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1장. 세계관과 당
1920년 2월 24일 우리의 새로운 운동의 제1회 공개 대중시위가 있었다. 뮌헨에서 신당의 25개조 강령이 약 2천 명의 군중에게 제시되고, 각 조항이 찬성의 환호 아래 승인되었다. 이른바 정당강령이라는 것이 흔히 얼마나 천박한 관념으로 만들어지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강령을 새로 정하거나 고치려 하는 것은 항상 다음 선거의 귀추가 걱정되기 때문이다. 선거 때마다 사기극이 되풀이된다. 우리 인간의 어쩔 수 없는 어리석음을 보면 그 효과에 대해 놀랄 것은 없다. 신문에 조종되고 새로운 매혹적인 강령에 눈이 어두워져 이전의 사기꾼을 뽑고 마는 것이다. 이러한 기만이 항상 되풀이되는 것을 보아야 하는 것만큼 우리를 우울하게 만드는 일은 없다.
적색 인터내셔널의 기수들은 민주주의의 양심에 호소하는 대신 프롤레타리아 대중에게 불타는 듯한 격문을 발한다. 의회에서의 지적인 요령만으로는 이룰 수 없던 일이, 선동된 프롤레타리아 대중의 쇠스랑과 망치로 1918년 11월 혁명처럼 전광석화처럼 이루어진다. ☞ 1918년에 일어난 독일혁명으로 호엔촐레른(Hohenzollern) 왕가의 빌헬름 2세(1859~1941)가 네덜란드로 망명했으며, 독일은 군주제에서 공화제로 전환되었다. 이후 1919년 2월 독일은 바이마르(Weimar) 헌법을 제정해 18개 공화국으로 구성된 연방공화국임을 선포하고, 사회민주당의 프리드리히 에베르트(Friedrich Ebert)를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바이마르 공화국은 출범 초기부터 좌익과 우익 양쪽으로부터 공격을 받는 등 시련을 겪었다. 좌익 무장조직인 스파르타쿠스단(Spartacus League)이 소비에트를 조직하고 1918년 말부터 1919년 초까지 혁명을 기도했으나 무력 진압되었다. 지주,관료,산업자본가,군부 등 우익은 제1차 세계대전 패전의 책임을 바이마르 공화국에 참여한 자유평화주의자에게 돌리면서 공격했다. 한편 히틀러의 나치당은 1923년 뮌헨에서 공화국 타도 쿠데타를 일으켰으나 나치스 당원 16명이 사망하고 쿠데타는 실패했다. 이런 정치적 시련에도 공화국 정부는 통화개혁(슈트레제만 개혁) 등 일련의 적극적인 전후 복구책을 실시해 독일재건의 기틀을 마련했으며, 외교적 측면에서는 1925년 10월 16일 중부 유럽의 안전보장을 위한 로카르노 조약을 체결하고 1926년에는 국제연맹에 가입했으며, 1928년 부전(不戰)조약에도 서명했다.
반면 부르주아 정당에는 훌륭한 이념의 거스를 수 없는 충격, 무조건 신뢰하게 만드는 설득력, 이념고수와 열렬한 투쟁의욕을 결합시키는 강력한 자석 같은 매력이 부족하다. 파괴적인 어떤 세계관이 현존 질서를 교란시키려 할 때에는 하나의 새로운 정치적 신념의 형태를 몸에 지니고, 약하고 온건한 방어적 슬로건을 지양하고, 용감하고 거친 공격의 외침으로 바꾸었을 때만 대항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너희들이 범죄라고 할 만한 어리석음으로 게을리해 온 일을 도와서 완전하게 하려고 할 뿐이다. 너희의 의회주의적인 추잡한 거래원칙에 의해 국민들은 함정으로 끌려 들어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공격형태를 취해 새로운 세계관을 수립하고, 근본원리를 열광적으로 단호히 지킴으로써, 언젠가 우리 민족이 자유의 전당에 다시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을 만든다."
우리의 운동이 시작되던 시대의 첫 번째 배려는, 항상 이 새롭고 숭고한 신념을 위한 투사들이 단순한 의회적 이익추구 단체가 되지 않도록 경계하는 데 돌려지지 않으면 안 되었다. 첫 번째 예방조치는, 내면적 위대함만으로 오늘날의 정당정치가의 왜소하고 약해진 정신을 쫓아버리기에 족한 발전을 목적으로 삼은 강령을 만드는 일이었다. 우리는 강령에 의해 목표로 삼는 점을 명백하게 형성할 필요가 있었다.
'민족주의적'이라는 말은 개념적으로 너무 불분명하기 때문에 하나의 단결된 투쟁단체를 형성할 수 없는 것으로 생각된다. 오늘날 상호간이 견해가 본질적인 점에서 몹시 동떨어진 모든 것들이 '민족주의적'이라는 동의어 아래 활개를 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은 철학자도 아니고 성자도 아니다. 따라서 그런 일반적 개념은 효과적인 결과에 이르는 일은 없을 것이다.
신앙이라는 것은 분명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목적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종교에는 영혼불멸, 존재의 영원함, 신의 존재 등 여러 원칙적인 생각이나 확신이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모두 그것이 개개인에게는 아무리 설득력이 있을지라도, 감정적인 예감이나 인식이 의심을 불허하는 신앙의 합법적인 힘을 얻지 못하는 동안은 개개의 사람들의 비판적 음미 아래, 따라서 긍정 또는 부정이라는 동요상태에 있는 것이다.
최고의 이념은 언제나 가장 심각한 생활의 필요에 따른다.
독립을 향한 이상적 충동은 전투조직을 군사적 권력수단이라는 형태로 얻었을 때 비로소 민족이 목이 타게 바라는 바를 그럴싸한 현실로 옮길 수 있는 것이다. 모든 세계관은 인류를 위해 더할 수 없이 가치있는 것일지라도 근본원칙이 어떤 투쟁운동의 기치가 되지 않을 때는 민족생활의 실제적인 형성에 무의미한 것이며, 투쟁활동이 이념의 승리로 끝나고 당의 도그마가 한 민족 공동사회의 새로운 국가적 원칙을 형성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어떤 관념이 장래 발전의 기초로 도움이 되게 하는 데 필요한 첫째 전제는, 이러한 관념의 본질,종류,범위에 대해 철저하게 밝히는 일이다. 그와 같은 기초 위에서만 그러한 신념이 내면적으로 동질성을 얻어, 투쟁에 필요한 힘을 발전시킬 수 있는 운동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일반적 관념에서 정치적 강령이, 일반적 세계관에서 일정한 정치적 신념이 이루어져야만 한다. 그에 사용되는 투쟁수단에 관해서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영원한 진리나 이상이라고 하는 영역에서 인간이라는 작은 존재에게 가능한 것을 끌어내고 거기에 구체적인 형태를 부여하기 위해서는, 민중의 심리를 아는 자가 진리의 탐구자를 돕지 않으면 안 된다.
여러 인종의 질이 같다는 가정은, 민족에 대해서도 개인에 대해서도 유사한 견해를 갖게 하는 근거가 된다. 그러므로 국제적 마르크시즘은 유대인 마르크스가 실제적으로 이미 옛날부터 존재하던 세계관적인 입장과 해석을 일정한 정치적 신조의 형태로 바꾼 데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자기 인종을 위한 것이다.
2장. 국가
우리의 새로운 운동은 1920~1921년 부르주아들로부터 현재의 국가지위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자주 비난을 받았다.
문화형성력과 가치형성력은 본질적으로 인종적 요소에 기인하며, 따라서 국가는 인종의 유지와 향상을 최고의 과제로 보아야 한다.
국가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국가는 물론 보다 높은 인류문화를 이루기 위한 전제이긴 하나, 그 원인은 아니다. 그 원인은 오히려 문화형성 능력이 있는 인종의 존재에만 있다.
국가는 목적을 위한 수단이다. 국가의 목적은 같은 인종의 공동사회를 육체적,정신적으로 유지하고 조성하는 데 있다. 이 목적에 봉사하지 않는 국가는 잘못된 것이며, 실로 기형적이다. 우리는 그릇으로서의 국가와 내용물로서의 인종의 차이를 엄연히 구별해야 한다. 그릇은 내용물을 보호할 수 있을 때만 의미를 가지며,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가치가 없다.
30년 전쟁 이래, 우리 민족의 분열은 우리의 피를 해체로 이끌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정신까지도 해체시켰다.
자연은 잡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인종적으로 통일되어 있는 존재라면 정확하고도 통일적인 결단을 내려야 할 온갖 위기의 순간에도 빠르고도 명확하게 결단을 내릴 수 있으나, 인종적으로 분열되어 있는 경우에는 불안정해지거나 우유부단한 태도를 취하게 된다.
어째서 수백만의 사람들이 몇 년이 지나면 대부분은 아예 잊어버리는 외국어를 두 가지 이상 배워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예컨대 프랑스어를 배우는 학생이 10만 명 있다면, 그중 겨우 2천 명만이 프랑스어를 진지하게 이용하고, 나머지 9만 8천 명은 배운 것을 응용할 기회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언어지식을 활용하는 2천 명을 위해 나머지 9만 8천 명이 괴로움을 겪으며 귀중한 시간을 희생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 역사교육은 한심스러울 정도다. 전체적 줄거리는 아예 잊은 채, 약간의 사실과 연대,출생일,인명 따위만 기억에 남아있는 것이 보통이다. 가장 중요하고 본질적인 것은 가르치지 않고, 날짜의 홍수나 많은 사건 가운데 내면적인 動因을 발견하는 일은 개개인의 독창적 소질에 맡기고 있다.
역사교육에서는 큰 발전의 흐름을 인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야 개인에게도 이익이 되며, 공동체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사람들은 단순히 과거에 있었던 일을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역사 속에서 미래를 보고 자기 민족이 존속하는 데 필요한 지침을 얻기 위해 역사를 배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역사교육의 목적이며, 역사교육은 그것을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오늘날은 수단이 목적이 되고, 목적은 아예 없어졌다.
최고의 국민적 열정이 결여된 상태에서 전쟁이 시작되자, 더할 수 없이 무서운 결과가 초래되었다. 사람들은 황제나 王侯와 같은 지배자를 위해 생명을 바칠 생각은 전혀 없었으며, 그들 대부분은 국민이라는 것을 잘 몰랐다. 독일에서 혁명이 일어나면서 자연스럽게 군주에 대한 충성심이 사라진 이후, 역사교육의 목적은 실제로 단순한 지식습득에 그치고 있다.
민족주의 국가는 자기의 존재를 위해 싸워야 한다. 최고의 방비는 무기가 아니라 그 시민에게 있다. 요새의 벽이 국가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최고의 조국애와 뜨거운 국민적 열망으로 가득 찬 사람들의 살아 있는 벽이 지키는 것이다.
창조적인 성과는 일반적으로 지식과 능력이 합해졌을 때 비로소 이루어질 수 있다. 이 점에서 오늘날의 인류가 얼마나 많은 죄를 범하고 있는지는 다음의 예로 알게 될 것이다. <그라프>誌에는 간혹 처음으로 흑인 변호사,교사,목사,테너가수가 나타났다는 기사를 실어서 독일인들을 놀라게 한다. 어리석은 부르주아지는 그런 기적적 조련에 놀라고, 오늘날의 교육기술의 이 거짓말 같은 결과에 대해 존경의 염으로 가득 차 있는데, 유대인은 교활하게도 그 사실에서 그들이 여러 민족에게 불어넣은 인간평등 이론의 정당함에 대한 새로운 증거를 만들어 내려고 생각한다. 이 타락한 부르주아 사회의 사람들은, 이것은 진실로 모든 이성에 위배되는 죄라는 사실을 상상조차도 못한다. 푸들의 조련과 마찬가지로, 학문적인 교육은 아니다. 따라서 같은 노력과 배려를 지적 인종에게 돌린다면 어떤 사람이든 같은 일에 천 배나 빨리 숙달될 것이다.
민족주의 국가는 특히 국립중등교육기관의 문을, 재능있는 자에게는 모두 어떤 계급 출신이든 상관없이 완전히 평등하게 열어 주는 것을 최고의 과제로 생각해야 한다. 독일에서는 지식계급은 자기들끼리만 똘똘 뭉쳐 있어, 하층계급과의 생생한 결합 없이 굳어 있다. 그로 인해 우리는 두 가지 방면으로부터 고통을 받고 있다.
1) 그 때문에 지식층에는 대중에 대한 이해와 동정심이 없다. 그들은 너무 오랫동안 대중과 떨어져 있었으며, 따라서 민중에 대해 없어서는 안 될 심리적 이해가 없다. 그들은 민중과는 거리가 멀다.
2) 상층계급 사람들에게는 필수요소인 의지력이 없다. 지식층의 의지력은 평범한 대중보다 항상 약하다. 독일인이 학문적 교양에 있어서는 모자라는 점이 없지만, 의지력이나 결단력에서는 그만큼 부족한 점이 많았다.
세계대전에 대한 정치적 준비나 기술적 군비가 적절하지 못했던 것은, 지식과 정신은 가득 채워져 있으나 건전한 본능이 부족하고 에너지와 대담성이 모자란, 지나치게 교육받는 사람이 통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이 생각 많은 소심한 장관들 밑에서 목숨을 건 투쟁을 했다는 사실이 하나의 재앙이었던 것이다. 만약 1909~1917년 독일재상 베트만 홀베크 대신 민중계급의 인물이 우리의 지도자였다면, 일반 보병이 영웅적인 피를 헛되이 흘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카톨릭 교회는 그런 점에서 전형적인 교훈의 예라고 생각한다. 카톨릭 교회 주교들의 결혼금지에는, 성직의 후계자를 자기들의 계열이 아니라 언제나 민족의 대중 속에서 뽑아야 한다는 속박이 바탕에 깔려 있다. 그러나 이 독신주의의 의미를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혀 모르고 있다. 그것이 이 오래된 제도의 믿을 수 없을 만큼 강인한 힘의 원천인 것이다. ☞ 독신주의는 사제들의 재산축적과 권력화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음.
교육제도에서 기존 지식층이 하층으로부터의 신선한 피의 도입에 의해 항상 새로워지도록 배려하는 것은 민족주의 국가의 과제다. 국가는 국민 중에서 극히 신중하고 엄밀하게 선천적으로 타고난 능력이 있는 인재를 뽑아 사회에 기여하도록 할 의무가 있다.
물질적 보수는 사회에 나름의 이익이 되는 일을 한 자에게 주어져야 한다. 그럴 경우 성실한 직공이 되는 것은 이미 수치가 아니며, 오히려 무능한 관리로서 신으로부터는 햇빛을, 착한 민중으로부터는 일용한 양식을 훔치는 것이 수치가 된다.
우리는 앞으로 임금 등급의 커다란 격차를 방지해야만 한다. 그렇게 되면 일이 지연될 거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지적으로 수준 높은 일을 하려는 동기가 다만 높은 보수에 있다고 한다면, 이는 시대가 타락했다는 서글픈 징표다. 만약 이 관점이 지금까지 이 세계의 유일한 규준이었다면, 인류는 최대의 과학적,문화적 재보를 결코 소유하지 못했을 것이다. 가장 위대한 발명, 가장 위대한 발견, 가장 혁신적인 학문상의 업적, 인류문화의 가장 멋진 기념물 등은 돈에 대한 욕심에서 탄생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 산물은 흔히 부의 현세적 행복을 포기하는 것을 뜻했다.
이상의 힘에 대해 지나치게 낮은 평가를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도 결함이 없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믿을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다. 하지만 그것은 인식된 결함과 싸우고, 약점을 이겨내고, 또한 이상을 위해 애쓰는 의무로부터 벗어났다는 뜻은 아니다. 준엄한 현실은 그 자체로 많은 제한을 가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우선 최종목표에 공헌하도록 힘써야 한다.
이상의 힘에 대해 의심스럽게 여기는 자가 있다면, 그가 병사라면 나는 영웅주의가 이상적 동기에서 생기는 힘의 더할 수 없이 강력한 고백이었던 시대를 상기시켜 주고 싶다. 그 시절 사람들이 목숨을 내던진 것은 일용할 양식에 대한 배려가 아니라 조국애였으며, 조국의 위대함에 대한 신념이었으며, 국민의 영예에 대한 일반적 감정이었기 때문이다.
독일민족이 혁명의 현실적 전제에 따르기 위해 이상에서 떠나고 무기를 배낭과 교환했을 때, 비로소 그들은 세상의 파라다이스에 이른 것이 아니라, 일반적 모멸과 그에 못잖은 일반적 곤궁이라는 연옥에 빠졌던 것이다. 그런 이유로 오늘날 현실주의적인 바이마르 공화국(1919~1933)의 산수교사에게 이상주의적인 제국에 대한 신념으로 대항하는 일이 그 어떤 것보다도 필요하다.
3장. 국적 소유자와 국가의 시민
독일인으로서 독일국적을 갖는 아이는 모든 독일인에게 부과된 학교교육을 마칠 의무가 있다. 그리하여 그는 인종의식과 애국심을 키우는 교육을 받는 것이다.
4장. 인격과 민족주의 국가의 사상
대중이 발명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대중이 조직을 만들거나 생각하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일은 항상 즉 개인이 한다. 인간사회가 이같은 창조력을 가진 자에게 될 수 있는 대로 친절을 다해 일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을 조성해주고 전체에 이익이 되도록 이용한다면, 인간사회는 비로소 잘 조직되어 있다고 생각될 것이다. 물질적인 것이든 사상적인 것이든 발명 자체에서 가장 가치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한 인간으로서의 발명자이다. 그를 전체에 이익이 되도록 하는 일이야말로 민족공동체라는 조직의 첫째이자 최고의 과제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 조직 자체는 다만 이 원칙의 구현에 지나지 않는다. 그와 동시에 조직도 또한 메커니즘의 저주에서 벗어나 스스로 무언가 생생한 것이 된다. 민족공동체는 그런 인간을 대중의 위에 놓고, 따라서 대중을 그런 인간들의 밑에 종속시키려는 노력이 구체화된 것이어야 한다. 조직은 대중에게서 사고하는 인물이 나오는 것을 막으면 안 된다. 아니, 오히려 조직 특유의 본성에 이를 최고도로 가능하게 하고 쉽게 해야 한다.
인간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인격의 중요성을 배제하고, 그것을 대중의 수에 의해 바꾸려는 유대인 노력의 극치로 나타난 게 바로 마르크시즘이다. 정치적으로는 의회주의적 형식이 거기에 응한 것이며, 경제적으로는 노동자의 실제적 이익보다는 주로 국제적인 유대주의의 파괴적 의도에만 봉사하고 있는 노동조합운동의 체계가 이에 적응하고 있다.
마르크시즘에 있어서는 오늘날의 경제를 맡아 스스로 지도하며 계속 운용하는 일쯤은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이 활동의 성과는, 마르크시즘이 그의 다수결 원리를 사용함으로써 오늘날 완성된 상태로 인수한 것과 같은 것을 창조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아무런 증명도 되지 못한다. 마르크시즘은 어디서나 문화 또는 경제마저도 창조적으로 만들지 못했을 뿐 아니라, 사실상 한 번도 현존하는 것을 스스로의 원리에 따라 계속 이끌어 갈 수도 없었다.
단지 인종 뿐 아니라 개인의 의의도 인정해 이로써 전 조직의 기둥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민족주의적 세계관과 마르크시즘의 세계관은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민족주의 국가는 모든 사람 가운데 개인적 가치의 의의를 인정하고, 개개인이 최대한으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모든 영역에서 각자의 생산능력을 최고도로 끌어올림으로써 시민복지를 꾀해야 한다. 따라서 민족주의 국가는 정치적인 지도를 완전히 다수결에만 의존하는, 즉 대중이 결정하는 의회주의 원리로부터 벗어나는 대신, 인격의 권리를 異論없이 확보해야 한다. 거기서 다음과 같은 인식이 생긴다. "가장 훌륭한 헌법과 국가형태는, 민족공동체의 가장 뛰어난 인물을 더할 수 없이 확실하게 지도적 중요성과 지도적 영향력을 가진 자리에 앉히는 것이다."
그러나 경제생활에서 능력있는 사람은 위에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투쟁해 그 자리를 차지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최소의 상업으로부터 최대의 기업에 이르기까지 부단히 스스로 수련을 쌓고 또한 생활하는 가운데 그때그때 시험을 받듯이, 정치적 두뇌의 소유자도 별안간 발견되는 것은 아니다.
국가는 지방자치제라는 가장 작은 세포에서 시작해 전 독일의 최고지도부에 이르기까지 인격원리를 근거로 삼아야 한다. 다수결이 오니라, 오직 책임있는 인물만이 있어야 한다. 전에 프로이센군을 독일민족의 가장 놀랄 만한 무기가 되게 한 그 원칙이 의미를 바꾸어 장차 우리의 국가관 전체를 건설하는 근본원칙이 되어야 한다. "모든 지도자의 권위는 아래로, 책임은 위로"라는 것이다.
우리는 그런 경우에도 오늘날 의회라 부르는 단체가 없이 지내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의회의 조언은 실제로 조언에만 그치고, 책임은 항상 단 한 사람만이 질 수 있으며, 그렇게 되어도 좋다. 그러므로 또 그만이 권위와 명령권을 가질 수 있으며, 그렇게 되어도 좋다.
5장. 세계관과 조직
오늘날 국가의 수익자인 정당이 스스로 전향해 현재의 태도를 바꿀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정당의 실제 지도자가 항상 유대인이기 때문에 그것은 한층 더 불가능하다. 유대인에 의해 지도되는 정당은 유대인의 이익 외의 것을 위해서는 싸울 수가 없으며, 그것은 아리아 여러 민족의 이익과는 결코 공통되는 바가 없다. 만일 민족주의 국가의 이상을 실제적인 현실로 바꾸기를 원한다면, 지금까지 지배해온 사회생활의 여러 힘으로부터 벗어나 이상을 위해 투쟁할 의지와 능력을 갖춘 새로운 힘을 찾아야 한다.
세계관은 이전 상태를 대표하는 조직이 여전히 동시에 존속하는 것을 그대로 두고 보지 못한다. 이는 종교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기독교는 자신의 제단을 만드는 일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필연적으로 異敎의 제단을 무너뜨리는 데까지 나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 광신적 불관용에 의해서만 의심할 여지가 없는 신앙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며, 또한 불관용이 기독교를 위한 절대적 전제인 것이다.
세계관이란 결코 다른 세계관과 나란히 존재하려고 하지 않으므로, 자산들이 유죄라고 판정을 내린 기존체제와 협력하려 하지 않는다. 그보다 자기에게 적대하는 모든 이념과 체제에 대해 온갖 수단을 다해 투쟁하는 일, 붕괴시키는 것을 의무로 생각한다. 그 시대 그 민족 중에서 가장 용감하고 활달한 사람을 모아 투쟁력을 가진 튼튼한 조직을 이루었을 때만 세계관은 자신의 이념을 승리로 이끌 수 있을 것이다.
조직의 본질에는 최고의 정신적 지도자를 매우 감격하기 쉬운 대중이 따르고 섬길 경우에만 성립할 수 있는 것이다. 동일한 지적 능력을 가진 200명의 단체는, 190명의 지적 수준이 낮은 자와 10명의 보다 높은 교양을 지닌 사람으로 구성되는 단체보다도 한층 더 훈련시키기가 힘들 것이다.
결정적인 것은 지도 자체다. 만일 두 개의 부대가 서로 싸운다면, 각 개인이 최고의 전술적 교육을 받은 쪽이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뛰어난 지도부, 동시에 가장 규율 바르고 더할 나위 없이 맹목적으로 복종하는 훈련된 병사가 있는 부대가 승리할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세계관을 실행에 옮기기 위한 가능성을 검토하는 경우 언제나 생각해야 하는 가장 원천적인 인식이다. 우리가 세계관을 승리로 이끌 기 위해 이같은 세계관을 투쟁운동으로 바꿔야 한다면, 논리적으로 말해서 운동의 강령은 운동을 실행할 인재에 대해 고려해야 한다.
새로운 운동의 강령은 25개조의 지도원리로, 어떤 면에서는 정치적 신앙고백이고, 한편으로는 운동을 위해 새로운 회원을 모으고, 다른 한편으로는 모인 사람들을 공통적으로 용인된 의무에 의해 단결시키고 일치시키는 데 알맞은 것이다.
카톨릭 교회의 사례는 우리에게 가르치는 바가 있다. 카톨릭의 교설은 많은 점에서 정밀과학이나 연구와 서로 맞지 않고, 어떤 부분은 완전히 충돌하는 점도 있으나, 그럼에도 카톨릭 교회는 교의의 한 구절도 희생하려고 하지 않는다. 카톨릭 교회는 자신의 저항력이 그때그때의 학문적 성과에 어느 정도 적응하는 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일단 결정되어 전체에 하나의 신앙을 준 그런 교의를 굳게 고집하는 데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따라서 카톨릭 교회는 오늘날에는 이전보다 더 확고한 것이 되어 있다.
국가사회주의 독일노동당은 25개조의 강령과 더불어 움직일 수 없는 기초를 얻을 것이다. 우리의 현재와 장래 운동원의 과제는, 그런 지도원리를 비판적으로 고치는 데 있지 않고, 오히려 그것에 의해 의무를 지는 데 있다. 그렇지 않으면 다음 세대도 새로운 운동에 새로운 힘을 공급하기보다 당연히 당의 내부에서 순전히 형식적인 활동에 힘을 낭비해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오늘날 우리의 운동이 민족주의 이념을 마치 독점하고 있는 것처럼 주장한다며 비난하는 자가 있다면, 거기에 대한 대답은 한 가지다. 즉 독점했을 뿐 아니라 그 실천을 위해 만들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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