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받아드린 것은 붓다의 원본 불교이고 붓다의 가르침을 짱깨들의 방식으로 왜곡한 짱깨식 불교를 받아드리지 않을 뿐이다.
나는 새로운 존재의 생산을 아주 조금도, 그리고 단 한 순간도 칭찬하지 않는다. 왜? 새로운 존재의 생산은 고통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아주 조금만 토해도 악취를 느끼는 것과 같다. 마찬가지로 난다, 새로운 존재의 생산은 아주 조금이라도, 단 한 순간이라도 고통이다. 그러므로 난다, 출생을 이루는 그 무엇이든, 즉 물질의 발생, 지속, 성장, 감정의 출현, 개념화, 통제 요소, 그리고 의식, 이 모든 것은 고통이다. 삶은 질병이다. 성장은 노화와 죽음이다. 그러므로 난다, 어미 자궁에서 태어나려는 존재가 흡족할 게 무엇인가?
-붓다-
나는 새로운 존재의 생산을 아주 조금도, 그리고 단 한 순간도 칭찬하지 않는다. 왜? 새로운 존재의 생산은 고통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아주 조금만 토해도 악취를 느끼는 것과 같다. 마찬가지로 난다, 새로운 존재의 생산은 아주 조금이라도, 단 한 순간이라도 고통이다. 그러므로 난다, 출생을 이루는 그 무엇이든, 즉 물질의 발생, 지속, 성장, 감정의 출현, 개념화, 통제 요소, 그리고 의식, 이 모든 것은 고통이다. 삶은 질병이다. 성장은 노화와 죽음이다. 그러므로 난다, 어미 자궁에서 태어나려는 존재가 흡족할 게 무엇인가?
-붓다-
본 글에 올린 출처 Garbhāvakrāntisūtra <- 이거 짱깨꺼임
제목부터 팔리어인데?
아 잘못말함 티벳번역어는 있음. 참고로 니까야엔 나오지도 않는 내용임.
아무튼 붓다는 쇼펜하우어 처럼 반출생주의자면서 비합리주의자였음.
인과를 부정하는 것은 불교의 핵심 가르침 중 하나를 부정하는 것이므로, 불교를 받아들인 거라 할 수 업승ㅁ.
연기법을 인과율로 해석하는게 짱개식 불교이고 인드라의 그물로 해석하는게 원본 불교
연기가 인과라고 아 ㅋㅋ 모든 존재가 인과관계로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모든 고통과 슬픔은 이 인과관계에 기인함. 따라서, 불교는 인과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함. 불교에서 인과관계를 부정하는 것은, 인과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주장하 것.. 이는 불교의 가르침과 상반되므로, 불교를 받아들인 것이 아님.
연기가 인과라고 주장하는게 짱깨식 불교, 차연이라고 주장하는게 원본 불교
차별은 나쁘건만, 이 순간 짱개식 불교라는 표현이 꽤 적확하다는 삿된 생각이 들고 마는구나. 일부러 그리 적는 것이 아니라면 받아들였다로 적거라. 왜, 나름 잘 몰입하던 소설도 맞춤법 때문에 확 깨는 경우가 있지 않은가. 방금 그런 느낌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