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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쯤 흥분한 나는 거칠게 방탄모를 벗었다.
세차게 두들겨 맞은 방탄모는 겉보기에도 알 수 있을 만큼 우그러져 있었다.
그랬기에 씩씩거리며 소리 질렀다.
“당신, 대체 뭐하는 새끼야?!”
“…….”
좋은 말이 나올리 없다.
이를 박박 갈며 중년인을 노려보았지만 그는 내 호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한쪽으로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바로 안방.
감금된 좀비 꼬마는 쇠사슬을 풀기 위해 안간 힘을 쓰지만 쇠사슬은 여전히 단단했다.
대화할 생각이 전혀 없는 중년인의 모습에 난 극단적인 말을 내뱉었다.
“말하지 않으면 저 망할 애새끼를 쏘고 당신도 쏴버릴 거야.”
반쯤 흥분된 상태로 말을 내뱉자 그제야 중년인은 굳게 다문 입을 열었따.
“…일단 좀 진정하는 게 어떤가?”
“진정? 웃기는 소리.”
말은 그렇게 했지만 조금 쉰 듯한 중년인의 목소리에 흥분이 조금 가라앉았다.
중년인은 꽤나 긴장한 탓인지 입술이 갈라져 있었다.
그랬기에 일단 흥분을 좀 가라앉히고 중년인을 보았다.
“그래,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말해.”
“…우선 공격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군.”
“퍽이나 미안하다는 말이 나오시군요. 내가 방탄모를 쓰지 않으면 한 방에 뒈졌을 지도 모르는데….”
“그 부분에 대해선 뭐라할 말이 없다.”
반쯤 빈정거리며 대꾸하자 중년인은 거듭 고개를 숙였다.
아까와 너무 판이한 중년인의 모습에 흥분은 어느 정도 가라앉았다.
하지만 나와 중년인은 방금 전만 해도 드잡이질하던 사이다.
두 사람 사이엔 알 수 없는 침묵만이 점점 맴돌았다.
서로가 마음을 터놓고 얘기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지만 먼저 입을 연 것은 나였다.
“당신, 대체 무슨 생각으로 좀비를 가둬 놓은 거야?! 저 애새끼를 이용해 다른 사람들을 감염시키려고?”
“…….”
“당신, 정말 제정신이긴 한 거야?”
“제정신이지, 제정신이고말고….”
내 질문에 그는 반사적으로 대답했지만 이상하게도 그의 말엔 힘이 없었다.
“아니…, 제정신이 아니니 좀비를 방 안에 가두고 있는 거겠지.”
중년인은 반쯤 체념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속마음을 털어놓지 않으면 속이 타버리기라도 한 듯이 그는 주주절절 말을 이어나갔다.
“이건 불행한 일이었어.”
“…….”
“난 평소처럼 퇴근하고 나를 반길 가족들의 모습을 기대했지만, 내 눈 앞에 보인 거라곤 울고불고 있는 아이의 모습과 난장판이 되어버린 집. 문득 안방을 살펴보니 상처 입은 아이와 스스로를 결박한 체 짐승처럼 울고 있는 애 엄마 모습이 보였어.”
“…….”
“당연히 애 엄마를 다그치며 이게 무슨 상황이냐고 물었지만 이미 애 엄마는 좀비가 되어버린 지 오래였고, 나는 살기 위해 애 엄마를 죽이고 땅에 묻을 수밖에 없었어.”
“끔찍한 일이네.”
“하지만 불행은 끝이 아니었어.”
담담하게 말하고 있지만 속이 타는 듯 그는 입술에 침을 묻혔다.
“상처 입은 아이는 사실 애 엄마에게 물려 감염되어버렸던 것이었고, 나는 살아남기 위해 아이를 죽이려고 했지만 도저히 그럴 순 없었어.”
“그래서…, 안방에 감금해 놓은 건가.”
“그래, 아이들은 생각 외로 영리해. 그렇게 되어버린 엄마의 모습에 자기 역시 그렇게 될 거라는 걸 알고 울고불고 있는 모습을 보자니 난 도저히 아이를 내버려둘 수 없었어.”
굉장히 불행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 지옥 같은 세상에서는 너무나 흔하디흔한 일.
그의 불행에 잠시 애도하며 말했다.
“저 애의 모습을 계속 보기 힘들면 내가 처리해줄까?”
“…….”
“어차피 좀비가 된 사람은 더는 사람으로 돌아올 수 없어.”
“…누가 그런 말을 했지?”
내 말에 그는 긴 침묵 끝에 되물었다.
“그거야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이잖아.”
그건 상식이었다.
좀비 아포칼립스가 되어버린 세계.
물리면 돌아올 수 없다는 건 너무나 당연한 사실 중 하나였다.
그렇지만 중년인은 우리의 상식에 반박했다.
“좀비…, 그래, 이 상황은 미디어 속에 나오는 좀비와 다를 바 없어. 물린 사람은 이성을 잃고 사람을 마구잡이로 습격하는 괴이한 현상.”
“…….”
“그렇지만 그들은 우리의 상식대로 좀비이긴 한 걸까? 설령 이게 진짜 좀비라고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의사나 연구원들이 치료약을 만들지 않을까?”
“너무 가망 없는 얘기야. 연구? 치료? 지금은 살아남기도 급급한걸.”
“…….”
“거기에 그런 말도 안되는 일 때문에 저걸 살려둔다는 것도 너무 위험해.”
너무나 절박한 말이었다.
중년인 역시 자신이 내뱉은 말이 너무 엉터리 같은 말이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절망적인 상황에 놓인 사람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법이다.
그것을 잘 알기에 나는 더 말하지 않았다.
“…가족이니까, 내 손으로 낳은 자식이니까 부질없는 희망이라도 잡고 싶은 거다.”
그는 씁쓸히 말했다.
그건 이해를 바라는 말이 아니었다.
그저 이 상황을 알고도 모른 척 넘어가달라는 너무 비련한 말.
그랬기에 나는 더 말을 잇지 못했다.
“가족….”
끊어내고 싶어도 쉽사리 끊어지기 어려운 그 단어.
문득 이 여정의 시작이자 목적인 내 여동생이 머릿 속에 떠올랐다.
“…….”
한동안 긴 침묵이 나와 중년인 사이를 맴돌았다.
기이하게도 좀비를 해치겠다는 생각도 이 남자를 해치겠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그저 동정일 뿐이다.
난 말 없이 그의 포승줄을 풀어준 후 2층으로 올라갔다.
“난 2층에서 좀 눈 좀 붙일 거야. 함부로 들어오지 말라고. 오면 바로 쏴버릴 거니까.”
“…그래.”
중년인은 변덕스러운 내 행동에 다소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혹시 중년인이 몰래 날 습격할까 싶어 2층 계단엔 작은 트랩을 설치했다.
침낭을 깔고 조용히 잠을 청했지만 이상하게도 잠이 오질 않았다.
문득 바깥을 보니 도로를 배회하는 좀비들의 모습이 조금 보였다.
“…….”
몸이 너무 피곤했다.
많은 상념이 머릿속을 지나갔지만 일단 조금이라도 움직이기 위해선 눈을 붙여야 했다.
그렇게 지친 몸과 혼란스러운 생각 속에 천천히 잠에 빠져들었다.
ㄲ끙, 글 자체를 너무 오래간만에 써서 취향에 맞는진 모르겠다.
나처럼 미련하게 있는 것 보단 나은 걸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