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과 번뇌가 멸해서 없어지기 때문에 해탈이 있다. 업과 번뇌는 분별 사고로부터 생긴다. 그런데 분별 사고는 형이상학적 논의[戱論]로부터 생긴다. 그러나 희론은 공에서는 멸한다.(MS 18.5) // 모든 부처님은 '자아(atman)가 있다'고 가설하고, '무아이다'고도 설하며, 또 '아트만인 것도 없고, 무아인 것도 없다'고 설했다.(MS 18.6) // 마음의 경지가 멸했을 때는 언어의 대상도 사라진다. 진리는 불생불멸이며, 실로 열반과 같다.(MS 18.7) // 모든 것은 진실이다. 또는 진실이 아니다. 진실이기도 하고 진실이 아니기도 하다. 진실인 것도 아니고 진실이 아닌 것도 아니다. 이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다.(MS 18.8) // 다른 것에 의해 알려지는 것이 아니며, 적정하고 희론에 의해 희론되는 일이 없으며, 분별을 떠나고 다른 것이 아니다. 이것이 실상이다.(MS 18.9)
- 나가르주나 중론
(짱깨가 아니라 인도에서 세웠음)
개별화의 원리의 소멸이 분별의 소멸임.
의지를 직관할때 개별화의 원리가 소멸되고 무의미한 정신투쟁을 멈추는데 음악이 진정제와 같이 일시적으로 의지를 직관하도록 돕는다고 함.
"아트만이라는 것도 없고 아나트만이라는 것도 없다"는 이분독립적 사고로 대타자와의 타협에서 벗어난 자유사고 상태에서 실현 가능함.
붓다의 문제점은 인식에의 의지를 끊지 않고 삶에의 의지만을 끊으려 했다는 점임.
설일체유부에 식 끊는 방법 나와 있음. 보통 아뢰야식을 8식까지 분류하는데, 7식까지만 소멸이 가능하고, 8식은 소멸되지 않는다는 입장임.
그 8식이 존재인식이고 비존재의 상태에서만 소명 가능함.
8식은 존재인식이 아니라 저장소임. 비유를 들면 밤에 침대에 누워서 깊게 잠을 자서 꿈조차 꾸지 않지만, 잤던 침대에서 내일 아침에 일어나는 심소임.
고정불변의 실체가 없다는 말은 모든 것이 인식될 뿐이라는 칸트의 입장과 유사한데 짱깨들이 여기다가 유물론적인 견해를 추가해서 불교가 관념론적이지 않게 된거고.
뭔 짱깨새끼들이 유물론적 견해를 추가해? 누가 너 주먹으로 치면 그것도 니 의지냐? 불교는 오온(산스크리트어 pa˜nca-skandha)을 설함. 오온엔 이미 물질(산스크리트어 rūpa)이 포함되어 아울러서 설명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