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기에 근본주의 그리스도교는 유물론이다. 그리스도교는 신이라는 객체에 개인이라는 주체를 종속시키려 한다는 점에서 객관적 실재를 누구보다 강하게 인정한다. 이 점은 국가라는 객체를 개인이라는 주체보다 우선시하며 변증법적 유물론으로 시작한 공산주의와 일치한다.
유물론의 극치인 그리스도교 근본주의가 지배해던 시절이었다. 칸트라는 철학자가 나타나 관념론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시도하며 객체의 역할은 사라져 가는 듯 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특히 아우구스티누스로부터 지속된 신학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한 칸트는 주관성의 영향이 미치지 않는 곳, 신의 거처인 객관적 물자체라는 허구를 창작했다. 순수이성으로 신을 파악한다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주장은 경험주의자들이 이미 반박했고, 칸트는 실천이성이라는 오류를 철학의 도입하는 수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객체가 주체를 탄압하는 행위가 당연시 되던(지금도 크게 다르지는 않고 오히려 더 심하지만) 그리스도교 근본주의의 영향에서 주체를 구해낸 것은 자유인 다운 업적이었다. 헤겔은 칸트의 업적을 파괴하고 다시 절대정신에라는 객체에 주체를 종속시켜 자유에 대한 억압을 정당화했다.
헤겔이 망쳐버린 칸트의 철학을 더 진보된 형식으로 재정립한 철할자는 쇼펜하우어였다. 쇼펜하우어는 그리스도교의 영향에서 완전히 자유로웠으므로 실천이성의 폐지, 그리고 물자체의 절대적 객관성의 폐지를 감행했다. 그러나 쇼펜하우어도 의지를 객관적 실체로 해석해 객체에 의한 자유 억압은 여전해 정당화 될 수 있었다. 객체란 억압이고 주체란 개인이다.
자유주의자에게는 객관적 물자체가 필요하지 않다.
유물론의 극치인 그리스도교 근본주의가 지배해던 시절이었다. 칸트라는 철학자가 나타나 관념론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시도하며 객체의 역할은 사라져 가는 듯 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특히 아우구스티누스로부터 지속된 신학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한 칸트는 주관성의 영향이 미치지 않는 곳, 신의 거처인 객관적 물자체라는 허구를 창작했다. 순수이성으로 신을 파악한다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주장은 경험주의자들이 이미 반박했고, 칸트는 실천이성이라는 오류를 철학의 도입하는 수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객체가 주체를 탄압하는 행위가 당연시 되던(지금도 크게 다르지는 않고 오히려 더 심하지만) 그리스도교 근본주의의 영향에서 주체를 구해낸 것은 자유인 다운 업적이었다. 헤겔은 칸트의 업적을 파괴하고 다시 절대정신에라는 객체에 주체를 종속시켜 자유에 대한 억압을 정당화했다.
헤겔이 망쳐버린 칸트의 철학을 더 진보된 형식으로 재정립한 철할자는 쇼펜하우어였다. 쇼펜하우어는 그리스도교의 영향에서 완전히 자유로웠으므로 실천이성의 폐지, 그리고 물자체의 절대적 객관성의 폐지를 감행했다. 그러나 쇼펜하우어도 의지를 객관적 실체로 해석해 객체에 의한 자유 억압은 여전해 정당화 될 수 있었다. 객체란 억압이고 주체란 개인이다.
자유주의자에게는 객관적 물자체가 필요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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