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소개할 위인은 카를 슈미트라고 하는 법학자야. 별명이 '악마적 사상가'라고 할만큼 사상면에 있어 더없이 살벌하고 냉철하다고 평받고 있어. 그의 사상을 알아보자: 일단 카를 슈미트는 법학자이면서도 법 자체로는 쓸모없는 것이라고 생각했어. 그렇다면 법의 효력을 발휘시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정치'야. 정치적인 힘이 법의 위력을 결정하는 거지. 정치라고 하니깐 많이 어렵지? 그냥 예를 존나 극단적으로 들어보자면, 전국 회사원, 노동자들이 어느날 갑자기 집단 납세 거부를 외치곤 국세청 직원들이랑 맞짱깐다 생각해봐. 어떡해? 세금 안때려? 아니면 체포시켜? 전국노동자 전부 체포하면 경제 어떡함? 이 때는 그들의 힘보다 헌법에 쓰인 '납세의 의무'가 더 중요하다고 할수 있을까? 이렇듯 힘과 권위야말로 법을 지탱하는 더없이 중요한 요소야. 사실 니들도 그렇잖아? 우리가 법을 지키는 이유는 법이 그냥 좋아서가 아니라 그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의 힘과 권위가 훨씬 강력하기 때문이잖아? 한마디로 법을 안지키면 좆되기 때문이지 인정? 인정. 지금 현행법들이 완전히 백지가 되면 니들 그래도 한두개쯤은 어기고 살거잖아 왜그래~ 정치가 곧 법. 그렇다면 정치는? 정치는 뭘까? 여기서 카를 슈미트는 정치를 보고 "적과 아군을 구분하는 것"이라 말해. 적과 아군을 구분한다니? 자연상태의 인간 본성은 서로에게 적대적으로 행동하는 것이라고 본 사람들이 있어. 토마스 홉스라는 영국 철학자를 들어보았겠지? 그가 이 주장을 했어. 토마스 홉스는 이를 통해 "사람들은 싸우다가 지쳐서 자신들을 싸우지 않게 통제할수 있는 괴물을 하나 만들었는데, 이게 바로 리바이어던(국가) 이양!" 라는 개쩌는 주장을 했고, 이게 사회계약론이지. 실제로 카를 슈미트도 이와 어느정도의 비슷한 사상을 견지하고 있는 듯 해. 인간이 서로에게 갈등을 품는다는 것을. 그치만 그 갈등이 일반적인 통치 상황이 아닌 인간의 자연적이고 야만적인 적대가 최고로 분출되는 상황, 그래, 바로 '전쟁'에 대입된다면 어떨까? 여기서 바로 차이가 갈리는 거야. 일반적인 사회계약론자들은 전쟁이 예외상황이라고 보았지만 솔직히 찜찜한 문제지. 그렇잖아? 리바이어던의 통제가 가능하지만 동시에 인간의 적대가 드러난다니? 여기서 카를 슈미트는 전쟁이야말로 정치, 곧 적과 아군을 구분짓는 행동이 낳은 산물이라고 봤지. 법과 마찬가지야. 전쟁도 그 자체로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 정치의 문제일 뿐이야. 전장에서 저격수가 적과 아군을 구별하여 총을 쏘아대는 것도 정치적인 행동일 뿐. 그런 행동들이 모여 벌어지는 현상 따위가 바로 전쟁이란 뜻이지. 적과 아를 구분짓고 그 적에 맞선다! (물론 태반은 물리적 폭력이겠지만 다른 수단이나 도구가 있다면 뭐 상관없다.) 이걸 국가에 적용시켜볼까? 국가, 리바이어던이라는 거대한 단일유기체 괴물은 곧 정치를 통해 움직여. 카를 슈미트가 정의한 정치 개념을 적용시키면, 리바이어던은 끝없이 적대하면서 적과 아를 구분짓는 활동을 통해 다른 리바이어던과 격돌하여 전쟁을 만들지. 대립과 갈등, 그리고 전쟁이야말로 인류사를 결정짓고 주도하는 중요한 일이야. 당장 예를 들어 볼까? 프랑스 민중 대 귀족! 러시아 백군 대 적군! 게르만 민족 대 유대인… 맞아.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은 이를 통해 '정치'의 본질을 꿰뚫고 실천했던 몇 안되는 단체라고 표현할 수 있어. 전쟁을 밖에서 만들지 못하면 뭐다? 안(바이마르 공화국 내)에서 만들면 된다! 실제로도 카를 슈미트는 친나치적 활동을 했지. 전쟁 도중엔 입장을 조금 선회했다지만 사상적인 면에서는 나치당이 그에게 큰 빚을 졌다고 볼수 있지. 실제로 그는 자유주의, 의회주의, 다원주의 사상이야말로 큰 병폐라고 보았어. 정치가 뭐지? 적을 만드는 거잖아? 의회에서는 뭘 만들지? 허구한날 토론에 담론에... '모두가 만족할수 있는 대안'을 만들지. 그걸로 만사가 해결된다 생각해. 미안하지만 적과 아가 정해진 이상 그딴건 없어. 적이 사라져야 비로소 남아있는 모두가 만족하는 답이 만들어지지. 다원주의도 마찬가지야. 리바이어던이라는 단일된 유기체가 힘을 못쓰게 만들어버리지. 적을 빨리 구별해서 조져야 하는데 누군가들이 갑자기 옆에서 "잠깐 이거는 이렇지 않을까? 왜 쟤를 조져? 이거는 왜 이런거야? 이렇게는 안생각해?" 이딴식으로 부추기면 어떻게 되겠어? 안봐도 뻔해. 리바이어던이 조각조각 공중분해되서 없어지겠지? 이해가 아직도 안된다면 지금 현재를 봐. 민주주의와, 다원주의를 존중하는 한국에서 프레임 씌우기, 색깔론, 흑색선전이 쓰이고 먹혀드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게 바로 정치이기 때문이야. 토마스 홉스가 말했던 인간의 호전적 성격은 자본주의 체제의 용어인 '경쟁'으로 바뀌었을 뿐이야. 솔직히 그렇잖아? 마음속으론 허구한날 남을 학벌이나 재산 등으로 비교하고 깎아내리면서 입으로는 왜 평등을 외치지? 그게 바로 정치이기 때문이야. 깔깔깔깔~ 이를 보았을 때, 카를 슈미트는 지금 체제의 도덕적 위선에 흠집을 낸, 아주 냉철하고 통찰력있는 사람이라고 볼수 있지. 나도 이 사람을 존경하고 있다. 어떻게 이런 판타스틱하고 어매이징한 발상이 가능할까? 이상 글을 마친다. 긴글 읽어줘서 고맙당…
출처: 나치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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