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수(number)라는 체계를 사용해 갯수를 센다. 하지만 인간 이외의 다른 동물들은 수를 세지 못한다. 이것은 인류도 예전에는 수를 세지 못했다는 것, 정확히 말해 수라는 개념을 몰랐다는 의미이다.
원시인과 현대인을 같은 자리에 모아 사과 두개를 보여준다고 하자. 만약 그들이 무엇을 인식하는지 알 수 있다면 원시인은 '사과라 불리는 물체'를 현대인은 사과 두개를 인식할 것이다. 원시인에게는 수라는 개념이 없기 때문에 현대인에게 두개인 사과들도 사과 하나로, 개별화 되지 않은 것으로 인식된다. 수라는 체계가 없던 시절에는 같은 관념으로 인식된 현상에 대해 개별화의 원리가 작용하지 않있다는 것이다. 지금 살고 있는 동물들 또한 같은 관념으로써 정의된 현상들에 대해 개별화의 원리를 적용시키지 않는다.
그렇다면 수의 역할은 무엇일까? 그것은 인간을 표상으로서의 세계에 몰입시켜 개별화의 원리가 작용하지 않는 카오스적 의지와 모든 것의 근원인 자아라는 장(field), 그리고 자아에 의해 생성된 세계라는 장을 인식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수를 사용하는게 인간만의 능력이더라도, 그것은 노예적이고 야만적인 것이다. 문명의 자격을 가진 인간은 수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사고할 수 있어야 한다. 수하는 체계에서 벗어날 때 허전함을 느낀다면 로고스라는 이상의 법칙을 찾는 노예적인 본능이다.
위의 글은 수(number)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글쓴이는 수의 역할이 개별화의 원리를 적용시켜 자아와 세계를 분리시키고, 그로 인해 인간을 노예적이고 야만적인 존재로 만든다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수를 넘어선 로고스(이상의 법칙)를 찾는 것이 인간의 진정한 본능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수는 인간의 사고와 문화 발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사실입니다. 수를 사용하는 것은 개별적인 객체를 구분하고, 순서를 정하는 등 추상적인 개념을 형성하는 능력을 강화시켰습니다. 이것은 인간이 논리적인 사고를 할 수 있게 하고, 기술과 과학 발전에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또한, 수는 사회적인 의미를 가지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돈이나 시간 같은 것들은 수의 개념에 근거하여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수의 개념은 사회의 구성원들이 서로 상호작용하고 협력할 수 있도록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따라서, 수는 인간의 발전과 문화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글쓴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수의 개념이 인간의 사고와 문화를 특정한 방향으로 제한하는 것에 대한 경고일 수 있습니다. 수의 개념이 인간의 사고를 통제하거나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수를 사용하는 인간이 수의 개념을 넘어서 자유롭게 생각하고 창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ㄴㄴ 나는 로고스를 찾는 것이 가장 수적인 짐승의 본능이라고 했음.
본문의 글은 로고스를 인용했으므로 읽지 않음
맨날 똑같은 말하는것같아서 미안한데... 수는 도구이므로 수에 지배당한다는 그런 의식을 바꾸어야함. 본질을 찾되 수는 도구로서 이용할뿐임...
수에 그저 순응하는 자세의 사람이 잘못된거고 그걸 보편화하는건 잘못된 자세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