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흥흥~"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한 메트로인이 철로를 걷고 있었다. 그는 한 손에 페인트병을 들고 흔들흔들 거리면서 걷고 있었다.

그는 라이터, 그래피티 아티스트다. 그것도 홀로 메트로를 돌아다닐만큼 경험을 쌓고 쌓은 베테랑 라이터.

그는 요즘 버려진 역 하나의 승강장 벽 전체를 대상으로 예술행위를 하고 있으며, 오늘도 예술을 이어서 하려고 그 역으로 향하고 있었다.

도착한 역에 불청객이 있지만 않았더라면.

"앙?"

"...음?"

어느 미친놈이 그의 예술을 망치고 있었다. 어디서 구해왔는지 대걸레에 세정액까지 써가면서 승강작 벽에 걸레질을 하는 놈이 있었다. 예술작품을 망치는 폭거에 라이터는 어이가 없어서 아무 말도 못하고 분노에 몸을 떨어야만 했다.

그때 인기척을 눈치챈 사람이 라이터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의 목에 걸려있던 카메라가 그 움직임에 따라 흔들리며 그 렌즈로 빛을 사방에 반사하고 있었다. 라이터는 그걸 보고 그놈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이, 이 망할 철덕후가..!"

"호오.. 네놈이었군. 이 반달리즘의 범인이.."

그저 철도가 좋아서 세기말 메트로를 전전하는 철도 순례자. 그리고 그저 예술이 좋아서 페인트 통 하나 덜렁 들고 세기말 메트로를 전전하는 그래피티 라이터.

"반달리즘이라니! 네 놈은 예술을 보는 심미안이 부족하다!"

"너의 그래피티는 그저 프로파간다에 반달리즘에 불과하다. 거기에 예술은 단 1도 없어. 그저 0일 따름이다."

어느 버려진 외딴 역에서 작은 내전이자 세계대전이 벌어지려고 한다.

"...말 다했냐?!"

"아니. 못 다한 말이 아직도 많지. 하지만 예술도 모르는 너에게 할 말은 없다."

"하하하, 이녀석!"

이제 두 세계가 서로를 부정하고 상대를 없애기 위해 송곳니를 들어내었다.

"죽어라, 철덕후!"

"널 반달해주마, 반달리스트!"

순례자와 라이터는 동시에 권총을 뽑아들었다. 서로의 탄창에는 9mm탄이 15발이 들어있을터였다. 서로 마주한 순간부터 둘은 서로 상대가 베테랑 중의 베테랑임을 직감했다. 하지만 그들에게 있어서 이 싸움은 결코 물러날 수가 없는 위대한 투쟁이었다.

초탄. 양측의 권총에서 발사음과 섬광이 피어올랐지만 둘 모두 동시에 회피했다. 둘은 재빠르게 엄폐물로 뛰어들면서 서로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서로의 두번째 총알과 세번째, 그리고 네번째 탄환들이 서로를 스쳐지나갔다.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총알들은 허망히 승강장 벽과 바닥들에 박히면서 흙먼지를 일으켰다.

"죽여주마!"

"내가 할 소리다!"

서로에게 총알을 퍼부어대며 순례자는 버려진 자판기 뒤에, 라이터는 승강장 기둥에 몸을 내던졌다. 서로 엄폐물에 몸을 가린채 서로에게 방아쇠를 당겼다. 다섯번째, 여섯번째 총알들이 서로의 엄폐물에 부딪히며 불똥과 흙먼지를 일으겼다.

"...얍!"

그때 라이터가 기둥에서 나올것처럼 몸을 내밀었다. 순례자가 바로 포착하고 그걸 노리고 총알을 발사했지만 라이터는 순식간에 몸을 집어넣어서 총알을 피했다. 그리고 동시에 라이터는 반대편으로 튀어나와 순례자에게 달려갔다.

페이크에 걸린 순례자가 라이터를 맞추려고 권총을 거누는 순간 라이터의 견제사격이 미친듯이 날아왔다. 일곱번째, 여덟번째, 아홉번째. 결국 순례자는 자판기 뒤에서 구르듯이 빠져나와야했다.

"젠장..!"

순례자가 구르다가 다시 자리를 잡는 순간 권총을 치켜들고 방아쇠를 당기려는 순간 라이터가 그 손을 발로 걷어찼다. 다행히 총을 놓지진 않았지만 총알 한발이 헛되이 발사되었고 순례자는 균형을 잃고 쓰러졌다.

"여기서 끝이다!"

"...어딜!"

라이터가 순례자를 끝장내려고 권총을 거누는 순간 순례자가 그대로 윈드밀을 돌듯이 몸을 돌려서 다리를 걸었다. 라이터는 그대로 자빠졌고 빗나간 총알이 허망히 승강장 천장에 박혔다.

"빌어먹을 철덕후 새끼가!"

라이터의 대응도 신속했다. 쓰러지기 무섭게 라이터는 순례자의 얼굴을 걷어찼다. 퍽 소리가 나면서 순례자의 코에서 피가 흘렀다.

"웃기지마라, 반달리스트!"

하지만 순례자는 얼굴을 걷어차이면서도 라이터 몸 위에 올라타서 마운팅을 시도했다. 둘 사이에 격렬한 몸 싸움이 벌어졌다. 순례자와 라이터는 서로의 몸과 총을 노리고 아웅바둥했으며 그 와중의 서로의 권총들은 빛과 소음을 일으켰다.

열한번째, 열두번째, 열세번째, 열네번째, 그리고 열다섯번째. 서로 격렬하게 승강장을 굴러다닐때마다 빛과 섬광이 조용한 승강장을 메웠고 먼지로 가득하던 승강장 바닥은 둘의 땀과 피로 방울방울 적셔졌다.

그리고 라이터의 총에서 탈칵- 하고 공이가 허공을 치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순례자는 씨익 웃었다.

"비었군."

"......"

"하지만 난 아직 한 발 남았다."

"...씨발."

승강장에서 총성이 울렸다.

"....씨이..빨...."

라이터는 거칠게 고통에 찬 숨을 몰아쉬었고 그의 피가 승강장을 적시기 시작했다. 순례자는 느긋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승리한 순례자는 대걸레가 있던 방향으로 등을 돌렸다.

"다시 청소를 계속해야겠군. 너의 반달리즘과 너의 피와 시체 모두 말이지.."

"......."

"깨끗하게 정리를 해주마. 기뻐하라고. 이 쓰ㄹ..*딸깍*.. 음?"

뒤에서 들리는 소리에 순례자가 다시 등을 돌리자 라이터는 이미 죽어있었다. 하지만 그의 손에서 핀이 빠진 수류탄이 데구르르 순례자의 발치로 굴러들어왔다.

"....빌어먹ㅇ..."

외딴 역에서 거대한 폭음이 울려퍼졌다. 그리고 작은 세계대전은 둘의 공멸이라는 결과로 전쟁은 마무리되었다. 이 또한 지난 인류의 역사와도 같았고 앞으로도 계속될 전쟁의 일부일터였다.

서로를 부정한 끝에 벌어지는 공멸.. 살던 터전조차 불태워지고 지하철로 기어든 인류지만 전쟁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이 또한 인류의 본성일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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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써보는 메트로 문학. 순례자 설정을 쓴 뒤로 누가 흥미롭게 라이터 설정을 내놨길래 콜라보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