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장. 동방노선과 동방정책


 우리의 지식층이야말로 민족의 대외적인 이익을 참으로 명확하게, 논리적으로 옹호하지 않겠다는 관념을 갖게 하는 데 가장 곤란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무의미한 관념과 편견이라는 무거운 짐에 억눌려 있으며, 더욱 곤란한 것은 모든 건전한 자기보존 충동을 잃고 또 체념하고 있다.

 국가사회주의 운동은 그런 사람들과 어려운 투쟁을 계속해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그들은 완전히 무능한데도 상당한 자부심에 사로잡혀 자기들보다 건전한 사람들까지도 업신여기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기분수를 모르는 자만과 자부심으로, 냉정한 음미와 고찰의 능력이 완전히 결여되어 있다. 그리고 이 능력이야말로 모든 외교정책상의 의도와 행위의 전제가 되어야 한다.

 국가사회주의자는 확고한 태도로 우리의 외교정책상의 목표, 즉 지상에서 독일민족에 상응하는 영토를 확보하도록 주장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신과 독일의 자손 앞에서 피의 희생을 정당화할 수 있는 단 하나의 행위다.

 국경은 인간에 의해 만들어지고, 인간에 의해 바뀌는 것이다. 오늘날 독일민족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좁은 땅에서 비참하게 살아간다 해도 그것이 결코 운명의 명령은 아닌 것처럼, 그런 상태에 대항하는 것도 또한 운명에 맞서는 것은 아니다.

 민족주의적 운동은 이민족의 대리인이어서는 안되며, 자기민족의 선봉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운동은 불필요하며, 또 과거에 대해서 불평할 권리가 전혀 없는 것이다. 만일 영토확장을 하지 못한다면 어떤 대민족이 몰락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되는 경우, 영토에 대한 권리는 의무로 바뀔 수 있다.

 우리가 오늘날 유럽에서 새로운 영토에 대해 말할 경우, 우선 러시아와 그 주변국가가 떠오른다. 러시아는 볼셰비즘에게 넘겨짐으로써 지식인층이 러시아 민족으로부터 상실되었다. 수백 년 이래 러시아는 상급 지도층인 게르만 민족의 중핵 덕택으로 존속해 왔다. 그러나 이 중핵은 오늘날 거의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고, 대신에 유대인이 등장했다.

 독일의 동맹정책이 적극적 공격의도를 결여했기 때문에 세계사적으로 늙은 여러 국가와의 방위동맹으로 끝났다는 것은, 평화로운 시대에도 매우 곤란한 일이었다. 오스트리아나 터키와의 동맹도 거의 이렇다 할 장점이 없었다. 지상 최대의 군사적,산업적 국가들이 적극적인 공격동맹에 의해 연합하는 판국에, 독일은 두셋의 노쇠하고 무기력해 몰락운명에 처한 국가조직을 모아 적극적인 세계연합에 대항하려고 기도했던 것이다.

 독일은 외교정책의 실수로 모진 대가를 치렀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아직 불충분해, 우리의 영원한 망상가들이 또 당장 똑같은 과실을 범하는 것을 저지할 수 없을 것 같다.

 인류의 가치를 인종적 기초로써 평가하는 민족주의 신봉자로서, 나는 피억압국민이 인종적으로 저급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으므로, 우리 민족의 운명을 그들(인도) 국민의 운명과 결합시킨다는 일은 하지 않겠다.

 게르만인의 상층부를 빼앗기고 있는 러시아는 독일국민의 동맹국이 아니다. 순수하게 군사적으로 생각해도 독일과 러시아가 서구에 대해 전쟁을 할 경우, 상황은 그야말로 파국적이 될 것이다. 아마도 전쟁은 러시아의 영토가 아니라 독일의 영토에서 벌어질 것이다. 이때 독일은 러시아로부터 전혀 원조를 받지 못할 것이다.

 전쟁의도를 목적으로 포함하지 않는 동맹은 난센스이며, 또한 아무런 가치도 없다. 오직 전쟁을 위해서만 동맹이 맺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가령 동맹을 체결하는 시점에는 대결이 아직 먼 훗날의 것이라 할지라도, 전쟁에 휩쓸릴 것이라는 예측이야말로 동맹체결을 이루게 하는 본질적인 요인이다.

 러시아의 볼셰비즘은 20세기에 수행된 유대인의 세계지배권 획득을 위한 실험으로 간주되지 않으면 안 된다. 유대인의 세계 볼셰비즘화에 반대하는 투쟁은 소비에트 러시아에 대한 확고한 태도를 요구한다. 바알세불의 힘을 빌려 악귀를 쫓아낼 수는 없는 것이다. 민족주의자들까지도 오늘날 러시아와의 동맹에 열중하고 있다면, 그들은 독일 국내만이라도 살펴봄으로써 자신들의 행동이 누구의 지지를 얻는가를 돌아봐야만 한다.

 영국와 이탈리아만이 우리와 밀접한 관계를 맺기 위해 노력할 만한 가치가 있으며, 또한 가능성을 지닌 단 두 국가다. 이 동맹은 독일에게 프랑스에 보복하는 데 필요한 준비를 안심하고 행할 가능성을 줄 것이다. 또한 독일이 자국의 불리한 전략적 위치에서 일순간에 벗어날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새로운 동맹에 많은 점에서 서로 거의 보충하는 기술적 실행력을 가진 나라들이 포함된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이들 두 동맹국은 어느 쪽도 터키나 러시아와 비교할 수 없다는 점이다. 지상최대의 강국과 젊음에 넘친 국가주의 국가는 지난 전쟁에서 독일의 동맹인 썩어 가는 국가의 시체와는 다른 전체를 유럽에서의 투쟁에 대해 제공해줄 것이다.


15장. 권리로서의 정당방위


 1918년 11월의 무장해제로, 천천히 완전 굴복에까지 도달할 것이 틀림없는 정책이 시작되었다. 현명한 승리자는 가능한 한 자신의 요구를 언제나 분할해 패배자에게 부과할 것이다.

 "비겁한 굴복의 오명은 절대로 지워지지 않는다. 한 민족의 피 속에 스며든 독약 한 방울은 자손에게 전해져서, 이후의 세대의 힘을 빼앗고 해칠 것이다... 피투성이의 명예로운 투쟁의 결과라면 자유의 손실조차도 민족의 재생을 보증하고, 언젠가는 새로운 수목이 되어 굳게 뿌리내릴 생명의 종자이다." - 클라우제비츠. <세 가지 신조>.

 이 훈계를 가슴에 새긴 사람은 결코 타락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것을 잊었거나 도무지 알려고 하지 않는 자만이 파멸할 뿐이기 때문이다.

물론 명예도 절조도 상실한 국민이라면 이런 훈계를 마음에 둘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최소한 1922~1923년까지는 프랑스가 평화조약 체결 후에도 떨쳐 버리지 못한 전쟁목표 달성을 위해 굳은 각오로 노력했다는 사실이 일반에게 알려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손실을 변제받기 위해 프랑스는 4년 반 동안이나 역사상 가장 아슬아슬한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알자스로렌 문제조차도 그것만으로는 프랑스의 전쟁수행에 허비한 힘을 설명할 수 없을 것이 틀림없다. 프랑스의 목표는 소연방이 뒤섞인 상태로 독일을 해체하는 데 있다.

 만일 전쟁이 독일 국내에서 행해졌다면 프랑스는 독일의 분쇄가 가능했을 것이다. 이 거대한 민족간의 투쟁이 국경 밖에서 행해진 것은 구독일군의 불멸의 공적이었을 뿐 아니라, 독일의 장래에 있어서 크나큰 행운이기도 했다. 그것은 또한 우리 형제의 피가 최소한 헛되이 흘려진 것은 아니었다는 유일한 근거이기도 하다.

 영국은 식민,무역국으로서의 독일을 파멸시키고 이류국으로 떨어뜨림으로써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영국으로서는 독일의 철저한 절멸은 이익이 못 되었을 뿐 아니라, 장차 유럽에 있어 프랑스가 라이벌을 갖는 것이 바람직스러운 모든 이유를 갖고 있었다.

 반역을 했던 자가 갑자기 독일의 자유를 위한 투사가 될 수도 있다는 따위의 희망은 참으로 터무니없는 것이다. 하이애나가 썩은 고깃덩어리에서 잠시도 물러서려 하지 않는 것과 같이, 마르크시스트는 조국을 팔아넘기는 일을 결코 그만두지 않는다.

 수백만의 사람들이 싸움터에서 피투성이가 된 채 죽어가도록 내버려 두었음에도 불구하고 민족을 파는 자, 모리배, 고리대금업자, 사기꾼 등을 귀중한 국민의 보물로 취급하고, 따라서 그들에게 손대지 말라고 공공연히 언급하는 것은 분명 부르주아 계급적 정치에는 어울리는 것이었다. 부르주아 계급의 세계에서는 뭐가 뭔지 알 수 없게 가치관이 혼동되어 있다.

 프랑스는 루르 지방을 점령했다. 루르 지방에는 석탄이 있다.

 민족과 조국의 파괴자에 대한 증오는 폭발로까지 발전되어야 마땅했다. 나는 1924년 봄에 열렸던 재판에서 최종변론의 결론을 이야기했다.

 "이 국가의 재판관은 평안한 마음으로 당시의 우리 행동에 대한 판결을 내려도 될 것이다. 그러나 보다 높은 진리와 보다 훌륭한 법을 지배하는 여신인 역사는, 언젠가는 이 판결을 미소로 파기하고 우리의 모든 죄와 과실을 용서할 것이다." 


맺는 말


 1923년 11월 9일 국가사회주의 독일노동자당은 창설 4년 만에 독일 전역에서 해산되고 활동이 금지되었다.

 1926년 현재 당은 이전보다 막강해지고 또 내부적으로도 견고해져서, 다시금 전국에서 자유로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운동이나 개개의 지도자에 대한 모든 박해나 비방, 또한 중상도 운동에 아무런 해를 가할 수 없었다. 운동이 오늘날 우리의 의회주의적 부패세계 속에서 더욱더 투쟁의 본질을 자각하고, 자신을 인종과 인물의 가치에 있어 純正한 권화로 느끼고, 또 그것에 의해 질서를 부여받게 된다면, 운동은 거의 수학적 규칙성에 입각해 언젠가 투쟁을 승리로 이끌게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만약 독일이 동일한 원칙에 따라 인도되고 조직되는 경우에는, 당연히 자신에게 상응하는 지위를 지상에서 반드시 획득하게 될 것이다.

 인종타락의 시대에 최선의 인종적 요소 보호에 열중하는 국가는, 언젠가 분명히 지상의 지배자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