있는 나라의 이익과는 상관없이 오직 세계 돈 시장에 유리하도록 일들을 이끌어 나간다. 세계 금융시장이 그들이 누리는 권력의 원천이고, 그들이 팔고 사는 것이 돈인데, 어떻게 그러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돈이란 상품은 그 가치가 유동적인 것이기에 이에 대한 조작기술을 아는 사람들에겐 그야말로 무한대의 정치적,경제적 기회들을 제공한다.


 폴 워버그는 지난 전쟁 동안 적대국의 시민이 보유했던 유가증권들에 대해 일부 국가들이 취했던 정책을 비판한다. 적국시민의 재산에 대한 몰수정책을 펼칠 경우 이를 피하기 위한 대규모의 자금이탈이 일어날 것이고, 이로 인해 금융공황사태가 초래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는 우리 나라의 은행가들이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아무리 적국의 시민이라도 그들의 사유재산권을 침해해 우리가 얻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조만간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외국의 유가증권과 자산, 그리고 금을 보유한 나라가 될 것이다. 만약 미국이 전쟁 시 적국의 국내자산에 대해 몰수정책을 취한다면 이러한 밝은 전망이 위기에 처하게 될 것이다."


 결국 폴 워버그의 말은 미국을 세계 돈 시장의 중심으로 만드는 것이 국제유대인의 계획이라는 얘기다. 이는 국제유대인이 미국을 그들의 세계적 의제들을 실천해 나가기 위해 써먹을 제1의 도구로 만들겠다는 의미다. 사실 수많은 전쟁을 통해 유럽의 많은 나라들 사이에 뿌리내린 민족적,국가적 감정은 자신이 사는 나라의 탈을 쓰고 일을 벌인 유대인 은행가들에 기인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사람들이 "영국이 이런 일을 했다... 독일이 저런 일을 했다..."고 떠들지만, 사실 그 모두는 유대인들이 한 일이었다. 이 나라들은 모두 국제유대인이 두는 장기판의 졸들이었던 셈이다.


 미국이 세계 제1의 金보유국이 되는 환상을 퍼뜨리는 한편, 폴 워버그는 또한 현재 독일의 비참한 상황을 강조하며 미국의 지원을 주장한다. 그러나 그는 독일의 참담한 현실을 불러온 세력이 바로 그의 형 맥스 워버그 같은 독일의 유대인 은행가들이라는 얘기는 절대로 하지 않는다. 독일에 대한 미국의 지원을 주장하지만, 이는 독일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독일에 대한 국제유대인의 지배를 강화하기 위해서다.


 국적이 무엇이든 어느 나라에도 충성하지 않는, 그야말로 국제적인 유대인은 은행가들 뿐만이 아니다. 국제적이기는 유대인 공산주의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인류의 형제애를 말하는 기독교적 국제주의에서 그 개념을 빌려 국제주의를 오히려 나라들의 정체성을 파괴하는데 이용해왔다. 진정한 국제주의의 근간은 뚜렷한 민족적,국가적 정체성이라는 자명한 사실을 그들 자신도 모르지 않을 터인데 말이다. 실로 위장술은 자신들의 의제를 실천함에 있어 국제유대인들이 가장 애용하는 수법이다.


 


 61. 聯準이 초래한 미국의 돈 가뭄 - 디어본인디펜던트. 1921.7.16.

 어느 나라에도 속하지 않으면서 자신들만의 목적을 위해 여러 나라를 싸움 붙이는 유대인 국제은행가들과, 부와 권력의 자리에 앉기 위해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반란과 혁명을 선동하는 유대인 공산주의자들은 분명 상상 속의 존재가 아니다. 이 두 부류의 유대인들이야말로 오늘날 세계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는 화근이다. 이민 문제도, 돈 문제도, 국제정치의 교착상태도, 전후의 불안한 평화체제도, 대중음악과 영화연극의 음란화도, 밀주와 마약사업도 근원에는 유대인이 있다.


 이민 문제의 근원이 유대인이라고 해서 유대인의 이민을 금지하자는 것이 아니다. 유대인이 자신이 새로 거처하게 된 나라의 충직한 국민이 되어야 한다는 얘기다. 돈 문제의 근원이 유대인이라고 해서 유대인의 금융계 진출을 금지하자는 것이 아니다. 본래의 목적대로 금융이 산업을 섬겨야지, 유대인의 관념대로 산업이 금융을 섬기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국제정치 문제의 근원에 유대인이 있다고 해서 유대인을 국제정치에서 배제하자는 것이 아니다. 세계가 유대인을 중심 축으로 해서 돌아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유대인은 대중연예계에 종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아니다. 단지 이들 매체들을 통해 사람들의 도덕성을 타락시키는 일을 중단하라는 얘기다.


 유대인의 가장 큰 문제는 살고 있는 나라가 어디든 그들이 어김없이 드러내는 反국가성,反사회성이다. 만약 유대인들이 모세의 법을 지키는 유대인들이었다면 어느 나라에 살든 유대인은 모범적인 시민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모세의 법을 랍비들이 해석했다는 탈무드 신봉자들이다. 그리고 탈무드가 가르치는 유대인의 민족주의에 의하면 유대인은 신의 선민으로 그들보다 열등한 비유대인들을 자신의 만족대로 개나 소처럼 부릴 권리가 있고, 이 와중에서 비유대인들이 살든 죽든 자신들과는 상관없다는 것이다.


 한 유대인 은행가는 한껏 거드름을 피우며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우린 국제은행가요. 독일이 전쟁에서 졌다고? 그래서 뭐? 그건 그 나라 사람들 문제지, 우린 국제주의자들이오." 이것이 지난 세계대전에 대해 독일,미국,영국,프랑스에 사는 유대인 국제은행가들이 취했던 태도요 본심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어느 나라가 인위적으로 조작된 환율이나, 인위적으로 축소된 통화량 탓에 고통을 겪게 된다 해도 이들 국제은행가들에겐 상관없는 일이다. 실로 그 무엇보다 유대인 국제은행가들의 배를 두둑하게 키워 주는 것은 전쟁과 경제공황이다. 양자가 유대인 은행가들의 최고 수확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국제주의는 유대인의 신념이라기보다는, 그들의 의제진흥을 위한 유용한 도구다. 유대인의 국제주의는 특히 외교와 이민에 있어 위력을 발휘한다. 국가간 정상회담에서의 통역도 철저히 유대인의 독점영역이다. 주요 국가들의 항구에서 출입국사무소의 관리로 앉아 있는 이들도 거의 예외없이 유대인이다.


 미국에서도 소득세나 聯準은행, 또는 국무성의 비밀서류들을 관리하는 자리에는 어김없이 유대인이 앉아 있다. 그러다 보니 이 나라의 국가적 비밀사항들에 대해 유대인만큼 훤한 집단도 없다.


 유대인 국제은행가들은 자신들의 의제에 따라 어느 나라를 흥하게 할 수도 있고, 망하게 할 수도 있다. 전쟁,혁명,경제위기 등 방법은 많다. 그리고 이 와중에서 그 나라들의 국민이 겪는 고통은 그들과는 상관없는 일이다.


 유대국제자본은 북미,남미,유럽의 주요 국가들, 그리고 중국과 일본에 그들의 의제를 대변하고 실천하는 기함급 금융회사들을 거느리고 있는데, 이런 선상에서 미국을 담당하는 회사가 뉴욕의 쿤앤로엡이다. 쿤앤로엡의 파트너인 폴 워버그는 聯準의 탄생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사설기관인 聯準이 이 나라 국민의 이익에 반하는 방향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지적이 수없이 일어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전문가들은 聯準이 전쟁 동안에는 전시정부를 상대로 제 역할을 한 것도 사실이지만, 전후 이 나라에 발생한 돈 가뭄 역시 聯準의 잘못된 통화정책 탓이라고 입을 모은다.


 사실 서면상에 나와 있는 미국인들의 1인당 소득은 현실을 반영하지 않는다. 1인당 국민소득을 산정할 때 고려되어야 하는 것이 통화의 시중유통량인데, 현재 이 나라 부의 절반에 상응하는 통화가 聯準에 의해 묶여 있는 것이다. 이 나라에 금이 얼마나 있든 미국이 생산하는 부는 이 금의 가치보다 훨씬 크다. 실로 미국의 부는 세계의 모든 금을 합한 가치를 훨씬 상회한다. 미국농가들의 1년 치 생산량만 따지더라도 실질적 가치로 보면 그러할 것이다.


 미국의 현 통화체제 하에서 막대한 부는 돈이라는 병목을 거쳐야 한다. 그리고 돈은 또  더 좁은 金의 병목을 지나야 한다. 따라서 현 체제 하에서는 金을 통제하는 자기 이 나라의, 더 나아가서 세계의 부를 통제하는 것과 다를 바 없이 되어 있다. 세계의 부는 돈을 매개로 개인에서 개인으로, 나라에서 나라로 전달되는 것인데, 돈의 부족으로 부의 이동이 정체되어 있는 것이 작금의 상황이다. 마치 몸집에 비해 몸 안에 도는 피가 모자라 어디가 많이 아픈 사람을 연상케 한다. 이렇듯 돈이 희귀하다 보니 사람들은 신용거래에 의존하게 되는데, 신용거래의 장단점이 무엇이든 이로 인한 분명한 결과 하나는 금융공황 시 현금을 쥐고 있는 사람들에게 엄청난 경제적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聯準이 이 나라 국민의 생산성이나 시장의 법칙과는 상관없이 인위적인 차원에서 돈의 유통량을 조종해 사람들을 풍족하게 할 수도 있고 궁핍하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 뒤따를 수 밖에 없는 질문은 이런 것이다. "이런 결정을 내리는 이들이 누구인가? 이들이 결정을 내리는 기준은 도대체 무엇인가?"


 聯準의 찰설자인 폴 워버그가 아직까지 이 기관의 실질적인 지휘자로 있는 상황에서, 聯準이 전후 초래한 돈 가뭄으로 인해 이 나라 유수의 기업들이 지금 채권단 관리에 넘어가 있는 상황이고, 수많은 농가들이 헐값에 농장과 가축들을 팔고 있으며, 면화생산자들의 수확물이 창고에서 썪고 있다. 건축,철도,출판,도소매 유통업계 역시 침체에 빠져 있다. 왜인가? 돈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럼 세계금융의 중심국이라는 미국에서 그 많은 돈이 다 어디로 간 것일까? ☞ 1차 세계대전 후의 통화량 부족과 2차 대전 후의 통화량의 풍부함과 경제발전은 비교되는 지점이다.


 돈은 다름 아닌 뉴욕에 있다. 처음부터 폴 워버그가 원했던 대로 현 聯準체제는 선전용에 불과했던 12개의 지역준비은행체제가 아닌, 뉴욕연준은행에 기반한 단일 중앙은행 체제로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다음은 익명의 한 재무성 관리의 증언이다.


 "미국의 전 지역이 돈 가뭄에 시달리고 있는 가운데 월가의 특정 은행들은 뉴욕 聯準은행으로부터 금액과는 상관없이 돈을 빌리는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다. 예컨대 한 뉴욕 은행은 연준으로부터 1억4천5백만 달러를 조달했는데, 이 금액은 캔자스,네브래스카,콜로라도,와이오밍,미주리,오클라호마,뉴멕시코를 관할하는 캔자스시티 연준은행이 이들 지역에 있는 1,091개 회원 은행들에게 빌려 준 총액보다 2천만 달러가 더 많은 금액이다."


 이것이 현재의 상황이다. 온 나라에 돈을 공평하게 공급할 것이라는 인상을 심어 주기 위해 채택되었던 12개의 지역준비은행 체제가 폴 워버그의 말처럼 "행정적인 방법을 통해 극복되어" 이 나라에서 실질적인 생산을 담당하는 지역에는 고작 수천만 달러만 공급되는 동안 투기성 사업들이 집중되어 있는 지역에는 수억 달러가 공급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분명 설명을 요하는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그럼 이렇게 뉴욕에서 넘치는 돈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다름 아니라 지금 돈 가뭄에 시달리고 있는 지역들에서 빠져 나온 돈이다. 곧 이 나라의 돈이 마를 것이라는 1920년 5월의 소문에 이어 연준이사회는 신규여신 발급제한과 채무이행 요구를 통해 이들 지역에 대한 대대적인 자금회수에 나섰고, 이 돈은 모두 뉴욕으로 흘러 들었다.


 위의 재무성 관리는 말한다. "이 나라 전 지역의 생산적인 산업들에서 빠져나간 돈은 월가의 특정 은행들이 6%라는 환상적인 금리에 대출 받은 뒤 20~30%의 고금리를 매겨 다시 대출했다." 누가 봐도 이는 범죄수준이다. 이런 가운데 聯準은 그 어느 때보다 재정적으로 건실한 상태에 있다.


 1920년 12월의 45%에 이어 연준은 1921년 7월 현재 60%의 준비금을 확보하고 있는데, 이는 聯準 창설 이후 최고치이다. 그러나 이것이 이 나라의 국민과 무슨 상관이 있나? 연준은 자신의 재정적 건실함이 마치 이 나라의 재정적 건실함을 나타내는 것으로 얘기하는데, 그렇다면 왜 농촌과 공장들은 사업을 계속 꾸려 나가기 힘들 정도로 돈 구경하기가 힘든가? 바로 이런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졌던 것이 聯準이 아니던가?


 안정적인 통화공급과 통화정책 유지 차원에서 중앙은행은 필수적이다. 문제는 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기관이 본래의 취지와는 달리, 이 나라 국민의 복지에 반하는 방향으로 운영,조작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상황으로 본다면 연방준비은행은 이름만 연방이지, 실은 소수 은행가들의 이익에 봉사하는 존재에 다름 아니다. 聯準의 통화수축 정책으로 국민들이 고통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을 상대로 일부 금융기관들이 고리대금업으로 폭리를 취했다는 것은 문제의 심각성을 드러내 주는 대목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聯準이 보유 중인 준비금의 10%만 풀어도 현재의 돈 가뭄은 해결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럴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지금 쿤앤로엡이나 슈페이어 같은 유대인 금융회사들이 맥시코,노르웨이,독일 등 외국에 돈을 빌려 주거나, 현지에 회사를 세우는 일들에 열심인데, 여기에 들어가는 돈이 다 미국인들의 돈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보통사람들은 아무 것도 모르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돈은 여전히 미스터리이고, 금융은 그들이 범접하지 못할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익숙한 5달러나 10달러 차원에서는 확연히 드러날 일도 정부의 고위인사들이 등장하고, 聯準은행, 월가의 금융기관들, 그리고 수억 달러가 관련되어 있는 탓으로 그들의 생각이 흐려지고 문제의 핵심을 보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딱한 상황은 저간의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의 침묵에 의해 더욱 악화된다. 선거자금이란 차원에서 이 나라의 고위 정치인들은 금권집단에 예속되어 있다. 주요 기부금 철처와 더불어 이들의 개인적 채무상태가 나열되어 있는 문서와, 이 정치인들이 어떤 유대인 실력자들의 저택을 찾아 자주 밤을 보내는지를 보여 주는 문서가 발행된다면 그 무엇보다 흥미로울 것이다.


 다음은 중앙은행이라는 사설기관이 보유한 권력에 대해 한 미국 언론인의 하원청문회 증언이다.


 "존 헤이 국무장관의 소개장을 보여 주자, 그는 나를 깍듯이 대하며 英蘭銀行을 구경시켜 주었습니다. 구경을 마치고 그의 사무실에 돌아온 뒤 나는 혹시 英蘭銀行의 재무제표를 볼 수 있는지 그에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英蘭銀行은 재무제표를 발행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럼 영국의회가 재무제표를 요구할 때는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이에 그는 영국의회는 그런 요구를 하지 않는다고 대답했습니다. 의회, 특히 노동당이 하원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지 물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있을 수 없는 얘기라고 말하면서요. 그러자 그가 대답했습니다. '그들의 대부분이 우리에게 빚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그들은 우리가 싫어하는 일은 안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