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뒤 유대인 선전 담당자들은, 하루에 불과 6명의 시체밖에 처리 못하는 2개의 작은 소각로에서 수백만 명의 유대인들이 소사(燒死)당했다고 하는 터무니 없는 이야기를 꾸며 내, 세계를 즐겁게 만들었다.



<리치먼드 타임스 디스패치> 신문의 편집자 버지니어스 더브니는 1963년 3월 9일자 '토요논평'에 다하우 강제수용소 방문기를 쓰고 있다.



'매우 놀랄 일은 가스실은 한 번도 가동된 일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 이유는 가스실 건설이 전쟁 후반에 시작되었고 더욱이 피수용자들의 사보타지가 성공했기 때문이다.'



더브니는 또 피수용자들은 '티푸니나 기타 질병으로 죽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유대인 6백만명이 죽었다는 것을 세계에 선전하기 위한 증거로 아우슈비츠에는 가스실과 소각로가 전시되고 있는데, 그것은 전쟁이 끝난 뒤 1946년에 독일인의 노예 노동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전쟁 전, 독일에 거주했던 유대인 30만명 중에서 600만명의 유대인이 나치스에 의해 살해되었다는 이야기의 배경에는 강력한 경제적 이유가 있었다. 이 '살인'의 배상으로써, 학살이 있었다고 하는 당시에는 없었던 이스라엘 국가가 독일 국민에 대하여 해마다 8억달러씩 10년간 배상금을 부과시킨 것이다.



죽은 유대인의 대부분은, 1941년에 공격해 오는 나치군에 대한 스탈린의 방어를 유대인이 무너뜨리는 것을 예방하기 위하여 스탈린에 의해 살해된 폴란드 유대인들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러시아에 어떤 배상도 요구하지 않았다.



- 유스터스 멀린즈의 '미국은 점령당했다'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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