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본 불교: 손이 있기 때문에 손가락이 있고 손가락이 있기 때문에 손이 있다. 손가락은 손이라는 개체가 있을 때 정의 가능하고 손은 손가락이 있을 때 정의 가능하기 때문에 차연(데리다 해체주의 용어)이 일어난다.
미개한 짱깨식 불교: 손이라는 원인이 있기 때문에 손가락이라는 결과가 생겨난 것이다.
칸트와 쇼펜하우어 철학에서 중시하는 직관에 따라 원본 불교의 가르침이 옳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개한 짱깨식 불교: 손이라는 원인이 있기 때문에 손가락이라는 결과가 생겨난 것이다.
칸트와 쇼펜하우어 철학에서 중시하는 직관에 따라 원본 불교의 가르침이 옳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니가 인과를 부정하는 건 고통이 존재하지 않는다 수준의 해석임. 사성제 자체가 고통의 원인과 결과를 설함.
인과관계로 고통이 생긴다는게 짱깨식 불교, 삶에의 의지로 고통이 생긴다는에 원본 불교
쇼펜하우어가 원본 불교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짱깨식 불교를 신봉하는 니가 보기엔 잘못된 것처럼 보이는거임.
쇼펜하우어는 그냥 불교철학의 부정견 예시와 주석인 정신병자 중생일 뿐
니가 올린 Garbhāvakrāntisūtra보다 Nikāya가 더 원본적인 경인데 주구장창 "~원인으로 ~결과가 나온다" 식의 인과를 설하는데 뭔 개지랄같은 소리하고 있냐
그 구절 올려봐
불교의 근본 가르침은 [괴로움의 발생, 괴로움의 발생원인, 괴로움의 소멸, 괴로움의 소멸 방법]임. 무슨 개씹소리를 하고 있냐
그니까 인과를 지지하는 구절이 있으면 올려 보라고 그게 왜 인과를 말하는게 아닌지 설명해줌
미친놈이 괴로움의 원인을 설하는 근본 사성제를 부정하네 너 짱깨야?
그리고 넌 왜 불교가 절대적일 거라고 생각하냐? 붓다도 인간인데 당연히 틀린 말을 해야 하는거 아님?
그럼 불교를 받아들였다고 헛소리 노노
붓다가 칸트 철학을 배웠으면 인과율을 가장 적극적으로 부정했을걸?
괴로움의 결과와 원인을 부정한다고? 그건 불교가 아님
니가 지금 발언하는 말이. 애를 낳아도(원인) 고통이 발생(결과)되지 않는다 수준의 발언임. 니 주장에 모순을 자각 못함?
변증법적 퇴보와 필연성의 비존재에 대해서 이미 말했는데
질싸했기 때문에 애가 낳아졌다. 연기작용만 할 뿐 [괴로움의 결과와 괴로움의 원인]인 인과는 없다. < 이게 너의 피싸개식 궤변임. 인과를 부정하면 반출생주의도 틀렸음.
내가 인식의 형성 과정에 대해서 쓴 글은 읽지도 않았냐?
다 안 읽어
너두 반출생갤에 물들었냐
애초에 난 반출갤러인데?
피싸개냐?
그리고 불교도 결국 인간이 만든 철학일 뿐임. 내가 쇼펜하우어 철학을 받아드렸다고 쇼펜하우어의 모든 주장을 신봉하는게 아니듯 너도 불교를 신봉하지 말고 탐구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됨.
나는 불교를 신봉하는 게 아니라 철저히 연기와 인과를 보려고 할 뿐임.
그렇다면 붓다가 틀릴 가능성을 염두해둬야 함.
교차탐구는 예전에 수 없이 했음. 나도 불교를 다 받아들이는 게 아님.
결국 넌 불교를 믿는게 아니라 이성주의에 찌든 헤겔 철학을 연구하는 개똥철학자인거지.
항상 팔정도 정념(正念, 알아차림)을 통해 괴로움이 발생될 시에 즉각적으로 괴로움의 원인을 분석하여, 소멸시키려 함.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게 팔정도 정념.
네다헤
난 내 뚜렷한 철학이 없고. 그냥 인과를 보려고 하고, 괴로움을 소멸시키려 할 뿐. 그 누구의 철학자 편도 아니고 붓다의 편도 아님.
네 다음 헤겔
팔정도 정념(正念)이라고 말했지만, 현대 용어로 알아차림(마음챙김)이라고 함. 친숙하게 치환 가능함. 근데 그냥 쓰는 중. 개념은 비슷한데 현대에 이르러선 대충 이름만 바뀐 게 많음.
헤갤이 뭐 어쩌라고 난 헤갤편이 아닌데, 쇼펜하우어 헤갤 욕하려고 개이름 헤갤로 네이밍해서 자기 반려견을 개새끼라고 욕하는 정신병자. 나중엔 아뜨만으로 바꿈.
변증법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인과론자가 헤겔임
연기가 인과임.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다. 이것 저것 대신 원인 결과라고 이름을 붙인 거임.
연기는 차연이라고 몇번을 말하냐
그게 인과라고 몇번 말하냐
차연은 정의의 문제고 인과는 사건의 문젠데?
인과부정은 근본불교의 사성제를 부정하는 것임.
인과를 부정하는 건 [고제 태어남의 괴로움의 결과]와 [집제 무명 괴로움의 원인]조차도 싸그리 부정하는 것.
그리고 헤갤의 변증법(테제가 있으므로 안티테제가 있음)은 연기법(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음)의 논리구조상 크게 다를바가 없음
그러나 다른점이라면 사상이 다른데, 해겔 철학과 불교와의 차이점은 불교는 자성(실체)이 없으므로 분별에 취착하지 말아야 한다는 관점을 가지는 반면, 헤갤의 철학은 더욱 더 분별하여 "신의 '앎'에 닿아야한다" 라고 주장함. 논리구조는 같은데 사상은 정반대임.
불교는 고정불변의 실체가 없기에 '신'같은 절대실체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철두철미하게 드러낸 반면, 해겔은 기어코 신을 등장시켜서 해겔의 철학은 아주 괴상한 사상이 되어버림. 난 해겔편이 아님. 그 누구의 편도 아님.
너에겐 인과율이 곧 신
신이라 부르든 말든
사성제 다 받아들이는 건 아님. 집성제 12연기를 상호연기라 부르지만, 12연기가 순차적으로 발생되는 인과에는 의문을 품음. 가장 중요한 건 역시 무명.
사실 니 주장은 인과율이나 부정견, 긍정적 변증법, 유물론만 빼면 내 주장이랑 충돌할 부분이 전혀 없음.
근데 넌 계속 헤겔이나 마르크스 같은 소리를 하고 있지.
난 네가 어떤 사상을 지니고 있는지 별 관심 없음. 지금 댓글 다는 중에 음악(최근엔 Nightcore 장르 선호함)을 듣는 중임. 시간 짬나서 니가 발화한 문장에 반응할 뿐임. 난 유물론자도 아니고 그 어떤 특정한 고정불변의 신념 및 사상(철학)을 지니고 있지도 않음. 그러므로 나에겐 마찰과 충돌이 일어나서 발생되는 괴로움은 없음. 만약 충돌로 인해 네가 괴로움이 발생된다면, 너의 인과를 검토해볼 필요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