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빙성 있는 기록에 따르면, 워싱턴 로비의 출범과 중앙정보부 통제하에 두기로 한 결정은 1970년 서울 청와대 집무실에서 박 대통령이 주재한 회의에서 내려졌다고 한다.

미국 정부는 C.I.A. 보고서를 통해 며칠 만에 이 결정에 대해 알았지만 박정희의 새로운 계획울 무시하기로 했다. (그러나 보도된 것과는 달리 C.I.A.는 청와대를 도청라지 않았다. 미국 정보기관에 고용된 중앙정보부 요원으로부터 정보를 입수한 것이다).

미국 C.I.A.는 한국에서의 활동에 제약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워싱턴과 서울 사이에는 양측이 상대국에 얼마나 많은 정보 요원을 유지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공식적인 합의가 없으며, 실제로 미국은 한국의 정보 활동에 대해 비정상적으로 관대한 경향이 있었다.



1970년 당시 중정부장은 김계원

이런 계획을 논의하는 미팅에 많이 참석하지는 않고 대통령과 중정부장, 외교부 장관 등 5명 내외일 것 같은데 그 때도 최고위층에 간첩은 있었구나

지금도 대통령실에 간첩이 있는 듯 하다

출처: 러시아 정세 마이너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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