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장. 국가사회주의 독일노동자당의 최초의 발전시대


 모든 위대한 개혁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개혁의 주창자는 처음엔 단 한 사람 밖에 없는데, 그것을 수백만이 지지한다는 사실이다. 새로운 운동은 만족한 자나 권태로운 자의 조직을 만들 것이 아니라, 고생하며 번민하는 자, 불행하며 또 불만을 가진 자를 한데 모아야 하며, 특히 민족의 표면을 헤맬 것이 아니라 근저에 뿌리를 내리지 않으면 안 된다.

 독일이 붕괴에 직면한 것은 무기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자기보존본능이 힘을 잃었기 때문이다. 최상의 무기도 그것을 사용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아무 가치도 없는 도구에 불과하다. 독일은 무방비상태의 국가가 되었으나, 그것은 무기가 결여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민족존속을 위해 무기를 유지하려는 의자가 결여되었기 때문이다.

 독일의 힘을 회복하는 길은 무기를 제조하는 것이 아니고, 한 민족을 무장시킬 수 있는 정신을 다시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만일 이 정신이 국민 속에서 싹터 국민을 지배하기 시작하면 희망대로 그중 어느 것이나 무기로 통하는 여러 길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겁쟁이에게는 권총 열 자루를 줘도 공격을 받으면 한 발도 쏘지 못한다. 따라서 겁쟁이에게 있어 권총은 용기있는 사나이에게 주어진 한 자루의 평범한 옹이투성이 지팡이보다도 훨씬 가치가 없다.

 외교정책이나 국가 자체의 평가는, 경험에 의하면, 현재 보유 중인 무기에 의존하기보다 국민의 도덕적 저항능력에 더욱 크게 좌우된다. 따라서 새로운 운동의 목표가 스스로의 주권을 가진 독일의 재건을 목표로 한다면, 투쟁은 철저히 대중의 지지를 받아야만 할 것이다. 그러므로 외부에 대해 독일의 독립을 회복하는 것은, 무엇보다 먼저 우리 국민의 내부의지의 일치를 되찾는 것과 연결되어 있다.

 1919년 우리는 이미 새로운 운동이 최고목표로서 당장 대중의 국민화를 성취해야만 한다는 것을 확실히 인식했다.

 1) 국가부흥에 대중의 마음을 끌기 위해서는 어떤 사회적 희생도 과하다고 할 수는 없다. 설령 독일의 임금노동자에게 아무리 파격적인 경제적 양보가 이루어지더라도, 그것이 많은 계층을 민족 속으로 흡수할 수만 있다면 양보 따위는 전국민의 이익과 비교할 때 문제도 안 되는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종종 독일의 기업가 계층에서 볼 수 있는 근시안적인 고루성만이 국민 내부의 민족적 단결심이 회복되지 않을 때에는 결국 그들에게 경제적 호황은 존재하지 않으며, 경제적 이윤도 없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어떤 경제적 양보도 승전이 갖는 거대한 의미에 비하면 참으로 보잘것없다.

 2) 대중에 대한 국민교육은 사회적 향상이라는 우회로를 통해서 비로소 가능한데, 오직 그 길에 의해서만 개개인이 국민의 문화적 재산에도 관여하는 것을 가능케 하는 일반적인 경제적 전제를 만들기 때문이다.

 3) 대중의 국민화는 목표를 향해 거침없고 열광적이며 일반적인 태도를 취함으로써 가능하게 된다. 민중은 교수나 외교관으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 추상적인 지식이 부족한 이유는, 그들의 견해가 주로 감정에 치우치기 때문이다. 그들은 우유부단한 것에는 무감각하지만, 폭력에는 정복된다. 그들이 안정되어 있는 것은 이성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기 때문이다.

 신념은 지식보다 뒤흔들기가 힘들며, 애정은 존경보다도 변화되는 일이 적고, 원한은 혐오보다도 영속적이다. 이 지상의 가장 거대한 혁명의 원동력(대중)은 어떤 시대에나 대중을 지배하고 있는 과학적 인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대중을 고부시키는 열광, 또는 때때로 그들을 몰아세우는 히스테리에 있었다. 대중을 얻기 원하는 자는 그들의 마음 문을 여는 열쇠가 무엇인지 깨달아야 한다. 열쇠는 우유부단이 아니라, 의지와 힘이다.

 4) 대중의 마음을 얻는 것은, 자기목표에 대해 적극적 투쟁을 벌임과 아울러, 이 목표의 적대자를 절멸시키는 경우에만 성공할 수 있다. 반대파를 맹렬히 공격한다는 것은, 국민에게 자기의 정당성을 제시하는 증거가 된다. 대중은 본능적이며, 그들의 감정은 원수간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 사이의 악수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은 강력한 자의 승리, 약한 자의 절망, 또는 무조건적인 예속을 바란다. 우리 대중의 국민화는 우리 민족의 정신을 붙잡기 위한 모든 적극적인 투쟁을 행함으로써 국제주의적인 대중의 독살자를 근절시켜야만 비로소 성공할 것이다.

 5) 무릇 현대의 큰 문제는 모두 순간의 문제에 불과하며, 특정한 원인에서 생긴 결과를 나타내는 데 그친다. 자기민족의 순수성 유지에 유의하지 않는 민족은, 그것으로 인해 자기에게 발현하는 생명의 통일을 단념하는 것이 된다. 그들의 본성이 각기 다른 것은 그 피가 무분별하게 혼합되어 버린 데에서 생긴 자연스럽고도 필연적인 결과이며, 그들의 정신적,창조적 힘의 변질은 그들의 민족적 기초가 변화된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오늘날 독일민족에게서 악덕을 없애려면, 우선 그와 같은 악덕이 생기게 하는 다른 민족의 병원체에서 독일민족을 구출해야 할 것이다. 유대인 문제를 극히 명백하게 인식하지 않으면 독일국민의 再興은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다. 인종문제는 세계사를 이해하는 열쇠를 줄 뿐만 아니라, 인류문화 전반까지도 명백하게 해준다.

 6) 오늘날 국제주의 진영에 들어가 있는 우리 민족을 국가주의적 민족공동체에 편입시키는 것은 정당한 신분상의 이익포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신분,직업의 이해가 서로 다른 것은 경제생활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민족공동체는 민족 자체에 관계되는 제반문제에 걸쳐 민족을 통일하는 데서 성립한다.

 계급화된 어느 신분을 민족공동체에 편입하는 것은 상위계급을 끌어내리는 것이 아니라, 하위계급을 끌어올림으로써 실현된다. 이 과정을 담당하는 것은 결코 상위계급일 수 없으며, 자기의 동등한 권리를 위해 투쟁하고 있는 하위계급이어야만 한다. 오늘날의 부르주아 계층은 귀족의 조치에 의해 국가에 편입된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국가의 구성원이 된 것이다.

 만일 노동자가 공공복지나 국민경제의 존속을 고려하지 않고 자기 힘만 믿고 엉뚱한 요구를 한다면, 그들은 진정한 민족공동체의 정신을 범하는 것이 확실하다. 그러나 기업주가 비인간적이고 착취에 가까운 경영관리를 해서 국민적 노동력을 낭비하고 엄청난 폭리를 취할 경우, 그들도 또한 공동체를 심하게 파괴하는 것이다. 이때 그들은 오직 자기만 아는 악당에 불과하다.

 7) 새로운 운동의 선전은 부르주아계급 및 대중계급 중 어느 방면이든 한 방향으로 향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부르주아와 대중이 일치하지 않음으로써 오해를 받거나 다른 편에 배척을 당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8) 세계를 변화시켜 가는 모든 이념에는 목적달성을 가능케 하기 위한 어떤 방법도 받아들일 권리가 있으며, 또 그런 의무도 있다.

 9) 새로운 운동은 본질 및 내부조직에서부터 反의회주의적이다. 새로운 운동은 자체의 내적 구조에서처럼 다수결의 원리를 거부한다. 지도자가 단지 타인의 의지와 의견의 집행자로 하락해 버리기 때문이다. 새로운 운동은 일의 대소를 불문하고 최고의 책임과 결합된 무조건적인 지도자 권위의 원칙을 강력히 주장한다. 어느 지구 그룹의 제1의장은 바로 상급의 지도자에 의해서 임명된다.

 지도자는 제약없는 최고의 권위를 가지며, 동시에 궁극적인 가장 막중한 책임도 짊어져야만 한다. 그렇지 못하거나 혹은 비겁하기 때문에 자기 행위의 결과에 책임을 지지 못하는 자는 지도자 자격이 없다. 영웅만이 지도자에 적합할 뿐이다.

 인류의 진보와 문화는 다수결의 소산이 아니라, 개인의 독창력과 행동력에 기인한다. 이같은 개인을 훈육해서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은 우리 민족의 위대성과 힘을 회복하기 위한 하나의 전제다.

 10) 새로운 운동은 중요하지 않은 문제에는 어떤 입장표명도 단호하게 거절한다. 운동의 과제는 우리 민족의 정치적 재조직에 관한 것이다. 새로운 운동은 우리 민족의 윤리적,정치적,종교적 안정화에 노력하는 기초를 자기의 당파적 이익의 도구로 타락시키려고 애쓰는 정당과 싸운다.

 11) 운동의 내부조직 문제는 형편의 좋고 나쁨의 문제이지, 원리상의 문제는 아니다. 최상의 조직이란 운동 지도층과 개개 지지자 사이에 최대의 매개장치를 개입시킨 조직이 아니라, 적어도 그런 장치를 갖고 있는 조직을 말한다. 조직의 과제는 특정 이념을 다수의 인간과 매개함과 동시에 이념을 현실화하는 것을 감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직은 모든 점에 있어서 필요악일 뿐이다. 조직은 최상의 경우에도 목적을 위한 수단이며, 최악의 경우에는 그 자체가 목적이 된다.

 어떤 독창적 이념은 자신의 인식을 다른 인류에 전하는 것을 사명이라고 느끼고 있는 인간의 두뇌에서 생긴다. 그는 자기 견해를 설교하며 천천히 일정한 범위의 지지자를 획득한다. 한 인간의 이념이 같은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직접 개인적으로 전달되는 과정이 무엇보다도 이상적이며 자연스럽다.

 운동의 본부로서의 중심지점이 있다는 것은 지정학적으로 보아 아무리 높이 평가해도 지나치지 않다. 메카 혹은 로마 같은, 마술적 매력으로 둘러싸인 그런 지점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운동은 내부적 통일의 바탕과 통일을 나타내는 정점을 인지하는 것으로 인한 힘을 얻을 수 있다.

 12) 어떤 운동이 유사한 운동과 합병하면 한층 더 증대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규모가 증대되었다고 힘이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방법으로 인한 증대는 자연의 법칙에 의해서 오히려 당을 약화시킨다. 거의 비슷한 정당조직이 통합되면 당장의 이익은 증가하지만, 결국에는 후일 내부적 쇠약의 원인이 된다. 어떤 운동의 위대성은 오로지 내부적 힘의 자유로운 발전에 의해, 또한 모든 경쟁자를 결정적으로 물리칠 때까지 끊임없이 상승해 가는 것으로 보장된다.

 세계에서 어떤 이념을 구현하고 있는 모든 강력한 조직의 위대성은, 조직이 열광적으로 자기의 정당성을 확신하고 다른 모든 것에 대해 의지를 비타협적으로 관철하는 종교적 열광과 불관용 속에 존재한다. 기독교의 위대성은 어느 정도 비슷한 성질을 갖고 있던 고대의 철학적 의견과 타협 및 교섭을 시도한 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교의를 전하고 그것을 위해 싸우는 불굴의 영광에 있었던 것이다.

 13) 새로운 운동은 원칙적으로 구성원들의 투쟁이 자연적으로 성장하도록 내버려 두어도 좋은 것이 아니라, 스스로 추구해야만 하는 것으로 간주하도록 교육해야만 한다. 따라서 그들은 상대의 적의를 두려워해서는 안 되며, 그것을 오히려 자기 존재자격을 부여해 주는 전제로 느껴야만 한다. 그들은 우리 민족 및 우리의 세계관에 대해서 적이 품는 증오를 피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거짓말과 중상도 이 증오의 발현의 일종이다.

 14) 새로운 운동은 인물에 대한 존경을 모든 수단을 동원해 조장해야만 한다. 모든 인간적인 것의 가치는 인물의 가치 안에 있고, 모든 이념 및 성과는 인간의 독창력에 의한 선물이라는 것, 더욱이 위대한 인물에 대한 숭배는 감사의 뜻을 표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동질감으로 칭송하는 사람들을 결합하는 것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운동 초기에는 연설을 듣기 위해 모이는 사람들이 보통 6~7명 밖에 안 되었는데, 무엇보다도 동료들에게 운동의 거대한 미래에 대한 신념을 불어넣어 주고 또 지속시키기가 가장 곤란했다. 입당했을 때는 당도 운동도 제대로 된 것이 없었다. 그래서 이 작은 서클을 초월해 새로운 지지자를 얻는 것과, 운동의 명칭을 유명하게 하는 것이 당면과제가 될 수 밖에 없었다.

 초창기 팸플릿을 만들고 배포하며 집회를 개최했을 때 모이는 수는 변함없는 7명이었다. 서서히 11명, 13명, 17명, 23명, 34명으로 늘었다. 뮌헨의 신문에 집회광고를 하자 111명이 모였다. 나는 30분간 연설을 했다. 사람들은 강한 충격을 받았으며, 나의 호소가 300마르크의 기부금을 모았다는 것은 무엇보다 큰 감동이었다.

 당시 위원회에 젊은이들을 몇 사람 끌어 모으기 시작했다. 나는 오랜 군대생활 중에 상당히 많은 동료들을 사귀었는데, 그들은 서서히 나의 설득에 의해 운동에 참가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참된 실행력이 있는 젊은이였으며, 규율에 익숙했고, 군대시절부터 불가능한 것은 없다는 원칙 아래 자라왔다. 이런 새로운 피의 수혈이 얼마나 필요했었는지 몇 주일도 지나지 않아 인식했다.

 당의 제1의장이던 할러 씨는 저널리스트였으며, 넓은 교양을 지니고 있었지만, 당 지도자로서는 매우 중대한 결함을 갖고 있었다. 그는 대중연설가는 아니었다. 피를 토하는 열변이 부족했다. 뮌헨 지구 의장이던 안톤 드렉슬러는 평범한 노동자였으나, 전쟁 중 군대에 복무한 일이 없으며 성격부터가 원래 유약하고 확고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두 사람은 운동의 승리에 대한 열광적인 신념이나 새로운 이념에 대한 저항을 제거할 수 있는 성격의 인간은 아니었다.

 나는 당시 아직도 병사였다. 나의 육체와 정신은 거의 6년 동안이나 혹독하게 단련되었으므로, 처음 서클에서는 이질적인 것으로 느껴졌을 것이었다. 나로서도 "그건 안 된다. 안 될 것이다. 그런 짓은 구태여 하지 말아라. 아직 그것은 너무 위험하다." 등의 말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적색분자들은 자기들에게 위험하다고 여겨지는 운동은 모든 방법을 써서 제거해 버리려 결심하고 있었다. 그같은 경우 가장 유효한 수단은 어느 시대에나 테러와 폭력이었다. 부르주아 계층의 대집회에서조차 적색분자에 의해 매번 흩어져 도망치는 것이 다반사였다.

 나는 폭력을 방어할 수 있는 무장을 해야 한다는 견해를 주장했다. 테러는 테러에 의해서만 깨뜨릴 수 있다. 최초의 집회 성공은 내 입장을 강화했고, 우리는 두 번째의 큰 집회를 개최할 용기를 갖기에 이르렀다. 1919년 10월 두 번째의 더욱 큰 집회가 개최되었다. 참석자는 130명을 넘었고, 나는 한 시간 가까이 연설했는데, 이전보다 훨씬 성공적이었다. 방해도 한 번 받았으나, 확대되기 전에 제압했다.

 2주 후의 집회에는 170명을 넘었다. 나는 연설할 때마다 이전의 집회보다 더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후 140명으로 줄었다가, 다시 200명을 넘어서, 그 다음 집회에는 270명을 넘었다. 얼마 후 일곱 번째 집회에서는 400명이 넘게 참석했다.

 나는 당시 실제적인 일에는 거의 무지한데도 자부심만 내세우는 독일민족주의 편력 학생을 경계하라고 경고했다. 이들의 소개장에는 '이미 30~40년이나 같은 이념을 위해서 투쟁해 왔다'는 고백만 씌어 있었다. 40년 동안 오로지 이념만을 위해서 일하고도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했다면, 결국 40년 동안의 무능을 증명한 것이다. 40년간 일해 큰 사업을 철저히 망쳐 버린 사업가가 새로운 사업의 창립자로는 별로 쓸모가 없다. 그 정도의 세월 동안 어떤 위대한 이념을 망치고 낡게 만든 민족주의자의 므두셀라도 새로운 운동의 지도자로는 적합하지 않다.

 그런데 그같은 인간은 지나치게 자부심이 강해서, 무능이 모든 점에서 증명되었음에도 모든 것에 대해 아는 체한다. 그들은 성실한 투사들에게 무거운 짐이 된다. 바로 그같은 이유 때문에 운동을 지도할 때 강력한 본부권력을 창설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래야만 비로소 그런 위험한 구성분자의 행위를 중단시킬 수가 있다.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한 개념을 정치투쟁 속으로 끌고 들어가는 것은, 모든 확고한 투쟁단체를 해체로 몰아간다. 투쟁단체는 개개인에게 그들의 신념과 의도를 방임해 둘 수 없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자기의 적에게조차 미움을 못 받는 자는, 우리 편으로서 큰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같은 인간이 우리의 새로운 운동에 표시하는 호감도 무가치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유해했으며, 또 우리가 첫째로 당이라는 명칭을 선택한 주요 이유도 그 점에 있었다.

 적들은 "폭력으로 덤비는 자에게는 우리도 폭력으로 지킨다."는 우리의 원칙을 두려워했다. 그들은 우리가 고무로 만든 경찰봉을 야만스럽게도 열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지성이 결여되어 있다고까지 말하며 더할 수 없이 끈질기게 비난했다.

 1920년 초 나는 첫 번째의 대대적인 대중집회를 열 것을 재촉했다. 이 일에 견해차이가 있었다. 당 지도자들은 시기상조라고 주장했다. 할러 씨는 내 견해에 동의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운동의 지도자의 지위에서 물러났다. 그의 후임으로 안톤 드렉슬러가 취임했다. 나는 선전조직을 맡아 빈틈없이 수행해갔다.

 첫 번째 대규모의 대중집회는 1920년 2월 24일로 결정되었다. 준비사항은 내가 직접 지휘했다. 준비는 매우 간단했으며, 모든 기구는 일순간에 결행할 수 있도록 조정되었다. 집회 예고는 포스터와 팸플릿을 사용했는데, 빛깔은 원칙적으로 빨강이 선택되었다. 가장 자극적인 빛깔이라서 우리의 적을 가장 심하게 분개시키고 도발함으로써 우리를 알리고 기억시킬 것이 틀림없었다.

 수년 동안 새로운 운동이 수없이 일어났으나 모두 흔적도 없이 소멸되어 버렸고, 단지 국가사회주의 독일노동자당만이 남았다. 내가 첫 번째 대규모 대중집회를 선택한 것은, 당이 조그만 결사의 좁은 테두리를 깨뜨리고 현대의 가장 강력한 요인, 즉 여론에 비로소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온다면, 그 날은 새로운 운동에 대성공의 날이 될 것이 틀림없다고 굳게 믿었다.

 대집회는 사람들로 立錐의 여지가 없었다. 무려 2천 명을 헤아릴 정도였다. 특히 홀의 반 이상이 적색분자와 독립사회당원으로 자리가 채워져 있는 것 같았다. 따라서 우리의 첫 번째 대규모 시위운동은 그들에 의해 당장 결말이 나도록 결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전혀 엉뚱한 결과가 나타났다. 최초의 연사가 내려간 뒤, 내가 이야기를 시작하고 몇 분이 안 되어 야유가 우박처럼 쏟아지고 홀 안에는 맹렬한 충돌이 일어났다.

 적은 수의 전우들과 지지자들이 방해자와 싸워서, 차츰 홀 안의 질서가 회복되었다. 나는 다시 연설을 계속할 수 있었다. 30분 후에는 찬성의 박수가 욕지거리 소리를 압도하기 시작했다. 이후 야유는 찬성의 환호에 점점 압도되어 갔다. 그리고 내가 드디어 25개조의 강령을 조목조목 대중에게 제안하고 그것들에 대한 판단을 내려 달라고 요구했을 때, 더욱 높아지는 열기 및 환호에 의해 연달아 만장일치로 강령이 채택되었다. 내 앞에는 새로운 확신, 새로운 신념, 새로운 의지로 결합된 사람들로 가득 찬 홀이었다. 이제야말로 운동의 원칙이 독일국민 속에 파고 들어간 것이며, 결코 망각되는 일이 없을 거라고 확신했다. 운동은 제 코스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