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 미국인이 될 생각이 없는 유대인 - 디어본인디펜던트. 1920.10.23.


 어느 나라에 살든 유대인은 별개의 민족적,종교적 집단으로 나라 안에 또 다른 나라를 구성한다는 혐의가 제기되어 왔다. 만약 유대인 지도자들의 가르침에 따라 별개의 민족, 나라 안의 나라 형태로 계속 존재할 경우 이 문제는 결국 두 가지 방향으로 끝을 맺게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1) 유대인의 격리나 축출.




 2) 유대인이 비유대인에 대해 우위를 점하게 되는 상황.




 유대인 사회의 내부적 가르침들을 살펴볼 때, 유대인의 지향점은 후자라는 것이 분명하다. 비유대인 전위들이 아무리 그렇지 않다고 아우성을 쳐도 소용없는 일이다.




 유대인 문제를 연구하다 자주 놀라게 되는 것은, 유대인들이 불만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들 중 많은 수가 실은 유대인들 스스로가 자초한 것들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예컨대 유대인들이 지탄하는 反유대주의도 선민의식이라는 유대주의가 없었다면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또 유대인들은 게토를 들어 중세 기독교인들의 가혹함을 비판하는데, 사실 게토는 그 누구도 아닌 유대인들 스스로의 창조물이다.




 유대인들이 게토를 만들어 그들만의 사회를 이루고 살았던 이유는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라 그들 자신이 그것을 원했기 때문이었다. 비유대인과의 접촉은 유대인을 오염시킨다는 믿음 하에서 말이다. 그러면서도 비유대인에겐 게토를 기독교인이 유대인에게 저지른 만행이라고 선전한다.




 유대인이 별개의 나라, 나라 안의 나라를 이루고 있는 것도 똑같이 그들이 원해서이다. 이는 그들의 모든 말과 행동이 대변해준다.




 뉴욕 센트럴파크 서쪽에 있는 세파르디계 회당 센트럴시나고그 수석랍비 드 솔라 풀 박사는 이렇게 말한다.




 "과거 유럽의 게토들은 유대인에게 유대인으로 남을 수 있는 최상의 환경을 제공했다. 싫어도 다른 유대인의 눈이 있었기에 의복,섭생,안식일,종교의식에 있어 유대교의 율법을 엄수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미국에서는 이런 일이 불가능하다. 현재의 미국적 환경은 유대인의 정체성에 대한 심각한 위협을 제기한다."




 센트럴시나고그의 다른 랍비인 시갈 박사는 이렇게 말한다.




 "폴란드와 리투아니아의 전통적인 게토들이야말로 유대인을 위한 이상적인 사회들이었다. 이러한 환경에서 유대인은 진정한 유대인으로 살아갈 수 있었다. 오늘날 미국을 비롯한 서유럽 국가들의 유대인들이 유대인으로 남을 수 있는 것도 전통문화와 관습을 간직한 동유럽 게토 출신 유대인들이 이들 나라에 계속 유입되고 있는 덕분이다."




 게토 출신 진짜 유대인들의 이민이 미국과 서유럽 국가들에 있는 유대인 사회의 정체성을 유지하는데 크게 기여한다는 시각은 일반적인 것이다.




 "미국이 제공하는 거의 무한대의 자유는 유대인이 유대인으로 남기 힘들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들 중 하나다... 이들 나라에서 유대인의 정체성을 유지해주는 것은 그 나라 사람들의 反유대주의와 동유럽 게토 출신 유대인 이민자들의 꾸준한 유입이다." - 이스라엘 프리들랜더. <미국에서 유대교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




 "나는 양복을 입고 껌을 씹으면서 영어를 쓰는 미국화된 유대인보다느 약간 볼썽사나워도 유대교의 신앙을 간직한 카프탄(유대인의 전통적 검은색 의복)을 입은 구식 유대인을 더 좋아한다." - 이스라엘 프리들랜더. <유대인 이민자의 미국화>.




 서구 유대인의 정체성을 보전해주는 영향의 일환으로 매년 25만 폴란드 이민자들이 카프탄을 입은 구식 유대인들이다.




 유대인 사회 지도자들은 미국화란 개념에 호의적이지 않다. 미국화와 유대적 정체성의 보전이란 개념은 상호 대립적 관계에 있다.




 "잇따른 포그롬들이 아니었다면 러시아의 유대인들은 그들의 정체성을 차차 망각해 그 나라 사람들에 동화되었을 것이다. 다행히 포그롬들로 인해 유대인들은 그들의 자리를 굳건하게 지킬 수 있었고, 이는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 이스라엘 프리들랜더.




 반유대주의적 사건들이 유대인의 정체성,단결력을 더욱 공고히 하는데 매우 유용하다는 유대인 사회 지도자들의 일반적인 시각을 반영하는 발언이다. 유대인 지도자들이 기회가 있을 때마다 본 시리즈를 포그롬으로 부각시키는 것도 이런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




 연방대법원 루이스 브랜다이스 판사 역시 게토에서 해방되어 거주국가 국민들과 평등한 민권을 누리게 된 환경이 유대인의 정체성 유지에 부정적으로 작용한다는 시각을 공유하는 유대인 지도자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우리가 온전한 유대인으로 남는 것을 방해하는 모든 비유대적 영향들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 지난 세기의 유대인 해방으로 한때는 우리를 지켜 주었던 게토라는 보호막이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루이스 브랜다이스가 열렬한 시온주의자인 이유도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국가를 세워 유대인들이 온전한 유대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공간과 환경을 확보하자는 취지에서다. 같은 선상에서 센트럴시나고그 랍비 S.레비는 이렇게 말한다.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국가를 수립하는 것은 유대인이 유대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제공했던 과거의 게토를 다시 세우자는 것 외에 다름 아니다."




 이 모두는 유대인의 지향점이 그들의 거주국가 국민들의 지향점과는 같을 수가 없음을 보여 주는 증언들이다.




 이런 가운데 유대인은 비유대인 근대국가들의 진화에 있어 위협을 느낌과 동시에 기회를 보기도 한다.




 1) 위협 - 만약 근대국가들이 민족주의 선상에서 진화를 거듭한다면 유대인의 입지는 좁아질 것이고, 그들의 민족적 염원은 요원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유대인의 입장에서 가장 큰 위협이 되는 것은 바로 비유대인의 민족주의다.




 "근대국가들에서 나타나는 그 무엇보다 뚜렷한 경향은 국가권력의 중앙집중화와 사회에 대한 그 영향력의 확대다. 징병제,의무교육제,의무사회보험 등이 그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 확장된 국가권력의 정신적 기반이 민족주의일 때이다. 이런 상황에서 소수집단인 유대인의 미래는 불안해질 수 밖에 없다." - 시릴 피치오토. <근대국가와 유대인 문제>.




 "과거의 봉건적 앙시엥레짐 하에서는 낙후된 조직과 행정력 때문에 국가권력은 제한적일 수 밖에 없었다. 유대인이 게토에서 그들만의 사회를 이루고 살아갈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배경에서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나 근대국가체제 하에서는 사정이 달라졌다. 민족주의를 구심점으로 하는 국가권력이 확대될수록 유대인의 삶은 더욱 어려워지고 위협받을 수 밖에 없다." - 시갈. <유대교의 미래>. 센트럴시나고그 랍비.




 2) 기회 - 비유대인 근대국가들의 진화에 있어 유대인이 보는 기회란 사상과 관념들을 통해 비유대인 근대국가들의 진화를 유대인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유도하는 것이다. 러시아에서 일어났던 일도 결국 이런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할 일이다. 이는 또한 시온의정서가 왜 비유대인 국가를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갈라놓고, 부패와 실정을 통해 정부권위를 실추시키며, 언론과 대중연예를 통해 국민을 우민화시키고, 동시에 이 모든 벙리적 상황들에 대한 해독제로 작용할 수 있는 기독교의 영향력을 파괴해야 한다고 설파했는지를 설명해준다.




 건강하고 上下官民이 단결된 비유대인 민족국가의 출현은 유대인에겐 두려움의 대상이다. 따라서 유대인에게 비유대인들의 민족주의는 말살, 아니면 최소한 통제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다. 문제는 이런 구도를 유대인은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는 반면, 미국인은 그렇지 못하다는 거이다.




 여기서 유스타스 퍼시의 글을 다시 한 번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자유주의의 부상으로 유대인은 게토의 벽을 허물고 유럽인과 평등한 민권을 누리게 되었다. 그리고 새로이 도래한 이런 호의적인 환경에 힘입어 유대인은 유럽국가들의 중추권력을 차지했고 또 그 열매를 즐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 국가들의 일원이 되기를 거부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유대인은 더 나아가 비유대인의 자유,민족주의, 그리고 합법적 정부를 예전에 그들이 겪었던 억압과 박해만큼이나 증오한다. 서구국가들이 온전히 성장하려면 유대인에게 완전한 관용을 베풀어서는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국경에 근거한 영토적 주권국가들로 구성되어 있는 세계질서 속에서 유대인이 생존,번영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두 가지 뿐이다. 하나는 다른 민족들의 민족국가 개념을 해체하는 것이며, 두 번째는 특정 영토에 자신들만의 민족적 주권국가를 수립하는 것이다. 바로 이 점이 왜 동유럽 유대인들이 공산주의와 시온주의에 그토록 헌신적인지를 설명해준다.




 근래의 Young Turk(청년 투르크) 혁명에 이르기까지, 19세기 동안 유대인이 주도했던 공화주의 및 사회주의 운동과 같이 현재 동유럽에서 공산주의와 시온주의는 서로의 발을 맞춰 가며 성장하고 있다. 유대인이 이러한 이념들에 헌신하는 이유가 비유대인 국가들의 발전과 안녕에 기여하고자 함은 물론 아니다. 정치,경제,문화를 떠나 그 어떤 비유대인의 권력체제도 유대인에게는 증오의 대상일 뿐이기 때문이다." - 유스타스 퍼시. 영국외교관.




 




 67. 반역자 베네딕트 아놀드와 유대인들 - 디어본인디펜던트. 1921.10.08.


 언론에 대한 유대인의 영향력 탓에 지금 이 나라의 중요한 사실들이 국민들에게 온전히 전달되지 못하고 있다. 현재 이 나라의 언론사들이 거둬 들이는 광고수익의 75%가 유대인들에게서 나온다고 하니 그 정도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유대인들이 알리고 싶은 것만 알리고, 감추고 싶은 것은 감추는데, 사정이 이렇다 보니 국민들이 유대인 문제와 관련된 진실들에 접근하는 게 여간 어렵지가 않다.




 유대인이 미국독립전쟁에 얼마나 큰 기여를 했는지 선전하는 것은 유대인 프로파간다 꾼들의 단골메뉴다. 물론 그들은 유리한 것만 알릴 뿐 불리한 것은 누락시킨다.




 서구 전쟁사에 있어 유대인이 수행했던 역할에 대해 베르너 좀바르트는 <유대인과 근대자본주의>에서 이렇게 기술한다.




 "16세기 이후 유럽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지녔던 군수하청업자들과, 왕들과 대공들에게 전비를 대주었던 금융가들은 모두 유대인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사정은 1492년의 유대인 추방 전까지 스페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17~18세기 유대인은 이미 유능한 군수하청업자들로 정평이 나 있었다. 1630년 경 네덜란드에서 영국으로 건너와 거상이 된 유대인 안토니오 페르난데스 카바할은 찰스 왕을 처형시킨 의회군에 식량을 대주었고, 군의 유지비를 대기 위해 매년 10만 파운드 상당의 은을 수입했다. 또한 유대인 메디나로 알려진 솔로몬 메디나는 1672년 오렌지 공 윌리엄3세의 즉위를 도운 공으로 영국 사상 최초로 귀족의 반열에 오른 유대인이 되었다.




 스페인 왕위계승전쟁에서도 주된 군수하청업자들은 유대인이었다. 루이14세의 군대에 식량과 정보를 대준 이들도 스트라스부르그의 유대인 거상들이었는데, 그중 야콥 부름은 왕의 측근이 되었다. 이러한 활약상에 힘입어 군수업자로 유대인들의 입지는 18세기를 통해 더욱 공고해졌다...




 프랑스혁명 이후에도 유대인의 이러한 위치는 변하지 않았다. 혁명군에 이어 나폴레옹의 군대에 식량과 물자를 대주었던 이들은 여전히 유대인 군수업자들이었다. 이와 관련해 혁명 직후 파리 곳곳에 내걸렸던 다음과 같은 방문(榜文)은 눈길을 끈다. '유대인들이여, 그대들은 혁명으로 프랑스인과 동등한 민권을 획득하게 되었다. 이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그대들은 지금 굶주리고 있는 이 도시를 살려 낼 의무가 있다. 그리고 이 일은 오직 국제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그대들만이 할 수 있다. 부디 몸을 일으켜서 그대들의 동료시민들을 구원하라!'




 독일에서도 군수하청업은 일찍부터 유대인의 영역이었다. 올브렉트 추기경의 허락으로 1537년 핼버슈타트에 정착한 유대인 이삭 메이어는 전운이 돌자 도시에 무기와 갑옷을 제공했고, 요셀만 로스하임은 1548년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군대에 전비와 식량을 대주어 왕실의 특별보호를 누리기도 했다. 또한 1546년 보헤미아 출신의 한 유대인이 황제의 군대에 무기와 갑옷, 담요와 외투 등의 물자를 공급했다는 기록도 눈에 띤다. 브란덴부르크의 선거후(選擧候) 프리드리히 빌헬름도 유대인 레이만 곰페르츠와 솔로몬 엘리아스를 통해 대포와 화약을 조달했다. 같은 선상에서 17~18세기에 걸쳐 사무엘 줄리어스는 작센州의 選擧候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투스를, 모델 가문은 안스바흐 공국을 섬겼다.




 유대인들이 주된 군수하청업자들이었다는 것은 오스트리아,독일,프랑스,영국도 다르지 않았다. 유대인 추방 이후 1670년 레오폴드 황제의 특별허가를 받아 다시 비엔나에 들어와 살 수 있었던 오펜하이머,베르타이머,헤르셀 등도 모두 군수하청업 가문들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 합스부르크 왕조 치하에 있는 모든 나라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마지막으로 미국의 독립전쟁과 남북전쟁에서도 유대인들이 주된 군수하청업자로 활약했다는 사실을 언급해야 할 것 같다." - 베르너 좀바르트. <유대인과 근대자본주의>.




 "전쟁은 유대인의 최고 수확"이란 말은 오래 전부터 있어 왔던 얘기다. 역사적으로 反유대주의도 유대인들이 전쟁을 통해 돈을 버는 집단이라는 인식이 한 몫을 해 왔다. 유대민족은 그 어느 나라에 대한 충성심도 없기에, 유대인은 전쟁 동안 장사꾼, 정보제공자(간첩)으로 활약할 수 있는 용이한 위치에 있다. 그리고 그들의 이런 역할은 독립전쟁과 남북전쟁을 거쳐 지난 세계대전을 통해서도 고스란히 되풀이되었던 것이다.




 독립전쟁 전 미국 식민지들의 유대인 인구는 미미한 편이었지만, 대부분 부유한 상인들이었던 관계로 영향력은 작지 않았다. 초기 미국정부의 역할을 했던 대륙의회 기록들을 보면, 이런 유대인들과의 거래내역을 자주 발견할 수 있다. 대개 소총,대포,담요,북,식량,군복,군마 등에 대한 거래들이다. 유대인 거상들은 대부분 인디언 부족들과의 무역으로 부자가 되었는데, 펜실베니아의 그라츠 가문이 대표적인 예다.




 베네딕트 아놀드(1741~1801)는 미국독립전쟁 때 활동한 장군이자, 미국인들에게는 매국노의 대명사로 통하는 인물이다.




 




 68. 아놀드 소장과 유대인 참모의 비리행각 - 디어본인디펜던트. 1921.10.15.


 




 69. 적진으로 도주한 베네딕트 아놀드 - 디어본인디펜던트. 1921.10.22.


 오늘날 베네딕트 아놀드가 미국 역사상 최악의 반역자라는 것을 모르는 미국인은 없다. 그러나 그의 주변에 데이빗 프랑크스나 솔즈버리 프랑크스 같은 유대인들이 있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유대인 프로파간다 꾼들은 유대인들이 이 나라의 독립전쟁에서 무슨 대단한 역할을 한 것처럼 선전하는데, 아놀드의 반역과 관련된 유대인들도 있었음을 알 필요가 있다.




 




 70. 유대인의 이름 바꾸기 행태 - 디어본인디펜던트. 1921.11.12.


 최근 인기있는 한 테너가수가 부인을 상대로 이혼소송을 제기했는데, 부인이 자신을 속이고 결혼을 했다는 게 이유다. "결혼할 때 나는 그녀가 스페인계로 알았고,그녀도 이에 대해 다른 말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알고 보니 그녀의 본명은 버겐스타인이었습니다." 이런 일은 이 나라에선 비일비재한 일이다. 앵글로색슨인의 이름을 내걸고 있는 회사,상점들도 알고 보면 실제 주인이 유대인인 경우가 허다하다.




 18세기 말 프랑스혁명 전까지 유럽의 유대인들에겐 대개 성이 없었다. 성 대신 대략 '누구의 아들 누구'라는 식으로 통했다. 예컨대 야콥의 아들 조셉,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 등으로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관습은 프랑스혁명과 나폴레옹의 시대를 거치면서 바뀌게 되었다.




 1808년 나폴레옹은 프랑스에 사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성을 사용할 것을 명령했다. 비슷한 시기 독일,오스트리아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났다. 이리하여 유럽의 유대인들은 주로 귀금속,식물,동물 등의 이름을 빌어 가족의 성을 만들었는데, 루빈스타인,골드스타인,실버버그,만델바움,릴리엔탈,옥스,울프,로이 등이 대표적인 예다.




 독일의 유대인들은 아버지의 이름에 아들을 의미하는 son을 추가해 그들의 성을 만들기도 했다. 이리하여 야콥의 아들 조셉은 조셉 야콥슨이 되었고, 이삭의 아들 솔로몬은 솔로몬 아이작슨이 되었다. 또한 유대인들은 자신이 사는 고장의 이름을 자신의 성으로 삼기도 했다. 이리하여 베를린에 사는 어떤 유대인은 베를리너, 오펜하임에 사는 어떤 유대인은 오펜하이머가 되었다.




 19세기 중엽 미국역사에 적잖은 족적을 남긴 유대인 은행가 어거스트 벨몬트의 성도 이런 배경에서 생겨난 것이다. 벨몬트의 본래 성은 쇤베르크였는데, 쇤베르크는 오랫동안 유대인들이 많이 살았던 독일 라인강변의 한 고장 이름이다. 쇤베르크는 독일어로 아름다운 언덕을 의미하는데, 프랑스어로 같은 의미를 지닌 이름이 벨몬트이다.




 자신의 성과 이름을 필요에 따라 거리낌없이 바꾸는 유대인들의 행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리고 이런 행태는 많은 비유대인들의 의식에 혼란을 야기한다. 러시아혁명이 러시아인들이 일으킨 혁명이 아니라 실제로는 유대인들이 러시아에서 일으킨 혁명이었다는 것을 보통사람들이 알아채지 못했던 것도 브론스타인,아펠바움,코헨,골드만,펠드만과 같은 유대인 볼셰비키들이 각각 트로츠키,지노비에프,블로다르스키,이지고예프,블라디미로프와 같은 러시아식 이름을 내세워 자신들의 정체를 숨겼기 때문이었다.




 유대인들이 자신이 유대인임을 감추기 위해 이름을 바꾼다는 증거는 널려 있다. 위장명,위장국적은 유대인들 사이에서 흔히 쓰이는 용어다. 유대인들은 비유대인들이 자신들을 어떻게 보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러니 '이사도어 레비'라는 간판을 내걸고 장사하는 것보다 '알렉스 메이, 로버트 리튼' 같은 이름을 쓰는 게 훨씬 더 유리하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로젠블룸이나 슐레진저가 자신들의 회사 이름을 '아메리칸 무역상회'로 짓는 것도 다 이런 이유에서다.




 한편 유대인들의 이름 바꾸기 행태와 유사한 선상에서 자주 관찰되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유대인들이 만사와 만물에 잘못된 라벨을 갖다 붙여 현실을 왜곡하고 사람들의 의식에 혼란을 야기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언론 및 연예매체들에 대한 유대인의 영향력으로 이러한 부정적인 현상은 더 큰 파괴력을 발휘한다. '자유주의'가 좋은 예다.




 만약 자유주의가 인간의 기본적인 자유를 옹호하는 것이라면 반대할 이유도 없고, 반대할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선전하는 자유주의는 겉과 속이 다르다. 겉으로는 자유를 외치는 것 같지만, 내용대로 하면 방종과 사회분열을 초래할 뿐이다. 한마디로 인간의 진정한 자유를 위협하는 그 무엇에 자유주의란 이름을 갖다 붙여 놓고 사람들을 홀리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자주 입에 올리는 진보도 마찬가지 경우다. 유대인은 진보라는 그럴 듯한 이름으로 反국가적,反사회적,전복적 현상들을 포장하는데, 이들은 진보가 아니라 퇴보임은 제정신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다.




 사회주의는 또 어떠한가? 사회주의라는 것도 처음에는 사회의 구성원들이 화합하고 상상해 더 살기 좋고 정의로운 사회,국가를 만들자는 취지였을 것이다. 그런데 유대인이 사회주의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들의 사회주의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를 갈라 놓고 서로를 경계하고 증오하며 타도하라고 가르친다. 이것이 무슨 사회주의인가? 만약 유대인이 정직하다면 그들이 가르치는 것에 사회주의 대신 反사회주의,반란주의라는 라벨을 붙여야 마땅할 것이다.




 또한 反셈주의(anti-semitism)도 마찬가지다. 자신들만이 지목되는 것이 불편해서인지, 유대인은 그들에 대한 비유대인의 반감을 반셈주의로 칭하는데, 세상에 반셈주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非셈족 민족들이 셈족을 싫어하는 일도 없고, 셈족의 주류인 아랍인도 유대인을 좋아하지 않으니, 비유대인이 유대인을 싫어하는 현상에 대한 정확한 표현은 반셈주의가 아니라 反유대주의가 되어야 할 것이다.




 시온주의도 잘못된 이름을 달고 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성경으로부터 익숙한 시온山을 떠올리며 시온주의자들을 성원하거나, 심지어는 이들을 위해 모금운동까지 벌이는데, 세상에 시온주의만큼 기독교신앙에 적대적인 것도 없을 것이다. 시온주의는 다름 아닌 유대민족의 범세계적 패권주의다. 유대 패권주의자들은 그들이 득세하는 곳마다 기독교를 탄압한다. 이런 현실에 비추어 일부 얼빠진 기독교 성직자들이 시온주의자들을 마치 기독교신앙의 형님들처럼 떠받드는 것은 참으로 딱한 일이다. 시온주의, 즉 유대인 패권주의는 잠재적으로 인류에 대한 큰 위협이다.




 미국유대인위원회(AJC)도 이름과 본질이 다른 존재다. AJC(American Jewish Committee)는 이름에만 '미국'이 들어 있을 뿐, 진정한 미국인이나 미국적인 요소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단체다. 뿐만 아니라 이 조직을 이끄는 힘있는 유대인들은 보통유대인들이 미국화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동시에 이들은 미국의 비유대인들을 통제하고 매사에 가르치려 든다. 이들로부터 가장 자주 듣게 되는 설교가 "미국은 기독교 국가가 아니오. 또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되오."라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AJC는 미국유대인위원회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미국에 대한 유대인위원회'가 정확하다.




 사상이든, 관념이든, 단체든, 사람이름이든 유대인들이 갖다 붙이는 라벨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곤란하다. 그들이 어떤 간판을 내세우든 그 속을 들여다봐야 한다. 뉴욕 케힐라나 미국유대인위원회도 그들이 말하는 것 같은 단순한 유대인 권익보호 단체가 아니다. 유대인 노조들 또한 노동자들의 권익을 보살피기 위해 존재하는 단체들이 아니다. 시온주의도 단지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국가를 세우자는 운동이 아니다. 모든 유대적인 것들은 겉과 속이 다르다는 것을 꼭 명심해야 할 일이다.




 




 71. "Kol Nidre"와 "Eli, Eli" - 디어본인디펜던트. 1921.11.05.


 "미국 유대인에게 무엇보다 절실한 것은 자기비판이다. 만약 그들이 반유대주의자들을 공격하는데 쏟아 붓는 기력의 절반만이라도 자신을 들여다보고 반성하는데 할애한다면 미국사회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유대인은 항상 누가 자신을 비판하지 않는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사소한 시비에도 죽기 살기로 달려든다. 그러나 여기 진실이 하나 있으니, 그것은 열등감이라는 저주에 시달리지 않는 민족은 그들에 대한 비판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들은 비판을 환영한다." - 월터 리프먼. <The American Hebrew>.




 우리가 본 시리즈를 연재하는 데는 크게 두 가지 목적이 있다.




 1) 유대인이 퍼뜨리는 허구적,파괴적 관념들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도록 비유대인을 돕는 것과,




 2) 유대인 문제와 관련된 진실들을 유대인들 스스로가 직시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유대인과 비유대인이 하나가 될 수 있는 길은 공통된 하나의 진실을 진실로 인정하고 이같은 인식 하에서 문제를 같이 해결해 나가는 방법 밖에 없을 것이다.




 Kol Nidre - 모든 서약과 약속... 탈무드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자신이 그 해에 하게 될 모든 서약과 약속으로부터 책임을 면제받고 싶다면, 새해 벽두에 이렇게 기도하면 된다. '올해 내가 하는 모든 서약과 약속이 무의미한 것이 되게 하시고, 이들을 지키지 않아도 되게 해주소서.'"




 쉽게 말해 새해 벽두에 이런 기도를 올리면, 그 해에 하는 모든 서약이나 약속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다. 이 뻔뻔스러운 Kol Nidre는 오늘날에도 건재한다. 다음은 1919년 뉴욕에서 출간된 한 유대교 기도서에 등장하는 Kol Nidre 기도문이다.




 "지금 이 시간부터 내년 이 시간까지 하게 될 모든 서약과 약속은 아무런 가치도 없으며, 이들을 이행하지 않을 것임을 미리 고하나이다. 그 어떤 서약도 서약이 아니고, 약속도 약속이 아니며, 의무도 의무가 아니게 하소서."








 ☞ Neil Diamond. 영화 <The Jazz Singer> - Kol Nidrei : https://www.youtube.com/watch?v=-IEDLZayfdU




 무엇이 문제인가? Kol Nidre는 지난해 지키지 못했던 서약이나 약속에 대해 용서를 구하는 기도가 아니다. Kol Nidre는 당해 지킬 마음도 없는 서약이나 약속을 하겠다는 기도다. 간단히 말해 신의 허락 아래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한해동안 거짓말을 하고 남을 기망하겠다는 얘기다. 만약 이런 것이 유대인의 신앙과 원칙이라면, 그들과의 그 어떤 신뢰적 관계도 불가능해진다.




 유대인들은 흔히 '기독교인들의 위선'을 질책한다. 고결한 척하지만 행동은 그렇지 않다고 말이다. 완전히 부인할 수는 없는 비판이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적 약점으로 인해 기대치에 미달하는 것일 뿐, 기독교인들에겐 Kol Nidre처럼 애초부터 누굴 속이려는 마음과 같은 것은 없다. 약속을 못 지킬 수는 있어도 진정한 기독교인이라면 지킬 마음도 없는 약속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Kol Nidre 같은 해괴한 전통은 어디서 생겨난 것일까? 수백 년 동안 유대인이 '믿을 수 없는 사람들'이란 꼬리표를 달고 다녔던 것도 혹시 Kol Nidre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유대인의 토라, 즉 성경에서는 Kol Nidre를 찾아볼 수 없다. 이 관습은 <바빌론 탈무드>에서만 발견된다. 그리고 유대인은 토라보다는 토라를 랍비들이 해석했다는 탈무드에 더 큰 무게를 둔다. 탈무드는 Kol Nidre와 같이 반사회적이고 해괴한 전통과 관습들의 보고다.




 Kol Nidre도 본래는 지난해에 지키지 못했던 약속에 대해 속죄하는 기도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그러나 어찌해서 그 본질이 전복되어 오히려 앞으로 하게 될 거짓말들에 대한 면죄부를 미리 구하는 기도로 변질된 것 같아 보인다.




 어쨌든 Kol Nidre의 기원에 대한 유대인들의 설명은 대략 이런 것이다. "피에 굶주린 기독교도들은 사랑으로 충만하다는 예수의 이름으로 우리를 밤낮없이 고문했다. 그리하여 우리는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개종해야 했고, 우리가 경멸하는 예수를 우리의 구세주로 받아들인다고 맹세할 수 밖에 없었다. Kol Nidre는 이런 서약이 진심이 아니고,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점을 신께 미리 고하기 위해 생겨났다."




 그러나 유대인이 개종압력에서 자유로웠던 시대에도 Kol Nidre 관습이 존재했음을 드러내는 증거들이 적지 않다. 이 점에 대해 1921년 10월 11일자 <Cleveland Jewish News>는 이렇게 말한다.




 "많은 이들이 Kol Nidre가 스페인의 종교재판 시절, 기독교 개종을 강요당했던 유대인들에게서 생겨나 점차 유럽 유대인 사회들에 유대교 신앙에 대한 헌신의 상징으로 확산된 관습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Kol Nidre는 이미 5세기에 집성된 탈무드에 나타나 있으며, 9세기에 살았던 암람 가운 랍비의 기도서에서도 발견된다. 암람 가운 랍비의 Kol Nidre가 다른 점은 이 기도가 새해가 아니라 욤키푸르에 행해졌다는 것 뿐이다..."




 이렇게 유대교와 탈무드는 그렇게 하길 원하는 유대인을 상대로 거짓 서약이나 약속을 허용하며, 그 방법을 알려 주고 있다.




 <Eli, Eli>는 유대인들에게 주술적 효과를 발휘하는 시편 23편에 기초한 유대인 성가로, 수년 전부터 유대인 소유의 극장이나 유랑극단 공연에 자주 등장하기 시작했다. 관객이 유대인이든 비유대인이든 상관없이 말이다.




 또한 이 노래는 맨해튼의 싸구려 술집과 카페들이 진을 치고 있는 유대인 볼셰비키들이 가슴이 벅차오를 때마다 합창하는 노래이기도 한데, 음울한 멜로디와는 달리 이 노래는 그들에게 <라 마르셰즈>와 같은 격정을 불러일으킨다.








 Eli, Eli. ☞ https://www.youtube.com/watch?v=QgEHWyQsi_k




 나의 신이여, 나의 신이여, 왜 우리를 버리시나이까?




 가는 곳마다 저들은 우리를 모욕하고 핍박합니다.




 가는 곳마다 저들은 우리를 태워 죽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의 신앙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나의 신이여, 나의 신이여, 왜 우리를 버리시나이까?




   우리는 오직 노심초사 율법을 지킬 애쓰며,




   염원과 기도로 낮과 밤을 보냅니다.




   그러니 신이여, 우리를 구하소서!




   당신이 우리 아버지들의 아버지들과 약속했던 대로!




 우리의 기도와 탄식에 귀 기울여 주소서.




 오직 당신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나이다!




 이스라엘이여, 들을지어다! 우리의 주님이 신이다.




  그리고 우리의 주님은 하나다!




 가사 중에 나오는 '저들'이란 누구를 말하나? 가는 곳마다 불쌍한 유대인을 모욕하고 핍박했으며 태워 죽였다는 '저들' 말이다. 물론 기독교도를 말한다. 사악한 기독교도들이 죄 없는 자신들을 핍박하고 학살해도 유대인은 결코 신에 대한 신앙을 저버리지 않는 숭고한 민족이라는 얘기다.




 물론 유대인들이 그같이 생각하는 것은 그들의 자유다. 문제는 유대인들이 이런 노래를 이디시어를 모르는, 기독교도가 대부분인 비유대인들에게 들려 준다는 것이다. 이들이 이런 식으로 기독교도를 모독하는 것은 낯선 풍경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