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승. 근무 교대 시간입니다."
"어, 필승. 고생해라. 내려간다."
필승. 참 묘한 말이다. 이기지도 못하면서 경례구호가 필승이라니. 필승이 뭐더냐. 반드시 이긴다가 아닌가.
근데 지금 세상 돌아가는 꼬라지를 보면 반드시 이기는 커녕 반드시 진다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자면 필승이랑 경례도 참 아이러니 하다.
어째서 필승인가. 그렇게 생각하며 계단을 내려가니 괜시리 내 처지도 암울해 보이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잡생각 같으니라고.
"필승, 수고가 많다."
"단..! 아니..필승! 죄송합니다!"
'단' 이라, 분명 단결이라고 말하려 했겠지. 단결, 특전사 출신이겠거니 하고 괜찮다며 나도 모르게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괜한 동질감에서 우러난 행동인듯 하다. 원래 세상은 학연,지연,혈연,흡연 아니라던가. 이것도 지연이라면 지연이겠지. 나도 특전사 출신이니까.
"저놈의 벽은 크기는 오질나게 커요..."
매번 근무 설때마다 느끼는 점이라고 하면 저 벽의 실감나는 크기와 높이다.
아파트 20층 높이에 두께는 잘 모르겠지만 안에 관제실도 있는 구획도 있고 휴게실도 있는 구획이 있으니 뭐 어련히 기술자들이 알아서 했겠거니 하고는 있다만
당최 사용자 편의는 생각하지는 못하는지 이 씨발같은 아파트 20층 높이의 벽을 내부 계단을 타고 올라가야 한다는 점이 나와 내 무릎을 아프게 하고있다.
그나마 엘레베이터 설치가 이루어지고 있다고는 해도 내가 담당하고 있는 구역에 설치되는걸 기다리자니 차라리 전역신청서를 내는게 더 빠를꺼 같기도 하다만.
뭐 어쩌겠는가. 저 벽을 지을때만 해도 엘레베이터 따윈 설치할 겨를도 없었을텐데.
전방에서 시시각각 꾸역꾸역 밀려드는 시체 떼앞에서 사용자 편의는 무시할수밖에.
"아후 존나 춥네...씨바 다음번 근무때는 패딩 곡 가져온다.."
언덕길을 내려가면서 불어오는 맞바람에 그저 욕만 지껄일 뿐이다. 추운데 뭘 어쩌겠는가, 패딩 안가져온 내 잘못이지.
그저 날이 쌀쌀하다길래 야상안에 좀 두껍게 입었는데. 하여간 일기예보는 믿는게 아니라니까.
그러고 보니 시체 떼가 등장하고 부터 영 푸른 하늘보기가 힘들어졌다. 1년 365일중에 흐린날이 대체 얼만지, 가늠조차 안된다.
하여간 이제나 저제나 전부다 망할놈의 시체 새끼들 때문이다. 그놈들이 짜잔하고 등장하고 나서부터 세상을 엿같이도 꼬여갔으니까.
맨 처음에 뒤진놈들이 다시 기어다니고 걸어다닌다고 할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소식을 믿지도 않았다.
말이 안되니까. 어떻게 뒈진놈이 걸어다닌단 말인가. 그렇지만 뉴스에서 한참 떠들때는 이미 늦었다고 주식하던 내 고등학교 동기가 한 말마따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소식을 들었을땐 이미 그들 등 뒤에선 시체들이 모가지를 덥석 물려고 한껏 뛰어들고 있던 참이었을꺼고.
그리고 결과는? 짜잔. 좀비 영화처럼 백신 개발! 좀비 퇴치! 미군 짱짱맨! 하하호호! 같은 스토리는 현실에는 온데간데 없었고
우리는 이리도 존나게 큰 벽 뒤에서 우리는 하루하루 목숨을 연명해 가고 있으니 이 얼마나 슬픈 엔딩이란 말인가.
"하여튼 그 양반 묘지라도 찾아가서 술이라도 부어줘야 한다니깐....아이 씨..도어락 밧데리 안사왔네."
아비가 제 자식을 물어뜯고 북망산천으로 떠나야할 사람이 장례식장에서 난리부르스를 치는 그 개지랄속에서
내가 어떻게 살아남았냐 하면 그것 나름대로 코미디다.
아까도 말했듯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때는 이미 늦은거다. 그렇지만 말을 뒤집어 본다면?
그 전에 미리 아는 사람들도 있다는거고. 당연히 "걸어다니는 시체" 또한 먼저 안 사람들이 있"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오는거랑은 다르게 우리네 정보기관들은 그렇게까진 무능하지는 않아서 이미 뉴스에 나오기도 전에 다 알고는 있었지마는.
어쨌거나 "뜬" 소문은 "뜬" 소문인지라. 정보기관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카더라~ 라는식으로 보고서를 올렸다간 높으신분들이 가만 있지는 않을터이고.
어쩔수 없이 그 "뜬 소문"에 대해 팩트 체크를 하기 위해서 어떤 "팀"을 보내기로 결정을 했을것이다.
대충 3팀 정도 보낸다고 했던거 같았는데. 결국에 출발한건 내가 있던 팀 하나뿐이었던걸로 기억한다.
여하튼 그렇게 우리의 주적이신 북괴 친구들 땅으로 들어가서 사진도 찍고 증거도 채집하고 나름 열심히 팩트를 모으고 있었는데,
그 "팩트" 덩어리들이 서울 한복판에 떡하니 등장해 피바다를 만들어 버렸으니 애꿏은 기름값,탄약값,인건비니 뭐니 다 날려버린 꼴이 되어버리고,
그와중에 우리 팀은 그 난리판에서 무선침묵을 지키다 보니 자연스레 우리는 잊혀진 존재가 되어버렸던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들은 잠행을 위해 저 태백산맥쪽에서 활동하다보니 시체놈들한테는 안전해져버렸으나 세상이 개판이 된일을 알리가 없으니
우리가 할수 있는거라고는 아무도 응답하지 않는 무전기에 연신 호출부호을 읖조리며 밤하늘의 별을 헤가며 산맥을 따라 쭉쭉 남하하는일 뿐이었다.
그나마 휴전선 근처에서 무전이 잡혔다만 자신들을 받아줄 부대를 찾는 낙오된 아군의 무전들뿐이었고,
가까스로 연락이 닿은 사령부에선 자력으로 경상도까지 후퇴하란 말뿐이었으니 우리로서는 여간 당혹스러울수밖에.
아무도 없는 철책선을 자르고 민통선을 넘어 주변 민가에서 얻은 신문을 통해서 그제서야 우리가 조사를 나섰던것은 일개 "생물학 무기"은 개뿔,
전세계적인 "괴질"이라는 것과, 우리가 본 "환자"들이 알고보니 전세계 곳곳에 퍼져있는 "걸어다니는 시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땐 너무 늦어도 한참 늦었다라는 것이다. 그 개판속에서 그나마 살아남을수 있었던건 역설적이게도 조국의 땅이 아니라 적군의 영토, 그것도 번잡한 대도시가 아니라 두메산골 깡촌에 있어서라니.
지금에 와서야 이걸 다행으로 여긴다지만 그땐 정말이지 충격을 받다못해 팀원 모두가 주저앉아 3시간 남짓 길가에 엎어져있었다...라는 이야기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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