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증법의 과졍은 본래 하나인 일체를 시간과 공간에 표상시켜 인식하도록 함으로써 나와 남, 나의 것과 남의 것의 구분을 짓고 그에 따라 삶에의 의지를 강화시켜 고통을 유발한다. 물론 자아라는 고정된 존재인식의 소멸상태가 가장 좋지만 그럴 수가 없다면 변증법적 퇴보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이 차선책이다. 모든 소가 검게 보이는 밤, 가장 깊은 심연이야말로 고통으로부터의 피난처이다. 쇼펜하우어가 말한 음악의 역할이 바로 우리를 심연으로 돌려보내 일체가 본래 하나임을 직관하도록 돕는 것이다. 쇼펜하우어가 내세운 연민의 윤리관 역시 심연에서 가장 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모든 소가 검게 보이는 밤의 행복
정신병걸린원숭..(jehoshvahtheatheist)
2023-03-10 21: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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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전체를 억지로 대충 찢은 허상이더라도 자아는 버리기에는 너무도 편리하다......
자아는 전체의 존재에 대한 인식이고 힌두교의 아트만임
나는 나와 배경을 구분짓는 자아에 대한 내 심상을 거칠게 표현한 것인데, 메타적으로 이러한 심상 인식까지 자아에 일체 포함된다는 걸 강조하고 싶은가 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