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들은 객관성이 관념의식으로 인식된 것이 주관성이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직관의식으로 인식되는 '주관적 물자체'(칸트는 물체자의 객관성을 강조했으므로)가 객체와의 타협(변증법적 퇴보라고 쓰니 햇갈려 하는 사람이 있다)을 통해 관념의식에 의해 인식된 것이 바로 '객관적 현상계'이다. 쇼펜하우어는 물자체에 주관적이게 정의되는 의지를 둬 유물론적 실체를 부정하는 인도철학과 연결될 길을 열었으나, 정작 자신은 유물론적 실체를 인정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플라톤이 정신을 물질 보다 더 근본으로 두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칸트 보다 더 먼저 생각해낸 것을 피타고라스 학파가 고정불변의 실체로 왜곡하지 않았다면 누구나 알았을 사실이지만 나는 주관적 물자체와 객관적 현상계에 대한 전환을 '다윈적 전환'이라 부르겠다.
Die neue kopernikanische Wende
정신병걸린원숭..(jehoshvahtheatheist)
2023-03-12 13:08:00
추천 2
댓글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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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님, 칸트의 오성/지성, 감성, 이성, 초월적, 초험적, 초월론적/transzendental/transzendent, 예지계/Noumena, 현상계/Phenomena, mundus intelligibilis, Mundus Sensibilis, 물자체/Ding an sich 이런 개념이 한국에서도 학회에 따라 번역이 다르고 헤겔에서도 차이를 보이고 그러기 때문에 용어를 만들어 쓰시게 되면 읽는 사람은 전혀 이해를 할 수 없어요. 저는 원숭이님이 진지하게 사유하시는 모습이 마음에 드는데요, 사유를 스스로 명료화시키며 이어나가셔야 앞으로 도움이 되실 거에요. 지금은 다른 철학자의 언어를 따라쓰시는 것보다 본인이 생각하신 바를 쉽게 풀어 써 보시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아요.
풀어쓰면 그냥 용어의 정의를 길게 늘어놓는 거라 불필요하게 글의 양만 늘어날텐데
그래도 원숭이님 고유의 사유가 표현되는 것이 훨씬 이해하기 쉬울 거 같아요. 아니면 원숭이님이 철학자들의 용어를 쓰시려면 면밀하게 학습을 하고 난 뒤에 쓰시는 편이 좋을 것 같아요
일단 이 글에서는 주관적 물자체라는 것이 이해가 되질 않아요. 물자체의 의미를 어떻게 파악하고 계신 것인지 물어보고 싶어요.
이성으로 인식되는 대상과 이성으로 인식한 결과를 간단하게 물자체와 현상계로 쓴 것 뿐이고 칸트가 처음 제시한 개념을 그대로 적용하면 혼란이 오는게 정상임.
물자체는 이성이 닿을 수 없는 영역이라는 개념으로 쓰이기 때문에 mundus intelligibilis이나 그냥 풀어서 '이성으로 인식되는 대상'이라고 써 주시는 편이 다른 사람들이 오염없이 이해할 수 있어요 물자체라고 하시면 개념이 달라져요.
이성이 닿는다는 것이 이성을 통해 파악될수 없다는 의미고 물자체란게 인식될때 현상계가 되는 대상
물자체는 인식이 되는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개념으로 쓰거든요. 그래서 물자체라는 용어를 쓰실때는 이 부분은 꼭 지켜주셔야 혼동이 없을거같아요..
그냥 유물론적 실체라고 생각되어 왔던 것을 뜻함.
그리고 이미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로 쓰이는 것을 굳이 다윈적 전환으로 말씀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뭔가 다른 것을 말씀하시고 싶으신 것 같은데 제가 볼땐 칸트와 같은 이야기를 하시는 것 같은데 칸트를 오독하셔서 생긴 일인지 여러모로 궁금하기도 하고 원숭이님의 사유를 이해하고 싶어서 질문드려요
관념론적 전환 그 자체가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고 관념론 안에서의 또 다른 전환이 다윈적 전환.
흥미로운 접근이라서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관념론 안에서 어떤 전환을 말씀하시는 걸까요? 저는 일단 현대철학 일반에서 쓰이는 '목적성의 제거' 정도로 보이는데 제가 이해한바가 맞을까요?
주관적 물자체, 풀어서 쓰면 주관적인 인식의 대상에 관한 전환
그러니까 물자체는 우리가 형이상학적으로도 접근할 수 없는 영역이라서 물자체를 자꾸 대상으로 생각하시면 지금처럼 오류가 일어나게 되는 거 같아요. 물자체는 '일자'와 같은 개념으로 보면 될 거 같아요.
쇼펜하우어 의지의 개념으로 생각하면 편할듯
그리고 존댓말은 사유의 평등을 훼손하는 언어습관이니까 반말 좀 써라
반말을 쓰게 되면 교수적, 교도적으로 보일 것 같은데 괜찮을까요?
난 어차피 존댓말 폐지론자임
그래 그럼 반말로 할게 원숭아.. 니가 생각하는 모든 것들이 이미 다른 사람들의 사유 안에서 훨씬 더 폭넓게 펼쳐져 있던 것들이야. 궁금한 게 많아 보이는데 아직 칸트-헤겔-쇼펜하우어에 머물러 있는 근대적 사유인거 같아. 니체로 시작해서 현대철학 영역으로 뻗어나가면 좋겠어. 실존철학, 현상학, 해석학 즉 후설과 하이데거, 가다머, 데리다, 들뢰즈 정도면 충분할 거 같아.
스스로 사유한다는 점에서 너는 이미 철학자야. 하지만 다른 훌륭한 사람들의 책을 읽는 것이 너의 사유가 훨씬 빠르게 진행될 수 있도록 도와줄거야. 그리고 너의 사유의 방향성은 상당히 좋아보여. 실존주의 갤러리에도 놀러와
하이데거와 데리다는 이미 많이 다뤘는데 아무튼 니 주장이 뭐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