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브가 좋녀?
허긴 하이브 세계관은 총기 없으면 못사는 동네니까, 뭐 총좋아하면 좋겠지 ㅇㅇ
그나저나...... 이쪽 계통은 <거충열도>를 따라올게 없다고 본다.
20화 이후로는 못보고 버렸지만 ㅇㅇㅋ
금요일 오후가 무르익어 가고 있었다. 한 주일을 마무리하는 금요일은 누구에게나 무언가 들뜬 기분을 불러일으키고 있었으며 이것은 병원조차도 예외는 아니었다. 오늘 당직 근무를 서야 하거나 환자 복을 걸치고 쓸쓸히 시간을 보내야만 하는 이들에게는 좀 다른 이야기겠지만, 적어도 한솔은 그럭저럭 기분을 낼 수 있었다. 구겨진 하늘색 수술복에 가운을 걸쳐 입고, 규정에는 어긋나지만 수술모를 삐뚜름하게 눌러 쓴 그는 수술실에서 나와 있던 참이었다. 드물게 수술이 일찍 끝난 날이었고, 내일은 정규 수술이 없는 날이었으므로 오늘 저녁은 그래도 좀 한가할지 모른다. 더군다나 그는 오늘 오프이지 않은가! 퇴근이란 언제나 좋은 법이다. 특히나 어제 당직 근무였던 사람에게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한솔은 당직실로 바로 가려다 이내 멈칫했다. 어쩐지 음료수 한 캔 생각이 간절해진 그는 몸을 돌려 휴게실로 향했다. 휴게실 안에는 환자들 몇이 뉴스를 보고 있었다.
- 금일 현진상사의 화물선이 국내 최초로 북극항로 시범 운항에 투입되었습니다. 북극항로의 경우 현재 주로 사용하는 인도양 항로에 비해......
한솔은 자판기에 동전을 넣고 나서 버튼을 눌렀다. 투두둑 소리와 함께 배출구에 캔 하나가 굴러나왔다. 그는 허리를 굽혀 캔을 꺼내들었다. 칙, 하는 소리와 함께 뚜껑을 연 한솔은 후루룩 소리를 내며 음료수를 들이키면서 아무 생각 없이 휴게실 소파 하나를 잡고 앉았다. 휴게실의 텔레비전은 다음 뉴스로 넘어가고 있었다.
- 올해는 예년과 달리 전국 각지에서 충해 피해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지구 온난화 및 대기 변화를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는데요, 현장에서 ......
늘 그렇고 그런 이야기들뿐이었다. 불볕 더위, 헤어날 줄 모르는 경제 불황, 중동에서의 위기...... 하지만 바깥 세상이 어떻든 간에 이 병원 울타리 안은 정말로 다람쥐 쳇바퀴 돌아가는 것 같다. 전화벨 소리에 잠을 깨고, 전화벨 소리에 움직이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시간이 지나가고 있고...... 쉴 새 없이 바쁘지만 인턴 생활도 벌써 몇 개월 째, 한솔은 슬슬 거기에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 바로 그 때 전화기가 울렸다. 액정 화면에 뜬 발신번호를 흘끗 확인한 한솔은 바로 전화를 받았다.
"네, 비뇨기과 인턴 정한솔입니다. 네...... 오셨다구요, 알겠습니다."
동의서를 받을 환자가 이제 자리에 도착했다는 전화였다. 방금 전화를 걸어 온 병동은 신관에 있었고, 한솔이 있는 곳은 본관 병동이었다. 지금 있는 본관에서 신관으로 가려면 지하나 1층이나 2층을 통해 들어갈 수도 있지만 4층으로 나갈 수도 있었다. 지하나 1층, 아니면 2층은 실내 복도를 따라 가야만 한다. 시계를 들여다본 한솔은 4층을 통해 가기로 마음을 정했다.
"후......"
본관 4층 자동문을 통해 나온 한솔은 바깥 공기를 듬뿍 들이마시고는 바깥으로 나왔다. 그가 근무하는 병원은 산마루에 위치에 있었고, 이를 이용해서 병원의 설계자들은 신관을 신축할 때 4층에는 작은 옥외 정원을 만들어 놓고 서로 이어지게 만들어 두었다.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 덕분에 바람 쐴 만한 곳으로는 더없이 좋은 곳이었다. 한솔 역시 근무 중 한가할 때(많지는 않았다)만은 이곳에서 바람을 쐬곤 했다.
특히 지금 같은 해질녘은 하루 중 그가 가장 좋아하는 시각이었고, 정원에서 바라보는 풍경 역시 일품이었다. 정원 곳곳에 심겨진 나무들은 서쪽 하늘로 지는 붉은 노을빛을 듬뿍 받아내고 있었으며, 멀리 시내 건물들이 석양빛을 받아 영롱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인턴의 하루를 보상이라도 해 주는 듯한 광경이었다. 늘어지게 하품을 한 한솔은 신관 쪽으로 몸을 돌렸다. 아무리 일이 없다지만 일단 쌓이기 시작하면 상당히 피곤해지게 된다. 할 수 있는 일은 빨리 빨리 처리해버리는 것이 좋다.
그 때, 한솔은 무언가 이상한 광경을 보았다. 저 멀리서 검은 구름이 다가오고 있었는데, 바람 한 점 없는 날에 그 '구름'은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한솔은 눈을 비볐다. 새떼인가, 싶었지만 새가 저렇게 까맣게 보일 정도로 무리를 지을 리가 없는데..... 생전 본 일이 없는 광경이었다.
"저게 뭐지?"
옆에 있던 사람들도 그 '구름'을 본 모양이다. 환자복 차림의 중년 남자가 옆에 링거 수액이 매달린 폴대를 끌고 있는 채로 성한 오른손을 뻗어 구름을 가리켰다.
"저거...... 이쪽으로 오는 것 같은데......"
과연 그 '구름'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것도 꽤 빠른 속도로...... 한솔은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고 서서히 뒤로 물러났다. 주변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슬슬 물러나고 있었다. 구름이 다가옴에 따라 웅웅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무언가 위험하다는 느낌이 든 한솔은 주춤주춤 물러나기 시작했다.
"어?"
한솔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저 멀리 보이는 빌딩 숲들을 지나쳐 날아오고 있는 무리는......
"저거 벌...... 아냐?"
중년 남자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투로 중얼거렸다. 그 남자의 말에 한솔은 자신이 잘못 본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확실히 그랬다. 그런데 문제는......
"저렇게 큰 벌이 있나......?"
남자의 말에는 공포감이 묻어나오고 있었다. 빠른 속도로 가까워지는 벌들은 얼핏 보아도 크기가 사람만했던 것이다. 한솔과 남자의 눈이 서로 마주치더니,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건물 쪽으로 달렸다. 웅웅거리는 소리가 한껏 가까워지고 있었다. 옆의 남자가 급했는지 폴대는 옆으로 내던지고 수액 봉지를 손에 든 채 내달리기 시작했다.
"어이쿠!"
계단을 뛰어오르던 한솔은 그만 발을 헛디뎌 고꾸라지고 말았다. 곳곳에서 비명소리와 함께 유리창이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놀란 한솔은 소리가 들려오는 쪽을 바라보다가 그만 말문이 막혔다. 신관 4층에는 커피 전문점이 있었는데, 유리창이 산산조각나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벌이 허공에서 날갯짓을 하고 있었다. 크기는 사람 몸만한데, 전신이 까만 색의 벌이. 너무나도 어이없는 광경에 한솔은 도망칠 생각도 잊어버렸다. 어느새 주위에는 벌들이 날갯짓하는 소리로 귀청이 떨어질 듯했다. 이제 보니 앞서의 웅웅거리는 소리는 이 벌들이 날갯짓하는 소리였던 모양이지만, 한솔은 그런 것 따위는 알아챌 경황이 없었다.
그 때, 무언가를 느낀 한솔은 고개를 홱 돌렸다. 어느새 그의 등 뒤에도 거대한 벌 한 마리가 그를 뚫어지게 노려보고 있었다...... 벌이 그를 노려본다는 표현이 적당하다면 말이다. 한솔은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그 벌의 배에는 날카로워 보이는 침이 보였다. 벌이 허공에서 까딱까딱하는 모습을 망연히 바라보던 한솔의 머릿속에는 문득 지금 달아나야 한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배 한 가운데의 예리한 통증, 어느새 벌은 놀랄 만큼 강한 힘으로 침을 한솔의 배 한 가운데에 꽂았던 것이다. 그 통증에 한솔은 벌의 징그러울 정도로 길쭉한 다리가 자신의 몸을 부여잡고 있다는 것 따위는 머리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다리에서 힘이 풀려나가는 것을 느끼면서 천천히 앞으로 고꾸라지고 있었다.
"으......"
한솔은 어둠 속에서 눈을 떴다. 뭐지...... 이마 위에서 무언가 물줄기가 졸졸 흘러내리고 있었다. 묘하게 기름 냄새가 풍기는 물줄기는 매우 차가웠다. 손을 들어 얼굴 위로 흘러내리는 물을 닦아내리려던 한솔은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깜짝 놀랐다.
"우어어......"
심지어 말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한솔은 필사적으로 몸을 뒤틀어보려 했는데, 그의 전신이 무언가 끈적거리는 무언가에 덮여 있어서 그마저도 용이하지 못했다. 필사적으로 하늘에서 떨어지는 물줄기를 피해 몸을 뒤튼 한솔은 겨우겨우 몸을 등 뒤의 무언가에 기대서 일으켰다. 주변은 어둠침침했다. 한솔의 눈이 겨우 어둠에 적응될 때까지는 몇 분 정도가 걸렸지만, 그에게는 몇 시간이나 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겨우 상반신을 일으킨 그는 자신이 있는 곳이 적어도 건물 안이라는 것은 알아챘다. 희미하게 보이는 컴퓨터, 탁자...... 그리고 주변에 쓰러져 있는 사람들...... 문득 그는 차가움을 느꼈다. 파이프가 터진 것일까, 천장에서 떨어져 내려오는 물줄기는 이제 물웅덩이를 이루고 있었으며 그의 옷을 흠뻑 적시고 있었다.
몸을 일으키려던 그는 복부에 붙어 있는 무언가 묵직한 것을 느꼈다. 더듬거리던 그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의 배에 붙어 있는 것은 무언가 반투명한 방추형의 물체였는데, 그 안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으아아아!"
기겁한 한솔은 몸을 번쩍 일으키려다 드러누웠다. 아직 몸의 마비가 채 풀리지 않았던 것이다. 한참 노력한 끝에 겨우 상체를 들어올리는 데 성공한 한솔은 겁에 질린 눈으로 자신의 배에 붙어 있는 물체를 바라보았다. 희미한 비상 조명 아래 막 안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은 분명히 애벌레였다. 거의 시베리아 허스키 크기만큼이나 되는......
"우으으......"
한솔은 진저리를 쳤다. 웬만한 벌레 정도라면 그냥 넘기겠는데, 이렇게 큰 벌레라니! 그것도 그의 몸에 붙어 있다니! 문득 <에일리언> 영화를 떠올린 한솔의 등 뒤에서는 식은땀이 흘렀다. 맙소사! 저게 껍질을 깨고 나온다면...... 한솔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는 필사적으로 손아귀에 힘을 주어 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도저히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예전, 치과에서 충치 수술을 받았을 때처럼 사지에 감각이 어둔했다. 한솔의 몸에 얼마간 감각이 돌아오기까지는 거의 열두 시간 정도가 걸렸다. 그 동안 한솔은 거의 미칠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나님......"
제발! 한솔은 양손에 필사적으로 힘을 주었다. 조금 전과는 달리 손가락에 감각이 돌아오는 듯했다. 살짝 정도나마 까딱거릴 수 있었다. 한솔은 미칠 것 같은 심정으로 손을 쥐었다 펴려고 노력했다. 한참을 애쓴 끝에 겨우 양 손을 쥐었다 펼 수 있었다. 다음은......
그 순간, 배에 붙어 있던 알이 꿀렁하는 느낌이 전해져 오는 바람에 한솔은 기겁했다. 처음 보았을 때보다 껍질 밑에 있는 애벌레의 움직임이 보다 활발해지는 듯했다. 아아, 맙소사!
팔꿈치까지 마비가 풀리는 데까지는 한 시간 정도가 더 걸렸다. 마비가 풀리자 그는 서둘러 주머니를 더듬었다. 스마트 폰은 다행히도 그의 가운 안에 남아 있었다. 그는 서둘러 라이트를 켰다.
"으으......"
그는 방 안에 있었다. 병동 스테이션인가? 몇 병동이지? 하지만 그런 건 그 주변에 펼쳐진 광경에 비하자면 정말이지 사소한 질문일 뿐이었다. 그의 주변에는 십수 명의 사람들이 널부러져 있었는데, 모두 그와 똑같은 꼴로 알주머니를 붙여 두고 있었다. 누군가는 배 위에, 누군가는 옆구리에, 누군가는 등에...... 소름이 쫙 돋았다.
라이트로 주변을 비추던 한솔은 문득 생각났다는 듯 불을 껐다. 맙소사! 만약에 벌레들이 돌아온다면 어떡하지? 그의 머릿속에 말벌 떼의 끔찍한 모습이 떠올랐다. 그 때, 그 벌이 침을 내 옆구리에 박았고, 그 다음부터는 기억이 없는데...... 불현듯 그는 아주 오래전에 읽은 파브르 곤충기의 내용이 떠올랐다. 아마도 나나니벌이었던가, 살아 있는 비단벌레를 마비시키고 알을 붙여 놓은 다음에 애벌레들이 깨어나면 파먹게 한다고...... 그렇다면 이 알주머니가...... 생각이 그에 미치자 가슴이 덜컹 내려앉은 한솔은 서둘러 스마트 폰을 꺼내 다시 살폈다. 통화권 이탈, 와이파이 아웃, 어쨌거나 지금 날짜는......
'어?'
분명히 기억을 잃기 전 날짜는...... 갑자기 머리가 뒤죽박죽된 느낌이다. 4일? 정신을 잃고 4일이나 지났었단 말인가......? 당혹감을 느끼며 한솔은 고개를 저었다. 빌어먹을! 어떻든 이 흉물을 떼어내고 생각해야 하지 않겠는가. 어떻게 되든 간에 언제 터질지도 모를 시한폭탄을 몸에다 붙이는 것은 아주 질색이었다.
거진 한 시간이나 더 지나서야 한솔은 겨우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 있었다. 안간힘을 써 가며 몸에 붙어 있는 알을 떼어낸 그는 진저리를 치며 주머니를 내던졌다. 꿀렁하는 느낌이 소름 끼쳤다. 한솔은 서둘러 몸을 일으켰다.
"으으으......"
스마트 폰을 켠 그는 주위를 보며 신음했다. 환자복들, 일상 사복, 간호사복...... 아마도 이 병동에서 일하던 사람들이나, 환자들이나, 혹은 보호자들일 것이다.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해야 하나? 모두들 마비독에 맞고 늘어져 있는 모양이다. 무려 4일이 지나 있었다. 마비가 풀리는 데 얼마나 걸릴까? 그는 옆에 쓰러진 간호사의 경동맥을 짚어 보았다. 맥박은 약하지만 아직 뛰고 있었다. 살아있는 모양이었지만, 그녀의 몸은 생명없이 축 늘어져 무거웠다. 맙소사. 도대체 무슨 마비독을 썼다는 말인가.
새삼스럽게 한솔은 천장의 터진 파이프를 올려다보았다. 운 좋게 그 아래 있지 않았다면, 그래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면 그 역시 아마 부지불식간에 산 채로 벌레에게 파먹혀버리고 말았을 게다. 한솔은 주위를 바라보았다. 희미한 불빛 아래 곳곳에 있던 알주머니들이 조금씩 꿀렁거리는 것이 보였다. 저 안에 든 것들이 깨어나려면 얼마나 걸릴까? 설령 도움을 청하려 한다고 해도 이대로 두고 갈 수는 없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그는 이내 원하던 것을 찾아냈다. 한솔은 비틀걸음으로 복도에 옆으로 넘어져 있던 침대 카에 다가가 폴대 하나를 뽑아들었다. 얇은 철판을 구부려 만든 봉이었지만 적어도 그가 하려는 일에는 쓸만할 것이다.
우선 방금 떼어낸 알주머니 앞에 다가선 한솔은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는 양 손으로 폴대를 쥐고 한껏 쳐들어올린 다음, 알주머니를 사정없이 내리찍었다. 내리찍을 때마다 초록색 액체가 팍팍 튀었다. 알주머니를 짓뭉개버린 한솔은 다시 사람들에게로 돌아섰다. 그리고는 알주머니들을 하나씩 하나씩 떼어내고는 폴대로 내리찍었다. 스테이션 안에 널부러져 있는 십수 명 가까운 사람들에게 똑같은 일을 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들었다.
"후우......"
일을 마친 한솔은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는 땀을 닦아냈다. 목이 심하게 말라왔다. 마비독 때문으로 인한 탈수일까,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거의 4일 간 의식을 잃고 있었으니...... 문득 한솔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병동 안은 침침하기 그지없었다. 왜지? 지금 몇 시인 거지? 밤인가? 스마트 폰을 다시 꺼내든 한솔은 고개를 갸웃했다. 시각은 늦은 오후였다. 이렇게 어두울 수가 없는데. 한솔은 스테이션 뒤의 창가로 고개를 돌리다 흠칫했다. 불빛 아래 보이는 창문은 무언가 털뭉치 같은 것으로 뒤덮여 있었다. 한동안 멍하니 쳐다보고 있던 한솔은 고개를 떨구었다. 저것이 무엇인지는 알고 싶지도 않았다.
한동안 주저앉아 있던 한솔은 몸을 일으켰다. 여기 있는 사람들이 마비독에서 깨어나기까지는 얼마나 걸릴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아마도 이 알주머니에서 깨어난 애벌레가 식사를 시작할 때까지...... 한솔은 다시 한 번 등골이 오싹했다. 인간이 벌레 밥이라니. 끔찍한 생각을 떨쳐낸 한솔은 폴대를 쥔 채 비칠비칠 일어났다. 우선은 지금 바깥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아야 했다. 그리고 4일 동안 어째서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았는지.
복도로 나선 한솔은 초록색 불빛을 바라보았다. 비상구.
선개추 후감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