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Family)


그것은 피와 피로 이어진 사람을 뜻하는 말이자 어떠한 방법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사람들을 의미하는 말.

내게는 가족이 있었다.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철없는 여동생 한 명.


비록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가족들처럼 사이가 무척 좋다고 말할 순 없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무난한 관계를 지닌 우리 가족들.

공무원인 아버지와 가정주부인 어머니, 학생인 여동생은 입대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런 무난한 관계가 유지될 줄 알았다.

하지만 불행은 예기치 못하게 찾아온다.


흔히 말년병장이라는 군생활 막바지.

부부동한 여행을 가신 나의 부모님은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고, 동생은 돌아가신 부모님의 모습에 더욱 크게 엇나가기 시작했다.

장례를 치르고 난 뒤, 여동생은 전보다 더 방황하기 시작했고 부대에 있는 나는 동생의 방황을 잡아줄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었다.


나를 제외하면 동생이 의지할 수 있는 친척은 아무도 없었고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가족인 나는 아직 군에 묶여 있었으니까.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하면 동생의 방황을 바로잡고 이 막막한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비록 보험금으로 받은 돈과 남겨둔 유산이 조금 있다고 하나 이제 겨우 성인이 된 청년과 아직 사춘기인 청소년이 살아가긴 너무 막막한 것이 세상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부질없는 고민이었지.’


누가 세상이 이렇게 될 줄 알았는가?

마지막 휴가를 앞둔 3일 전, 세상은 알 수 없는 바이러스가 가득 퍼졌고 사람들은 이성을 잃고 다른 사람들을 습격하기 시작했다.


[좀비데이즈]


그것은 세상이 붙인 종말의 날이자 내게 있어 최악이라고 할 수 있는 날.


…….”


정부는 혼란스러운 세상을 통제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혼란은 쉽사리 잠재워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무장하기 시작했고 사람들 사이에선 웃음과 여유가 사라졌다.

비록 아직 끊어지지 않은 연락망을 통해 많은 이들이 이 위기를 극복하려 했지만 극한에 몰린 사람들은 자기 것을 챙기기에 급급했다.

그랬기에 많은 곳에서 약탈을 비롯한 무법행위가 들끓기 시작했고 사람들 사이에선 폭력과 살인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오로지 힘만이 유일한 법이 되어 버린 야만의 세계.


그렇지만 이 끔찍한 상황 속에서도 동생과의 연락은 끊기지 않았다.

다행히 동생은 인천 대피소 중 한 곳에 무사하다는 연락을 주었고 동생이 무사하다는 사실에 나는 안도했다.


난 괜찮아.’


철없던 동생은 걱정하는 내 모습에 괜찮다며 나를 진정시켰지만 난 그 괜찮은 뒷면에 숨겨진 불행은 눈치 채지 못했다.

비록 전역도 제대로 하지 못했지만 힘이 있는 집단의 소속원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안전했고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그나마 괜찮다는 사실에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렇지만 상황은 조금씩 악화되기 시작했다.


위기를 통제하려던 군대와 정부는 도리어 이 엄청난 재앙에 잡아먹혀버렸고 그 사실을 전해들은 사람들은 더욱 냉혹해졌다.

군대는 이제 군벌이 되어 사람들을 통제하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더욱 똘똘 뭉쳤다.


오로지 폭력만이 정당화되는 세계.


그러한 끔찍한 변화에 무덤덤하게 적응할 무렵, 동생에게서 연락이 왔다.


, 오빠?”


반쯤 겁에 질린 동생의 목소리.

두려운 목소리에 이상한 점을 느꼈을까?

그것을 캐물으려는 순간 동생은 소리쳤다.


, 오빠 제발 구해줘.”

?”


두서없이 말하는 동생의 말에 당황했지만 동생은 필사적으로 애원했다.


, 제발 도와줘! 오빠! 꺄아아아악!”


그 순간 동생의 목소리는 제대로 들려오지 않았다.


아현아? 대체 무슨 일이야?!!”


전화기 너머로 동생의 안부를 묻지만 대답은 더는 들려오지 않았다.


이제 이곳은 우리가 접수한다. 정부, 군인? 다 좆 까라 그래.”
…….”


아무래도 약탈자 무리들이 대피소를 습격한 모양이다.

난 이 끔찍한 소리에 눈앞이 새하얗게 변했다.

전화기를 잡은 손이 덜덜 떨렸다.


착각이겠지.’


애써 그렇게 생각했지만 착각이 아니라는 건 이성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지금 인천으로 가야 하나?

온갖 복잡한 생각이 머릿속을 휘몰아쳤지만 결론은 단 하나였다.


행보관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그래, 들어와라.”


마음을 굳게 먹고 찾아간 사람은 행정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는 행보관이었다.

행보관은 갑작스럽게 방문한 내 모습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난 내가 들은 사실을 행보관에게 전달했고 이대로 부대를 떠나 인천으로 내려가겠다고 말했다.

행보관은 내 말에 아무 말 없이 담배만 줄창 피기 시작했다.

10분간, 아무 말 없이 담배를 피던 행보관은 담담히 얘기했다.


이선아, 너도 알겠지만 세상은 지금 미쳐가고 있다.”

알고 있습니다.”

인천까지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고, 약탈자들이 거기를 점거했다면 제대로 싸울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살아남은 약탈자들은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잔혹할꺼고 설령 도착한다고 해도 동생의 생사를 장담할 수 없을 거다.”


행보관이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 지 잘 알고 있다.

약탈자와 싸워본 경험이 없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약탈자들은 총을 보유한 군인들을 상대하기 꺼려했기에 우리와의 싸움을 피했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생사도 보장할 수 없고, 그렇다고 거기까지 도착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그런데도 갈꺼냐?”
가야 합니다.”


어째서 행보관이 구구절절 이렇게 설득하는 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가슴 속에서 억눌린 감정은 미끄러지듯이 새어 나왔다.


이 멍청한 새끼야, 거기 가면 안전할 거 같아?! 그나마 우리는 다른 부대와 연합해서 그나마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거지. 거기가면 사람답게 살 수 있기는커녕 하루하루 살아남기도 급급할 꺼다. 그래도 갈 거냐? 우린 떠난 녀석을 다시 받아주진 않아. 너도 잘 알고 있잖아. 왜 멍청한 선택을 하는 거냐!”


행보관은 다시 말 하기 싫다는 듯이 몸을 돌려 창문을 바라보았지만 나는 거듭 강조했다.


그래도 가야합니다.”

대체 왜?!”


도무지 말귀를 알아먹지 않는 내 모습에 그는 역정을 냈다.


그 애에게는 이제 저 밖에 없으니까요.”


솔직하게 말해 동생과 그리 좋은 추억은 별로 없다.

매번 사소한 일로 다투거나 서로 짜증을 내기 바빴다.

그렇지만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로는 동생에게 의지할 수 있는 가족이란 오직 나뿐이었고 그랬기에 거기 가야만 했다.


만약 동생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손을 거절한다면 전 평생 후회할 겁니다. 설령 후회하지 않는다면 저를 보내지 않는 행보관 님을 평생 원망하며 살아가겠죠.”

망할 말년 병장 같으니라고.”


행보관은 내 어처구니 없는 말에 그저 담배만 줄창 피웠다.

속이 타는 모양이다.

그렇게 담배를 원 없이 피울 무렵, 그는 말없이 책상 서랍을 열었다.

그리고 거기서 증명서 하나를 내게 주었다.


이건?”

받아라, 그건 전역증이다.”


어째서 그걸 지금 주는걸까?


사실 예전에 네가 무사히 전역하면 줄 생각이었는 데 세상이 요지경이다보니 도저히 줄 짬이 안나더구나.”

행보관 님.”


만든지 오래되어 빛바랜 전역증명서.

그리고 함께 딸려온 전역증은 이상하게도 사람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


그토록 원했던 것이다.


밥이나 푹 먹고 자라. 내일 일찍 떠날테니 힘을 조금이라도 아껴야지.”

감사합니다.”

.”


그는 혀를 찼지만 난 드디어 떠날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감사하긴 뭘, 전역도 이제 시켜줬는데.”


행보관은 어울리지 않게 시시콜콜한 농담을 했지만 기이하게도 전역증을 받은 순간, 내 마음은 무거워졌다.

문득 다시 눈을 떴을 땐, 부대가 아닌 침낭 속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꿈이군.’


정말 개꿈이다.

하지만 날이 밝아오는 것을 느꼈다.

적당히 몸을 풀며 다시 짐을 싸기 시작했다.

군장 안에 넉넉히 있는 전투식량 하나를 까서 배를 채웠다.

그렇게 모든 준비를 하고 다시 떠나려는 찰나, 집주인인 중년인은 떠나는 나를 배웅했다.


이제 가는 건가?”
.”


귀신 같이 떠나는 것을 알아차렸다.

서로가 서로에게 할 말은 없다.

너무나 불편한 관계였지만 기이하게도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동질감이 느껴졌다.


잘 가게.”


그랬기에 중년인은 나를 배웅했고 나는 그의 인사를 받으며 목적지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