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창세기 1:3-
사내는 그가 누구인지 궁금했다.
그저 길 잃은 방랑자인지, 아님 강도단의 선발대인지.
어쩌면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
쥐이거나 벌래, 아니면 돌연변이일지도.
사내의 머릿속에서는 여러 생각들과 추측들이 넘쳐났고
존재를 예상하며 어두운 통로를 가로질렀다.
그녀, 그것, 그들
아직 정체를 모르는 이상 여러 호칭이 사용될 수 있었다.
희미해져가는 초소의 빛이 사내의 시야를 밝혀주었지만 그 존재는 계속해서 빛이 닿지 않는 곳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발걸음이 빨라지고, 숨소리가 점차 커져갈 수록
영원할 것 같았던 벽의 회색빛이 점차 짙은 검은색으로
덮여만 갔다.
역의 영역을 아득히 벗어났고 또 범의 아가리 속으로
뛰어가는 듯 보였지만, 무엇이 되었든 역의 안녕과 평안을 위해선 불청객의 존재를 알아내야 했다.
사내의 숨소리와 발자국소리만이 그의 귓가에 들리고
더이상 벽이 회색빛을 띄지 못할때, 그제야 한가지
소리가 수줍다는 듯이 튀어나왔다.
'딸깍'
사내는 왼손으로 손전등의 스위치를 위로 올렸다.
제 위치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알리는 듯 스위치는 작게 몸을 흔들며 소리를 내었다.
손전등은 그 크기에 걸맞지 않게 온 사방으로 빛을 흩뿌리고 있었다.
회색빛의 천장과 바닥이 보였다.
빛은 벽을 위로하며 어루만지었고 그런 빛에게 벽은
자신의 모든 것을 드러내며 울고 있는 것 같았다.
오랜 만에 만난 빛을 그리워하며 벽은 말 그대로
모든 것을 드러냈다.
작은 실금에서 부터 여러 낙서들은 그나마 볼 만한 요소였다.
간단한 유머와 주어도 알 수 없는 욕설은 가끔씩 지나가는 여행자들의 감정을 자극했다.
"이 편지는 영국에서 시작되어.. ."
"ㅅ1벌 여기가 어디야."
"예수천국 불신지옥."
몇만년전에는 자신의 감정을 돌벽에 기록했다.
몇천년전에는 자신의 감정을 점토판에 기록했다.
몇백년전에는 자신의 감정을 종이에 기록했다.
몇십년전에는 자신의 감정을 인터넷에 기록했다.
그리고 이제는 원점으로 돌아가고 있다.
사내는 잠시 숨을 고르며 걸어갔고 자신도 모르게
이러한 생각이 들었다.
"분명 이것들도 시간의 시험을 견디어 낸다면
그 가치를 인정받겠지."
누가 적었는지도, 왜 적었는지도 모를 글자들을
흩고 지나가며 사내 또한 넓은 회색벽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아마 모든 사람들은 사람이 만들었지만 사람의 감정이 배제된 이 곳에 조금이나마 인격을 부여하고
싶었던 것일지 모른다.
그리고 그 시도는 지나치게 성공했다.
폭력. 욕망. 분노.
몇몇 낙서는 이러한 감정을 너무 적나라하게 표현했다.
붉은 색의 그 흔적들은 왜 인간이 이 곳으로 밀려왔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그 흔적들을 펼쳐나가
결국에는 메트로 전체를 가득 체울 것이다.
사내는 이러한 미래를 가장 슬퍼하였다.
후손들이 인간성을 상실하는 것이 이유가 아니라
이러한 낙서를 본다면 손전등을 꺼야하기 때문이다.
밝은 빛은 각종 벌래뿐 아니라 더 큰 것도 불러오기
충분했다.
빛을 향한 욕망은 수 만년동안 인류를 장악했다.
금과 보석이 아름답게 보이는것은 그저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딸깍'
다시 스위치가 내려감에 따라 벽은 그 동반자를 잃었고
곧이어 검은 화면만이 시야에 들어왔다.
실금도 욕설도 심지어 붉게 새겨진 낙서들도 모두 자취를 감추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사내는 장총을 앞으로 겨냥하고는 조용히 숨을 고를
뿐이었다.
긴장감과 공포가 섞인 감정이 사내의 손을 떨게 만들었다.
당장이라도 누군가 총구를 잡아채서 내 총으로
나의 머리를 따버릴 것 같았다.
누군가 뒤에서 내 등짝에 칼을 집어넣을 것 같았다.
누군가 멀리서 폭탄으로 나를 터트릴 것 같았다.
'나처럼 아니 나는, 나는 그저'
왜 내 입에서 이런말이 절로 튀어나왔는지 알 수 없었다.
이렇게 까지 멀리 나간적은 없었기 때문일까?
내가 다시금 정신이 든 것은
모퉁이에서 빛이 나오며 시각을 되찾게 되었을때지만 그렇다고 그들에게 고맙다 인사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피칠갑을 한 세명의 사람들이 웃으며 나를 보고있는데
어찌 내가 그들에게 반갑다 하겠는가?
셋 중 중앙에 있는 사람은 반짝이는 목걸이를 차며
큰 가방을 들고 있었다.
오른쪽의 사람은 횟불을 들며 바닥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왼쪽의 사람은 대충보아도 온몸이 상처 투성이에 딱지와
흉터가 가득했다.
다행이도 그들은 나에게 천천히 다가왔고, 나는 그들에게
총구를 겨누며 크게 외쳤다.
"움직이면 쏜다. 정지!"
나의 말에 반응한 중앙에 있던 사내가 시선을 나에게로 옮기었다.
그러고는 나에게 말을 걸었다. 이상한 말들을.
"너, 혹시 빤짝이 있어? 빤짝이말이야."
"몰라, 나는 없으니 그냥 돌아가. 다시 터널 속으로 들어가라고."
"아, 빤짝이를 모르는구나, 내가 알려줄께."
그는 가방을 내려놓더니 그 속을 내게 드러냈고, 여러 유리조각들이 그 안에 가득했다.
그러고는 손을 그안에 집어넣은뒤 휘집으며 붉은 유리병을 꺼내었다.
순간 그게 뭔지 알 것 같았다. 피, 사람의 피.
예상을 뛰어넘는 일이었다. 아니, 이걸 누가 예상할까?
"이게 빤짝이야! 빤짝 빤짝.."
그는 그저 신난듯 약간 노래를 흥얼거리더니 갑작이
병을 내려쳤다.
병은 부서지며 핏덩이를 내뱉을 뿐이었다.
"빤짝이가 아니잖아! 빤짝이 어디갔어!"
그는 정신없이 제 손을 가방에 넣으며 저었고, 가방이
점점 붉게 물드는게 보이기 시작핬다.
"더이상 앞으로 나가지마. 더이상."
나는 그 광기에 압도되어 누구에게 하는말인지 모른체
서서히 뒷걸음질 쳤다.
그들의 불빛대신 터널의 어둠이 그리워지고 있었다.
중얼거리는 말소리가 점점 줄어들고, 오직 걷는소리만이
들려오고 있었다.
벽이 다시금 어두워져 제 색을 잃어가고 있을때 나는 그제야 안심하며 몸을 돌렸다.
생각보다 터널에 쥐가 많은 듯 했다. 쥐들의 숨소리가
내 귀에까지 들려왔기 때문이다.
"혹여나 쥐를 밟으면 골치아프지."
본능처럼, 무의식적으로 손전등이 빠져나왔다.
나는 다시 손전등의 빛에 매료되어 그걸 지팡이 삼아
한발자국씩 앞으로 나아갔다.
허나 기이한 일이었다. 쥐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한가지 들어본 소리가 들려왔다.
"너, 그거 빤짝이잖아. 왜 숨긴거야?"
등 뒤에서 달려오는 소리에 황급히 총구를 돌렸지만
그들의 억악스러운 손길에 총알은 괜한 천장만을
상하게 할 뿐이었다.
하얀 돌가루가 공중으로 뿌려지며 그 자태를 뽐내다
서서히 사라져갔다.
'원래 일은 급할 수록 안 풀리더라.'
순간 손에 힘이 풀렸고, 턱에 강한 충격이 밀려왔다.
나는 미끄러지듯 엎어져 멍청하게도 머리로 착지하였다.
범의 아가리에 들어간듯 앞이 컴컴해졌다.
괴상한 일이었다. 옆에서 횟불이 비추어져도 어둡다니.
사내는 들려오는 소리를 자장가 삼아 눈을 감았다.
초소에서는 그토록 끔찍했던 비명소리와 총소리가,
꿈에서 종종 튀어나와 그를 괴롭히던 소리조차, 이제는
차마 사내를 깨울엄두조차 하지 못한체 그저 주위를 맴돈다.
갓 흘린 핏방울이 방울져 한데 섞일때 더이상 비명소리도 총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직 굳지 않은 웅덩이를 지나는 걸음소리만 들려올 뿐이였다.
검은 방독면을 쓴 두명의 사내가 웅덩이를 지나고 있었고
웅덩이는 아직 굳기에는 이른지라 그들의 발걸음은 그다지 무거워 보이지는 않았다.
검은 군화 위로 붉은 빛이 돌았다가 다시 검게 변화하며
이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들은 바닥에 널부러진 사람들을 보며 안쓰럽다는 듯
고개를 서서히 내저었다.
"쯧, 불쌍하기도 하지. 어쩌다 미치게 되었을까?"
"뭐, 방사능때문이지. 방사능이 어디 한 두명 잡아갔겠냐. 운 없는 사람들. 나였으면 얌전히 짱박혀서 죽겠다."
"병시나 방사능에 피폭되서 미친것 같냐? 저건
생화학ㅇ병기때문에 그런거야. 전쟁때 북괴놈들이
온갓 지랄한거 라디오에서 안 들었냐?
"병기 이ㅈㄹ. 말은 참 잘해요 ㅅㅂ 그럼 왜 메트로 내에서 전염병이 돌지 않은건데? 지금쯤 한 세 번은 물갈이 되고도 남았겠다."
키가 큰, 남색의 우비를 뒤집어쓰며 방탄모를 걸친
남성이 동료의 말을 받아치며 사내의 몸을 발로 찼다.
웅덩이가 미미한 파동을 만들어냈고, 사내가 몸을 꿈틀대며 발버둥쳤다.
"커억!"
"ㅅㅂ 살아있어! 살아있다고!"
큰 키의 남성은 당혹스럽게 외치고는 뒷걸음질 쳤다.
"맙소사, 어떻게?"
같은 색의 우비를 걸쳤지만, 키가 작고 더 뚱뚱한
남성이 사내에게 다가갔다.
장갑을 벗은 손으로 사내의 콧밑을 확인한 그는
사내의 콧밑에서 흐린 바람만이 힘겹게 나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뚱뚱한 남성은 결심한 듯 일어서더니
등 뒤로 맨 장총을 앞으로 돌리고는 총구를 사내의
머리쪽으로 가르켰다.
"미쳤어? 살아있다고!"
"닥쳐! 어짜피 광인이고, 지금 죽이지 않으면 쥐들 때문에 뜯어 먹히며 죽음을 맞이하게 될거야. 오히려 이게 가장 자비로운거야."
뚱뚱한 남성은 눈을 감더니 총을 다시 등 뒤로 걸치었다.
그런뒤 한가지를 말하였다.
"쏘기전에 한가지만 부탁하자. 주기도문 좀 같이 말해주라."
"그것 쯤이야, 그런대 왜?"
"십자가를 봐, 같은 기독교인이야. 뭔가 동질감이 들거든."
둘은 총을 뒤로한체 손을 모아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소리조차 벽을 뚫지 못하고 튕겨져 허공을 맴돌고 있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
사내가 기침소리를 내며 몸을 마구 흔들었다.
사내의 몸짓으로 방울이 마구 튀기며 그들에게도 퍼져나갔다.
그들의 입에서 기도가 멈추었지만 기도 소리는 여전히
남아 사내의 기침소리와 메아리 쳤다.
"가지마, 약속했잖아. 부탁이야."
사내는 그토록 기침하면서 무엇을 내뱉으려 하는것인가?
외치는 그 몇마디를 내뱉기 위해 얼마나 몸을 뒤틀어야 하는가?
그들의 총구는 바닥을 바라보고 시선은 사내를 향했으니
사내가 그럴 의지만 있다면 능히 이루고자 하는 바를 이룰 것이다.
그들은 사내를 쏠 수 없었다.
기도 소리가 희미해지다 결국에는 사라지고, 오직 기침
소리만이 그들을 감싸고 있었다.
셋은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다시금 빛을 향해서.
뚱뚱한 남성이 작게 중얼거렸다.
"세상이 사라진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하는가?"
큰 키의 남성이 그의 말에 반응하였다.
"어머니는 사과나무를 심는다고 하시겠지.
하지만 나는 그 나무와 함께 따뜻한 밤을 보내고 싶군."
+부족하거나 고쳐야되거나 이상하거나 한건
댓글로 써줘요.
+ㅁㅊ 포붕이들, 필력이 나만 제외하고 전부
상향평준화되었네. 학원 다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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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단편인줄 알았는데 장편이었노
그래도 분량은 단편이다... - dc App