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장. 강자는 혼자일 때 가장 강하다.


 목적과 방법이 별로 차이가 나지 않는 결사,당파가 연합해 공동의 유대를 발견하고, 공통되지 않은 요소를 배제한다는 말을 들으면 일반시민들은 만족감과 안도를 느낀다. 그러나 그것은 대부분 틀린 생각이다! 하나의 목표를 위해서는 하나의 당파만이 싸워야 하며, 이성적으로 말하자면 많은 연합이 목표를 추구하는 것은 삼가야 한다. 목표는 분명 처음에는 단 하나의 당파가 주목한 것이다. 하나의 목표에는 단 하나의 운동만이 있어야 할 것이다.

 소위 중대한 시사문제의 본질에는, 결국 강자와 우수한 자에게 승리를 주고 그에게 문제해결을 맡긴다는 점이 있다. 훗날 새 독일제국의 건설자나 교사가 될 자가 합스부르크가 아닌 호엔촐레른 가의 프로이센이 될 것을 200년 전독일연방 중에서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가장 강력하고 가장 빠른 자가 인정을 받고 승리자가 되는 것이다.

 세상에서 진실로 위대한 것은 모두 공동전선에 의해 쟁취된 것이 아니라, 항상 단 한 사람의 승리자의 성과였다. 공동전선의 결과라는 것은 벌써 처음부터 장래의 붕괴, 또는 그 이상으로 이미 도달한 것을 잃을 싹을 가지고 있다. 진실로 세계를 변혁시키는 위대한 정신적 혁명은 일반적으로 단일조직의 거대한 투쟁으로만 생각할 수 있고 실현되는 것으로서, 결코 공동전선의 계책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민족주의 국가는 결코 어떤 민족주의적 협력단체의 타협적 의욕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직 온갖 것과 투쟁한 단 하나의 운동의 강철과 같은 의지에 의해서만 만들어질 것이다.


 9장. 돌격대의 의미와 조직에 관한 근본적 생각


 한 民族體는 크게 세 계층으로 나눌 수 있다.

 1) 최상계층 - 최상의 인간성을 갖는 극단으로, 모든 도덕적 의미에서 선량하고, 무엇보다도 용기와 헌신을 그 특징으로 한다. 民族體의 최전성기는 극단적으로 좋은 부분의 절대적인 지도에 의해 특징 지어질 뿐만 아니라, 또 그것에 의해서만 존재한다.

 2) 중간계층 - 크고 광범위한 중간층으로, 빛나는 영웅적 정신도, 비열하기 짝이 없는 범죄자적 근성도 구체화되어 있지 않다. 보통의 균형 잡힌 발전기 또는 안정기는 분명히 중간분자의 지배에 의해 특징 지어지고, 또한 그것에 의해 성립하고 있다. 이 경우 양 극단은 상호간에 평형을 유지하거나 아니면 상쇄된다.

 3) 최악계층 - 최악의 인간쓰레기라는 극단으로서, 모든 이기주의적 충동과 악덕을 포함하고 있다. 민족체의 붕괴기는 최악의 분자의 우세한 활동에 의해 초래된다.

 대중은 중간계층으로, 양극단이 스스로 상호간의 투쟁으로 묶여 있을 때만 뚜렷이 나타나며, 또한 대중은 양극단 중 어느 한 편이 이길 경우 언제나 기꺼이 승리자에게 종속된다는 사실에 주의해야 한다. 최상계층이 지배하고 있을 경우 대중은 그에 따르고, 최악계층이 힘을 떨치고 있을 경우 대중은 최소한 최악계층에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는다.

 세계대전 후 독일국민의 광범한 중간층은 어느 정도 피의 희생을 치렀다. 최상의 극단은 전형적인 영웅적 정신에 의해 대부분 몸을 바쳤다. 악의 극단은 한편으로는 더없이 무의미한 법률에 의해 보호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군율이 적용되지 않음으로써 유감스럽게도 고스란히 남았던 것이다.

 묘하게 보존된 우리 民族體의 찌꺼기가 다시 또 혁명을 일으켰는데, 혁명발생 원인은 최상분자의 극단이 이미 찌꺼기에 대항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측 최상분자의 극단은 살아 있지 않았던 것이다. 혁명은 성공해 낡은 국가의 기둥이 쓰러진 것으로 간주되었으나, 전선에서 귀환한 병사들이 기분 나쁜 수수께끼의 존재로 나타나기 시작하자마자 혁명의 자연적 전개에 제동이 걸릴 수 밖에 없었다.

 국가사회주의 독일노동자당의 수립과 함께, 과거의 기계적 부활을 목표로 삼지 않고, 불합리한 오늘날의 국가기구 대신 유기적인 민족주의 국가를 만들려고 애쓰는 것을 목표로 하는 운동이 처음으로 출현했다. 이 새로운 운동은 첫날부터 이념의 옹호는 필요하다면 완력에 호소해서라도 확보되어야 한다는 입장에 서 있었다. 새 교설의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아무리 큰 희생을 치러도 좋다는 것이 자명한 일로 생각되었다.

 단체의 규모가 커질수록 규율은 저하되는 동시에 개개인에게 바라는 요구도 적어진다. 확고한 절대적 명령 없이는 자발적 훈련이 불가능하다.

 우리가 정녕 필요로 했던 것은 100~200명의 대담한 공모자가 아니라, 우리의 세계관을 이해하고 아끼는 수십만 명의 열광적인 투사들이다. 일은 은밀한 비밀집회가 아니라 힘찬 대중행진에서 행해져야 하며, 운동은 칼,독극물,피스톨에 의해서가 아니라 가두를 장악함으로써 개척하는 것이다. 정신적으로도 작은 음모 정도로 행동주의를 만족시키는 따위의 모든 시도를 포기하기 위해 처음부터 운동의 거대한 이념에 완전히 이끌려 옹호할 수 있도록 철저하게 훈련되어야 한다.

 돌격대의 발전을 위해 매우 중요한 세 가지 사건이 있었다.

 1) 1922년 늦여름 뮌헨의 쾨니히스프라스에서 전애국동맹의 공화국보호법에 대한 일반적 대시위운동이다. 평소 깃발 하나 없는 대광장에 국가사회주의자의 도착은 크나큰 감격을 불러일으켰다. 나는 이제 6만여 명의 대중 앞에서 연설하는 영광을 얻게 되었다. 행진하는 대열을 향해 테러로 대항하던 적색공화국 방위군들은 몇 분만에 돌격대에 의해 머리가 피투성이가 되어 쫓겨났다. 이후 돌격대는 정력적으로 확장되었다.

 2) 1922년 10월 코부르크로 독일회의에서의 행진이다. 초대장을 받는 나는 800명의 돌격대원을 거느리고 42명으로 이루어진 강력한 악대를 함께 바이에른으로 갔다. 우리의 깃발을 본 사람들은 대단히 깊은 인상을 받았다. 적색분자들이 돌을 집자 우리의 인내심은 한계에 도달했고, 약 10분 동안 접전이 벌어졌다. 15분 후에는 거리에서 적색분자를 볼 수 없었다. 다음 날에는 적색테러를 결정적으로 저지하기로 결심하고, 1,500명으로 늘어난 돌격대를 집합시켰다.

 3) 1923년 초 몇 달 동안 일어난 프랑스의 루르 지방 점령은 이후 돌격대의 발전에 중대한 의미를 부여했다. 봄부터 여름까지 군사적 투쟁조직에 대한 전환이 행해졌다. 우리 운동이 이후에 발전한 것은 모두 1923년의 전환 덕분이었다.


10장. 연방주의의 가면


 1915년 봄 전쟁의 단독책임자로서의 프로이센에 대한 조직적인 선동 팸플릿이 처음 등장했다. 남독일이 북독일에 대해 행한 선동은 얼마 후 빠른 결실을 맺기 시작했다. 바이에른은 프로이센에 대해, 프로이센은 바이에른에 대해 싸움을 시작하게 하자. 그들이 원할수록 더 좋은 것이다. 양자의 치열한 투쟁은 유대인을 위해서는 가장 안전한 평화를 의미했다. 또 다시 혁명이 일어났다. 그런데 1918년 11월까지 지적 수준이 낮은 사람이나 노동자 등 보통사람이 동족간 벌였던 싸움의 사실상의 귀추와 필연적 결과를 바이에른에서 올바르게 인식할 수 없었다고 해도, 스스로 국가주의적이라고 일컫던 일부는 혁명이 일어나든 날 그 사실을 깨달았어야 했다. 국제적 유대인 쿠르트 아이스너가 바이에른으로 하여금 프로이센에 대항하도록 충동질하기 시작했다. 쿠르트 아이스너는 바이에른의 입장이 아니라 오직 유대주의의 대리인으로서만 행동했다. 그는 바이에른 사람들 사이에 만연한 본능과 혐오감을 이용해 독일을 보다 쉽게 붕괴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붕괴된 독일은 간단히 볼셰비즘의 먹이가 될 뻔했다. 가까이 다가온 해방진주군에 대한 평의회 공화국의 싸움은, 선전에 의해 주로 프로이센 군국주의에 대한 바이에른 노동자의 투쟁으로 위장되었다.

 혁명 전에 유대인은 대중의 주의를 그들의 군수회사로부터 다른 곳으로 돌리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따라서 대중, 특히 바이에른 민중을 반프로이센으로 돌아서게 한 것처럼, 유대인은 혁명 후에도 새로운, 그리고 이번에는 10배나 큰 약탈행위를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감추어야만 했다. 그리하여 소위 독일의 국가주의적 분자들로 하여금 서로 싸우도록 만들었다. 즉 보수적 입장에 서 있는 바이에른인을, 역시 보수적 사상을 가진 프로이센인과 대립시킨 것이다.

 대중에게 진짜 적을 알리려는 우리의 첫 번째 시도는 당시에는 거의 가망이 없는 듯했다. 하지만 1918~1919년 겨울에 걸쳐 반유대주의 비슷한 것이 서서히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이후 국가사회주의 운동은 유대인을 상층 부르주아지나 프티 부르주아지라는 한정된 범위에서 끌어내려 민족운동의 추진적 동인으로 바꾼 것이다. 당시 유대인들은 집중공격을 막기 위해 교황지상권론 문제를 제출해 카톨릭교와 프로테스탄트 사이에 싸움을 붙였다. 구교와 신교의 싸움으로 아리아 인종과 모든 기독교의 적들은 남몰래 웃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의 미래에 있어 중요한 점은 프로테스탄트와 카톨릭 중 누가 이기느냐가 아니라, 아리아 인종이 존속하느냐 사멸하느냐에 있다. 그런데도 두 종파는 오늘날 인간파괴자와 싸우지 않고 서로 자멸하려 하고 있다. 나는 오늘날 민족주의 운동을 종교적인 투쟁의 위기에 끌어넣은 유대인을 국제주의적 입장을 취하는 공산주의자보다 더 나쁜 적으로 간주한다.

 1919~1921년 그리고 이후 유대인에 의해 치밀하게 선전된 연방주의와 중앙집권주의 사이의 싸움은, 국가사회주의 운동으로 하여금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태도를 결정하도록 만들었다. 분명히 독일제국은 각국의 자유의지나 동등참여라는 바탕에서 생긴 것이 아니라, 그중 어느 한 국가, 즉 프로이센의 헤게모니의 성과에 의해 생긴 것이다.

 공화국은 외부적으로는 약하지만 국내에서는 시민을 압박하는데, 구독일은 국내에서는 자유를 주고, 대외적으로는 힘을 과시했다. 강력한 국가주의 국가는 시민들의 사랑과 충성심이 지대하므로 대내적으로는 별로 법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국제적인 노예국가는 무력에 의해서만 국민을 강제노동에 동원할 수 있다. 자유시민 운운하는 것은 오늘날 정부의 매우 파렴치하고 뻔뻔스러운 일면이다. 그런 자유시민은 구독일에만 있었다. 공화국은 외국의 노예식민지로 시민 같은 것은 없으며, 고작 신민이 있을 뿐이다.

 유대인은 공화국 성립 이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독일이 빼앗긴 경제관련 부문이나 행정부문에 침투해, 오늘날에는 양쪽 모두 유대인의 활동분야가 되었다. 우리에게 있어서 국가는 다만 형식일 뿐이며 근본적인 것은 내용,국민,민족이므로, 국민이나 민족의 가장 큰 이익에 다른 모든 것이 속한다는 것은 명백하다.

 중앙집권화에 대한 시도는 우리 모두가 반대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군대의 중앙집권화만은 결코 그렇지 않다. 우리가 그런 시도를 원하지 않더라도 군대의 중앙집권화만은 반겨야 한다. 오늘날의 독일군 규모로는 각 연방국가의 부대를 유지하기란 


 11장. 선전과 조직


 독일노동자당에 입당한 후 나는 곧 선전관리를 맡았다. 1921년은 나와 운동에 있어 여러 면에서 특별한 의의가 있는 해이다. 선전은 조직에 우선되어야 할 문제이므로 공작을 담당할 인재를 끌어들여야만 했다.

 너무 급속하고 융통성 없는 조직에는 대부분 죽은 기구만 생겨난다. 조직은 유기적 생활, 유기적 발전에 존립의 혜택을 입고 있기 때문이다. 일정 수의 사람을 포섭한 이념은 언제나 어떤 질서를 얻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며, 내면적 형성은 매우 큰 가치가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적어도 처음에는 뛰어난 두뇌의 소유자에게는 본능적으로 저항하는 인간의 약점을 계산에 넣어야 한다.

 위대한 이론가가 위대한 조직자인 경우는 매우 드물다. 조직자는 인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따라서 그는 인간을 과대 평가해서도 안되고, 대중 속에 있는 인간을 과소 평가해서도 안 된다. 위대한 이론가가 위대한 지도자인 경우는 더 드물다. 오히려 선동가가 지도자에 더 적합할 것이다. 지도하는 것은 대중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론가,조직자,지도자가 한 인물 속에 결합되어 있는 것은 세상에서 더할 수 없이 드문 일이다. 그런데 바로 그런 결합이 위인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나의 선전방법이 과격하고 도발적일수록 더욱 약자나 겁쟁이를 위협해 후퇴시킴으로써 우리 조직의 기초적인 핵심에 그들이 침투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대단히 과격한 개념으로 조직의 최상의 인재들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당시 혁명에 적극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모두 우리 당에 입당했다면, 우리는 오늘날 경건한 우정의 단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나, 더 이상 젊고 투쟁적인 운동조직으로는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선전에서 취한 생생하고 무모한 형식이 우리 운동의 과격한 경향을 견고히 하고 보증한 것이다. 이후 실제로 과격한 사람만이 당원이 되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과격한 선전은 짧은 기간에, 수십만 명이 개인적으로 당을 위해 희생하거나 투쟁하기에는 너무 소심했어도, 마음으로부터 옳다고 믿을 뿐 아니라 우리가 승리하리라는 희망을 갖는 데 영향을 준 것이다.

 나는 1921년 8월 1일부터 운동의 내부재편성을 맡았다. 당시 많은 뛰어난 사람들이 나를 지지한다는 것을 알았다. 마침내 새 규정이 채택되어 내가 제1의장에 임명되고, 나에게 필요했던 권위와 그에 따른 권리가 부여되었다. 위원회의 결의 대신 절대 책임의 원칙이 도입되었다.

 내가 당수가 됨으로써 수많은 위원들이 일일이 당의 경영에 관여하는 것을 금지하는 데 성공했다. 이것은 중요한 일이었다. 능력없는 자들이 계속 중간에 끼어 들어 참견하고 아는 척한다면, 어떤 과제에 대해 실제로 재능있는 인물을 얻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전혀 일을 하지 않거나 혹은 실행 불가능한 결의만 만드는 위원회를 정리해 버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들에게 어떤 일을 지시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런 집단은 소리도 없이 사라져 버리게 된다. 당시 나는 그런 부류로 독일의회에 생각이 미쳤다. 그들로 하여금 말만 하게 하는 대신 실제의 일을, 그것도 그들 큰소리치는 한 사람 한 사람이 개인적인 책임 아래 완수해야 할 일을 맡긴다면, 갑자기 연기처럼 사라져 버릴 것이다.

 나는 사생활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운동에 있어서도 개개의 경영을 위해 분명히 유능하고 성실한 간부,관리자,지도자를 발견할 때까지 찾아야 한다는 것을 항상 요구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위로는 완전한 책임을 맡기는 동시에, 아래로는 절대적인 권위와 행동의 자유를 주어야만 했다. 이 경우 누구라도 그 일을 스스로 잘해 나갈 수 없는 사람은 부하에 대해 권위를 가질 수 없다.

 

12장. 노동조합에 관한 문제


 나는 고용주의 태도가 변하지 않는 한 노동자가 스스로의 이익을 지키는 이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입장에 서 있다. 나는 민족의 모든 공동체에 중대한 손해를 끼칠 것이 분명한 사회적 불공평을 저지할 수 있다면, 그런 민족공동체에 전적으로 부합된다고 생각한다. 또한 나는 기업가 가운데 사회적 의무감이 결여되었거나 가장 소박한 인권에 대한 감정마저도 결여된 인간이 있는 한, 이러한 필요성은 당연한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고 단언했다.

 국가사회주의적 노동조합은 계급투쟁기관이 아니라 직업대표기관이다. 노동자들을 하나의 계급으로 바꾸어 나가는 임무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조합에 부여한 것이다. 그들은 노동조합을 자신의 계급투쟁의 도구로 삼은 것이다. 1911년 11월 혁명은 노동조합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에 반해서 행해진 것이다.

 마르크시즘은 국제적인 세계 유대인이 자유독립국가의 경제적 기초를 파괴하고 국민적인 공업과 상업을 파괴하며, 국가를 초월한 세계 금융 유대주의를 위해 자유로운 여러 민족을 노예화하는 데 이용하는 경제적 무기를 만들었다. 반면 국가사회주의적 노동조합은 국민적 경제과정에 관여하는 일정한 그룹을 조직적으로 구성해 국민경제의 안전성을 높이고, 종국에는 민족의 모든 폐해를 수정,제거함으로써 국민경제를 튼튼히 해야 한다.

 그러므로 국가사회주의적 노동조합에는 파업이 국민적 생산에 파괴와 동요를 초래하는 수단이 아니라, 그 비사회적인 성격으로 인해 경제적 능률 및 모든 존재를 저해하고 있는 온갖 폐해와의 싸움을 통해 국민적 생산을 증가시키고 원활하게 하는 수단인 것이다.

 당시 나는 처음부터 이미 실패가 예견된 실험은 전면적으로 거부했다.


13장. 전후 독일의 동맹정책


 독일 지도자들은 전쟁의 계획적 준비에 대해서는 전혀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으므로 유럽에서의 토지획득을 단념하고, 대신 식민지 및 무역정책에 가담했고, 그 결과 영국과의 동맹을 무산시키기에 이르렀다. 그 지경에 이르면 논리적으로 당연히 러시아에 지지를 의뢰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러지 않고, 마침내 합스부르크 왕가의 세습적인 해악을 제외한 모든 곳으로부터 외면당한 채 세계대전에 휩쓸리고 말았다.

 이 시대는 어떤 시대보다도 악이 악을 낳는다는 시인의 말은 옳다. 1919년 평화조약이 독일민족에게 강요되었을 때, 엄청난 억압에 대항해 독일의 자유를 구하는 외침이 강력히 촉진되기를 희망한 것은 정당한 일임에 틀림없다. 민족을 모질게 매질하는 평화조약은 다가올 혁명의 시작을 알리는 최초의 북소리가 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 그와 같은 평화조약은 이런 일에 봉사할 수 있다. 그 엄청난 억압, 그 파렴치한 요구 가운데 한 국민 안에 잠든 활력을 일깨우기 위한 최대의 선전무기가 있는 것이다.

 독일민족은 우리의 국토를 팔아 넘긴 배신자들을 징계하지 않는 한 다른 국가의 태도를 비난할 도덕적 권리가 없다. 적의 전시 선전에 고용되어 우리의 무기를 빼앗고, 도덕적 기반을 무너뜨리고, 기진맥진한 독일을 은화 30냥에 팔아 넘긴 무뢰한을 국내에서 활보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은 참된 노력이라고 할 수 없다.

 영국은 우리에게서 식민지를 탈취했으므로 우리는 영국과 동맹을 맺을 수 없다. 이탈리아는 남티롤을 점거하고 있으므로 이탈리아와 동맹을 맺을 수 없다. 폴란드와 체코슬로바키아는 본래 동맹이 불가능한 국가라고 한다면, 프랑스 외에는 유럽에서 동맹을 맺을 만한 나라가 없다. 아니 프랑스도 우리에게서 알자스로렌을 빼앗았다.

 유대인은 가장 자유로운 민주주의 국가인 영국에서 여론이라는 간접적 수단에 의해 오늘날에도 아직 거의 무제한으로 독재권을 행사한다. 유대인은 오늘날의 유럽 諸國을 민주주의라는 간접적 수단이든 볼셰비즘에 의한 직접적 지배형태든 이미 자신들의 손 안에서 의지의 자유를 잃은 도구로 간주하고 있다. 그들은 구세계만 농락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같은 운명을 신세계에도 들이밀고 있다. 유대인들은 미국 금융의 지배자다. 해가 거듭될수록 그들은 점점 더 1억 2천만 민중의 노동력에 대한 감독자의 지위로 올라서는 것이다. 오늘날에는 그들의 미움을 사면서 완전히 독립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유대인들은 교활하게 여론을 조작해, 그것을 자신들의 장래를 위한 투쟁의 도구로 만든다.

 오늘날의 세계에서 참된 적이 누구인지 거듭 상기시켜 주어야 한다. 공통의 피 혹은 동질의 문화라고 하는 굵은 선으로 우리와 이어져 있는 아리아 여러 민족에 대한 증오 대신, 모든 고통의 원흉인 인류최악의 적을 일반의 분노 앞에 드러나게 해야 하는 것이다.

 이 운동은 최소한 국내에서 불구대천의 원수를 깨닫게 되고, 적에 대한 싸움이 찬란한 시대의 빛나는 상징으로서, 아리아의 행복을 위하는 길을 다른 여러 민족에게도 제시할 수 있도록 배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밖에는 이성이 우리의 지도자가 되고, 의지가 우리의 힘이 될 수 있다. 그와 같이 행동해야 할 거룩한 의무가 우리에게 굳센 용기를 주고, 또 무엇보다도 우리의 신념이 우리를 지키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