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전쟁 이후 3년이 지났다. 하지만 여전히 도시는 지옥이고, 치안과 질서는 부재중이다. 내 집은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였다. 하지만 지금 나는 나무판자와 슬레이트로 지은 막집에서 살고 있다. 살기 위해선 남의 물건을 뺏어야 했고, 혹시 도둑이 들까봐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것쯤은 일상이 되었다. 어제도 어느 미친년이 칼을 들고 덤벼들었다. 내가 먹고 있던 톱밥이 대부분인 빵을 뺏으려고 했던 그녀는 지금 누군가의 위장 안에 들어가 있다. 인간이 인간성을 잃고 야생화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지금도 누군가는 죽고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또다른 누군가의 뱃속에 들어가 있을 것이다. 핵전쟁은 인간의 질서와 법규를 완전히 무너뜨리고 야만과 정글의 법칙을 대신 세웠다.

중앙시장. 이곳은 모든 도시에서 유일하게 칼침 맞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곳이다. 곳곳에 저격수가 배치되어 있고, 전쟁 전의 군복을 차려입은 청년들이 K2를 들고 순찰을 돌고 있다. 이곳으로 전 도시의 부가 모여들고, 다시 전 도시로 흩어진다. 나는 오늘도 숨겨뒀던 통조림을 팔아, 전쟁 전에는 절대 먹지 않았을 톱밥으로 만든 빵이나 가죽 구두를 끓여 만든 고깃국을 먹는다.
중앙시장에는 항상 시체가 들락날락한다. 내가 먹는 톱밥 빵과 가죽 고깃국조차도 언제나 턱없이 부족하다. 입은 많은데 음식이 없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입을 줄이고 그 입을 먹는 것을 선택했다. 시체는 그나마 보기 좋게 잘려 가판대에 진열된다. 아직까지 나는 사람을 먹는 수준까지 타락하지 않았다. 빵을 우물거리며 전쟁 전 지폐를 잔뜩 손에 쥔 사람들이 서로를 밀쳐대는 광경을 지켜보던 나는 한 사람을 발견했다. 전쟁 전 대한민국 재계서열 1000위 안에 들어가던 한 건설업체의 대표이사였던 그는 아직 팔팔한 사람들에게 밀쳐졌고, 이내 가판대에서 밀려났다. 공산주의자들은 모두가 평등한 사회를 만들고자 애써왔다. 하지만 그들의 노력은 버섯구름에 비할 바가 되지 못했다.

옛 우리 가족이 생각난다. 하늘 높이 치솟아 있는 주상복합 빌딩, 서민들은 꿈도 못 꾸는 외제차, 명품 시계와 옷. 주말마다 시골에 내려가 주말 농장도 가꾸고, 여름철이 되면 세계 각지로 여행을 떠났었는데. 아버지와 어머니는 핵전쟁이 시작된 날 돌아가셨다. 나만이 살아남아 이 도시에서 비참한 삶을 살고 있다. 개똥밭을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지랄하지 말라 그래라. 지금 나는 개똥밭이 아니라 지옥을 구르고 있으니까.

오늘도 저 멀리서 날카로운 비명이 들려온다. 저 소리에도 이제는 익숙해져서, 처음 저 소리를 들었을 때 느꼈던 공포는 더 이상 느껴지지 않는다. 나는 숨겨뒀던 반쯤 남은 위스키 병을 꺼냈다. 이 정도 술이라면 통조림도 살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 병을 반의 반의 반쯤 비웠다. 다시 병을 잘 숨겨둔 나는 취기가 적당히 올라오길 기다리며 침대에 누웠다. 따뜻한 쌀밥을 먹고 싶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고, 내 눈꺼풀도 서서히 닫혀갔다.

3041번 거주지에 살던 한 남성이 칼에 찔려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 그의 집을 완전히 뒤엎은 흔적이 발견되었으며, 바닥에는 위스키가 피와 섞인 채로 쏟아져 있었다. 그의 시체는 중앙시장으로 옮겨졌으며, 그의 몸은 수많은 사람들의 배를 채워 줄 것이다.





대충 써갈겨 봤다 씨발 모바일 손 존나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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